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밖에 나갔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에 있던 작은 서점에 들렀습니다. 뭐 특별히 사려는 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시간이나 좀 때워볼까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서가 앞에서 뒤적뒤적 하고 있었는데 문학 쪽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에서 우연하게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한 걸리버 여행기가 비교적 서로 간에 가까운 거리에 꽂혀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하면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책으로 우리에게는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접한 경험들이 많으실 텐데 사실은 스위프트가 작정을 하고 우화 형식을 빌려서 당시 영국의 사회, 정치 행태를 풍자한 풍자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동화책 버전으로만 읽어 봤고 완역본은 읽어 보지 못했는데 마침 세 곳 출판사에서 출판한 같은 책이 나란히 있기에 어떤 식으로 번역이 되어 있을 까 책의 맨 처음 부분만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이 책의 첫 부분은 원서로는 아래처럼 되어 있습니다.
[My father had a small estate in Nottinghamshire: I was the third of five sons. He sent me to Emanuel College in Cambridge at fourteen years old, where I resided three years, and applied myself close to my studies; but the charge of maintaining me, although I had a very scanty allowance, being too great for a narrow fortune, I was bound apprentice to Mr. James Bates, an eminent surgeon in London, with whom I continued four years. My father now and then sending me small sums of money, I laid them out in learning navigation, and other parts of the mathematics, useful to those who intend to travel, as I always believed it would be, some time or other, my fortune to do.]
우선 출판사 A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나는 노팅엄셔 지방의 소지주 집안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열네 살이 되던 해 나는 캠브리지의 엠마누엘 대학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3년 동안 학업에만 열중했다. 아버지는 내게 기숙사비와 학비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웠기 때문에 나는 생활비를 직접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4년 동안 런던의 유명한 외과의사인 제임스 베이트씨의 일을 도와주며 생활비를 벌었다. 간혹 아버지가 송금해 주신 쥐꼬리만한 용돈은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항해술과 수학의 여러 분야를 공부하는 데 썼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찾아올 해외여행의 행운을 굳게 믿으면서.]
책의 시작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B의 책은
[나의 아버지는 노팅햄셔에서 기반을 잡으셨는데 나 걸리버는 다섯 형제 중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14세 정도면 대학 공부를 시작하는데, 아버지는 나를 케임브리지 시에 있는 에마뉴엘대학에 보내주셨고 거기서 나는 3년 동안 공부했다. 그런데 우리 집이 큰 부자는 아니라서 보내주는 돈은 적었고 들어가는 돈은 많아, 학교를 그만두고는 런던의 유명한 의사인 제임스 베이츠 씨 밑에 실습생으로 들어가서 4년을 보냈다. 그동안에 아버지는 돈을 조금씩 보내주셨는데, 내가 언젠가는 해외로 나가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돈을 선박 항해와 관련된 것을 배우는 데 썼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 C의 걸리버 여행기는
[아버지는 노팅엄셔 지방에 조그마한 사유지를 가지고 계셨고, 나는 다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열네 살 되던 해 케임브리지의 엠마누엘 대학으로 나를 보냈다. 그곳에서 3년을 기숙사에서 지내며 공부에 전념했다. 나의 학비는(집에서 보내주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집의 얼마 되지 않는 재산으로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런던의 유명한 외과 의사인 제임스 베이트의 견습생이 되어 4년을 보냈다. 가끔씩 아버지가 보내 주는 얼마간의 용돈으로 나는 여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항해술과 수학 분야의 지식을 배우는 데 썼다. 나는 언젠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항상 믿고 있었다.]
책의 시작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일단 지명이 조금 다른 게 눈에 띠네요. 출판사 A와 C에서는 Nottinghamshire를 “노팅엄셔”로 번역했고 출판사 B의 책에서는 “노팅햄셔”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Cambridge도 출판사 A는 ‘캠브리지“로 나머지 두 곳은 ”케임브리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Emanuel도 출판사 A와 C의 책에서는 ”엠마누엘“로, 출판사 B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에마뉴엘“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외래여 표기법이 있어서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뭐 내용 이해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닙니다만...
인명 James Bates도 출판사 A와 C의 책에서는 “제임스 베이트”로 출판사 B의 책에서는 “제임스 베이츠”로 표기하고 있네요. 이것은 “베이츠”가 더 원래의 발음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은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출판사 B의 번역에서는 원문의 “My father now and then sending me small sums of money, I laid them out in learning navigation, and other parts of the mathematics,”에서 “and other parts of the mathematics” 부분의 번역이 누락된 것으로 보이네요.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독성은 세 가지 책이 다 비슷한 정도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 A와 B의 번역은 의역이 조금 더 들어간 것 같고 출판사 C의 번역은 원문에 좀 더 충실한 것 같은데 큰 차이는 없어 보이네요.
아무튼 어떤 책이든 본인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독서의 계절”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 왔네요...^^
올 가을에는 다 같이 [걸리버 여행기] 완역본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