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5/12 06:43:27
Name   한아
Subject   이브 온라인 이야기 - 1
0.
글 안에 이브 온라인을 비롯한 다양한 게임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이브 안에서도 보는 시각에 따라 굉장히 초보 유저로 분류될 수 있으며,
다른 게임 잘 알지 못하고 쓰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틀리거나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1.
저는 요즘 이브 온라인을 즐기고 있습니다.
몇 년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즐겨왔던 롤의 제 계정을 휴면상태로 만들었을 정도로 그 매력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여기에도 뉴 에덴의 캡슐리어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브 온라인이란 게임의 존재를 아예 모르시거나, 게임의 명성 때문에 들어보기만 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오래된 짤방이고, 보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널리 알려진 이브의 명성은 ‘악명’에 가깝습니다. 초보들에게 너무나 가파른 진입장벽.
이브를 시작하기 전에 저도, 이브를 부담스러워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굳이 게임에서 그런 가파른 암벽등반은 하고 싶지 않았죠.

중간중간 손 가는대로 플스겜, 스팀겜을 즐기기도 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가 100% 만족스러운 게임은 아니었지만, 꽤 긴 시간동안 롤에 정착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무료해지던 플레이를 달래기 위해,
점점 더 어려운, 파고들기 요소가 있는, 다회차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들을 찾기 시작했죠.
악명 높은 다크 소울, 몬스터 헌터, 다키스트 던전 같은 게임들이죠.

적어도 제 시점에서는 이 게임들이 모두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실력이 뛰어난, 게임 센스가 탁월한 게이머는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도전할만한 컨텐츠들을 찾았다면,
지금 저는 롤이나 오버워치 상위 랭크로 승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나, 반대로 굉장히 클래식한 로그라이크 류를 즐기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위에 언급한 게임들은, 상용 게임들보단 상당히 어렵지만,
저 같은 보통의 게이머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난이도를 갖춘 게임들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타협을 잘하는 인간이었고, 저는 말로는 빡센 게임을 찾는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저같은 손고자도 깰 수 있는 ‘어렵지만 쉬운’ – 그런 절묘한 게임들을 찾아내려다 보니,
세상에 널리고 널린게 게임이지만, 정작 할 게임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브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도전하고 있던 것은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도전과제, Frozen Triple Crown Solo 였습니다.
80~90년대 서양 클래식 RPG의 원형을 추구하는 이 게임은
특정 역할을 가진 여러 파티원을 모아, 마지막 보스를 클리어하는 솔로 플레이 게임입니다.
도전과제의 목표는 파티원 없이, 하나의 캐릭터로 가장 어려운 난이도인 Path of the Damned(일명 PotD)를 클리어하는 것으로
이 게임에서는 가장 어려운 도전과제죠.
저는 게임에 점점 더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고, 적당히 어려운 게임을 찾고 있던 제게 도전해볼만한 컨텐츠를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2회차의 시도를 해보고, 막다른 벽에 부딪혔습니다.
아무리 위키를 찾아보고, 머리를 굴려봐도 FCS를 따낼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구상했던 몇 가지 가능성들은 12번의 실험 속에서 거듭된 실패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이것을 성공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블로그와 유투브 채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제게 있어서 패배의 승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명 스트리머들은 동일 겜을 300회 트라이 이상씩 하기도 하지만, 제게 그 정도의 근성과 물리적인 여가 시간이 없었기도 하구요.

그러던 중 스팀에서 과거에 얼핏 스쳐지나갔던 게임명이 보였습니다.
‘이브 온라인’.
이게 왜 스팀에 있지? Free to Play.
매력적이긴 하지만, MMO 장르에서 F2P라는 문구는 완전 무료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브가 그렇게 어렵다는데, 얼마나 어려운 걸까. 내가 찾던게 저런게 아닐까?'

제가 그 순간 그렇게 도전 욕구를 불러 일으킬 만한 게임을 찾고 있지 않았다면,
‘이브 온라인’은 이번에도 그냥 흘깃 보고 넘겨 버렸을 게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무심코 떠오른 저 생각이, 결국 저를 이브의 세계로 빠뜨리고 맙니다.



[This is EVE 트레일러]



2.
이브 온라인의 제작사 CCP에서 만든 게임 트레일러는, 한국인 유저들끼리 ‘사기’에 가깝다고 이야기됩니다.
광고가 다 그렇지라고 하지만, 한국인 이브 플레이어의 유입을 가장 많이 시킨 Casualty를 예로 들어보죠.



[Casualty 트레일러]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또, 실제 게임 내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픽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저런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저는 와우와 리니지를 잘 모르지만, 저 트레일러의 내용은,
와우에서 용개 같은 게임 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거나, 리니지의 거대 혈맹을 내 손으로 붕괴 시킨다와 같은 일일 겁니다.
가능은 하지만, 그게 나일리는 없어, 의 허무맹랑한 내용이죠.

저 영상은 수많은 이브 뉴비를 양산시켰고, 본 목적을 훌륭히 달성한 좋은 트레일러지만,
저걸 보고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들은 ‘낚였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겁니다.

제가 앞에서 설명한 Free to Play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Free to Play 트레일러 - https://youtu.be/uXAEhlgHSdk )

물론, 맞습니다. 무료로 플레이는 가능합니다만, 실상을 살펴보면 다른 게임의 무료화 모델과 비교해볼때,
부분 유료 정도도 아니고 처참한 수준입니다.
롤에서 레벨 30을 찍으면 유료로 전환해야 한다거나, 오버워치를 다섯 명의 캐릭터만으로 할 수 있는,
그런 무료화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낚시입니다.
(이브 유저끼리 가장 많이 하는 비교는 ‘와우 20렙까지 무료’ 정도라는거죠.)


...............................................


3.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샜는데,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브의 매력입니다.
제가 플레이전 살펴본 게임과는 많이 다르고, 심지어 실상을 알고보니 제대로 된 무료도 아니었다,는
정말 좋지 않은 첫 인상을 준 게임이지만, 이 게임은 제게 끊임없이 달려갈 도전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고 깔끔한 타 게임들과 비교할 때 뉴비 입장에서 지옥문과 같이 높은 진입장벽이 많은 부분 이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쉽고 빠르게 넘겼을 튜토리얼조차도,
초보에게는 험난하고, 지루하고, 복잡한 장애물을 견디고 넘어야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보자면, 2017년의 이브 온라인 진입장벽은 본문 첫 짤방같이 심각하게 높지 않습니다.
다른 뉴비 프렌들리 게임보다는 쉽지 않겠지만요.)


제게 맞는 어려운 게임을 찾았다, 그러면 그 다음은요?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스스톤 같은 대전게임은 경기에서의 승리, 혹은 실력을 증명하는 타이틀 획득(랭크)가 그 보상일 수 있습니다.
RPG류에서는 가장 어려운 마지막 보스를 클리어하는게 그 보상이 될 수도 있겠죠.

이브에서의 보상은?
지금 저의 현재 목표는 저의 꼽(Corporation; 회사 – 타 게임의 길드/클랜 개념)에서 특별하고 필요한, 맴버가 되는 일입니다.




4.
이브 온라인이란 게임의 특수성은 여러가지에서 나옵니다.
첫째로는 신뢰입니다.

이브는 자신이 키우던 계정의 육성에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브의 스킬 육성은 현실 시간으로 계산되는데, 모든 스킬을 다 마스터하는데에는 1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브는 2003년도에 출시되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전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신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컨텐츠를 즐길 만큼의 육성을 하는데에도 어느정도의 시간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전 세계 단일 서버라는 이브의 또다른 특수성과 함께 연계되어, 특정 아이디의 ‘신뢰도’라는 개념이 중요해지게 만듭니다.

내가 3년 동안 키워오던 캐릭터가 어떤 흑역사를 만든다면, 누군가에게 제 아이디는 기록될 것이고, 그것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지우거나 초기화하기 위해 도망갈 다른 서버가 없습니다.
이브에서 어떤 흑역사를 쓴다면, 내 캐릭터는 이브 플레이어들에게 그것으로 기억될 것이고, 게임을 접지 않는 한 그것을 바꾸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신원 세탁을 위해 새로 아이디를 만들어 새 캐릭터를 육성하려면 다시 3년 혹은 그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3년된 본래 캐릭터에게 들어간다면, 더 강해질 수도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텐데, 그만큼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올해 새로 공개된 트레일러 - Birth of The Capsuleer


따라서, 제 아이디는 나만의 어떤 고유한 것이 되고, 제가 하는 행동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기록되고,
그것을 통해 상대는 내가 어떤 플레이어인지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롤에서의 OP.GG 검색 서비스처럼요.
모두 똑같은 만렙에서 비슷한 템을 둘둘 두르고, 다음 확장팩 컨텐츠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과 다르게,
각자가 모두 다른 수준의 스킬 상태를 갖고 있고, 언제든 아무 함선이나 타고 나타날 수 있으며,
같은 함선이라도 운용하는 능력의 차이는 모두가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언급되는 것이, ‘기록’입니다.
타 플레이어가 무슨 행위를 했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을 조회해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길드에 가입하려는 플레이어가 적대 길드에 가입했던 적이 있었는지,
나를 죽인 적이 있었는지, 어떤 함선을 주로 애용하는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컨텐츠를 위주로 활동했는지.




5.
‘신뢰’. 이것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롤에서 만다는 상대편의 플레이어는 그저 컴퓨터에 앉은 또 하나의 나 같은 플레이어고,
다음판에 다시 같은 편이 될 수도, 영원히 만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비교적 짧은 순간 만나는 단발성 관계죠.
하지만 이브에서 타 플레이어와의 관계는 조금 다릅니다. 이브는 PvP 기반의 MMO이기 때문입니다.

이브에서 하는 거의 대부분의 활동은 위험합니다.
나는 아무런 적의가 없고, 선의로 PvE 컨텐츠를 즐기거나 누군가를 도와주려 하는 중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누구든 나를 와서 죽일 수 있습니다.
왜?
ISK(인게임 화폐)를 벌려고, 좋은 드랍템을 먹기위해서,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최악의 경우 그냥 재미로 죽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실수로 F1키(발사버튼)를 눌렀다든지…

따라서, 내가 만나는 모든 플레이어는 잠재적 킬러입니다.
심지어 내가 도와주고 있는 플레이어도, 다른 날, 다른 상황에서는 적으로 만나 제가 힘들게 구입한 함선을 뽀갤 수도 있습니다.
이 위험을 알아내려면, 그 플레이어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 활동해왔는지 알아야합니다.
어떤 플레이어를 만났을 때,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플레이어의 기록을 뒤져볼 수 있습니다.


이 친구는 주로 PvE 컨텐츠가 메인인 플레이어다?
-> 비교적 위험하지 않은 플레이어입니다.
  이 녀석은 PvP를 많이 하는데, 활동 지역이 주로 자기 영토 근처고, 스킬 높은 상대들과 주로 싸운 플레이어다?
   -> 자신의 영토 지키는 활동을 주로 하는 군인에 가깝습니다. 나를 선빵 때릴 가능성은 낮지만, PvP 전투에 최적화 된 캐릭터니 싸우면 지겠죠.
  어라? 이 놈은 PvP를 자주 즐기며, 오늘 벌써 다섯 명 째 약한 플레이어만 골라 죽인 범죄 성향이 짙고 호전적인 플레이어다?
   -> 지금 당장 도망가지 않으면 죽는다, 혹은 이미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그룹 단위의 꼽 vs 꼽으로 되면 굉장히 심화됩니다.
거대 꼽일수록 지켜야 될 영토도 넓고, 보호해야 될 아군과 구조물들이 많습니다.
누구든 어디서든 죽을 수 있으며, 특히나 영토를 지키는 전쟁 때까지 꼽 내부에 아군인 것처럼 잠복해 있다가,
전투에서 주요 요인(FC; Fleet Commander)을 저격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방법은 이브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스파이.

적 길드의 스파이를 찾아내지 못하는 꼽은, 결국 멸망의 길을 걷고, 수많은 거대 규모의 꼽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역사 속에 사라졌습니다.



[꼽 가입 홍보 영상 - 링크된 영상은 굉장히 옛날이지만 유명했던 영상.
이러한 영상들은 아직도 플레이어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며, 실제로 인게임 광고 빌보드, CCP 공식 스트림에서도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잠시 샛길로 빠져 이 이야기를 더 해보죠. 이브에서 거대 전투는 보통 플릿 전이라고 불리며, 다수의 인원이 동원됩니다.
적게는 수백여명, 많게는 2~3천명까지 동원되는 이런 전투는,
각 꼽들과 그 꼽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얼라이언스들 끼리의 대결이며,
그들의 영토는 권위의 상징이자, 자원의 독점, 경제력의 바탕이 되고, 이것이 곧 군사력, 전력이 되기 때문에
몇 개월, 몇 년간 공들여서 얻으려고 싸우며, 얻었을 때 지켜내는 공간입니다.

플릿전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항상 각 함대를 지휘하는 지휘관 역할의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이브의 함선 종류는 300종이 넘어가며, 각자의 역할이 매우 다르고,
또한 함선의 모듈을 어떤식으로 장착하냐에 따라 기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이러한 특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상대의 어떤 함선이 먼저 제거되어야 하는지, 우리의 함대의 어떤 함선이 취약점인지
아니면, 우리 함대가 적 함대를 상대로 어떤 거리에서 유리하며, 어떤 거리에서 불리한지,
이 성계에 우리 함대가 얼마나 익숙한지, 적에게 더 유리한 성계인지,
등 여러가지의 전투 요소를 파악하는 것은, 경험있고 능력있는 지휘관이 아니면 라이트한 일반 플레이어가 알기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지휘관 플레이어를 특정하고 찾아내어 전장 밖으로 쫓아내게 된다면, 그 함대의 전투능력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습니다.
이브의 많은 스파이들은 이러한 FC를 직접 죽이거나, 혹은 미래에도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계속해서 스파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이러한 정보를 적에게 흘려줘, 적 함대가 가장 우선적으로 FC의 함선을 제거하게 만듭니다.

또한, 이브에서 탈 수 있는 거대 함선이자 커다란 전력인 캐리어, 슈퍼캐리어, 타이탄을 운영하는 스킬은
짧게는 수개월, 적어도 년 단위의 트레이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런 운용이 가능한 파일럿의 정보 역시도 얼라이언스의 전력이며,
외부로 유출되면 좋을 것이 없기에,(해당 파일럿의 접속 시간대를 파악해서 없을 때 침공, 혹은 위치를 파악해 멀리있을 때 침공 등)
이런 정보들을 상대 스파이로부터 지켜내야 합니다.
결국,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이브에서는 누구를 믿을수 있는가 – ‘신뢰’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은 게임 내의 컨텐츠가 됩니다.


[Casualty 트레일러의 모티브가 된 이브 온라인 실제 사건을 정리한 글]
링크: http://www.eve-kor.com/Free/228232




6.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신뢰’는 거대 얼라이언스에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곳은 10인도 안되는 작은 꼽이라 거대 얼라이언스의 눈에는 먼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캐리어 플릿이 침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지만, 저희 수준에 맞는 작은 꼽들의 공격은 수시로 있습니다.

또한 작은 규모의 꼽일지라도, 배신과 사기는 이브 제작사인 CCP에서 하나의 컨텐츠로 인정한 게임 내 활동입니다.
한국인이라는 커넥션으로 이어진 저희 회사 맴버들끼리의 관계는 거대 얼라이언스처럼 치밀하고 세부적인 검증과 보안체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보기엔 이렇게 얄팍해 보여도, 나름 쌓아둔 친목과 한국 커뮤니티 내의 명성에 기반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믿습니다.
어떤 맴버든 우리 꼽을 배신하고, 우리가 모아놓은 자원을 약탈해갈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맴버가 누구인지 커뮤니티에 알릴 것이고, 커뮤니티 내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 배신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앞으로 경계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런 보안 장치도 없어 보이는 허술하고 작은 저희의 모임도, 저희 수준에 맞는 적당한 신뢰 시스템은 존재하죠.

물론 정말로 털어간다면, 저희는 멍청한 회사의 이미지를 갖게 되겠고,
CCP는 도둑질 다한 아이템과 재화를 되찾아 주지도 않을 것이며, 그 배신자는 혼자서 축적할 수 없는 약간의 부를 더 거머쥘 것입니다.
우리 꼽은 그 배신자를 만나면 어디서든 발포해도 좋다는 규칙을 만들 수도 있으며, 내부적으론 이전보다 나은 신뢰 시스템을 구축하겠죠.

이런 점은 여기, 웹기반 커뮤니티의 1인 1아이디 정책과 비슷합니다.
과거에 내가 했던 말은 기록으로 남으며, 아이디는 나의 또다른 이름이 되고, 사람들은 그것으로 나를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것으로 명성을 쌓고, 그것을 유지하며, 스스로 그것을 뒤집는 것 또한 가능하며,
많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는 타 플레이어들이 Nobody인 것과는 다르게, 이브에서는 누구든 Somebody가 될 수 있습니다.
이브의 공간은 넓지만 또 좁은 공간이라, 나를 죽였던 플레이어는 내가 기록해 둘 것이고,
다음에 마주친다면, 적인지 아군인지, 위험한지 안전한지 판단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뉴비를 위한 이브 온라인의 황금 법칙]
링크: http://www.funzinnu.com/EVEwiki/%EB%89%B4%EB%B9%84%EB%A5%BC_%EC%9C%84%ED%95%9C_%EC%9D%B4%EB%B8%8C%EC%98%A8%EB%9D%BC%EC%9D%B8%EC%9D%98_%ED%99%A9%EA%B8%88%EB%B2%95%EC%B9%99




7.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내 캐릭터에 게임 속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성을 부여해주며,
내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즐기며, 어떤 스탠스로 육성해 나갈지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이브가 어려운 초보들을 상대로 이브를 가르쳐주는 착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으며,
전투 경험을 쌓아 유명한 얼라이언스에 가입해 영토를 지키고, 제국을 확장하는데 기여하는 군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비전투 위주로 위험한 이브의 세계에서 생존 능력을 키우고, 생산 스킬을 연마하여,
남들보다 빠르게 부를 축적하여 우호 꼽을 자금적으로 지원해주거나, 내가 꼽을 세우는 자산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브 역사상 최고의 범죄자를 꿈꿀수도 있겠죠.
남들이 만져보지도 못하는 금액의 대형 사기를 친다던지, 악랄하게 플레이어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러 다니든지.
그러다가 파일럿 능력을 인정받아 거대 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의 향후 목표가 거대 꼽에 가입하는 것이라면,
캐릭터 생성때부터 그 꼽의 적대 세력을 파악해두고, 그 적들과 친분을 쌓거나 관련 꼽에 가입하는 것을 염려해야하며,
범죄자로 낙인 찍혀서는 개과천선해 초보자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인게임 사기로 의심받을 확률이 높으니 행동을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MMO에 많은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브의 몇몇 특성은 온라인의 익명성 뒤에 숨어 많은 아이디로 다중이로 살아가는 것을 많은 부분 방지하고 있으며,
이것은 솔로 플레이어 게임이 아닌,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 짧은 몇 분 – 혹은 몇 시간만의 인간 관계가 아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1분 25초 시작. 이브 내의 한국인 유저는 매우 마이너한 계층에 속한다. 하지만 과거 펜페스트에서 위 영상이 우승하며 한국 이브 유저들이 주모를 찾게 해줬다. 앞선 트레일러 This is EVE 의 패러디.]


또한 PvP에 기반한 게임 특성이 이런 관계 형성이 단순히 다른 MMO의 친구 or Nobody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플레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갑자기 나타나 나를 쏴죽인다든지 하는)
굉장히 중요하게 부각되어 깊은 관계 형성을 하는 것을 장려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다중이 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국내 커뮤니티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 플레이어가 몇몇 있습니다.)


이브 온라인만의 특성이라기엔 다른 MMO와 겹치는 부분 혹은 비슷한 점도 많이 있습니다만,
확실히 이런 부분은 엄청난 중독성을 자아내고, 그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또, 이브 온라인의 매력은 이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컨텐츠로 연결이 됩니다.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습니다.


...............................................


계속…



12
  • 와...쩐다..
  • 재밌게 읽었습니다.
  • 진짜 해보고 싶었던 게임이긴 한데 이렇게라도 간접 체험을 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954 7
15155 일상/생각청춘을 주제로 한 중고생들의 창작 안무 뮤비를 촬영했습니다. 2 메존일각 24/12/24 407 6
15154 문화/예술한국-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 meson 24/12/24 302 2
15152 정치이재명이 할 수 있을까요? 72 제그리드 24/12/23 1614 0
15151 도서/문학24년도 새로 본 만화책 모음 6 kaestro 24/12/23 372 5
15150 게임최근 해본 스팀 게임들 플레이 후기 1 손금불산입 24/12/23 286 5
15149 사회그래서 통상임금 판결이 대체 뭔데? 7 당근매니아 24/12/23 615 11
15148 정치윤석열이 극우 유튜버에 빠졌다? 8 토비 24/12/23 839 9
15147 정치전농에 트랙터 빌려줘본 썰푼다.txt 11 매뉴물있뉴 24/12/22 1076 3
15146 의료/건강일종의? 의료사기당해서 올려요 22 블리츠 24/12/21 988 0
15145 정치떡상중인 이재명 56 매뉴물있뉴 24/12/21 1857 15
15144 일상/생각떠나기전에 생각했던 것들-2 셀레네 24/12/19 575 9
15142 일상/생각플라이트 시뮬레이터로 열심히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7 큐리스 24/12/19 509 2
15140 정치이재명은 최선도, 차선도 아니고 차악인듯한데 43 매뉴물있뉴 24/12/19 1857 7
15139 정치야생의 코모도 랩틸리언이 나타났다! 호미밭의파스꾼 24/12/19 383 4
15138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양키스행 김치찌개 24/12/19 137 0
15137 정치천공선생님 꿀팁 강좌 - AI로 자막 따옴 28 매뉴물있뉴 24/12/18 748 1
15135 일상/생각생존신고입니다. 9 The xian 24/12/18 616 31
15134 일상/생각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5 Picard 24/12/18 445 7
15133 도서/문학소설 읽기의 체험 -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를 중심으로 1 yanaros 24/12/18 305 4
15132 정치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22 제그리드 24/12/18 759 2
15131 여행[2024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0. 준비 7 Omnic 24/12/17 369 7
15130 정치비논리적 일침 문화 7 명동의밤 24/12/16 878 7
15129 일상/생각마사지의 힘은 대단하네요 8 큐리스 24/12/16 798 7
15128 오프모임내란 수괴가 만든 오프모임(2) 50 삼유인생 24/12/14 1889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