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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8/08 08:04:03
Name   뤼야
Subject   음악에 관한 다섯 가지 이야기
어떤 문화권에서든 어떤 시대에든 간에, 사랑은 제도화된 사회적 교환을 교란시키는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만들어낸다. 고대 중국에서는 열렬한 감정을 따르는 것과 훌륭한 음악을 듣는 것이 항상 결합되어 있다. 고대 로마인들이 매혹이나 섬광fulguratio이라는 단어로 묘사했던 것을 고대 중국인들은 파멸의 노래에의 복종이라는 단어로 지칭하였다. 그것은 저항할 수 없는 동일한 격정이다. 순수한 옛날이 지체 없이 행사하는 동일한 영향력이다. 음악과 사랑간의 차이가 없다: 진실한 감동을 듣게 되면 완전히 길을 잃게 된다.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중에서 -


나는 아무래도 이 음악이라는 반물질(半物質)을 즐기진 못하겠다. 대상을 물들이는 자아의 지향성을 뒤집고 잼처 솟아오르는 자아가 눈앞인 듯 이처럼 선연한데, 나는 아무래도 음악을 즐기진 못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최선이 '알면서 모른 체 하기'일진대 나는 아무래도 이 '모르는 음악'을 제대로 즐기진 못하겠다. 니체의 말처럼 "육체를 정신으로 채우고 정신을 다시 육신으로 채우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나는 종내 이 음악을 즐기진 못하겠다. 이 음악은 너무 즐거워, 즐거워, 그것은 차마 자연스럽지 않다. 소리 속까지 세속을 근심하는 나는 아무래도 이 음악을 제대로 즐기진 못하겠다.

- 김영민 [봄날은 간다]중에서 -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사회 내에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성취해 내야만 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재창조(re-creation)-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 음악이 부르조아 사회에서는 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의 지성을 둔감하게 하는 여흥거리(recreation)로 쓰여지고 있다.

- 알브레히트 베츠 [음악의 혁명, 혁명의 음악]중에서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7번 소나타에 대하여) 이 소나타를 듣고 있으면, 우리는 평형을 잃은 어떤 세계의 불안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혼돈과 미지가 지배하는 분위기다. 힘들이 광란한다. 이 힘들은 위협적이고 때로 살인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힘들이 있기에 살아간다. 이 힘들은 계속 존재하며, 인간은 느끼고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제 인간에게는 세상 만물이 인간을 충만하게 하기 위한 대상이다. 인간은 서로 힘을 합쳐 항의의 목소리를 내고 만인의 비탄을 서로 나우어 가진다. 인간은 그 대대적인 투쟁을 통해서 생명의 억누를 수 없는 힘을 확인한다.

- 브르노 몽생종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중에서 -


(스티븐 핑커)음악은 청각적 치즈케익이다. 생물학적 인과관계로 볼 때 음악은 무용지물이다. 오래 살거나 자손을 보거나 세상을 정확하게 지각하고 예측하려는 목표를 위해 설계되었다는 징후가 전혀 없다. 언어, 시각, 사회적 추론, 신체 능력과 달리 음악은 우리 종에서 사라진다 해도 우리의 삶의 양식에 사실상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중략)) 음악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확실시되는 까닭은 음악이 모든 인간에게 발견되며(하나의 종에 널리 퍼져야 한다는 생물학자의 기준을 충족시킨다), 오랫동안 존재해왔고(청각적 치즈케이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특별한 뇌 구조와 관련되어 가령 다른 기억 체계가 실패해도 여전히 작동할 수 있는 전담 기억 체계가 있으며(모든 인간에게서 관련 뇌 체계가 발달할 때 우리는 진화적 기초를 갖는 것으로 본다), 다른 종의 음악 활동과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리듬의 연속은 포유류 뇌에 존재하는 회귀신경 네트워크를 최적으로 자극하며, 여기에는 운동 피질과 소뇌, 전두엽 부위 사이의 피드백 고리가 포함된다. 조성 체계, 조옮김, 화음은 청각 체계의 특징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들이며, 이런 청각 체계의 특징 자체는 물리적 세계와 진동하는 물체의 본질이 만들어 내는 산물이다. 우리의 청각 체계는 음계와 배음렬 사이의 관계를 활용하는 식으로 발달한다. 참신한 음악은 주목을 끌고 지루함을 이기며 기억하기도 쉽다.

- 대니얼 J. 레비틴 [뇌의 왈츠]중에서-

어제 BBC교향악단이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을 3번부터 9번까지 들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질리는 것이 불가능한 음악'에 속하는 지라, 음반을 통해, 연주회를 통해, 들어본 것만 해도 거의 1000회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음악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음악이란 내게 어떤 의미이길래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여 음악을 듣고, 음반을 모으고(지금은 거의 mp3로 대체하긴 했습니다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음악회에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보았죠. 사실 베토벤 같은 경우는 새로운 레코딩이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들어보는 편입니다. 그런 날에는 각 교향곡의 주제선율이 변주되는 모양이 선명하게 그려져요. 5번 교향곡 같은 경우는 1악장에서 선보인 주제선율이 악장마다 새로이 전개되고 변주되는 모양이 퍼즐이 딱 들어맞을 때의 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책을 읽을 때 같은 주제나 소재로 묶을 수 있는 구절들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는데,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김영민의 철학, 그리고  레비틴의 뇌과학에서 다루었던 음악에 관한 이야기들을 함께 묶어보니 재미있습니다. 사실 알브레히트 베츠의 저작같은 경우는 한 때 맑시즘에 경도된 애인이 제게 읽어보라 전해준 책인데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음악이 이토록 완벽하게 도구로, 수단으로 전락하다니, 분명 제 취향이 아닙니다. 음악을 듣는 행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저는 음악을 듣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저는 아무 이유없이 한바탕 신명나게 놀다가는 인생을 살고 싶거든요. 음악을 듣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제게는 그저 즐거운 놀이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즐겁게 놀고 싶지 않습니까?

벌써 여름이 다 가기라도 한 듯, 가을, 겨울 시즌을 맞이하여 각종 공연 소식이 쏟아지고 있네요. 놀거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뻘글의 결론은 열심히 놀려면 돈벌어야 됩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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