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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8/09 12:14:38
Name   한아
File #1   20150730153626_55b9c5ea06210_1_99_20150730162004.jpg (138.8 KB), Download : 28
Subject   무더위에 시원했던 사이다, <베테랑> 보고 왔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디테일하진 않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스포있어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기점으로 보면, 류승완 감독은 이제 15년차인가요?
연출한 작품 수도 얼추 15편정도 되니, 1년에 한 편이라는 페이스로 무섭게 다작하는 감독입니다.
요즘이야 그런 이야기가 많이 없어졌지만, 한창 초기작 연출할 당시 영화계 바깥에서는 같은 선상에 이름이 불리우던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같은 감독들에 비해 과대평가된 감독 아니냐 이야기가 많았죠.
뭐 저도 <짝패> 쯤부터 감독 크레딧을 찾아본 사람이니 그런 시선이 이해가 안가지는 않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개인적으로 <베테랑>을 보고 나서며 느낀 건, [15년정도 꾸준히 연출하면 저정도 장인이 될 수 있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올해 최고의 영화다, 불세출의 걸작, 이런 평을 붙이기엔 사실 부족합니다만,
한국에서 만드는 영화들이 이 정도만 되어도 큰 불만없이 기분좋게 만족감을 느끼면서 영화관을 나설 수 있는거 아닌가 싶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자면,

1. 한국 액션의 새 활로를 보여준 <아저씨>, 흥행은 실패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용의자> 같은 도전은 끊임없이 있었지만,[그래도 아직은 류승완].
2. 오락영화가 뭔지 이 정도로 이해하는 감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

일단 액션 장면은 별로 나무랄 데가 없어요. 저는 <짝패>가 류승완 액션의 전성기이자 최고 정점일줄 알았습니다만, <부당거래>로 환골탈태 한 번 하더니 또 새로운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감독의 바로 전작 두 편이 <부당거래>와 <베를린>이었기에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예상하고 갔지만, 그런 기대는 시작하고 10여초만에 깨져버리고,
비정상적일만큼 경쾌하고 확고한 스텝을 밟아가는데, 뭐랄까, <부당거래>-<베를린>에 이어서 나온 영화가 이런 거라니,
감독이 자기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확 느껴져서 일단 시작이 좋았습니다.
올해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정도?
아카데미? 깐느? 놀란이 인터스텔라로 우주를 재현했다고? 그딴거 필요없어. 난 내 영화가 좋아. 난 이걸 보여주고 싶다! 하는 기묘한 자신감이랄까요.
(물론 조지 밀러는 애초에 노장 감독으로써 그정도 규모의 영화 메가폰을 잡으려면 당연히 자기 작품에 대한 그정도 확신이 있었어야겠죠.)
특히나 포기에 자책하고, 복종에 익숙하며, 패배에 젖어있는 세대를 살아가는 저로써는 이런 밑도끝도없는 건전한 에너지가 슬쩍 거부감이 들면서도, 굳이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달까요?

황정민의 서도철이 딱 그런 캐릭터입니다.
이 인물의 정의감은 사실 요즘 세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같지 않게 명확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설경구의 강철중을 많이 떠올리시던데, 분위기는 강철중보다 더 들떠있습니다. 강철중은 쩔어있는 츤데레 둘째 형 같으면, 서도철은 좀 더 기댈수 있는 큰 형 같달까요.
하필 또 <부당거래>에서 부패에 굴복하는 광수대 팀장 최철기역을 맡은 황정민이라 그런지,
언제쯤 악에 굴복할 것인가 조마조마한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만, 이 형은 끝까지 그런거 없습니다.

'형만 따라와. 나쁜 놈들 형이 다 때려잡아줄께.'

개인적으로 저만 이런 부분이 와 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이게 큰 위로로 다가오니까, 영화적 완성도는 따질수가 없게 되더라구요.

사실 영화는 뭐, 별거 없어요.
류승완식 액션이 좋다고 호평은 해놨지만, 기존 작품에 비해서 혁신적인 것은 아닙니다.
액션 시퀀스의 완성도가 한국 영화들 중에서는 뛰어나고, 진지하고 무거운 액션이 아니라 류승완 본연의 색깔이 잘 묻어나도록 깔끔하게 소화된 액션,
특히 주변 소품들을 활용해 코미디 영화처럼 일궈내면서도, 장난같지 않고 확실한 타격감과 무게감을 주는 싸움 장면들은 <베테랑>에만 있는 액션은 아닙니다.
기존 작품들보다 더 발전하거나 믹스된 부분은 있어도 류승완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영화 내용?
영화 내용도 뭐 분위기만 다르지 <부당거래>랑 다를게 뭐 있나요.
돈이랑 권력으로 세상 지 맘대로 사는 기득권층이랑 서민층에서 날뛰는 광수대 형사 이야기.

근데요,
저는 최상무 취조실에 앉혀놓고 서도철이 ['이 새끼들 진짜 나쁜 새끼들이네.']하고 대사 한 줄 후려갈기는데,
이게 좀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싶으면서도, 위로가 됩디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사실 촌스러워요. 유치하고.
이유없이 정의감에 불타오르고, 끝까지 불타오르는 서도철이나,
장난감 안사준다고 징징대는거랑 크게 다를 바 없었던 찌질이 조태오,
배신한 번 생각 안하고, 사무라이마냥 절대 충성하는 최상무와
가끔 걸려 넘어지는 서도철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시 또 밑도 끝도 없이 착하디 착한 광수대 형사들.
복잡한 플롯도 없고, 인물들도 단순하고, 이들이 하고자 하는것도 뻔하고, 엔딩은 다 알겠고.

영화 자체가 촌티 팍팍 날것 같지만,
딱 하나, 유치하지 않은게 있어요.
서도철이 지목하는 악당이에요. 너무나 명백하게 '우리나라 재벌'이거든요.
<다이하드>나 <007시리즈>처럼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알수없는 집단 뭐 뜬구름잡는 악당이 아니라,
대.한.민.국.돈.많.은.놈.들. 이라고 너무나 뚜렷하게 지목하고 있어요.

그러니깐 '진짜 나쁜 새끼들'이라고 일갈할때,
그러면서 서도철이 조태오를 두드려 팰때, 유쾌상쾌통쾌한거 같습니다.

이런 표현에 있어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거침없어요.
맷값폭행 같은 것도 그냥 직접적으로 갖다가 써버리고, '재계쪽 높으신 분들'이 보면 불편할 장면들도 그냥 막 다 나와요.
표현 방식도 시원시원한데, 해결방식도 뭐 특별할게 있나요. 나쁜 짓을 했으니깐 잡아 넣는거고,
당연히 돈 많고 빽 좋아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겠지만, 잡힐때까지 밀어부치는 거죠.

경찰도 믿지 못하고, 검찰도 믿지 못하고, 기득권층이 군림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세대에게
그래 이 시스템이 좀 거지같긴 해, 하지만 이게 원래 이렇게 제대로 작동하면, 이놈들 싹 다 잡아넣을수 있다고,
너네들 못믿는 눈치네? 그래, 그것도 이해해. 그래도 잘 따라와봐. 이게 원래 이렇게 작동해야되는데, 저놈들이 나쁘게 써먹고 있던 거라니까?
하고 밑도끝도없는 건전한 희망을 던져주고, 그것이 영화 속에서라도 강렬하게 성취되니,
거기에서 오는 통쾌함, 그리고 뒤이어 오는 위로감과 만족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오락영화'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달까요.

감독 자신의 세계관이나 철학도 물론 중요하지만, 철저히 관객들이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설때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지?라는 게 가장 최우선이 되어 있다는게,
류승완이 괜히 류승완이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이런 영화들에서 관습적으로 보이는 가족끼리 상봉하고 울고불며 짜는 감정 과잉의 해피엔딩? 그딴거도 없습니다.
가족이고 나발이고 돈 많은놈도 나쁜 짓을 했으면 때려잡아야지 울고불고할게 뭐있음?
이런거에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CJ 돈 투자받아서 CJ 같은 재벌들 시원하게 후려까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제가 영화적 완성도를 논할 입장이 되려나요.

그냥 더워서 땀 뻘뻘 흘리고 죽겠는데, 시원한 사이다 한 잔 마신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고급 와인이나, 향 좋은 커피는 아니겠지만, 사이다만의 청량감이 있으니까요.


+ 뭐, 이게 서도철 혼자만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위로감이 되어주었던건, 서도철이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어 하면서 전전긍긍 앓고 있을때,
우리의 현실에서 이익과 의리를 놓고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광수대 형사들과 대장님이
결국에는 착한놈 편에서 든든하게 정의를 지켜준 거 아니었을까요?
정의를 지키는데, 그게 나 혼자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지지해주고 옹호해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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