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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1/28 19:15:30
Name   droysen
Link #1   http://blog.naver.com/rankecarr/221148646905
Subject   괴팅겐, 음악을 통한 역사적 화해
안녕하세요. 오늘은 음악과 역사 이야기를 올려보려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마찬가지로 개인 블로그에 먼저 올렸던 내용이기에 링크로 따로 표시를 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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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6월 프랑스 가수 Barbara(본명 Monique Andrée Serf)는 괴팅겐의 극장 담당자 한스-귄터 클라인의 초청을 받아 괴팅겐에 연주를 위해 들르게 된다. 1930년에 파리에 태어난 바르바라는 유대인이었으며,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나치 독일로부터 점령된 파리에서 도망친 개인적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 초청을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이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초청을 받은 직후 그녀는 거절의 의사를 전달했고, 다음 날 거듭된 요청을 받고나서야 마지못해 초청을 수락했다.

"Barbara: Aber wer kennt mich in Göttingen?
Klein: Die Studenten kennen Sie!
Barbara: Ich wünsche nicht nach Deutschland zu gehen.
바르바라: 괴팅겐에서 누가 저를 알겠어요.
클라인: 학생들은 당신을 알아요!
바르바라: 저는 독일에 가고 싶지 않아요".
(바르바라의 회고 중에서)

그러나 바르바라는 초청을 위해 조건을 하나 덧붙였다. 공연을 할 때 반드시 그랜드 피아노를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클라인은 당연히 알았다고 했으나, 막상 공연일이 될 때까지 그랜드 피아노를 구하지 못하고 일반 업라이트 피아노를 공연장에 마련했다. 공연 당일 이 사실을 알게된 바르바라는 격분하며 공연을 거부했다.


1964년 괴팅겐을 방문했을 때 바르바라의 모습

이에 공연을 관람하려 했던 괴팅겐 대학교의 대학생들은 주변을 수소문해서 당시 그랜드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던 한 중년의 아주머니로부터 이를 잠시 빌렸다. 이런 사정으로 공연은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두시간 가까이 늦게 (그리고 바르바라가 나중에 고백하듯이, 본인은 매우 언짢은 상태로) 시작되었으나, 관객의 반응은 예상 외로 열광적이었다. 이런 뜻밖의 환대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바르바라는 괴팅겐에서의 체류를 일주일간 연장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그녀는 괴팅겐이라는 도시로부터 받은 인상을 토대로 노래를 하나 작사 작곡하게 된다.

https://youtu.be/t0sNy1xOhRc

노래 제목은 Göttingen, 즉 "괴팅겐"이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Bien sûr, ce n'est pas la Seine,
Ce n'est pas le bois de Vincennes,
Mais c'est bien joli tout de même,
A Göttingen, à Göttingen,

물론, 세느강은 아니죠.
뱅센느 숲도 아니구요.
그래도 여기도 마찬가지로 괜찮은 곳이에요,
괴팅겐 말이에요.

Pas de quais et pas de rengaines,
Qui se lamentent et qui se trainent,
Mais l'amour y fleurit quand même,
A Göttingen, à Göttingen,

슬퍼하거나 질질끄는
부두도 없고 노래도 없지만
그래도 사랑이 꽃피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괴팅겐 말이에요.

Ils savent mieux que nous, je pense,
L'histoire de nos rois de France,
Hermann, Peter, Helga et Hans,
A Göttingen,

제 생각에는, 여기 사람들이 우리보다
프랑스 왕들의 역사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헤르만, 페터, 헬가, 그리고 한스가 있는
괴팅겐 말이에요.

Et que personne ne s'offense,
Mais les contes de notre enfance,
"Il était une fois" commencent,
A Göttingen,

그리고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우리 어린아이들의
"옛날 옛적에"와 같은 동화들 역시
괴팅겐에서 시작돼요.

Bien sûr, nous avons la Seine,
Et puis notre bois de Vincennes,
Mais, Dieu, que les roses sont belles,
A Göttingen, à Göttingen,

물론, 우리에게는 세느강이 있고,
게다가 뱅센느 숲도 있지만,
어머나, 장미들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괴팅겐에서 말이에요.

Nous, nous avons nos matins blêmes,
Et l'âme grise de Verlaine,
Eux, c'est la mélancolie même,
A Göttingen, à Göttingen,

우리에게는 어슴푸레한 아침이 있고,
베를렌의 횟빛 영혼이 있지만,
여기는 멜랑꼴리 그 자체에요,
괴팅겐 말이에요.

Quand ils ne savent rien nous dire,
Ils restent là à, nous sourire,
Mais nous les comprenons quand même,
Les enfants blonds de Göttingen,

그들이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할 줄 모를 때,
거기 머무른 채 우리에게 미소만 짓지만,
우리는 그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괴팅겐의 금발 아이들 말이에요.

Et tant pis pour ceux qui s'étonnent,
Et que les autres me pardonnent,
Mais les enfants se sont les mêmes,
A Paris ou à Göttingen,

놀랄 이들에게는 안됐지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들은 어디나 똑같아요,
파리에서나 괴팅겐에서나 말이에요.

Oh faites que jamais ne revienne,
Le temps du sang et de la haine,
Car il y a des gens que j'aime,
A Göttingen, à Göttingen,

피와 증오의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여기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괴팅겐 말이에요.

Et lorsque sonnerait l'alarme,
S'il fallait reprendre les armes,
Mon coeur verserait une larme,
Pour Göttingen, Pour Göttingen

경보가 다시 울릴 때,
무기를 다시 들어야 한다면,
내 마음 속에서는 눈물을 흘릴거에요.
괴팅겐을 위해서, 괴팅겐을 위해서 말이에요".

괴팅겐을 떠나 파리로 돌아가기 전날 이 노래를 발표한 바르바라는 관객으로부터 다시 한 번 뜨거운 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후에 자서전에서 바르바라는 괴팅겐에서의 체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En Göttingen je découvre la maison des frères Grimm où furent écrits les contes bien connus de notre enfance. C'est dans le petit jardin contigu au théâtre que j'ai gribouillé 'Göttingen', le dernier midi de mon séjour. Le dernier soir, tout en m'excusant, j'en ai lu et chanté les paroles sur une musique inachevée. J'ai terminé cette chanson à Paris. Je dois donc cette chanson à l'insistance têtue de Gunther Klein, à dix étudiants, à une vieille dame compatissante, à la blondeur des petits enfants de Göttingen, à un profond désir de réconciliation, mais non d'oubli.

괴팅겐에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동화들이 쓰여졌던 그림 형제의 집을 발견했다. 내가 괴팅겐에서 머문 마지막 날 낮에 나는 괴팅겐 극장에 닿아있는 작은 정원에서 "괴팅겐"을 휘갈겨썼다. 마지막 날 밤에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과하면서 가사를 읽고 노래했다. 나는 파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노래를 완성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귄터 클라인, 열 명의 대학생, 동정심 있는 한 나이든 아주머니, 괴팅겐의 금발 아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망각이 아니라 화해에 대한 갈망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가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동화 이야기는, 바르바라가 직접 이야기 하고 있듯이, 그리고 괴팅겐에 살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그림 형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림 형제는 괴팅겐 대학에서 활동하는 교수였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하게, 바르바라는 이 노래를 통해서 지나간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고자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망각'이 아닌 화해라는 점을 꼭 집어 말하고 있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바르바라 본인이 직접 겪은 개인적 경험을 감안한다면, 그녀가 화해를 추구하고자 했다는 사실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바르바라의 이 노래는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화제의 대상이 된다. 이 노래는 프랑스에서 괴팅겐이라는 작은 도시와 대학교가 대중에게 알려지는데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독일 양 민족간의 화해 분위기가 형성되는데도 크게 기여한다. 이에 바르바라는 독일어로 번역된 이 노래를 들고 1967년에 괴팅겐을 재방문한다. 바르바라는 이후 개인 공연에서 이 노래를 항상 불렀다고 한다.


1967년 재방문했을 때의 모습

https://youtu.be/gM3UC_TmQgo
바르바라의 독일어 발음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괴팅겐이라는 노래의 의의는 단기적인 성질의 것은 아니다. 1988년 괴팅겐 시는 바르바라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고, 2002년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길 이름을 만들었다 (Barbarastraße). 괴팅겐이라는 도시를 넘어서서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와 독일 양국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화적 역할을 하고 있다. 2002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이 노래를 초등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배우게끔 했으며, 이듬해에는 당시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엘리제 조약 40주년을 맞아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독일과 프랑스 의회의 공동 행사에서 이 노래를 인용했다. 여기에 슈뢰더 총리 본인이 60년대 중후반 괴팅겐에서 공부한 경험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Ich selbst habe, meine Damen und Herren, zu jener Zeit insgesamt mehr als zehn Jahre in Göttingen gelebt und dort studiert. Ich hatte leider keine Gelegenheit, das Lied von ihr selbst gesungen zu hören. Doch das Chanson hallte überall in der Stadt wieder und weit darüber hinaus.
Was Barbara dort direkt in unsere Herzen hinein gesungen hat, das war für mich der Beginn einer wunderbaren Freundschaft zwischen Deutschen und Franzosen.

여러분, 저 스스로가 10년이 넘게 괴팅겐에서 살고 공부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바르바라가 직접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을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는 도시 곳곳에서 울려퍼졌고 도시 너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울렸던 바르바라의 노래는 저에게 있어서 독일인과 프랑스인 사이의 놀라운 우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민족 간의 역사적 화해라는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바르바라는 예민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는 "어린아이"라는 대상을 소환함으로써 우회한다. 그리고 그림 형제의 동화, 즉 양자 간에 공유하고 있는 역사를 소환한다. 예술 작품이니까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 프랑스와 독일 간의 국가적 차원에서 화해의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있다. 책임의 문제는 예술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뤄도 되니까 (반드시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노래는 어찌됐든 음악이 지니는 호소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괴팅겐에 있는 "바르바르길"


1964년 바르바라가 머물렀던 곳을 기념하여 만든 조그마한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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