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1/03 21:37:31
Name   化神
Subject   드디어 배스킨라빈스
어둠이 깔린 길거리에는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찬바람과 함께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면 아직은 연말인 것만 같다. 아니면 시간이 가는걸 내가 모르고 있거나.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이어리 쓸 때 2018 을 썼다 황급히 8을 9로 바꾸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내 눈을 잡아끄는 간판이 있었다. BR. 순간 브랜든 로저스라는 이름이 떠올랐지만 BR의 진정한 의미는 배스킨라빈스, 어릴 땐 부르주아의 상징과도 같았던 아이스크림 브랜드였다. 나는 가게 앞에 서서 안을 쳐다보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지만 안은 따뜻할 것만 같은 느낌.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이 진열되어있고 아이들의 시선은 쇼케이스 안에서 다소곳이 자리잡은 아이스크림들에 꽂혀있다. 그 눈빛과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난 아이들의 기분에 전염될 것만 같았다.

나는 배스킨라빈스에서 판매하는 많은 아이스크림들 중에서도 레인보우 샤베트와 애플 민트 맛을 좋아한다. 배스킨라빈스 하면 '엄마는 외계인'일지는 몰라도 나는 레인보우 샤베트의 그 상큼하고 아삭아삭한 맛을 겨울에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배스킨라빈스는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

배스킨라빈스 때문에 31이라는 숫자가 특별해졌다. 술자리 게임을 모르면 배스킨라빈스 31을 외쳤다. 삼십 일 이라고 하면 안 되고 써리 원 이라고 해야하지만 영어로 통일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익스큐즈 된 상황이고 또한 이미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문제라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귀엽고 깜찍하게 해야한다는 것. 대부분은 끔찍하게 되지만 작정하고 몰아가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에 실상 배스킨라빈스를 시작하는 사람은 그냥 한 잔을 마시고야 마는 문제의 술자리 게임. 그리고 더 나아가 이미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누구 한 명 찍어놓고 마시게 만들수 있는 게임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이제는 명맥만 남은 술자리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배스킨라빈스는 매달 31일에는 6가지 맛을 담을 수 있는 하프갤런 (26,500원)을 패밀리 (19,500원) 가격으로 판매하는 행사를 한다. 1년에 7번 하는 행사고 하프갤런만 패밀리 가격으로 할인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효과는 좋아서 매달 31일에는 배스킨라빈스가 제법 붐빈다. 집으로 사서 돌아가는 동안 오른손은 든든하고 발걸음은 경쾌하다.

어릴 때는 왜 그렇게 배스킨라빈스가 먹고 싶었던지, 동네 마트에서 파는 메로나나 비비빅을 먹느니 그 돈을 모아서 배스킨라빈스를 가고 싶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와 동생을 가끔 배스킨라빈스에 데려가주셨다. 다른 아버지에게 치킨같은 느낌이었을까? 한 번은 돈을 줄테니 사오라고 하셨다. 집에서 배스킨라빈스까지는 걸어서 대략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니 못 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나 혼자 가기는 너무 싫어서 동생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안 간단다.

"너 진짜 안 갈거야?"

"응."

"그럼 너 사오면 먹지마."

"싫은데?"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너가 안 사왔는데 왜 먹어."

"집에 있는데 왜 먹으면 안 돼?"

"너가 사온게 아니잖아."

"사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집에 있는거 먹겠다는데."

그래서 안 사오고 공평하게 안 먹었다. 아버지는 그 꼴을 보시더니 지갑에서 꺼내던 돈을 다시 지갑에 잘 넣어두셨다. 나의 아이스크림, 아버지의 담배로 대체되었다.

싱글킹 사이즈로 애플 민트를 맛 보았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크기. 다 먹는데 채 5분이나 걸렸을까. 다 먹고나니 깨달았다. 나도 드디어 배스킨라빈스가 되었다는 것을. 애플 민트는 여전히 맛있었다.



8
  • 베스킨 광고급이군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035 1
15879 창작또 다른 2025년 (4) 1 + 트린 25/12/06 138 1
15878 창작또 다른 2025년 (3) 3 트린 25/12/04 360 3
15877 스포츠[MLB] 코디 폰세 토론토와 3년 30M 계약 김치찌개 25/12/04 264 0
15876 창작또 다른 2025년 (1), (2) 5 트린 25/12/03 515 7
15875 기타유럽 영화/시리즈를 시청하는 한국 관객에 관한 연구(CRESCINE 프로젝트) 19 기아트윈스 25/12/03 615 2
15874 일상/생각큰일이네요 와이프랑 자꾸 정들어서 ㅋㅋㅋ 14 큐리스 25/12/02 1009 5
15873 오프모임12월 3일 수요일, 빛고을 광주에서 대충 <점봐드립니다> 15 T.Robin 25/12/01 579 4
15872 경제뚜벅이투자 이야기 19 기아트윈스 25/11/30 1553 14
15871 스포츠런린이 첫 하프 대회 후기 8 kaestro 25/11/30 470 12
15870 도서/문학듣지 못 하는 아이들의 야구, 만화 '머나먼 갑자원'. 15 joel 25/11/27 1067 27
15869 일상/생각상남자의 러닝 3 반대칭고양이 25/11/27 715 5
15868 정치 트럼프를 조종하기 위한 계획은 믿을 수 없이 멍청하지만 성공했다 - 트럼프 행정부 위트코프 스캔들 6 코리몬테아스 25/11/26 930 8
15867 일상/생각사장이 보직해임(과 삐뚫어진 마음) 2 Picard 25/11/26 711 5
15866 일상/생각기계가 모르는 순간 - 하루키 느낌으로 써봤어요 ㅋㅋㅋ(와이프 전전전전전 여친을 기억하며) 5 큐리스 25/11/25 648 0
15865 경제주거 입지 선택의 함수 4 오르카 25/11/25 673 3
15864 철학/종교진화와 창조, 근데 이게 왜 떡밥임? 97 매뉴물있뉴 25/11/25 1890 4
15863 일상/생각창조론 교과서는 허용될 수 있을까 12 구밀복검 25/11/25 1076 17
15862 기타★결과★ 메가커피 카페라떼 당첨자 ★발표★ 11 Groot 25/11/23 635 4
15861 기타[나눔] 메가커피 아이스 카페라떼 깊콘 1 EA (모집마감) 31 Groot 25/11/21 694 3
15860 일상/생각식생활의 스트레스 3 이이일공이구 25/11/20 731 1
15859 일상/생각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moqq 25/11/20 661 7
15858 오프모임[취소] 11월 29일 토요일 수도권 거주 회원 등산 모임 13 트린 25/11/19 787 3
15857 경제투자 포트폴리오와 축구 포메이션2 2 육회한분석가 25/11/19 490 3
15855 의료/건강성분명 처방에 대해 반대하는 의료인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넋두리 46 Merrlen 25/11/17 2030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