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11/12 10:16:53
Name   세인트
Subject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
엊그제 마치고 오면서 일이 하나 있었는데 아 이건 나중에라도 꼭 이야기를 남겨야겠다 싶었습니다.

근데 그때 다른 아내 시킨 심부름이 바빠서 홍차넷에 올리는 걸 깜빡했네요.

아무튼 써보자면...




금요일에 집 근처 세탁소에 퇴근길에 아내 맡긴 세탁물 찾아서 집에 가려던 길이었습니다.

아파트 들어가는 건널목 조금 뒤쪽에 애들 둘이 길바닥에 앉아 있더군요. 그 아이들 뒤에 다른 애 하나가 서 있더군요.

셋 다 얼핏 봤을때는 초등학교 저학년 같아 보였습니다. 제가 요즘 애들 나이 보고 이런거 진짜 못하니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려는데 앉아있던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야 느그 아버지 사고나서 다리 없다며!!"

"이제 느이 아버지 육교에서 앉아서 돈벌겠네!!"

"나도 앉아서 돈 벌어야겠다!! 한푼줍쇼~ 한푼줍쇼~ 저는 다리가 없는 거지입니다~"

진짜 너무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니 그 서있던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그 앉아있던 아이들한테 좀 버럭 했습니다.

"야!!!!!!!!!! (제가 생각해도 너무 화가 나서 목소리가 좀 컸습니다 아이들이 움찔 하면서 절 보더군요)"

"애들이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그렇게 놀리고 하는거 잘못된거야!!"




..네 ㅠㅠ 일장 훈계를 할 만큼 말주변이 좋지도 않고 무엇보다 너무 화가나서 뭔가 말이 잘 정리가 안 되더군요. 고작 저 소리만 했습니다.
욕이 나오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고 저렇게 말했더니 앉아있던 둘 중에 더 적극적으로 놀리던 애가

"쟤네아버지 진짜 다리병신 맞는데요!!"




......와 나 이 애 좀 때려도 됩니까 하느님 허락해주세요

아무튼 간신히 다시 참고 그러는거 아니라고 그러는데 다시




"아저씨 몇호사는데요!! 우리엄마가 쟤랑 놀지 말랬거등요? 쟤는 우리아파트도 아니거든요!!"

......와 나 이 애 좀 때려도 됩니까 그리고 얘네 부모님 찾아가서 패도 됩니까 하느님 허락해주세요 쫌



그래서 집 이야기하고 너네집은 어디냐 너네 부모님부터 만나봐야겠다 하고 한소리 하려는데

문득 아직 몸이 안좋아서 (수술은 잘 끝났는데 여전히 저녁 되면 많이 어지러워 하고 큰소리 나고 하면 힘들어합니다) 쉬고있는

아내가 생각나서 그만


"105동 603호다 어쩔래!!!!" 해버렸습니다.

......사실 저희집은 104동 602호입니다.

(혹시 몰라서 ㅠㅠ 105동 603호 입주민분께 마음속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ㅠㅠ)


아무튼 진짜... 집에와서 다시 생각해봤는데

그 놀리던 애는 잘못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할수록 걔한테 그렇게 놀리는게 잘못이라는 걸 안 가르친, 오히려 못사는 반 친구랑 놀지말라고 한 그 아이 학부모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아 그 아이 한테 집 물어봐서 걔네 부모님을 만나서 한 소리 했어야 하는데... 그거 생각하면 아직도 입맛이 쓰네요.


아무튼 집에 와서 그 일 가지고 한참 화가 나서 열변을 토했죠. 요즘은 애들이 어찌 그러냐, 걔네 부모는 뭘 가르치는 거냐

나때는 안그랬는데 등등...

근데 저 나때는 안그랬는데 부분 가니까 아내가 그러더군요.

"니가 피해자쪽이 아니라서 그렇지 옛날에도 똑같았어~ "

그래서 그게 무슨소리냐 했다가 20년 넘게 친구로 지냈던 아내가 옛날 이야기 하더군요.

동네 살던 일명 '똥남아 아저씨; 이야기요.

사실 그분이 동남아인지 아닌지 지금도 몰라요. 생각해보면 인도/파키스탄 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무슨무슨 스탄 하는 지역 분이실수도 있고

아무튼 동네 애들이 그 아저씨 놀렸던 게 생각나요. "똥남아 아저씨 피부도 똥색 똥냄새난데요~" 하고 놀렸던거요.

그 말 듣고 과거 일을 돌이켜보는데, 내가 그 아저씨를 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던가? 아 모르겠어요 확신을 못하겠는거에요.

진짜 소름이 돋았어요. 스스로 엄청 심한 자괴감에 빠지더군요. 만약 내가 놀렸었다면

나는 진짜 그 아저씨한테 몽둥이로 복날 개잡듯이 맞아도 할말이 없어야 해요. 스스로 너무 괴롭고 부끄럽고 슬펐어요.




나중에 제 자식이 태어나면, 제 자식들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어렸을 때를 뒤돌아 봤을 때 그런 걸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럴 시절이 올까?

모르겠어요. 생각할수록 기분이 울적하고 슬퍼지는 순간이었어요.




23
  • 춫천
  • 토닥토닥.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527 스포츠181114 오늘의 NBA(케빈 듀란트 29득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 김치찌개 18/11/16 2842 0
8526 스포츠181113 오늘의 NBA(케빈 듀란트 33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 김치찌개 18/11/15 3476 0
8525 일상/생각썸 타던 남자와 만나자고했더니 시원찮은 답장이 왔네요 12 쭈꾸미 18/11/15 6201 1
8524 스포츠키쿠치 유세이는 과연 메이저리그에서 통할수 있을까? 4 MG베이스볼 18/11/15 3998 2
8523 일상/생각부모님께 효도폰2대 구입완료 12 HKboY 18/11/15 3964 13
8521 스포츠181112 오늘의 NBA(제임스 하든 40득점 9어시스트 3점슛 8개) 김치찌개 18/11/14 3786 0
8520 역사고대 전투 이야기 - (7) 진형 7 기쁨평안 18/11/14 5171 12
8519 일상/생각추억의 혼인 서약서 10 메존일각 18/11/14 3956 9
8518 스포츠[오피셜] 오타니 쇼헤이 AL 신인상 수상 김치찌개 18/11/14 3373 0
8517 게임NC의 무리수일까? 4 그린티홍차 18/11/13 3520 0
8516 기타관계에서 감정의 양을 정량화 할 수 있을까? 9 곰돌이두유 18/11/13 4719 0
8515 게임아내가 게임을 실컷 할 수 있으면 좋겠다. 14 세인트 18/11/13 5004 25
8514 스포츠181111 오늘의 NBA(케빈 듀란트 28득점 11어시스트) 김치찌개 18/11/13 3000 0
8513 스포츠181110 오늘의 NBA(데릭 로즈 21득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 2 김치찌개 18/11/13 3049 0
8512 스포츠[오피셜] 류현진 퀄리파잉 오퍼 수용 2 김치찌개 18/11/13 3461 1
8510 게임갓겜 쓰론브레이커 후기(스포 거의 없음) 4 죽음의다섯손가락 18/11/12 8767 2
8509 일상/생각조금은 무서운 이야기. 15 세인트 18/11/12 5321 23
8508 음악Joe Jonas - Gotta Find you 마음만은열여덟 18/11/12 3159 0
8507 오프모임첫 정모 후기 24 하얀 18/11/11 5706 28
8505 스포츠181109 오늘의 NBA(제임스 하든 19득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김치찌개 18/11/11 2938 0
8504 요리/음식위스키 입문, 추천 22 Carl Barker 18/11/11 15652 30
8502 일상/생각전여자친구의 전전남친이자 현술친구로 지내게 된 이야기 4 Xayide 18/11/11 4396 10
8501 스포츠[MLB] 조 마우어 은퇴 김치찌개 18/11/11 3441 0
8500 게임배틀필드 V 리뷰 3 저퀴 18/11/10 4939 2
8499 음악대머리의 나라 10 바나나코우 18/11/10 4004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