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18/03/20 07:33:22 |
Name | 다시갑시다 |
Link #1 | https://electricliterature.com/in-praise-of-tender-masculinity-the-new-non-toxic-way-to-be-a-man-7bb4f0159998 |
Subject | 부드러운 남성: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단상 |
페미니즘을 통해서 좀 더 주도적이고 카리스마있는 여성 롤모델들의 출현에 비하여, 시대에 어울린다 할법한 남성 롤모델들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탐라들을 좀 찾아보려했는데 키워드가 잘못되었는지, 다들 펑글이였는지, 아니면 제 기억보다 예전인지 잘 찾지 못하겠네요. 간간히 이에 관한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마침 관련된 포스트를 읽어서 간단하게 나누어봅니다 (링크#1). 원제는 [In Praise of Tender Masculinity, the New Non-Toxic Way to Be a Man]입니다 글은 기존의 남성성은 유독(toxic masculinity)하다는 이야기 부터 시작합니다. 유독한 남성상의 스펙트럼 한쪽에는 강력한 마초이즘을 기반으로 열정과 감정의 표현을 분노와 폭력으로만 표출할줄알고, 이러한 감정적 약점은 로맨틱 파트너가 전적으로 짊어지게합니다. (예: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표면적으로 보았을때 반대쪽 스펙트럼의 '착한남자'는 전자에 대한 해답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착함'은 그들이 관심이있는 로맨스 대상에 대한 감정에만 기반합니다. (예: 500일의 썸머의 톰) 유독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는 미국에서 통용되는 고전적 남성성의 문제점의 집약체를 지칭하는 단어고, 좀 더 진보적이고 착해보이는 남성상도 많은 경우 행동의 근원이 이러한 고전적인 해석의 조금 변형된 형태일뿐이라는것을 주장하는거죠. 고전적 남성성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탐라에서 최근에 한번 나누어지기도했습니다 (https://redtea.kr/?b=31&n=83281) 이 글은 폭력적으로 발현되는 유독한 남성상의 시대에 대한 해답으로 부드러운 남성성/Tender Masculinity을 주장합니다. 근육뻠삥에 감정적으로 차단된 마초맨도 아니고, 너드스럽고 음울한 착한남자들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남성은 더 다채로운 남자라고하는데... 부드러운 남자를 구성하는 조건들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에 이 리스트로 답을합니다 a. 로맨틱한 관계가 아닌 대인관계에도 투자를 하는가? b.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가? c. 자기지각에 대해 편한가? d. 본인의 성장에 투자를 하는가? e. 경계의 설정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가? f. 남성간의 친밀감에 대해 편해하는가? 예를 들어 게이농담을 하지 않고 남성친구들간의 우애를 표현할줄 아는가? 이 질문들에 더 많이 예라고 대답할수있을수록 더 부드러운 남자라거죠. *미국과 한국간의 문화차이 때문에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듭니다. 미국에서도 이 리스트가 10계명이라기보다는 생각을 해볼법한 가이드라인에 가깝겠죠. 그리고서는 영화와 책에서 이런 부드러운 남자의 예를 몇가지 듭니다. (제가 아는 작품들은 한글로, 모르는 작품들은 영어로 표기합니다) a. 반지의 제왕의 샘와이즈 갬지 b. 문라이트의 후안,리틀/블랙/카이론,케빈 c. Roswell의 카일 발렌티 d. Son of a Trickster의 자레드 e. 해리포터의 리무스 루핀 f. 매직 마이트 XXL의 모든 멤버들 이 리스트에서 개인적으로는 반지의 제왕과 문라이트를 가장 감명 깊게 보았기에 이둘에 관한 본문의 내용을 조금만 옮기겠습니다. =샘와이즈 갬지= 반지의 제왕에는 많은 영웅들이 존재하지만, 그들 중 단연코 최고의 영웅은 샘와이즈 갬지입니다. 마지못해 여정에 떠낫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도를 향한 우애를 동기로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프로도가 절대반지의 역경을 외롭게 짊어지지 않게 그 무게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필요한때에는 친구를 위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고요. =문라이트= [부드러운 남성성은 완벽함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야하는 삶의여정 중 하나죠] 문라이트의 남성들은 사회의 폭력적인 남성성에 타협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씬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장면들입니다. 후안이 리틀(카이론의 유년기)에게 수영을 가르키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미디어에서 기존의 남성성, 특히나 흑인 남성성이 표현되던 방법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자주 무시되는 남성간의 우애의 가치를 잘 보여주었죠. 남성간의 우애는 사실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라고 생각하기는합니다. 최근 탐라에서 일본소년만화에서의 우애를 언급했던게 기억나네요(https://redtea.kr/?b=31&n=81433). 다만 남성의 우애는 자주 나오는 주제지만, 그 종류는 한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싸나이의 우정이란 본디 서로 말안해도 다 알고 그런거죠. 설사 의견의 차이가있어도 그냥 시원하게 주먹질 하고 뒤끝없이 깔끔하게 웃고 (혹은 박력있게 울고) 넘기는거죠. 제가 보고 자란 80~00년대 만화들에서는 그게 더 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탐라에서 슬램덩크 이야기도 나왔고, 제 나이대의 많은 남자들에게 워낙 갓-작품으로 꼽히기도하는 슬랭덩크 또한 사춘기 남자애들+스포츠라는 특성까지 더해져서인지 슬램덩크의 우정 또한 저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던게 아닌가 고민해봅니다. 불꽃남자 정대만의 팀입단 아크를 읽은지 몇년된 제 기억으로 재구성해보면... 정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진심에 솔직하지 못하여서 괴로워했고, 본심을 인정하면서 치유를 받는 '부드러운 남성'적인 성장이야기지만 동시에 주위 친구들과의 관계가 깊게 표현되지는 않는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사단을 친후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책임을지는 과정은 가벼운 개그스러운 컷들로 넘어갔던것 같네요. 물론 정대만이라는 캐릭터의 입장에 독자들이 최대한 대입되기를 바라며 그린 아크인만큼 그부분에서는 굉장히 훌륭했습니다. 다만 그 이후 대인관계 이야기를 더 다각면으로 그렷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 서사면에서 그것을 좋은 결정으로 만들수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다른 작품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접근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됩니다. 케바케 사바사를 생각하다보면 롤모델의 중요성을 깍아내리게 됩니다. 근데 또 제가 동경했던 사람들을 돌이켜보면 알게 모르게 제가 그 사람들을 많이 모방하고있다는것을 알아채기도하죠. 한두개의 작품, 한두개의 캐릭터가 어떠한 롤모델을 형성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겁니다. 보통 살아가며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조금씩 모방하며 자아를 만들어갈테니까요. 대신에 대다수의 작품, 대다수의 캐릭터들이 특정한 형태만을 추구하는건 경각심을 가져야겠죠. 결국 라이프는 케바케 사바사니까요. "부드러운 남자"가 새로운 시대의 남성성일수도있고 아닐수도있습니다. "부드러운 남자"의 정의도 더 명확해져야하고, 이게 사회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공감을 얻을지 알아 보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필요하겠죠. 다만 현재 명확해보이는건 기존의 남성성 롤모델의 한계를 다수가 느끼고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건 이제 서로와 후생들에게 롤모델이 될수있는 현재의 남성들의 마음가짐이겠죠. [나는 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싶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사람이 되는것이 가장 보람되고 건강할까] 이 질문을 스스로, 그리고 서로에게 계속 던지고, 그 어떠한 답변에도 일단은 열린 자세로 들어본다면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은 계속 변화하는 여정이니까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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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이 글이 곧 젠더 개념이 무화되고 대신 롤모델 삼을만한 성인 인간형의 자리에 지금 현대 여성이 추구하는 인간상이 놓일 것이다 라고 읽히네요
우선 현대 여성 롤모델과 글에서 제시하는 남성 롤모델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여성 롤모델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으로 보여서요. 여성 롤모델은 일견 '부부가 유별하다'에 대한 안티테제로부터 출발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젠더라는 개념 자체를 반박하는 것이지 않나••• 그렇다면 여성과 구별될 남성의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논의 또한 불가능해보이고 그러한 가운데 현대에서 성인 롤모델의 미덕 = 현대 여성상이 갖추어야 한다고 합의된 미덕으로 수렴되고 그 다음 현대 성인 롤모델이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게 되지 않을까 싶읍니다
주인공이 아닌, 여주인공의 이상형.
글쎄요. 저는 남성향 만화의 여주 환상과 별 차이가 없어보이네요. 여성향 만화의 남주 환상.
요즘은 유미의 세포들의 바비가 딱 여기 맞는 부드러운 남성상 캐릭터죠.
문라이트는 좋은 영화지만 후안은 마약상이며 전형적인 '내 여자에겐 따뜻한 차도남',
'빗속의 고양이를 줍는 양아치' 클리셰죠.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남자들의 우애가 전혀 아닙니다.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대안적 부자관계죠.
망가진 모자관계, 없는 부친.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서의 후안과
상처받은 아이, 아들과 같은... 더 보기
글쎄요. 저는 남성향 만화의 여주 환상과 별 차이가 없어보이네요. 여성향 만화의 남주 환상.
요즘은 유미의 세포들의 바비가 딱 여기 맞는 부드러운 남성상 캐릭터죠.
문라이트는 좋은 영화지만 후안은 마약상이며 전형적인 '내 여자에겐 따뜻한 차도남',
'빗속의 고양이를 줍는 양아치' 클리셰죠.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남자들의 우애가 전혀 아닙니다.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대안적 부자관계죠.
망가진 모자관계, 없는 부친.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서의 후안과
상처받은 아이, 아들과 같은... 더 보기
주인공이 아닌, 여주인공의 이상형.
글쎄요. 저는 남성향 만화의 여주 환상과 별 차이가 없어보이네요. 여성향 만화의 남주 환상.
요즘은 유미의 세포들의 바비가 딱 여기 맞는 부드러운 남성상 캐릭터죠.
문라이트는 좋은 영화지만 후안은 마약상이며 전형적인 '내 여자에겐 따뜻한 차도남',
'빗속의 고양이를 줍는 양아치' 클리셰죠.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남자들의 우애가 전혀 아닙니다.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대안적 부자관계죠.
망가진 모자관계, 없는 부친.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서의 후안과
상처받은 아이, 아들과 같은 리틀이죠.
후안이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남자들 사이의 우애'가 연상된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둘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거든요. 둘 사이에 성립하는 건 우정이 아닙니다.
리틀/블랙/카이론은 아예 게이고요. 게이가 어때서?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존의 남성상을 유독하다고 하면서
새로운 남성상, 부드러운 남성상이라면서 게이 캐릭터를 예로 드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남성간의 친밀감에 대해 편해하는가? 예를 들어 게이농담을 하지 않고 남성친구들간의 우애를 표현할줄 아는가?'를
조건으로 달고서는 부드러운 남성상 캐릭터의 예시로 게이 캐릭터를 들고나오다니..
샘갓느님이야 샘갓느님이시죠. 하지만 저는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그리 애정이 깃드는 캐릭은 아닙니다.
만약 프로도 캐릭터가 여캐였다면 이게 어떤 서사가 될까요? 무능한 공주와 유능한 기사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겠죠.
글쎄요. 저는 남성향 만화의 여주 환상과 별 차이가 없어보이네요. 여성향 만화의 남주 환상.
요즘은 유미의 세포들의 바비가 딱 여기 맞는 부드러운 남성상 캐릭터죠.
문라이트는 좋은 영화지만 후안은 마약상이며 전형적인 '내 여자에겐 따뜻한 차도남',
'빗속의 고양이를 줍는 양아치' 클리셰죠.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남자들의 우애가 전혀 아닙니다.
후안과 리틀의 관계는 대안적 부자관계죠.
망가진 모자관계, 없는 부친.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서의 후안과
상처받은 아이, 아들과 같은 리틀이죠.
후안이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남자들 사이의 우애'가 연상된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둘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거든요. 둘 사이에 성립하는 건 우정이 아닙니다.
리틀/블랙/카이론은 아예 게이고요. 게이가 어때서?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존의 남성상을 유독하다고 하면서
새로운 남성상, 부드러운 남성상이라면서 게이 캐릭터를 예로 드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남성간의 친밀감에 대해 편해하는가? 예를 들어 게이농담을 하지 않고 남성친구들간의 우애를 표현할줄 아는가?'를
조건으로 달고서는 부드러운 남성상 캐릭터의 예시로 게이 캐릭터를 들고나오다니..
샘갓느님이야 샘갓느님이시죠. 하지만 저는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그리 애정이 깃드는 캐릭은 아닙니다.
만약 프로도 캐릭터가 여캐였다면 이게 어떤 서사가 될까요? 무능한 공주와 유능한 기사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겠죠.
지금 제시하는 새로운 남성성이라는게 남성에 대해 진짜로 이해를 하고/적용 가능한건지부터 의문입니다.
반대로 남성이 여성들에게 죄다 론다로우지 하다못해 안경선배정도의 여성성이 앞으로 당신들이 도달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면(...)
여튼, 이런 식으로 당위를 함부로 설정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리고 유독 남녀문제에서 목격되는 일반화, 프레임의 우열설정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하려면 제대로 설명이라도 하던가.
링크글은 견해로서 성립할 뿐, 객관적 근거를 기반으로 전개하는 논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갑시다님도 이를 알... 더 보기
반대로 남성이 여성들에게 죄다 론다로우지 하다못해 안경선배정도의 여성성이 앞으로 당신들이 도달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면(...)
여튼, 이런 식으로 당위를 함부로 설정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리고 유독 남녀문제에서 목격되는 일반화, 프레임의 우열설정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하려면 제대로 설명이라도 하던가.
링크글은 견해로서 성립할 뿐, 객관적 근거를 기반으로 전개하는 논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갑시다님도 이를 알... 더 보기
지금 제시하는 새로운 남성성이라는게 남성에 대해 진짜로 이해를 하고/적용 가능한건지부터 의문입니다.
반대로 남성이 여성들에게 죄다 론다로우지 하다못해 안경선배정도의 여성성이 앞으로 당신들이 도달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면(...)
여튼, 이런 식으로 당위를 함부로 설정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리고 유독 남녀문제에서 목격되는 일반화, 프레임의 우열설정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하려면 제대로 설명이라도 하던가.
링크글은 견해로서 성립할 뿐, 객관적 근거를 기반으로 전개하는 논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갑시다님도 이를 알고 본문은 느슨하게 전개해주셨는데,
저도 대략 비슷한 입장입니다.
반대로 남성이 여성들에게 죄다 론다로우지 하다못해 안경선배정도의 여성성이 앞으로 당신들이 도달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면(...)
여튼, 이런 식으로 당위를 함부로 설정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리고 유독 남녀문제에서 목격되는 일반화, 프레임의 우열설정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하려면 제대로 설명이라도 하던가.
링크글은 견해로서 성립할 뿐, 객관적 근거를 기반으로 전개하는 논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갑시다님도 이를 알고 본문은 느슨하게 전개해주셨는데,
저도 대략 비슷한 입장입니다.
섹스가 단순 염색체의 문제가 된다고 젠더가 완벽히 해체될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염색체의 차이란 것은 그 차이가 실체로 드러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염색체의 차이는 양 성별간의 유의미한 경험의 차이를 낫게 될것이에요. 현재로서는 상상도 못할 신체개조가 가능해지지 않는한 남성은 어떻게해도 생리, 임신, 출산을 경험하지는 못하죠. 저러한 다른 경험은 분명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유미의 세포들에 대해 전혀 몰라서 레퍼런스 이해를 못하겠어요 ㅠ
대안부자관계여서 우애가 존재할수 없다는것은 사실 이해가 별로 가지 않습니다.
부자관계가 전적으로 상하관계로만 존재하는것도 아니고, 우애가 완벽히 평등한 관계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게이의 언급에 대해서 또한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기존의 남성상에서 게이는 의도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배척되는게 흔했던 그룹이죠. 분명히 순도 100% 남성인데요.
더군다나 저 리스트에 대해서 저는 글에 적었듯이
1. 답에 '예'가 더 많을수록 부드러운 남자에... 더 보기
대안부자관계여서 우애가 존재할수 없다는것은 사실 이해가 별로 가지 않습니다.
부자관계가 전적으로 상하관계로만 존재하는것도 아니고, 우애가 완벽히 평등한 관계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게이의 언급에 대해서 또한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기존의 남성상에서 게이는 의도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배척되는게 흔했던 그룹이죠. 분명히 순도 100% 남성인데요.
더군다나 저 리스트에 대해서 저는 글에 적었듯이
1. 답에 '예'가 더 많을수록 부드러운 남자에... 더 보기
유미의 세포들에 대해 전혀 몰라서 레퍼런스 이해를 못하겠어요 ㅠ
대안부자관계여서 우애가 존재할수 없다는것은 사실 이해가 별로 가지 않습니다.
부자관계가 전적으로 상하관계로만 존재하는것도 아니고, 우애가 완벽히 평등한 관계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게이의 언급에 대해서 또한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기존의 남성상에서 게이는 의도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배척되는게 흔했던 그룹이죠. 분명히 순도 100% 남성인데요.
더군다나 저 리스트에 대해서 저는 글에 적었듯이
1. 답에 '예'가 더 많을수록 부드러운 남자에 가깝고
2. 규칙보다는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라고 이해했어요.
그렇다면은 설상 게이라서 리스트에서 한가지의 적용이 불합리하다라고 판단된다고 그들이 "부드러운 남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해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저 리스트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케이스여야겠죠.
처음에 언급하신 그냥 차도남 마약상 클리셰지 부드러운 남자는 아니다...라는 쪽은 좀 더 이해가 갑니다.
원문에서 문라이트의 남성들은 기존적인 남성성에 굴복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장 빛날때는 이런 부드러운 남성성을 보여줄때다라며 대조시키는 것으로 보아서 기본판이 언급하신 클리셰 설정에 크게 반대할것 같지는 않습니다.
프로도가 여캐였다면 뭔가 반지에 스톡홀름 신드롬 비슷한 요소가 훨씬 강조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드네요. 지금도 충분히 그러하긴 하다만, 왠지 여자 프로도라하니 저에겐 더 강하게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대안부자관계여서 우애가 존재할수 없다는것은 사실 이해가 별로 가지 않습니다.
부자관계가 전적으로 상하관계로만 존재하는것도 아니고, 우애가 완벽히 평등한 관계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게이의 언급에 대해서 또한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기존의 남성상에서 게이는 의도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배척되는게 흔했던 그룹이죠. 분명히 순도 100% 남성인데요.
더군다나 저 리스트에 대해서 저는 글에 적었듯이
1. 답에 '예'가 더 많을수록 부드러운 남자에 가깝고
2. 규칙보다는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라고 이해했어요.
그렇다면은 설상 게이라서 리스트에서 한가지의 적용이 불합리하다라고 판단된다고 그들이 "부드러운 남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해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저 리스트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케이스여야겠죠.
처음에 언급하신 그냥 차도남 마약상 클리셰지 부드러운 남자는 아니다...라는 쪽은 좀 더 이해가 갑니다.
원문에서 문라이트의 남성들은 기존적인 남성성에 굴복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장 빛날때는 이런 부드러운 남성성을 보여줄때다라며 대조시키는 것으로 보아서 기본판이 언급하신 클리셰 설정에 크게 반대할것 같지는 않습니다.
프로도가 여캐였다면 뭔가 반지에 스톡홀름 신드롬 비슷한 요소가 훨씬 강조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드네요. 지금도 충분히 그러하긴 하다만, 왠지 여자 프로도라하니 저에겐 더 강하게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의 샘은 진주인공급이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그정도는 아닙니다. 말그대로 조력자였죠.
절대반지의 거대한 중압감을 프로도 혼자서 짊어지고 모르도르를 올라갔습니다. 중간에 샘이 잠깐 반지를 운반했고 그것만으로도 샘은 작중에서 칭송을 받지만, 반지의 중압감을 감내한 것은 오롯이 프로도의 몫이죠. 그리고 프로도는 다른 모든 이들이 영웅으로 칭송받을 때 조용히 초야에 묻혀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이게 영화에서 조금 변질된게 원작소설에서 프로도는 중년에 접어드는 나이였고, 샘이나 메리, 피핀은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이었는데, 캐스팅을 하고나니 호빗들 모두 동년배급에 샘이 가장 연장자처럼 보이게 되어버려서 포인트를 그렇게 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절대반지의 거대한 중압감을 프로도 혼자서 짊어지고 모르도르를 올라갔습니다. 중간에 샘이 잠깐 반지를 운반했고 그것만으로도 샘은 작중에서 칭송을 받지만, 반지의 중압감을 감내한 것은 오롯이 프로도의 몫이죠. 그리고 프로도는 다른 모든 이들이 영웅으로 칭송받을 때 조용히 초야에 묻혀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이게 영화에서 조금 변질된게 원작소설에서 프로도는 중년에 접어드는 나이였고, 샘이나 메리, 피핀은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이었는데, 캐스팅을 하고나니 호빗들 모두 동년배급에 샘이 가장 연장자처럼 보이게 되어버려서 포인트를 그렇게 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독한 남성성이 적어도 어떤 환경에서, 남성성 내부에서 어디에 위치하며, 어떤 우위/열위적 요소에 의해 발현된다는 정도가 생략되어있음이
사회알못인 제 눈에도 보입니다.
객관적 근거라는게 저도 어떻게 마련될지는 모르겠지만(현재의 실험-검증 모델을 적용하기 어려우니),
한없이 객관적 근거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해야하는 것이고,
마커의 부재로 객관적 특성을 뽑아낼 수 없다면, 배제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링크글 내용을 보고 느낀, 어쩌면 페미니즘 담론 전체를 보는 제 판단은
"논리의 내적 적합성만 보면 말이... 더 보기
사회알못인 제 눈에도 보입니다.
객관적 근거라는게 저도 어떻게 마련될지는 모르겠지만(현재의 실험-검증 모델을 적용하기 어려우니),
한없이 객관적 근거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해야하는 것이고,
마커의 부재로 객관적 특성을 뽑아낼 수 없다면, 배제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링크글 내용을 보고 느낀, 어쩌면 페미니즘 담론 전체를 보는 제 판단은
"논리의 내적 적합성만 보면 말이... 더 보기
유독한 남성성이 적어도 어떤 환경에서, 남성성 내부에서 어디에 위치하며, 어떤 우위/열위적 요소에 의해 발현된다는 정도가 생략되어있음이
사회알못인 제 눈에도 보입니다.
객관적 근거라는게 저도 어떻게 마련될지는 모르겠지만(현재의 실험-검증 모델을 적용하기 어려우니),
한없이 객관적 근거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해야하는 것이고,
마커의 부재로 객관적 특성을 뽑아낼 수 없다면, 배제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링크글 내용을 보고 느낀, 어쩌면 페미니즘 담론 전체를 보는 제 판단은
"논리의 내적 적합성만 보면 말이 되는데, 관련된 변수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애초에 항상 부족하다" 입니다.
사회알못인 제 눈에도 보입니다.
객관적 근거라는게 저도 어떻게 마련될지는 모르겠지만(현재의 실험-검증 모델을 적용하기 어려우니),
한없이 객관적 근거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해야하는 것이고,
마커의 부재로 객관적 특성을 뽑아낼 수 없다면, 배제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링크글 내용을 보고 느낀, 어쩌면 페미니즘 담론 전체를 보는 제 판단은
"논리의 내적 적합성만 보면 말이 되는데, 관련된 변수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애초에 항상 부족하다" 입니다.
뭐 영화의 재창작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거니 아무래도 좋은 거긴 하지만 꼼꼼하게 따져보면 ㅋㅋ
프로도는 연령은 여정 시작 시점에 50세고 지구로 치면 서른 즈음 정도.. 근데 이게 1950년대 기준의 서른 즈음이라 현대와는 연령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다르죠. 실제로 프로도는 호빗 사회에서 명망이 있는, '어른' 대접을 받는 인물로 묘사되고, 프로도보다 한참 손아래인 샘이 여정이 끝난 직후에 결혼을 하는 것을 미루어봤을 때 프로도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대충 30대 중반에서 마흔 사이라 보면 될 테고... 근데 프로도는 성년 될 때부터 절대 반지 착용해서 노화를 겪지 않은지라 외모가 청소년다워야 맞긴 합니다. 프로도의 젊음을 부러워하던 다른 호빗들도 프로도가 50세가 될 때 즈음엔 어째서 외모도 체력도 변화가 없는지 위화감을 느꼈다는 서술이 있죠.
프로도는 연령은 여정 시작 시점에 50세고 지구로 치면 서른 즈음 정도.. 근데 이게 1950년대 기준의 서른 즈음이라 현대와는 연령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다르죠. 실제로 프로도는 호빗 사회에서 명망이 있는, '어른' 대접을 받는 인물로 묘사되고, 프로도보다 한참 손아래인 샘이 여정이 끝난 직후에 결혼을 하는 것을 미루어봤을 때 프로도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대충 30대 중반에서 마흔 사이라 보면 될 테고... 근데 프로도는 성년 될 때부터 절대 반지 착용해서 노화를 겪지 않은지라 외모가 청소년다워야 맞긴 합니다. 프로도의 젊음을 부러워하던 다른 호빗들도 프로도가 50세가 될 때 즈음엔 어째서 외모도 체력도 변화가 없는지 위화감을 느꼈다는 서술이 있죠.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재밌는 글 소개 감사해요. 아마 제가 탐라에 썼던 펑글 중 하나가 그런 내용이었을 거에요. 저도 계속 생각중인데... 어린 남자아이에게 어떤 픽션의 캐릭터를 보여주면 좋을까 지금 떠올려보니 원령공주의 아시타카가 있군요. 나무위키에도 서술이 자세히 돼 있고.
너무 이상적인 영웅 타입이라 꺼려질 수도 있지만 어쨌건 어린애들에겐 이상적인 것의 윤곽이 필요할 수 있죠. 아시타카가 ‘책임지는 남자 지브리 4대천왕’ 중에서 대빵이라는데 ㅋㅋ 제가 보기엔 얘가 되게 좋아보여요. 일단 감정적으로 찌질하지 않고 정의감 강... 더 보기
너무 이상적인 영웅 타입이라 꺼려질 수도 있지만 어쨌건 어린애들에겐 이상적인 것의 윤곽이 필요할 수 있죠. 아시타카가 ‘책임지는 남자 지브리 4대천왕’ 중에서 대빵이라는데 ㅋㅋ 제가 보기엔 얘가 되게 좋아보여요. 일단 감정적으로 찌질하지 않고 정의감 강... 더 보기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재밌는 글 소개 감사해요. 아마 제가 탐라에 썼던 펑글 중 하나가 그런 내용이었을 거에요. 저도 계속 생각중인데... 어린 남자아이에게 어떤 픽션의 캐릭터를 보여주면 좋을까 지금 떠올려보니 원령공주의 아시타카가 있군요. 나무위키에도 서술이 자세히 돼 있고.
너무 이상적인 영웅 타입이라 꺼려질 수도 있지만 어쨌건 어린애들에겐 이상적인 것의 윤곽이 필요할 수 있죠. 아시타카가 ‘책임지는 남자 지브리 4대천왕’ 중에서 대빵이라는데 ㅋㅋ 제가 보기엔 얘가 되게 좋아보여요. 일단 감정적으로 찌질하지 않고 정의감 강하고 그렇다고 타인의 요구에 휘둘리지도 않고 (아시타카를 좋아하던 여자애가 원래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 공동체에서 파문되어 혼자 살아가지만 지 앞가림을 다 잘함 (과거 남자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챙기는 게 의무였지만 이젠 자기 한몸 간수만 하면 됨),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보단 - 그 역할은 여성들에게 넘겨져 있음 -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을 만드는 데 주력,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많은 것을 걸지만 그녀를 속박하지 않고 그녀가 주인공이 되도록 해줌.. 미야자키여 당신은 확실히 천재.
아시타카가 텐더한 남성상은 아닌 거 같고 마초와 텐더 사이 과도기의 어느 단계인 것 같죠.
너무 이상적인 영웅 타입이라 꺼려질 수도 있지만 어쨌건 어린애들에겐 이상적인 것의 윤곽이 필요할 수 있죠. 아시타카가 ‘책임지는 남자 지브리 4대천왕’ 중에서 대빵이라는데 ㅋㅋ 제가 보기엔 얘가 되게 좋아보여요. 일단 감정적으로 찌질하지 않고 정의감 강하고 그렇다고 타인의 요구에 휘둘리지도 않고 (아시타카를 좋아하던 여자애가 원래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 공동체에서 파문되어 혼자 살아가지만 지 앞가림을 다 잘함 (과거 남자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챙기는 게 의무였지만 이젠 자기 한몸 간수만 하면 됨),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보단 - 그 역할은 여성들에게 넘겨져 있음 -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을 만드는 데 주력,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많은 것을 걸지만 그녀를 속박하지 않고 그녀가 주인공이 되도록 해줌.. 미야자키여 당신은 확실히 천재.
아시타카가 텐더한 남성상은 아닌 거 같고 마초와 텐더 사이 과도기의 어느 단계인 것 같죠.
완벽한 평등관계여야 우애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대등함을 갖춰야죠.
후안과 리틀은 완전히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이지 약간이라도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제 말의 요지는, 제가 얘기한 차도남 클리셰는 이 원글이 제시하는 부드러운 남성상이라는 것이
마초도 싫고 너드도 싫고, '밖에서는 유능하지만 나한테는 상냥한 편리한 남성상'이라는, 여성편의적 인간상이라는 거에요.
게다가 예시로 들어진게 후안이라는 점에선 '밖에선 뭘하든 아무튼 돈은 잘 벌어오고 내눈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상냥한 남자'인... 더 보기
후안과 리틀은 완전히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이지 약간이라도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제 말의 요지는, 제가 얘기한 차도남 클리셰는 이 원글이 제시하는 부드러운 남성상이라는 것이
마초도 싫고 너드도 싫고, '밖에서는 유능하지만 나한테는 상냥한 편리한 남성상'이라는, 여성편의적 인간상이라는 거에요.
게다가 예시로 들어진게 후안이라는 점에선 '밖에선 뭘하든 아무튼 돈은 잘 벌어오고 내눈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상냥한 남자'인... 더 보기
완벽한 평등관계여야 우애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대등함을 갖춰야죠.
후안과 리틀은 완전히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이지 약간이라도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제 말의 요지는, 제가 얘기한 차도남 클리셰는 이 원글이 제시하는 부드러운 남성상이라는 것이
마초도 싫고 너드도 싫고, '밖에서는 유능하지만 나한테는 상냥한 편리한 남성상'이라는, 여성편의적 인간상이라는 거에요.
게다가 예시로 들어진게 후안이라는 점에선 '밖에선 뭘하든 아무튼 돈은 잘 벌어오고 내눈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상냥한 남자'인 겁니다.
남성취향으로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기센 여자도 싫고 의존적인 여자도 싫고 '낮에는 양처 밤에는 요부'같은 남성편의적 인간상과 다를 바 없다는 거죠.
저도 문라이트 재미있게 봤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는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보지만
제가 보는 문라이트의 인물들은 후안은 마약을 팔지만 그것은 소외계층에서 나름의 가능한 관리가능한 성공을 위한 것,
다른 처지였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사람, 아이의 엄마에게 마약을 팔면서 아이를 궁휼히 여기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인간상이며
리틀도 마찬가지죠. 그들의 인간상은 안타까움의 모델이지 '긍정적인 롤모델'이라 할
'새로운 남성상'의 예시로 들어질 캐릭터가 아니라는 겁니다. 시카리오에 등장하는 자기아내와 아이에게는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인
마약왕과 규모만 다를 뿐 다를 바가 없는, 그들의 부드러움은 강자의 여유이자 필요성에서 나올 뿐인거죠.
저는 이 새로운 남성상의 덕목들이 '나-여성에게 무해할 것'이라는 한가지 기준에서 파생된 것들이라 생각되며,
게이는 본인에게 성적으로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남성상의 예시로 선택되었다 봅니다.
이 또한 게이 캐릭터를 게이 캐릭터 자체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여주인공의 친구A소품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가깝다고 보는거에요.
후안과 리틀은 완전히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이지 약간이라도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제 말의 요지는, 제가 얘기한 차도남 클리셰는 이 원글이 제시하는 부드러운 남성상이라는 것이
마초도 싫고 너드도 싫고, '밖에서는 유능하지만 나한테는 상냥한 편리한 남성상'이라는, 여성편의적 인간상이라는 거에요.
게다가 예시로 들어진게 후안이라는 점에선 '밖에선 뭘하든 아무튼 돈은 잘 벌어오고 내눈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상냥한 남자'인 겁니다.
남성취향으로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기센 여자도 싫고 의존적인 여자도 싫고 '낮에는 양처 밤에는 요부'같은 남성편의적 인간상과 다를 바 없다는 거죠.
저도 문라이트 재미있게 봤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는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보지만
제가 보는 문라이트의 인물들은 후안은 마약을 팔지만 그것은 소외계층에서 나름의 가능한 관리가능한 성공을 위한 것,
다른 처지였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사람, 아이의 엄마에게 마약을 팔면서 아이를 궁휼히 여기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인간상이며
리틀도 마찬가지죠. 그들의 인간상은 안타까움의 모델이지 '긍정적인 롤모델'이라 할
'새로운 남성상'의 예시로 들어질 캐릭터가 아니라는 겁니다. 시카리오에 등장하는 자기아내와 아이에게는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인
마약왕과 규모만 다를 뿐 다를 바가 없는, 그들의 부드러움은 강자의 여유이자 필요성에서 나올 뿐인거죠.
저는 이 새로운 남성상의 덕목들이 '나-여성에게 무해할 것'이라는 한가지 기준에서 파생된 것들이라 생각되며,
게이는 본인에게 성적으로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남성상의 예시로 선택되었다 봅니다.
이 또한 게이 캐릭터를 게이 캐릭터 자체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여주인공의 친구A소품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가깝다고 보는거에요.
나우시카는 지식인 남성의 자의식이 반영된 여신 판타지라 생각합니다. 보고 싶은 모습을 보고 도취되는... 물론 나우시카 역시 부해로 대변되는 세계관 내로 서사적으로 포섭이 된다는 걸 감안하면 마냥 그렇게만 독해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세계관 자체를 고민하고 책임지는 이는 나우시카 밖에 없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세계관 바깥으로부터 외삽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나죠. 그러면 자연히 '누가, 왜 외삽했냐'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결론은 하나..
별개로 아시타카가 저렇게 모든 걸 책임져버리는 바람에 산의 역할은 모호해졌고 팬시 이상이 못 되었죠. 그 점을 고려해보면 '남성의 자긍적 책임감'이라는 것 역시도 성정치적으로 위험성과 지배성이 일면 있다는 함의를 추출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또 '조정자로서의 합리적 남성' 클리셰도 읽어봄직 하고요. 마치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빈민촌의 시정잡배 하류인생들을 관조하는 사려 깊은 관리인 역할이 백인 장년 남성인 빌렘 데포에게 돌아간 것을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감정적으로만 대꾸하지 말고 우리 같이 이성적으로 따져보자'라고 객관을 무기 삼는 남성상 코드는 일상에서 쉬 접할 수 있는 것이죠. 에보시와 산과 숲속 개돼지 친구들을 중재하는 것이 아시타카라는 것은 과연 우연인가.. 뭐 그런.
원작에서의 샘은 그 뭐냐...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십자가 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알레고리를 만들려다가 어영부영 탄생한 캐릭터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거의 아들 챙겨주는 아빠같은 존재로 변신했지요. 영화속 샘의 캐릭터가 절대적인 호평을 받은 데에는 사람들 모두가 좋은 아빠를 바라고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했었어요. 그러고보면 위에서 언급하신 텐더 매스큘리니티는 사실 꽤 전통적으로 전해내려온 굳 파더후드를 현대적 감각으로 번역한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별 건 아니고.. 걸그룹 흐름을 살펴보면 대략 07-08에 원더걸스-소녀시대로 시작해서 09에 정점을 찍고, 10-11에 정체기를 맞았다가 12-13에 다시 부분적 확장이 행해지고, 14-15에 정체기를 맞습니다. 정체기를 자의적으로 적용하자면, 뉴페이스들의 데뷔가 많지 않고, 설혹 데뷔해서 히트치더라도 기성 그룹들의 서열 체제를 뒤흔들지는 않은 채 '메이저 걸그룹 리스트'가 늘어나는 정도로 끝나는 시기를 말합니다. 즉 세대교체는 행해지지 않고 다같이 떡국 한 그릇씩 더 먹으며 파이 나눠가진 채 세력 구도가 유지되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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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건 아니고.. 걸그룹 흐름을 살펴보면 대략 07-08에 원더걸스-소녀시대로 시작해서 09에 정점을 찍고, 10-11에 정체기를 맞았다가 12-13에 다시 부분적 확장이 행해지고, 14-15에 정체기를 맞습니다. 정체기를 자의적으로 적용하자면, 뉴페이스들의 데뷔가 많지 않고, 설혹 데뷔해서 히트치더라도 기성 그룹들의 서열 체제를 뒤흔들지는 않은 채 '메이저 걸그룹 리스트'가 늘어나는 정도로 끝나는 시기를 말합니다. 즉 세대교체는 행해지지 않고 다같이 떡국 한 그릇씩 더 먹으며 파이 나눠가진 채 세력 구도가 유지되던 시기.
그러다 15년 중후반부터 격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서 16년에 완전히 세대교체가 끝나면서 원더걸스/소녀시대 세대와 그 유니버스에 편입되어 있던 이런저런 후세대 걸그룹들도 도태되었죠. 이 판갈이의 첨병에 있던 걸그룹이 트와이스고, 그와 더불어서 세를 누리고 있는 메이저 그룹 중 하나가 레드벨벳인데, 레드벨벳은 세력 지분으로나 상품의 스타일로나 아이돌 시장의 '정파'라고 할 수 있는 SM의 적자로, 07-08에 아이돌 씬을 열어제낀 소녀시대와 이 혁명에 의해 파생된 09세대 그룹인 F(x)의 뒤를 잇는 신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룹의 코어 팬덤은 20대 여성층, 곧 90년대생들로 여타 그룹에 비해서도 팬덤의 여초색이 짙고, 팬덤 내부로나 대중적으로나 가장 사랑받는 멤버가 91년생 아이린이고, 그 아이린이 읽은 게 82년생 김지영이고 그런 식.. 덧붙이자면 아이린은 그 전부터 여초와 남초에서 공기차가 좀 났죠. 남초에서 인기가 없는 건 아니고 꽤 팬이 있긴 한데 경쟁 팬덤에 의해 공격 많이 당하는 편..
그러다 15년 중후반부터 격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서 16년에 완전히 세대교체가 끝나면서 원더걸스/소녀시대 세대와 그 유니버스에 편입되어 있던 이런저런 후세대 걸그룹들도 도태되었죠. 이 판갈이의 첨병에 있던 걸그룹이 트와이스고, 그와 더불어서 세를 누리고 있는 메이저 그룹 중 하나가 레드벨벳인데, 레드벨벳은 세력 지분으로나 상품의 스타일로나 아이돌 시장의 '정파'라고 할 수 있는 SM의 적자로, 07-08에 아이돌 씬을 열어제낀 소녀시대와 이 혁명에 의해 파생된 09세대 그룹인 F(x)의 뒤를 잇는 신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룹의 코어 팬덤은 20대 여성층, 곧 90년대생들로 여타 그룹에 비해서도 팬덤의 여초색이 짙고, 팬덤 내부로나 대중적으로나 가장 사랑받는 멤버가 91년생 아이린이고, 그 아이린이 읽은 게 82년생 김지영이고 그런 식.. 덧붙이자면 아이린은 그 전부터 여초와 남초에서 공기차가 좀 났죠. 남초에서 인기가 없는 건 아니고 꽤 팬이 있긴 한데 경쟁 팬덤에 의해 공격 많이 당하는 편..
굿 파더후드..그렇게 보면 샘도 그렇고 후안도 그렇고 많은 부분이 동의할만 하네요. 사실 다른 캐릭터들은 몰라서 말을 못하겠음..
그렇게도 볼 수가 있군여. 전 다르게 느꼈던게, 샘은 자기 멘탈 잡고 묵묵히 미션을 해결한다기보단, 남의 멘탈 잡아주고 종알종알 잔소리하는 역할에 가깝다고 봤어요. 어떻게보면 경기가 안풀려서 공황상태에 빠진 선수들 사이에서 혼자 멘탈이 말짱한 갓동님 같은 역할이지요. 자기가 직접 경기는 안뛰는데, 경기 뛰는 애들한테 잔소리하는 사람.
샘의 이 초월적 캐릭터는 본인이 직접 반지를 잡았을 때 분명하게 드러나요. 작중에서 간달프조차도 반지를 잡으면 멘탈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직접 반지를 운반 못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샘은 그냥 '에이 ... 더 보기
샘의 이 초월적 캐릭터는 본인이 직접 반지를 잡았을 때 분명하게 드러나요. 작중에서 간달프조차도 반지를 잡으면 멘탈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직접 반지를 운반 못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샘은 그냥 '에이 ... 더 보기
그렇게도 볼 수가 있군여. 전 다르게 느꼈던게, 샘은 자기 멘탈 잡고 묵묵히 미션을 해결한다기보단, 남의 멘탈 잡아주고 종알종알 잔소리하는 역할에 가깝다고 봤어요. 어떻게보면 경기가 안풀려서 공황상태에 빠진 선수들 사이에서 혼자 멘탈이 말짱한 갓동님 같은 역할이지요. 자기가 직접 경기는 안뛰는데, 경기 뛰는 애들한테 잔소리하는 사람.
샘의 이 초월적 캐릭터는 본인이 직접 반지를 잡았을 때 분명하게 드러나요. 작중에서 간달프조차도 반지를 잡으면 멘탈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직접 반지를 운반 못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샘은 그냥 '에이 답답하니 내가 직접 뛴다' 카면서 반지를 덥썩 잡고 운반하는데 1그램도 멘탈이 안흔들리지요. 극장에서 이 '답내뛰'를 보면서 벙 쪘던 기억이 생생해요. '뭐야 저거. 설정붕괴야?' 뭐 이런 당혹스러움.
어떻게보면 위에서 구밀님이 제시하신 나우시카 캐릭터의 외삽성과도 비슷해요. 샘은 '반지의제왕'의 설정 밖의 존재, 그러니까, 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군상들이 세상이라는 경기장에서 뛰면서 고통받고 번민하는 가운데 경기장 밖에서 '얌마 힘내' 하면서도 직접 개입은 안하는(못하는) 하나님형 캐릭터인데 딱 한 순간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개입을 해버렸던 거시었지요.
이 신적 속성은, 잘 아시겠지만, 필부필부들이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우리들이 세상에서 고생하고 번민하는 건 대부분 아버지가 직접 간섭할 수 없는 영역들인데 (직장, 학교, 교우, 이성, 기타등등. 아빠가 직접 개입하면 어색터지는 상황들), 이 때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바스라지는 내 멘탈을 잡아주고 위로해주면서 뒤에서 계속 응원해주는 거지요. 샘, 그는 갓 파더였던 거시었다.
샘의 이 초월적 캐릭터는 본인이 직접 반지를 잡았을 때 분명하게 드러나요. 작중에서 간달프조차도 반지를 잡으면 멘탈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직접 반지를 운반 못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샘은 그냥 '에이 답답하니 내가 직접 뛴다' 카면서 반지를 덥썩 잡고 운반하는데 1그램도 멘탈이 안흔들리지요. 극장에서 이 '답내뛰'를 보면서 벙 쪘던 기억이 생생해요. '뭐야 저거. 설정붕괴야?' 뭐 이런 당혹스러움.
어떻게보면 위에서 구밀님이 제시하신 나우시카 캐릭터의 외삽성과도 비슷해요. 샘은 '반지의제왕'의 설정 밖의 존재, 그러니까, 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군상들이 세상이라는 경기장에서 뛰면서 고통받고 번민하는 가운데 경기장 밖에서 '얌마 힘내' 하면서도 직접 개입은 안하는(못하는) 하나님형 캐릭터인데 딱 한 순간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개입을 해버렸던 거시었지요.
이 신적 속성은, 잘 아시겠지만, 필부필부들이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우리들이 세상에서 고생하고 번민하는 건 대부분 아버지가 직접 간섭할 수 없는 영역들인데 (직장, 학교, 교우, 이성, 기타등등. 아빠가 직접 개입하면 어색터지는 상황들), 이 때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바스라지는 내 멘탈을 잡아주고 위로해주면서 뒤에서 계속 응원해주는 거지요. 샘, 그는 갓 파더였던 거시었다.
이게 근데 샘에 대한 찬양은 '프로도 ㅄ'이라는 [약자 멸시]와 매양 동반해서 나타나는 것이다보니.. 데엑마에 대한 경이로운 반응은 '1승만 해라 ㅅㅂ들아'의 이영호나 '트롤러들 옆에 끼고 하드캐리하다 혼자 눈물 흘리는' 빛상혁이나 '아구에로 이과인이 망쳐놓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전 해트트릭으로 구원하는' 메시 등에 대해서도 나타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은 강자/리더에 대리만족적으로 자신을 투영하면서 '노답들'을 타박할 수 있는 권력을 지향하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거든요. 단순히 대상에 대한 예찬만이 나타나면 소박한 천부신앙이라 이해할 수 있는데, 대상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파생물들에 대한 경멸과 조롱까지 이어진다는 측면까지 고려해서 설명하자면 남성적인 '억울함' '비분강개' '자기희생의 과시' 등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싶습니다.
후안과 리틀의 평등함과 우애에 대해서는 평행선을 달리것만 같으니 말을 줄이겠습니다.
저와 제로스님의 시작점도 방향성도 많이 다른것 같네요.
문라이트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을때가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였다이지 저들이 전체적으로 완벽하고 좋은 롤모델들이라는 말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외부적인 요소로 인생이 꼬이고 힘들고 뭐 같은 와중에도 중간중간 그런 인간애적인 모습을 나누는것이 힘있는 모습이라는면에서 이러한 '부드러움'이 추구할만한 가치라고 주장을 하는것이라고 주장하는... 더 보기
저와 제로스님의 시작점도 방향성도 많이 다른것 같네요.
문라이트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을때가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였다이지 저들이 전체적으로 완벽하고 좋은 롤모델들이라는 말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외부적인 요소로 인생이 꼬이고 힘들고 뭐 같은 와중에도 중간중간 그런 인간애적인 모습을 나누는것이 힘있는 모습이라는면에서 이러한 '부드러움'이 추구할만한 가치라고 주장을 하는것이라고 주장하는... 더 보기
후안과 리틀의 평등함과 우애에 대해서는 평행선을 달리것만 같으니 말을 줄이겠습니다.
저와 제로스님의 시작점도 방향성도 많이 다른것 같네요.
문라이트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을때가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였다이지 저들이 전체적으로 완벽하고 좋은 롤모델들이라는 말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외부적인 요소로 인생이 꼬이고 힘들고 뭐 같은 와중에도 중간중간 그런 인간애적인 모습을 나누는것이 힘있는 모습이라는면에서 이러한 '부드러움'이 추구할만한 가치라고 주장을 하는것이라고 주장하는거죠.
더군다나 후안과 카이론이라면 몰라도 다른 캐릭터들이 강자라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나요? 더군다나 카이론의 경우 가장 인간미적인 장면은 본인이 강자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난 순간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서요.
여성편의성에 대해 언급하자면 이는 유독한 남성성 (이게 맞는 번역인지는 모르겠네요)의 가장 큰 피해자로 여성들이 지목되기 때문일겁니다.
같은 남성들은 물론 저런 남성성에 입각하는 본인도 피해를 보지만, 이러한 롤모델의 형성으로 인해서 가장 가시적으로 가장 크게 피해보는 대상은 여성이라는게 암묵적으로 합의되어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한 남성성에 대응하는 "새로운 남성성"의 일차적인 목표중에 "여성에게 안전함"이라는 가치가 주어지는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기에 옳다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원문에서 여성편의적인, 여성에게 무해함이 원문에서 강조가 될수 밖에 없었던건 유독한 남성성의 대안을 이야기할때 피할수 없는 요소 중 하나라고 이해합니다.
저와 제로스님의 시작점도 방향성도 많이 다른것 같네요.
문라이트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을때가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였다이지 저들이 전체적으로 완벽하고 좋은 롤모델들이라는 말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외부적인 요소로 인생이 꼬이고 힘들고 뭐 같은 와중에도 중간중간 그런 인간애적인 모습을 나누는것이 힘있는 모습이라는면에서 이러한 '부드러움'이 추구할만한 가치라고 주장을 하는것이라고 주장하는거죠.
더군다나 후안과 카이론이라면 몰라도 다른 캐릭터들이 강자라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나요? 더군다나 카이론의 경우 가장 인간미적인 장면은 본인이 강자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난 순간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서요.
여성편의성에 대해 언급하자면 이는 유독한 남성성 (이게 맞는 번역인지는 모르겠네요)의 가장 큰 피해자로 여성들이 지목되기 때문일겁니다.
같은 남성들은 물론 저런 남성성에 입각하는 본인도 피해를 보지만, 이러한 롤모델의 형성으로 인해서 가장 가시적으로 가장 크게 피해보는 대상은 여성이라는게 암묵적으로 합의되어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한 남성성에 대응하는 "새로운 남성성"의 일차적인 목표중에 "여성에게 안전함"이라는 가치가 주어지는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기에 옳다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원문에서 여성편의적인, 여성에게 무해함이 원문에서 강조가 될수 밖에 없었던건 유독한 남성성의 대안을 이야기할때 피할수 없는 요소 중 하나라고 이해합니다.
ㅇㅇ 샘에게 이입하셨다면 그 해석도 옳아요. 저도 아르헨티나 경기 볼 땐 메시에 이입해서 아궤로 이과인 디마리아 욕하느라 침이 마를 일이 없지요.
그런데 왜때문인지 전 반지의제왕 볼 땐 프로도에게 훨씬 이입이 됐어요. 샘 캐릭터는 이입하기엔 넘나 비현실적인 반면 프로도는 넘나 현실감 넘쳤던
것. 프로도가 막 샘 품에 안겨서 앙앙 울고 그러는 거 보면서 만약 제가 샘에 이입했더라면 '아 슈바 약해빠져가지고 열라 징징거리네' 그랬을 텐데 프로도에 이입한 나머지 '아 샘 열라짱. 내게도 샘쨔응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이러면서 오히려 프로도를 부러워했더랬지요 -_-;
그런데 왜때문인지 전 반지의제왕 볼 땐 프로도에게 훨씬 이입이 됐어요. 샘 캐릭터는 이입하기엔 넘나 비현실적인 반면 프로도는 넘나 현실감 넘쳤던
것. 프로도가 막 샘 품에 안겨서 앙앙 울고 그러는 거 보면서 만약 제가 샘에 이입했더라면 '아 슈바 약해빠져가지고 열라 징징거리네' 그랬을 텐데 프로도에 이입한 나머지 '아 샘 열라짱. 내게도 샘쨔응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이러면서 오히려 프로도를 부러워했더랬지요 -_-;
다시 찾아보니까 책에서는 호빗나이 50세에 떠나는데 33세부터 반지의 영향으로 외형적인 부분들이 변하지 않았다... 정도의 설정이였던것 같네요. 여정은 1년여였고, 인간 나이로 환산해보았을때 50세면 언급하신대로 중년에 접어드는 시점이고 33세는 청소년다운 앳된 모습이 아직 남아있어야할때가 맞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찾고 보니까 책과 영화의 차이점 중에서 영화에서는 반지를 받자마자 여정에 떠나는 듯이 묘사했는데 책에서는 한참 반지를 들고있다가 떠난다는 점을 까먹고있었네요. 이렇게 단편적인 기억들로는 존재하지만 정작 필요할때 로드가 안되니 씁쓸하네요 ㅋㅋ
아 제가 딱히 샘에게 이입한 건 아니고 온라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응들이 주로 그렇단 거 ㅋㅋ.. 사실 전 원작충이라서 프로도가 욕 먹을 때 '아 저거 프로도가 몇 년을 끼고 산 건데 샘 저 새끼 몇 번 킬딸친 거 가지고 다들 선동되어서 ㅡㅡ'라고 생각했죠 ㅋㅋㅋㅋ
우정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 링크걸어주신 포스트에서는 "남성간의 친밀감" 자체가 toxic masculinity 에서 볼 수 없는 것 이라고 정의하는것 같고, 본문에서는 각종 매체에서 그리는 우정은 toxic masculinity을 지니고 있다 라고 말씀하신것 같습니다. 전자는 애초에 미국에서나 적용가능할, 우리나라와 전혀 맞지 않는 서술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다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남자들간의 우정"과 "여자들간의 우정"은 본질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는 얘기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당장 들 수 있는 예시로는 "델마와 ... 더 보기
우정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 링크걸어주신 포스트에서는 "남성간의 친밀감" 자체가 toxic masculinity 에서 볼 수 없는 것 이라고 정의하는것 같고, 본문에서는 각종 매체에서 그리는 우정은 toxic masculinity을 지니고 있다 라고 말씀하신것 같습니다. 전자는 애초에 미국에서나 적용가능할, 우리나라와 전혀 맞지 않는 서술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다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남자들간의 우정"과 "여자들간의 우정"은 본질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는 얘기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당장 들 수 있는 예시로는 "델마와 루이스"에 등장하는 우정은 버디 무비에서 흔히 등장하는 남자들간의 우정과 아주 크게 다른점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해당 포스트 전반에 대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것은, 현실에 없는 걸 정의하려 하다보니 예시가 산으로 간다. 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남성성은 제대로 제시된 적 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와닿는...
해당 포스트 전반에 대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것은, 현실에 없는 걸 정의하려 하다보니 예시가 산으로 간다. 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남성성은 제대로 제시된 적 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와닿는...
네 좋은 지적이셔요.
사실 글을 옮기면서 문화적인 전제조건의 차이점을 언급하려했는데 그 이야기를 다 풀어하기에는 글을 그렇게 길게 쓰고 싶지도 않았고, 원하는 만큼 길게 풀어쓸 능력도 없다 생각해서 뺏거든요. 원문도 그렇고 제 입장도 그렇고 미국 중심적이기에 이걸 표면적으로 그냥 받아들일수는 없을겁니다.
제가 글을 햇갈리게 쓴것 같기는한데 문라이트 부분까지 예시들은 다 링크된 포스트의 내용을 간추려 의역한부분입니다. 슬램덩크 이야기 즈음부터 제 사견이고요.
이러한 전제조건하에 이런식의 반응이 가능하다면 다른 조건하에는 어떤 가능성이있을까 고려해보는 시작점으로서 더 적절하겠죠.
사실 글을 옮기면서 문화적인 전제조건의 차이점을 언급하려했는데 그 이야기를 다 풀어하기에는 글을 그렇게 길게 쓰고 싶지도 않았고, 원하는 만큼 길게 풀어쓸 능력도 없다 생각해서 뺏거든요. 원문도 그렇고 제 입장도 그렇고 미국 중심적이기에 이걸 표면적으로 그냥 받아들일수는 없을겁니다.
제가 글을 햇갈리게 쓴것 같기는한데 문라이트 부분까지 예시들은 다 링크된 포스트의 내용을 간추려 의역한부분입니다. 슬램덩크 이야기 즈음부터 제 사견이고요.
이러한 전제조건하에 이런식의 반응이 가능하다면 다른 조건하에는 어떤 가능성이있을까 고려해보는 시작점으로서 더 적절하겠죠.
시스템이야 학문별로 다 다르고, 토픽별로도 다를 떄가 있으니 저도 그걸 간단하게 규정할줄은 모릅니다.
위에 말씀드린, 논리적 정합성을 만드는 과정이 어떠한가 정도는 논할 수 있겠고,
그 것이 기존의 학문/연구의 틀에서 벗어나는가를 보면, 어떤 경우는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요.
이 포스트만 놓고 보면, 제 기준에선 좀 말이 되는 전개가 없습니다.
일단, toxic masculinity라는게 고전적 남성성의 문제점을 집약한 단어라고 전제하는 데 있어서
상징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그 것이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더 보기
위에 말씀드린, 논리적 정합성을 만드는 과정이 어떠한가 정도는 논할 수 있겠고,
그 것이 기존의 학문/연구의 틀에서 벗어나는가를 보면, 어떤 경우는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요.
이 포스트만 놓고 보면, 제 기준에선 좀 말이 되는 전개가 없습니다.
일단, toxic masculinity라는게 고전적 남성성의 문제점을 집약한 단어라고 전제하는 데 있어서
상징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그 것이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더 보기
시스템이야 학문별로 다 다르고, 토픽별로도 다를 떄가 있으니 저도 그걸 간단하게 규정할줄은 모릅니다.
위에 말씀드린, 논리적 정합성을 만드는 과정이 어떠한가 정도는 논할 수 있겠고,
그 것이 기존의 학문/연구의 틀에서 벗어나는가를 보면, 어떤 경우는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요.
이 포스트만 놓고 보면, 제 기준에선 좀 말이 되는 전개가 없습니다.
일단, toxic masculinity라는게 고전적 남성성의 문제점을 집약한 단어라고 전제하는 데 있어서
상징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그 것이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그리고 착한 것도 대안이 아니라는 것 역시 상징적 이미지로 전제하지요.
그리고는 대뜸 부드러운 남성성에 필요한 리스트를 내보입니다.
왜 이런게 필요한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아요.
"부드럽지 않았기에 유독하다" 는 문장 외에 이를 설명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정작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는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일만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전과 이후가 다 따로 논다는거겠죠.)
그리고 부드러운 남자의 예시를 듭니다.
저 캐릭터들이 뭐하는 캐릭터들인지 샘 말고는 본적도 없지만, 원문링크에서 좀 겨우겨우 봤습니다만
해당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모습의 공통점은 고난과 역경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쯤이 아닐까 합니다.
그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감정노동, 헌신, 역경 앞에서의 구도적인 모습이 toxic masculinity과 대비되는 개념인지에 대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어떠한 설득의 노력같은건 없습니다.
그리고 정작 그 태도들 역시 아주 고전적으로 요구되어온 남성성이지요. 남성을 억압하는.
요약하면.. 억압은 그대로 받고, 겸손하고 얌전해져라.. 인데(...)
일단 이 포스트에 대해서는 학문이니 뭐니를 떠나서, 무례한 요구를 그럴듯하지도 못하게 쓴걸로 판단을 합니다.
다만, 전체 젠더스터디가 어떠한가를 이 포스트를 갖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 부분은 저의 평소의 인상, 개인적인 판단을 표출한 것인데, 부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논리적 정합성을 만드는 과정이 어떠한가 정도는 논할 수 있겠고,
그 것이 기존의 학문/연구의 틀에서 벗어나는가를 보면, 어떤 경우는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요.
이 포스트만 놓고 보면, 제 기준에선 좀 말이 되는 전개가 없습니다.
일단, toxic masculinity라는게 고전적 남성성의 문제점을 집약한 단어라고 전제하는 데 있어서
상징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그 것이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그리고 착한 것도 대안이 아니라는 것 역시 상징적 이미지로 전제하지요.
그리고는 대뜸 부드러운 남성성에 필요한 리스트를 내보입니다.
왜 이런게 필요한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아요.
"부드럽지 않았기에 유독하다" 는 문장 외에 이를 설명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정작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는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일만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전과 이후가 다 따로 논다는거겠죠.)
그리고 부드러운 남자의 예시를 듭니다.
저 캐릭터들이 뭐하는 캐릭터들인지 샘 말고는 본적도 없지만, 원문링크에서 좀 겨우겨우 봤습니다만
해당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모습의 공통점은 고난과 역경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쯤이 아닐까 합니다.
그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감정노동, 헌신, 역경 앞에서의 구도적인 모습이 toxic masculinity과 대비되는 개념인지에 대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어떠한 설득의 노력같은건 없습니다.
그리고 정작 그 태도들 역시 아주 고전적으로 요구되어온 남성성이지요. 남성을 억압하는.
요약하면.. 억압은 그대로 받고, 겸손하고 얌전해져라.. 인데(...)
일단 이 포스트에 대해서는 학문이니 뭐니를 떠나서, 무례한 요구를 그럴듯하지도 못하게 쓴걸로 판단을 합니다.
다만, 전체 젠더스터디가 어떠한가를 이 포스트를 갖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 부분은 저의 평소의 인상, 개인적인 판단을 표출한 것인데, 부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아 넵. 그렇게 이해 했습니다. 헷갈리게 쓰시진 않은것 같습니다. 제가 해당 포스트에 공감이 안간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이 포스트가 무의미한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남성성 롤모델의 한계]는 명확하니까요.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거겠죠.
지엽적인 이야기긴 한데 '델마와 루이스'의 여주 간 관계 묘사는 일반적인 버디 무비들과 상이하다고 생각합니다. 델마와 루이스를 매개하는 것은 젠더 폭력에 대한 동병상련이고 성역할 거부라 할 수 있는데, 버디 무비들의 경우 애시당초 '모성을 제외한' 여성들의 존재감이 거세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다 결정적으로 남성역할에 대한 긍정이 뿌리 깊은 곳에 있다 싶거든요. 이런 버디 무비들에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은 아웃사이더 로맨티시즘 때문인데, 이러한 정서를 추구하는 것은 남성들이 전통적인 수컷 서열 경쟁을 우회하는 방식 중 하나죠... 더 보기
지엽적인 이야기긴 한데 '델마와 루이스'의 여주 간 관계 묘사는 일반적인 버디 무비들과 상이하다고 생각합니다. 델마와 루이스를 매개하는 것은 젠더 폭력에 대한 동병상련이고 성역할 거부라 할 수 있는데, 버디 무비들의 경우 애시당초 '모성을 제외한' 여성들의 존재감이 거세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다 결정적으로 남성역할에 대한 긍정이 뿌리 깊은 곳에 있다 싶거든요. 이런 버디 무비들에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은 아웃사이더 로맨티시즘 때문인데, 이러한 정서를 추구하는 것은 남성들이 전통적인 수컷 서열 경쟁을 우회하는 방식 중 하나죠. 방랑자, 일탈자, 무법자라는 탈속적인 지위를 점하되, 그 지위를 과시하고 존재감을 어필하는 대상은 철저히 속세죠. '나 이런 사람이야' 즉 아웃사이더라는 것조차도 세속적인 과시의 대상이고 나름의 훈장인 것입니다. 이 사이 형제애는 반골로서의 상호 지위와 권력을 인준하는 도구고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멋진 남자니' 그런 식으로 서로 얼굴에 금칠해주며 '풍류 남아'가 되는 것이고. '허수아비'든 '미드나잇 카우보이'든 '나킹 온 헤븐스 오더'든 '내일을 향해 쏴라'든 '이지라이더'든 다 그런 식의 감흥에 호소한다 봅니다. 특히 저 중에서 이성애가 부분적으로나마 나오는 '내일을 향해 쏴라'가 대표적이죠. 여주인 에타는 중도 이탈하고 선댄스 키드와 부치 캐시디가 낭만적인 최후를 맞는 자리에 불참하게 되는데, 그건 불순물 처리라고 볼 수밖에 없죠. 브로맨티시즘을 전시하는 데에 방해물만 되니까요. '너와 내 친구는 어느새 다정한 연인이 돼 있었지' 그리고 이런 반골성을 기반으로 하는 브로맨티시즘은 쉽게 제왕적 권력 투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싶고요. 멀리 안 가도 곽경택의 '친구'가 그렇죠. '말죽거리 잔혹사'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같은 것들도 그런 구석이 있고... 이런 견지에서는 버디 무비들에서 그리는 형제애란 것은 기성 체제나 젠더 권력 구조에 기능적인 것이라 볼 수 있을 텐데, 그 점에서 '델마의 루이스' 같은 전복성(비록 그게 언더 도그마에 호소하는 판타지일지라도)과는 변별된다 싶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할것 같습니다, 아마 아래에 이 댓글타래에서 얘기했던 내용들이 켈로그김님과의 이야기에 대한 제 반응으로 적절할것 같아요.
https://redtea.kr/?b=3&n=7256&c=101610
https://redtea.kr/?b=3&n=7256&c=101610
서양문화에서 특히나 파더 콤플렉스가 두드러지나 그런 생각도들긴하는데, 사실 이상적인 아버지/어머니와 이상적인 젠더 롤모델이랑은 필연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아닌가 싶어요. 절대적 다수의 케이스에 최초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롤모델이 본인들 스스로의 부모님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부모님을 신격화하는 유아기에서 거기에서 탈피하려고 반대편으로 급스윙하는 사춘기 그리고 거기를 좀 벗어나서 젊은 성인이 되면 다시 "아 우리 부모님만큼 하는게 쉽지 않구나 ㅠㅠ"하면서 서서히 본인도 부모가되는 래퍼토리는 아주 스탠다드하자나요 ㅋㅋ
그렇기에 좋은아버지와 좋은남성의 이미지에 교집합이 크게 존재하는건 자연스러운것 같습니다. 파더후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되겠지만요.
그렇기에 좋은아버지와 좋은남성의 이미지에 교집합이 크게 존재하는건 자연스러운것 같습니다. 파더후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되겠지만요.
음, 저는 후안과 리틀 정도면 그럭저럭 상호성이 있다 봅니다. 물론 후안이 리틀을 돌보고 이끌어주기는 하죠. 근데 그건 후안이 어른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후안의 콤플렉스와 죄의식이란 측면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후안에게 있어 리틀은 단순히 쥐좆만하니까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벌이고 있는 악행의 희생자이며, 동시에 본인의 고통어린 유년기를 상기시키죠. 따라서 후안이 리틀을 보살피는 것은 일종의 속죄행위이자 자기연민입니다. '나도 으른들 때문에 좆같이 자란 게 그토록 슬펐는데 막상 나도 이 아해 인생을 나처럼 좆... 더 보기
음, 저는 후안과 리틀 정도면 그럭저럭 상호성이 있다 봅니다. 물론 후안이 리틀을 돌보고 이끌어주기는 하죠. 근데 그건 후안이 어른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후안의 콤플렉스와 죄의식이란 측면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후안에게 있어 리틀은 단순히 쥐좆만하니까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벌이고 있는 악행의 희생자이며, 동시에 본인의 고통어린 유년기를 상기시키죠. 따라서 후안이 리틀을 보살피는 것은 일종의 속죄행위이자 자기연민입니다. '나도 으른들 때문에 좆같이 자란 게 그토록 슬펐는데 막상 나도 이 아해 인생을 나처럼 좆같이 만들고 있구나 에혀 먹고 살아야지 우짬' 실제로 이후에 리틀이 자신의 어머니를 마약중독자로 만든 것이 후안이라는 것을 알고 힐난했을 때 후안이 '그래 이눔시끼야 내가 팔았다 어쩔래 어쩔래'하면서 따귀치고 뭐 그러지 않죠. 리틀이 자리를 뜰 때까지 묵묵히 참고 있다가 리틀이 사라지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고요. 즉 후안에게 있어 리틀은 감정과 판단 자체가 유의미한 인물이란 것이고, 자신의 어른스러움과 강함과 도량을 과시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며, 반대로 자신의 나약하고 왜소하고 너절하고 위선적인 측면들에 대한 회한을 갈무리 하기 위한 대상이지요. 해서 사회적 지위에 의한 상하관계가 존재하긴 하지만 감정과 욕망의 차원에서는 부분적인 동등성이 있다 싶습니다. 그 점에서 '강자의 여유'라기보다는 '대외적으로는 가오 잡지만 내면적으로는 왜소한 약자의 자기연민의 발로'에 가깝다 보고, 친부에게 버려지고 나서 병리적으로 엇나가는 소년이 과거 육아와 관련된 상처를 겪었던 입양모와 인간적 신뢰를 쌓아나가는 '자전거 탄 소년'이나, 조실부모한 소년을 인신매매하려던 이가 자성을 거치고 소년을 이복형제들에게 의탁하게 되는 과정에서 본인의 좌절과 인간불신도 치유 받고 자존감을 찾게 되는 서사를 그린 '중앙역'과 같은 맥락에서 사유할 수 있다 봅니다. 그렇게 보면 우애라고 말할 수도 있다 보고요. 특히 우애라는 어휘 자체가 마냥 동등한 친소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보다 일반성 있는 인간애나 겸애 등에 대응될 때도 있고(가령 박애fraternité/fraternity의 번역어를 우애로 정정하는 추세라든가). 즉 애시당초 우애가 광의성을 갖고 있는 어휘라는 점, 또한 본문에서 말하는 우애도 어느 정도 광의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는('상하고 좌우고 남북이고 간에 여튼 상냥하고 부드러우면 장땡 아님?'이라는 논조를 읽을 수 있으니) 점을 아울러 고려하면 리틀과 후안의 예시는 익스큐즈 할 정도는 되지 않나 합니다. 누군가 콤플렉스에 찌들었다고 해도 마냥 허세와 자뻑과 똥폼과 찌질함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고, 그런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대감과 동병상련도 가능하며, 그렇게 세대를 잇는 폭력의 재생산 속에도 한 줌의 인간미가 돌긴 돈다.. 마 그 정도.
덧붙여 후안을 '여자 인생 망친, 여성에게 유해한 캐'라는 것이 명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볼 때, 이 캐릭터가 여성 편의적으로,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볼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차라리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흑인 갱스터 남성들에게 보다 강력하게 어필할 캐릭터가 아닐까요.
덧붙여 후안을 '여자 인생 망친, 여성에게 유해한 캐'라는 것이 명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볼 때, 이 캐릭터가 여성 편의적으로,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볼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차라리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흑인 갱스터 남성들에게 보다 강력하게 어필할 캐릭터가 아닐까요.
뭐 조크고 ㅋㅋㅋ 하울이 여성층에게 어필하는 바를 검토해보자면 하울이 '아이돌'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댄디한 우리 옵빠.. 하지만 내 품에 안겼을 땐 모에하게 병약하겠지'라는 아이돌 판타지를 자극하는 인물이죠. 즉 '내 열망과 헌신이 어쩌면 오빠를 감동시켜서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환상을 완벽하게 충족시킨단 거고..
일전에 본 포스팅이 예시로 적절할 것 같아 링크해봅니다.
http://heilt.egloos.co... 더 보기
일전에 본 포스팅이 예시로 적절할 것 같아 링크해봅니다.
http://heilt.egloos.co... 더 보기
뭐 조크고 ㅋㅋㅋ 하울이 여성층에게 어필하는 바를 검토해보자면 하울이 '아이돌'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댄디한 우리 옵빠.. 하지만 내 품에 안겼을 땐 모에하게 병약하겠지'라는 아이돌 판타지를 자극하는 인물이죠. 즉 '내 열망과 헌신이 어쩌면 오빠를 감동시켜서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환상을 완벽하게 충족시킨단 거고..
일전에 본 포스팅이 예시로 적절할 것 같아 링크해봅니다.
http://heilt.egloos.com/7071273
'내가 오빠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아주 달콤한 환상이에요.나 이외의 것을 위해 나 자신을 내던질 때 느끼는 고양감, 동질감, 뿌듯함 등등이 있잖아요. 나 자신에게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거요. 내가 추구하는 게 나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내가 이타적이고 숭고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지죠. 이게 정치 덕질로 가면 이데올로기나 영도자를 추앙하는 행위가 되고 자식 덕질로 가면 자식 위해 희생하는 부모가 되고 빠순질로 가면 오빠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빠순이가 됩니다.
http://heilt.egloos.com/6326617
한편 빠순이가 코어해지면 생겨나는 또다른 속성이 망상입니다... 인성망상은 코어팬들이면 다들 패시브로 가진 스킬로 오빠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 하나에서 오빠의 찬양받아 마땅할 인성을 읽어내며 오빠를 캐릭터로 조립하는 능력입니다.... 인성 망상이 깊어지면 빙의 스킬이 열립니다. 이건 빙의글의 빙의와는 다른 종류로 오빠에게 감정 이입하는 텔레파시 능력을 뜻합니다. 오빠 = 나의 경지로 마음의 눈이 열리면서 오빠의 무표정 사진을 봐도 오빠의 희로애락이 읽히고 오빠네 강아지가 감기에 걸리면 자기 개가 죽은 것 마냥 오빠의 슬픔에 절절이 공감하고 오빠가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안쓰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모니터에 빨간 약을 발라줍니다... 자신의 말에 오빠가 반응해주는 걸 경험하거나 운 좋게 계를 탈 시 빠순이는 '나는 오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는 망상에 빠집니다. 오빠 멋있어요 사랑해요에서 끝나지 않고 오빠에게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랍시고 고나리를 쳐넣거나 팬덤 여론을 선동하거나 오빠가 검색으로 들어와 읽어주기를 바라며 구비구비 선생질을 하는 포스팅을 집필합니다. '빠순이는 오랫동안 오빠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일에만 열중해왔다. 허나 진짜로 중요한 것은 오빠를 변혁시키는 일이다.'하고 전환을 이루는 거죠.
일전에 본 포스팅이 예시로 적절할 것 같아 링크해봅니다.
http://heilt.egloos.com/7071273
'내가 오빠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아주 달콤한 환상이에요.나 이외의 것을 위해 나 자신을 내던질 때 느끼는 고양감, 동질감, 뿌듯함 등등이 있잖아요. 나 자신에게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거요. 내가 추구하는 게 나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내가 이타적이고 숭고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지죠. 이게 정치 덕질로 가면 이데올로기나 영도자를 추앙하는 행위가 되고 자식 덕질로 가면 자식 위해 희생하는 부모가 되고 빠순질로 가면 오빠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빠순이가 됩니다.
http://heilt.egloos.com/6326617
한편 빠순이가 코어해지면 생겨나는 또다른 속성이 망상입니다... 인성망상은 코어팬들이면 다들 패시브로 가진 스킬로 오빠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 하나에서 오빠의 찬양받아 마땅할 인성을 읽어내며 오빠를 캐릭터로 조립하는 능력입니다.... 인성 망상이 깊어지면 빙의 스킬이 열립니다. 이건 빙의글의 빙의와는 다른 종류로 오빠에게 감정 이입하는 텔레파시 능력을 뜻합니다. 오빠 = 나의 경지로 마음의 눈이 열리면서 오빠의 무표정 사진을 봐도 오빠의 희로애락이 읽히고 오빠네 강아지가 감기에 걸리면 자기 개가 죽은 것 마냥 오빠의 슬픔에 절절이 공감하고 오빠가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안쓰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모니터에 빨간 약을 발라줍니다... 자신의 말에 오빠가 반응해주는 걸 경험하거나 운 좋게 계를 탈 시 빠순이는 '나는 오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는 망상에 빠집니다. 오빠 멋있어요 사랑해요에서 끝나지 않고 오빠에게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랍시고 고나리를 쳐넣거나 팬덤 여론을 선동하거나 오빠가 검색으로 들어와 읽어주기를 바라며 구비구비 선생질을 하는 포스팅을 집필합니다. '빠순이는 오랫동안 오빠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일에만 열중해왔다. 허나 진짜로 중요한 것은 오빠를 변혁시키는 일이다.'하고 전환을 이루는 거죠.
저는 사실, 그런 코드를 무리하게 해석하는 것 보단 하울은 다른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비해 국내 개봉 시기 측면에서 많은 어드밴티지를 가져갔고, 비교적 일본색이 옅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저항감이 덜했다는 점이 큰 몫을 했다고 보는 편이라서요 ㅎㅎ 그때 어렸던 친구들이 지금 20대가 되었으니 아직 어릴 때를 추억하며 되살리기에도 적절한 애니메이션이고.
저는 구밀복검님이 후안이 리틀을 돌본 이유와 심리에 정확히 동의합니다. 영화에서 그렇게 그려져 있으니까요. 후안은 리틀에게서 자신을 보죠. 제가 시카리오의 마약왕 이야기를 하면서 강자의 여유와 필요 이야기를 한 것은 후안이 리틀에게 자신의 도량을 과시하려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그대로, 후안의 주관적인 심경은 죄책감과 콤플렉스지만 그것이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 강자의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후안의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죠. 곳간이 있어야 인심이 나는 것, 그것은 부자의 위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필요조건인 것이죠... 더 보기
저는 구밀복검님이 후안이 리틀을 돌본 이유와 심리에 정확히 동의합니다. 영화에서 그렇게 그려져 있으니까요. 후안은 리틀에게서 자신을 보죠. 제가 시카리오의 마약왕 이야기를 하면서 강자의 여유와 필요 이야기를 한 것은 후안이 리틀에게 자신의 도량을 과시하려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그대로, 후안의 주관적인 심경은 죄책감과 콤플렉스지만 그것이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 강자의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후안의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죠. 곳간이 있어야 인심이 나는 것, 그것은 부자의 위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필요조건인 것이죠.
다시 후안의 심리로 돌아가서, 후안은 리틀에게서 자신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호주체적인 작용이 아닌 것이죠. 후안이라는 주체가, 리틀이라는 객체를 보고 ''나도 으른들 때문에 좆같이 자란 게 그토록 슬펐는데 막상 나도 이 아해 인생을 나처럼 좆같이 만들고 있구나 에혀 먹고 살아야지 우짬"이라는 속죄행위와 자기연민을 하지만, 이건 상호적인게 아니죠. 객체인 리틀을 보고 주체인 후안이 느끼는 심경입니다. 저는 여기서 상호성을
발견할 수 없어요. 감정과 욕망의 차원에서 후안과 리틀 사이에 부분적인 동등성이 있지만, 그것은 후안이 어른으로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발견하는 동등성이고 리틀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리틀은 후안에게서 아버지상을 볼 뿐, 후안이 리틀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듯 후안에게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해요. 당연하죠 어린 아이인데.. 리틀이 후안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건 블랙이 된 이후인거죠. 리틀이 후안을 힐난할 때 후안이 화를내며 리틀의 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그려졌다 한들 후안의 심리가 바뀌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그려졌어도 후안이 리틀의 감정과 판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의미한 비난에 대한 반응을 방어적으로, 폭력적으로 하는 인물이 될 뿐이고 뺨을 맞은 리틀이 사라진 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그려질 것이고요. (안 그러면 캐릭터 자체가 무너지니까) '어린 시절의 나'를 대면하며 그 비난을 조용히 받아들이든, 그 비난에 화를 내며 대항하든 서사가 달라질 것도 없고 인물상도 크게 바뀔 건 없어요. 조용히 참다 뺨을 한대 치고 내가 무슨짓을..하며 사과하는 장면으로 그려질 수도 있었겠죠. 영화에서의 행동이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장면이라고 보지만 어떤 묘사를 했더라도 이야기나 인물상, 후안이 리틀을 생각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리틀이기 때문에 관객은 리틀에게 감정이입을 하지만 '리틀' 단계의 스토리에서 리틀의 행위는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주체성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공격받고, 엄마에게 학대받고, 후안에게 보호받는 '객체'입니다. 행위의 객체가 되는 주체-주인공 리틀의 고통과 위안을 관객들에게 호소력있게 전달하지만 그것은 리틀이라는 '실존적 주체'가 주변인들의 행위의 객체가 되어 받는 고통과 위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리틀의 행위는 극중에서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것이 또 리틀에게 절망이 되지요. 리틀 단계에서 행위의 주체성은 유일한 친구와의 상호관계,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폭력'의 형태로 결론지어지면서, 더 이상 행위의 객체인 피해자가 아닌 행위의 주체로서 가해자가 되면서 리틀의 시절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후안은 자신의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내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신사캐릭입니다. 후안의 아내는
분명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발언권은 후안을 압도하기까지 하죠.
다른 여자 인생을 망치는 유해한 캐릭인 건 캐릭터 판타지에 중요한 게 아니죠.
오히려 여성편의적인 캐릭터로는 클리셰적인 좋은 점이기까지 합니다. '나한테만(+내가 허용한 대상에게만) 상냥한 나쁜남자'캐릭이죠.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흑인 갱스터 남성이 얼마나 될까요..지나치게 좁은 타겟층이죠.
뭐라해도 '문라이트'는 먹물영화고, 성별로 구별하자면 여성취향의 영화에요.
물론 문라이트의 후안이 여성판타지를 자극하려고 그려진 캐릭터는 아닙니다.
애초에 문라이트는 트와일라잇이나 꽃보다 남자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캐릭터에 그런 요소가 들어있다는 거고, 원본글의 글쓴이는 그 요소에 꽂혀 예시를 들었다는 겁니다.
*박애나 겸애라면 충분히 이해할만 합니다. 원문이 영어이니 friendship이라 보면 그 뉘앙스차이를 생각하면 또
이해 못할 바도 아니겠지요. 다만 저는 우애는 박애보다 더 좁은 의미를 가지는 단어라고 볼수밖에 없고
후안과 리틀의 관계에 friendship은 있을지몰라도(제가 friendship의 뉘앙스를 엄밀히 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애는 없었다고 봐요.
다시 후안의 심리로 돌아가서, 후안은 리틀에게서 자신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호주체적인 작용이 아닌 것이죠. 후안이라는 주체가, 리틀이라는 객체를 보고 ''나도 으른들 때문에 좆같이 자란 게 그토록 슬펐는데 막상 나도 이 아해 인생을 나처럼 좆같이 만들고 있구나 에혀 먹고 살아야지 우짬"이라는 속죄행위와 자기연민을 하지만, 이건 상호적인게 아니죠. 객체인 리틀을 보고 주체인 후안이 느끼는 심경입니다. 저는 여기서 상호성을
발견할 수 없어요. 감정과 욕망의 차원에서 후안과 리틀 사이에 부분적인 동등성이 있지만, 그것은 후안이 어른으로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발견하는 동등성이고 리틀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리틀은 후안에게서 아버지상을 볼 뿐, 후안이 리틀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듯 후안에게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해요. 당연하죠 어린 아이인데.. 리틀이 후안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건 블랙이 된 이후인거죠. 리틀이 후안을 힐난할 때 후안이 화를내며 리틀의 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그려졌다 한들 후안의 심리가 바뀌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그려졌어도 후안이 리틀의 감정과 판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의미한 비난에 대한 반응을 방어적으로, 폭력적으로 하는 인물이 될 뿐이고 뺨을 맞은 리틀이 사라진 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그려질 것이고요. (안 그러면 캐릭터 자체가 무너지니까) '어린 시절의 나'를 대면하며 그 비난을 조용히 받아들이든, 그 비난에 화를 내며 대항하든 서사가 달라질 것도 없고 인물상도 크게 바뀔 건 없어요. 조용히 참다 뺨을 한대 치고 내가 무슨짓을..하며 사과하는 장면으로 그려질 수도 있었겠죠. 영화에서의 행동이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장면이라고 보지만 어떤 묘사를 했더라도 이야기나 인물상, 후안이 리틀을 생각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리틀이기 때문에 관객은 리틀에게 감정이입을 하지만 '리틀' 단계의 스토리에서 리틀의 행위는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주체성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공격받고, 엄마에게 학대받고, 후안에게 보호받는 '객체'입니다. 행위의 객체가 되는 주체-주인공 리틀의 고통과 위안을 관객들에게 호소력있게 전달하지만 그것은 리틀이라는 '실존적 주체'가 주변인들의 행위의 객체가 되어 받는 고통과 위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리틀의 행위는 극중에서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것이 또 리틀에게 절망이 되지요. 리틀 단계에서 행위의 주체성은 유일한 친구와의 상호관계,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폭력'의 형태로 결론지어지면서, 더 이상 행위의 객체인 피해자가 아닌 행위의 주체로서 가해자가 되면서 리틀의 시절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후안은 자신의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내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신사캐릭입니다. 후안의 아내는
분명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발언권은 후안을 압도하기까지 하죠.
다른 여자 인생을 망치는 유해한 캐릭인 건 캐릭터 판타지에 중요한 게 아니죠.
오히려 여성편의적인 캐릭터로는 클리셰적인 좋은 점이기까지 합니다. '나한테만(+내가 허용한 대상에게만) 상냥한 나쁜남자'캐릭이죠.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흑인 갱스터 남성이 얼마나 될까요..지나치게 좁은 타겟층이죠.
뭐라해도 '문라이트'는 먹물영화고, 성별로 구별하자면 여성취향의 영화에요.
물론 문라이트의 후안이 여성판타지를 자극하려고 그려진 캐릭터는 아닙니다.
애초에 문라이트는 트와일라잇이나 꽃보다 남자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캐릭터에 그런 요소가 들어있다는 거고, 원본글의 글쓴이는 그 요소에 꽂혀 예시를 들었다는 겁니다.
*박애나 겸애라면 충분히 이해할만 합니다. 원문이 영어이니 friendship이라 보면 그 뉘앙스차이를 생각하면 또
이해 못할 바도 아니겠지요. 다만 저는 우애는 박애보다 더 좁은 의미를 가지는 단어라고 볼수밖에 없고
후안과 리틀의 관계에 friendship은 있을지몰라도(제가 friendship의 뉘앙스를 엄밀히 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애는 없었다고 봐요.
작품에 대한 개별 분석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차가 없다 생각합니다. 애시당초 복잡한 영화가 아니기도 하고. 다만 링크 본문이 자체로 아주 짧고 피상적인 글이고, 특히 '문라이트' 언급하는 부분은 그냥 글 안 쓰고 두 세 어절 한 문장 예시로 넘어갔어도 상관 없는 수준의, 별 내용 없는 단락이고, 대충 '수평이고 수직이고 잘 모르겠고 여튼 인간관계에서 부드러운 게 짱'이라는 식의 일반적인 낭만성을 별 생각없이 표하는 거 같은데, 근데 결정적으로 프랜드쉽이라는 어휘 자체도 조작적인 어휘는 아니고 아니고 대충 쓰는 일반 어휘에 가깝고 실제... 더 보기
작품에 대한 개별 분석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차가 없다 생각합니다. 애시당초 복잡한 영화가 아니기도 하고. 다만 링크 본문이 자체로 아주 짧고 피상적인 글이고, 특히 '문라이트' 언급하는 부분은 그냥 글 안 쓰고 두 세 어절 한 문장 예시로 넘어갔어도 상관 없는 수준의, 별 내용 없는 단락이고, 대충 '수평이고 수직이고 잘 모르겠고 여튼 인간관계에서 부드러운 게 짱'이라는 식의 일반적인 낭만성을 별 생각없이 표하는 거 같은데, 근데 결정적으로 프랜드쉽이라는 어휘 자체도 조작적인 어휘는 아니고 아니고 대충 쓰는 일반 어휘에 가깝고 실제로 그렇게 쓴 것 같고.. 즉 근본적으로 목적하고 있는 발화 의도 자체가 엄밀성을 들이대기도 민망한, '별 생각없이 던지는 휴먼남 판타지'인 이상 리틀과 후안 정도의 감정적 교류면 예시로 허용 범위 아니려나.. '로드 투 퍼디션' 쯤 되면 몰라도.. 뭐 그런 생각이 들고요. '문라이트'가 아니라 '그랜 토리노'나 '레옹'이 예시로 들어갔어도 별 상관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랜 토리노는 백인 꼰대 이야기고 레옹은 남성 간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냥 그래도 상관없는 그런 수준의 글이 아닌가 싶거든요.
전체적으로 글쓴이의 내면 판타지를 깊숙히 분석하기엔 내용 자체가 부재하는 글이다 싶어 멀리 가기가 어렵잖나 싶습니다. 예컨대 '개년에겐 개새끼지만 나에게는 친밀한 내 남자'라는 후안의 롤에 글쓴이가 마취 된 것일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명증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싶거든요. 원체 그냥 '후안 갓치 루핀 갓치 ㅇㅈ ㅇㅇㅈ' 수준으로 넘어가는 글이니까.. 또 특정 대상에 대한 애호란 게 꼭 편의적으로 수행된다기보다는 경험적인 여과와 가감에 의해 수행되기도 하고요. 가령 제라드 팬들이 꼭 제라드의 복싱에 맹목이라서 제라드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그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제라드 무식한 거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틴 제라드를 사랑하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물론 해당인의 개성과 언행에 중 어떤 것에 가점을 더 주고 다른 것에 감점은 덜 주고 하는 게 편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 세상에 있나 싶고요. 즉 '니가 눈이 리신이라 보고 싶은 거만 본 거지 뜯어보면 후안 개새끼 맞는데. 리신인 거 아닌 걸 증명하고 싶으면 후안 개새끼 해 봐'를 요구할 때 '후안 개새끼 맞음 근데 각자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되는 거 아님? 난 후안 여전히 긍정적으로 생각'이라고 답변할 수 있다는,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리는 호감'이란 게 대부분의 호감의 실체란 의미고, 글쓴이가 그 중 어느 좌표축에 있는지 판단할 증거를 본문에서 찾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나 아내 등에 대한 후안의 태도를 두고 언급한 문장이 전혀 없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 글쓴이의 내면 판타지를 깊숙히 분석하기엔 내용 자체가 부재하는 글이다 싶어 멀리 가기가 어렵잖나 싶습니다. 예컨대 '개년에겐 개새끼지만 나에게는 친밀한 내 남자'라는 후안의 롤에 글쓴이가 마취 된 것일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명증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싶거든요. 원체 그냥 '후안 갓치 루핀 갓치 ㅇㅈ ㅇㅇㅈ' 수준으로 넘어가는 글이니까.. 또 특정 대상에 대한 애호란 게 꼭 편의적으로 수행된다기보다는 경험적인 여과와 가감에 의해 수행되기도 하고요. 가령 제라드 팬들이 꼭 제라드의 복싱에 맹목이라서 제라드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그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제라드 무식한 거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틴 제라드를 사랑하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물론 해당인의 개성과 언행에 중 어떤 것에 가점을 더 주고 다른 것에 감점은 덜 주고 하는 게 편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 세상에 있나 싶고요. 즉 '니가 눈이 리신이라 보고 싶은 거만 본 거지 뜯어보면 후안 개새끼 맞는데. 리신인 거 아닌 걸 증명하고 싶으면 후안 개새끼 해 봐'를 요구할 때 '후안 개새끼 맞음 근데 각자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되는 거 아님? 난 후안 여전히 긍정적으로 생각'이라고 답변할 수 있다는,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리는 호감'이란 게 대부분의 호감의 실체란 의미고, 글쓴이가 그 중 어느 좌표축에 있는지 판단할 증거를 본문에서 찾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나 아내 등에 대한 후안의 태도를 두고 언급한 문장이 전혀 없기도 하고요.
'개년에겐 개새끼지만' ㄴㄴ '다른년에겐 개새끼지만', '(내가 개년이어도) 나에게는 친밀한'이어야 클리셰캐릭터입니다! ㅋㅋ
인물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건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그냥 나니까 특별히 잘해주는 캐릭터여야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여성판타지가 되는 것이에요.
저는 후안이 두루뭉실하게 긍정적인 캐릭터라는 걸 부정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후안 개새끼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요.
이 원문의 글쓴이가 추앙하는 '부드러운 남성상' 롤모델로 후안은 생뚱맞은 예시라는 것이고,
후안을 예시로 들었다는 데서 이 원... 더 보기
인물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건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그냥 나니까 특별히 잘해주는 캐릭터여야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여성판타지가 되는 것이에요.
저는 후안이 두루뭉실하게 긍정적인 캐릭터라는 걸 부정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후안 개새끼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요.
이 원문의 글쓴이가 추앙하는 '부드러운 남성상' 롤모델로 후안은 생뚱맞은 예시라는 것이고,
후안을 예시로 들었다는 데서 이 원... 더 보기
'개년에겐 개새끼지만' ㄴㄴ '다른년에겐 개새끼지만', '(내가 개년이어도) 나에게는 친밀한'이어야 클리셰캐릭터입니다! ㅋㅋ
인물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건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그냥 나니까 특별히 잘해주는 캐릭터여야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여성판타지가 되는 것이에요.
저는 후안이 두루뭉실하게 긍정적인 캐릭터라는 걸 부정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후안 개새끼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요.
이 원문의 글쓴이가 추앙하는 '부드러운 남성상' 롤모델로 후안은 생뚱맞은 예시라는 것이고,
후안을 예시로 들었다는 데서 이 원문 글쓴이의 얄팍한 여성편의적 인간상 추구가 빤히 드러난다는 것이죠.
새로운 남성상- 텐더성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나한테 잘하는 남자다. 끝.
글쓴이의 좌표축은 글에서 이미 드러나죠. 제 댓글 중에서 굳이 제가 여기서 페미니즘을 고깝게 보는 사람이다
라는 좌표를 직접 드러낸 문장은 없어도 댓글을 읽으면 알 수 있죠. 캐릭터와 후안리틀의 관계에 대해서 저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페미니스트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글의 표현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에요. 내용은 같아도
무엇이 적혀지고 무엇이 적혀지지 않는가, 글의 문제점이나 비판점을 감싸안는가 공격하는가 등에 있어서 말이죠.
원문 글쓴이가 아내에 대한 후안의 태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상적 롤모델의 예시로 후안을 들었고,
문라이트를 본 배경지식이 있으면 후안이 그런 캐릭터라는 건 알 수 있어요.
말씀대로 이 글에서 문라이트 이야기는 한두줄 적혀 있지만 문라이트를 알고 있으면 그와 관련한
내용도 글속에 들어있는 셈이죠.
사실 이하의 작품과 캐릭터를 알고 있으면 더 공통점을 뽑아내 더 정갈한 비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하의 작품을 몰라서 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ㅋㅋ 해리포터는 봤는데 리무스 루핀은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아서..
찾아보고서야 아 그 늑대인간 교수..하고 누군지는 알았는데 논평할만큼 캐릭터가 기억나질 않아요.
BL에서 시리우스랑 묶이는 총수캐..?-_-
인물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건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그냥 나니까 특별히 잘해주는 캐릭터여야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여성판타지가 되는 것이에요.
저는 후안이 두루뭉실하게 긍정적인 캐릭터라는 걸 부정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후안 개새끼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요.
이 원문의 글쓴이가 추앙하는 '부드러운 남성상' 롤모델로 후안은 생뚱맞은 예시라는 것이고,
후안을 예시로 들었다는 데서 이 원문 글쓴이의 얄팍한 여성편의적 인간상 추구가 빤히 드러난다는 것이죠.
새로운 남성상- 텐더성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나한테 잘하는 남자다. 끝.
글쓴이의 좌표축은 글에서 이미 드러나죠. 제 댓글 중에서 굳이 제가 여기서 페미니즘을 고깝게 보는 사람이다
라는 좌표를 직접 드러낸 문장은 없어도 댓글을 읽으면 알 수 있죠. 캐릭터와 후안리틀의 관계에 대해서 저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페미니스트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글의 표현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에요. 내용은 같아도
무엇이 적혀지고 무엇이 적혀지지 않는가, 글의 문제점이나 비판점을 감싸안는가 공격하는가 등에 있어서 말이죠.
원문 글쓴이가 아내에 대한 후안의 태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상적 롤모델의 예시로 후안을 들었고,
문라이트를 본 배경지식이 있으면 후안이 그런 캐릭터라는 건 알 수 있어요.
말씀대로 이 글에서 문라이트 이야기는 한두줄 적혀 있지만 문라이트를 알고 있으면 그와 관련한
내용도 글속에 들어있는 셈이죠.
사실 이하의 작품과 캐릭터를 알고 있으면 더 공통점을 뽑아내 더 정갈한 비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하의 작품을 몰라서 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ㅋㅋ 해리포터는 봤는데 리무스 루핀은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아서..
찾아보고서야 아 그 늑대인간 교수..하고 누군지는 알았는데 논평할만큼 캐릭터가 기억나질 않아요.
BL에서 시리우스랑 묶이는 총수캐..?-_-
뭐.. 막말로 그냥 흔한 동인녀일 수도 있는 거고.. 아동들에게 친밀한 사람 좋아하는 걸 수도 있는 거고.. 혹은 근육질의 외형에 비해 텐더해서 꽂혔다든가.. 글쓴이의 캐릭터 인식이 얄팍한 건 맞는데 그게 '여성친화적 인간상 추구'인지는 생각이 닿질 않아서요. 즉 '나한테 잘하는 남자'라서 후안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특정성은 없다고 봅니다. 후안의 여성친화성이 영화상으로 그리 부각된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리틀과의 관계가 핵심이었고, 실제로 글쓴이가 미진한 서술 속에서 그나마 지목한 것도 리틀과의 관계 측면인 걸 보면 그거에 꽂힌 거... 더 보기
뭐.. 막말로 그냥 흔한 동인녀일 수도 있는 거고.. 아동들에게 친밀한 사람 좋아하는 걸 수도 있는 거고.. 혹은 근육질의 외형에 비해 텐더해서 꽂혔다든가.. 글쓴이의 캐릭터 인식이 얄팍한 건 맞는데 그게 '여성친화적 인간상 추구'인지는 생각이 닿질 않아서요. 즉 '나한테 잘하는 남자'라서 후안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특정성은 없다고 봅니다. 후안의 여성친화성이 영화상으로 그리 부각된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리틀과의 관계가 핵심이었고, 실제로 글쓴이가 미진한 서술 속에서 그나마 지목한 것도 리틀과의 관계 측면인 걸 보면 그거에 꽂힌 거 같고, 물론 위에서 말씀한 것처럼 글쓴이가 후안의 특정 면모를 자의적으로 선별해서 후안의 여성친화성을 상상딸로 재구성할 순 있는데, 그에 대한 명시적 단서는 없지 않나 싶고..
말씀대로 전체적인 맥락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다른 남성 캐릭터들이 여성 친화적이고 레이디 퍼스트형 인물이었으면 저도 비슷하게 독해할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거든요. 물론 제시된 남성상들이 여성들에게 비적대적인 건 사실이지만, 저 중에서 명시적으로 여성 친화성을 메인 셀링 포인트로 잡고 있는 캐릭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즉 제시된 캐릭터들의 공통분모와 일관성을 생각할 때 글쓴이가 후안에게서 나쁜 남자 클리셰를 읽었는지 긴가민가 합니다. 그냥 대충 젠틀하고 텐더하면, '굿 가이'로 통칭할 수 있으면 뭐든 OK에 가깝다 싶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차라리 글쓴이가 좀 있어보이고 싶어서 이 영화 저 영화 대충 아는대로 다 끌어오고 그 중 대중성 높은 것들만 추리다보니 예시들이 아귀가 안 맞고 불균질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최상단의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던 근-엄한 자세에 비해서 그를 뒷받침하는 나머지 전개는 죄다 그냥 칠렐레 팔렐레인 게 그런 혐의를 더 짙게 해주고.. 헐랭이가 스놉질 하고 싶었나보다 뭐 그런..
어쩌다보니 영양가 없는 칼럼에 괜히 훈고학적으로 이거저거 따지게 된 거 같긴 한데.. 여튼 깊게 생각할 만한 글이 아니다 싶습니다. 글쓴이의 다른 글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본문만 봐서는 지적 지향에 대해 최소한의 기대조차 할 수가 없는지라..
말씀대로 전체적인 맥락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다른 남성 캐릭터들이 여성 친화적이고 레이디 퍼스트형 인물이었으면 저도 비슷하게 독해할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거든요. 물론 제시된 남성상들이 여성들에게 비적대적인 건 사실이지만, 저 중에서 명시적으로 여성 친화성을 메인 셀링 포인트로 잡고 있는 캐릭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즉 제시된 캐릭터들의 공통분모와 일관성을 생각할 때 글쓴이가 후안에게서 나쁜 남자 클리셰를 읽었는지 긴가민가 합니다. 그냥 대충 젠틀하고 텐더하면, '굿 가이'로 통칭할 수 있으면 뭐든 OK에 가깝다 싶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차라리 글쓴이가 좀 있어보이고 싶어서 이 영화 저 영화 대충 아는대로 다 끌어오고 그 중 대중성 높은 것들만 추리다보니 예시들이 아귀가 안 맞고 불균질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최상단의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던 근-엄한 자세에 비해서 그를 뒷받침하는 나머지 전개는 죄다 그냥 칠렐레 팔렐레인 게 그런 혐의를 더 짙게 해주고.. 헐랭이가 스놉질 하고 싶었나보다 뭐 그런..
어쩌다보니 영양가 없는 칼럼에 괜히 훈고학적으로 이거저거 따지게 된 거 같긴 한데.. 여튼 깊게 생각할 만한 글이 아니다 싶습니다. 글쓴이의 다른 글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본문만 봐서는 지적 지향에 대해 최소한의 기대조차 할 수가 없는지라..
후와, 본문에 풍부한 댓들글까지 한참 읽었네요. 그런데 뭔가 관심은 가지만 묘하게 할 말(적극적으로 얹을 만한 의견)은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시갑시다님 결론에 거의 완전히 동의하기도 하고요. 암튼 예시로 들어진 a~f 작품 가운데 딱 <반지의 제왕>과 <문라이트>만 보긴 했는데, 둘 다 제게 큰 감흥을 남기지 않은 작품인 탓도 있을 것 같고요.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반지의 제왕>은 원작이나 영화나 대작이어도 명작이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고 특히 각 인물들에 이입을 전혀 할 수 없었던... 더 보기
후와, 본문에 풍부한 댓들글까지 한참 읽었네요. 그런데 뭔가 관심은 가지만 묘하게 할 말(적극적으로 얹을 만한 의견)은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시갑시다님 결론에 거의 완전히 동의하기도 하고요. 암튼 예시로 들어진 a~f 작품 가운데 딱 <반지의 제왕>과 <문라이트>만 보긴 했는데, 둘 다 제게 큰 감흥을 남기지 않은 작품인 탓도 있을 것 같고요.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반지의 제왕>은 원작이나 영화나 대작이어도 명작이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고 특히 각 인물들에 이입을 전혀 할 수 없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샘은 이렇다 할 자기 욕망과 동기를 갖고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렇다 할 내적 딜레마가 묘사된 적도 없지 않나 싶고요. 롤모델이 되려면 그가 딜레마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자기 약점과 어떤 태도로 마주하는지 등이 좀 더 다층적으로 묘사되는 캐릭터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문라이트>도 화면 예쁘고 리듬 유려하고 연기들 출중한 영화라고는 생각했지만 리틀/샤이론/블랙을 제외한 인물들이 충분히 입체적인가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후안 역시 그래요. 자기 딜레마를 인식하는 인물로 그려지긴 했는데 충분히 고민하는 캐릭터인가엔 회의되는 것 같아요. 뭔가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현실을 배반하는(자기 구원의 시도랄 수 있을) 선택을 보여 줬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건 후안의 영화가 아니니... 아시타카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너무나 이상적이라는 문제가... 구도의 구상은 끝나고 실행만 남은 구도자 같달까요. 큰 판단을 굉장히 빠르게 정확히 내리고 과단성 있게 실패 없이 실행하는 캐릭터라는 기억을 갖고 있어요. 워낙 멋있어서(ㅋㅋ) 이상적 자아상에 그의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은 안 생기지만요.
음, 저는 글쓴이가 제시한 인간상이 여성편의적이라고 이야기한것인데요? '여성편의적'이라는 표현이 왜 역린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제 댓글이 그리 부드럽게 쓰여지지 않고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지게 쓰였다는 것은 저도 자각하고 있는데, '여성편의적'이라는 표현이 왜 문제가 있는지는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포르노를 남성산업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가 '남성편의적' 여성상이다 라면 그건 전혀 이상하지도 부적절하지도 않습니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 소비되며, 감정적 교감없이 아무튼 삽입하면 나중에는... 더 보기
포르노를 남성산업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가 '남성편의적' 여성상이다 라면 그건 전혀 이상하지도 부적절하지도 않습니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 소비되며, 감정적 교감없이 아무튼 삽입하면 나중에는... 더 보기
음, 저는 글쓴이가 제시한 인간상이 여성편의적이라고 이야기한것인데요? '여성편의적'이라는 표현이 왜 역린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제 댓글이 그리 부드럽게 쓰여지지 않고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지게 쓰였다는 것은 저도 자각하고 있는데, '여성편의적'이라는 표현이 왜 문제가 있는지는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포르노를 남성산업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가 '남성편의적' 여성상이다 라면 그건 전혀 이상하지도 부적절하지도 않습니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 소비되며, 감정적 교감없이 아무튼 삽입하면 나중에는 좋아한다와 같이 극단적으로 왜곡된 지극히 남성편의적 캐릭터죠.
포르노와 같이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예컨대 '오 나의 여신님'의 베르단디와 같은 '성녀형'캐릭터라던가 남성향 창작물에는 '남성편의적'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주의 진영에서도 이를 지적하는 일이 많죠. 저는 과다한 지적이나 캐릭터를 왜곡할 때 반발하게 되지 '남성편의적'이라는 표현자체에 반발하진 않습니다. 분명 그런 성향이 과도한 캐릭터들이 있으니까요.
어떤 성격의 캐릭터를 좋아하든, 그것이 가상취향에 머물러 있을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판타지야 판타지니까요. 그런데 이 글은 결국 '이제 남자들은 이래야지'라는 현실의 요구거든요. 게다가 요구하는 장점의 팩터가 반대방향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로 남성편의적 여성상 '양처요부'를 예로 든건 이런 점이 유사하기 때문이에요.
포르노를 남성산업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가 '남성편의적' 여성상이다 라면 그건 전혀 이상하지도 부적절하지도 않습니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 소비되며, 감정적 교감없이 아무튼 삽입하면 나중에는 좋아한다와 같이 극단적으로 왜곡된 지극히 남성편의적 캐릭터죠.
포르노와 같이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예컨대 '오 나의 여신님'의 베르단디와 같은 '성녀형'캐릭터라던가 남성향 창작물에는 '남성편의적'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주의 진영에서도 이를 지적하는 일이 많죠. 저는 과다한 지적이나 캐릭터를 왜곡할 때 반발하게 되지 '남성편의적'이라는 표현자체에 반발하진 않습니다. 분명 그런 성향이 과도한 캐릭터들이 있으니까요.
어떤 성격의 캐릭터를 좋아하든, 그것이 가상취향에 머물러 있을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판타지야 판타지니까요. 그런데 이 글은 결국 '이제 남자들은 이래야지'라는 현실의 요구거든요. 게다가 요구하는 장점의 팩터가 반대방향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로 남성편의적 여성상 '양처요부'를 예로 든건 이런 점이 유사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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