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1/14 14:00:38
Name   tannenbaum
Subject   결혼하지 않는 남자.
제 얘기 아닙니다. 전 법적으로 혼인이 불가능해여. 긍까... 저는 결혼을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임.



또래 이성애자 남자사람친구가 있습니다. 허우대 멀쩡하고 직업 안정적이고 성격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 미혼입니다. 그친구가 독신주의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좋은 여자만 있으면 언제든 결혼 하겠다 노래를 합니다. 그런데 이 서로 마음이 맞는 좋은 여자라는게 그 친구 어머니같은 여자라는 게 결혼을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어머니와 외모가 비슷한 여자를 찾는게 아닌 어머니 같은 여자를 원하는거지요.

이 친구 어머님은 결혼을 이후 아이들을 키우시면서도 일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하고 국을 끓여 아버님 상을 차립니다. 아버님은 어제먹은 반찬이 아침에 올라오면 불같이 화를 내셨기에 매일 매일 새벽시장에 장을 봐와 매끼 밥을 지으셨죠. 그렇게 아버님과 자식들 아침을 해먹이고 설거지를 마치고 일을 하러 나가셨습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다시 저녁을 차리고 빨래와 집안청소를 하십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님과 제 친구 형제들은 손가락 까닥하지 않고 누워 티비만 봅니다. 아버님 직업이 대단하거나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랬으면 도우미를 썼겠지요. 그냥 평범에서 약간 빠지는 서민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전업주부이건 맞벌이건 모든 집안일과 대소사 챙기는 건 오롯이 어머님 몫이었죠.

2차 베이비붐 마지막 세대인 70년대 태생 40대 이상 한국 남자들은 이런 생활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40대 이상 남자들은 가사=여자몫 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너무 익숙해져버린것이죠. 더 문제는 스스로 바뀌기를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바뀌는 게 옳다는 건 머리로는 알지만 귀찮고 왠지 손해 같거든요. 내 친구놈도 머리로는 알아요. 그런데 집안을 하기가 귀찮은거지요. 지금도 부모님과 같이 살며 여전히 일 나가시는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챙겨주는 옷을 입고 치워주는 침대에서 편안하게 사는데 현실에 그런 여자 찾기도 어려울 뿐더라 이런 생활을 포기할 이유나 당위가 1도 없으니 결혼을 안하는 거죠.

집에서 잔소리는 듣기는 하지만 밥해줘 빨래해줘 청소해줘 알아서 다 챙겨줍니다. 그 생활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여자를 만나 이런 평화로운 생활을 깨기 싫다니 제가 상관할바는 아니지만 부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 인생 지 방식대로 사는거겠죠. 또 40대 이상보다야 수는 훨씬 적겠지만 요즘 2-30대 젊은 신랑들 중에도 분명 있을거에요. 저도 현실에서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래도 내 친구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부자는 아니라 반반결혼, 맞벌이를 원하지만 독박가사를 요구하는 남편이 되는것을 거부하고 결혼을 안하는 점. 이건 매우 칭찬해줄만 합니다. 엄한 여자 인생 조지는거보다야 백번 낫지요. 그 친구네집에 며느리로 들어가는 순간 일어날 일들은 안봐도 100프로니까요.

하지만 이리 말하는 저도 그 친구와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섯명이 20년 넘게 계모임을 해오고 있는데 예전엔 친구네 집에서 돌아가며 모임을 했습니다. 물론 제수씨들이 술상을 준비하면 우리는 손가락 까닥 않하고 마시고 놀고 떠들다 퍼질러 잡니다. 그러면 우리 잠자리까지 봐주었지요. 맞벌이 하는 제수씨들이 우리 계모임 준비를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웬수들도 이런 웬수들이 없었을겁니다. 몇년전이었나요. 느그들 술 쳐먹을라면 나가서 쳐먹고 와라!!! 외박하면 더 좋다!!! 제수씨들이 더이상 느그들 계모임 준비 안한다 선언을 했고 이후 우리는 밖에서 계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알았던것이죠. 그게 얼마나 불합리했던 것을요.

긍까... 그런거 같아요.

요새 남녀간의 갈등의 요인 중 하나는 각자 기대되는 성역할의 변화가 아닐까 시포요.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강제되는 세상에서 남녀간에 우리 이전세대들에게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에서 변화된 역할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성장통같은거요. 그래서 이런 갈등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게 지지고 볶다보면 어떻게든 답이 나오지 않을까... 뭐 그렇게 생각이 든다는거지요. 다만, 그 성장통이 너무 크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구요.





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024 1
    15878 창작또 다른 2025년 (3) 3 트린 25/12/04 287 2
    15877 스포츠[MLB] 코디 폰세 토론토와 3년 30M 계약 김치찌개 25/12/04 215 0
    15876 창작또 다른 2025년 (1), (2) 8 트린 25/12/03 457 7
    15875 기타유럽 영화/시리즈를 시청하는 한국 관객에 관한 연구(CRESCINE 프로젝트) 19 기아트윈스 25/12/03 567 2
    15874 일상/생각큰일이네요 와이프랑 자꾸 정들어서 ㅋㅋㅋ 14 큐리스 25/12/02 954 5
    15873 오프모임12월 3일 수요일, 빛고을 광주에서 대충 <점봐드립니다> 15 T.Robin 25/12/01 548 4
    15872 경제뚜벅이투자 이야기 19 기아트윈스 25/11/30 1509 14
    15871 스포츠런린이 첫 하프 대회 후기 8 kaestro 25/11/30 440 12
    15870 도서/문학듣지 못 하는 아이들의 야구, 만화 '머나먼 갑자원'. 15 joel 25/11/27 1044 27
    15869 일상/생각상남자의 러닝 3 반대칭고양이 25/11/27 699 5
    15868 정치 트럼프를 조종하기 위한 계획은 믿을 수 없이 멍청하지만 성공했다 - 트럼프 행정부 위트코프 스캔들 6 코리몬테아스 25/11/26 903 8
    15867 일상/생각사장이 보직해임(과 삐뚫어진 마음) 2 Picard 25/11/26 690 5
    15866 일상/생각기계가 모르는 순간 - 하루키 느낌으로 써봤어요 ㅋㅋㅋ(와이프 전전전전전 여친을 기억하며) 5 큐리스 25/11/25 627 0
    15865 경제주거 입지 선택의 함수 4 오르카 25/11/25 650 3
    15864 철학/종교진화와 창조, 근데 이게 왜 떡밥임? 97 매뉴물있뉴 25/11/25 1871 4
    15863 일상/생각창조론 교과서는 허용될 수 있을까 12 구밀복검 25/11/25 1057 17
    15862 기타★결과★ 메가커피 카페라떼 당첨자 ★발표★ 11 Groot 25/11/23 616 4
    15861 기타[나눔] 메가커피 아이스 카페라떼 깊콘 1 EA (모집마감) 31 Groot 25/11/21 675 3
    15860 일상/생각식생활의 스트레스 3 이이일공이구 25/11/20 714 1
    15859 일상/생각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moqq 25/11/20 646 7
    15858 오프모임[취소] 11월 29일 토요일 수도권 거주 회원 등산 모임 13 트린 25/11/19 770 3
    15857 경제투자 포트폴리오와 축구 포메이션2 2 육회한분석가 25/11/19 476 3
    15855 의료/건강성분명 처방에 대해 반대하는 의료인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넋두리 46 Merrlen 25/11/17 2012 2
    15854 경제투자 포트폴리오와 축구 포메이션 육회한분석가 25/11/17 563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