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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10 23:02:09수정됨
Name   메아리
Subject   서평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는 197,8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소설가다. 미니멀리즘을 대변하는 그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감을 잘 표현한 단편으로 유명하다. 이 미니멀리즘의 문체를 ‘더러운 리얼리즘’이라 하는데 그 당시 미국 작가들의 주요한 경향으로 이야기된다. 『대성당』은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대표 작이자 단편선의 표제작으로, 이 ‘더러운 리얼리즘’ 이라는 문체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문체의 특징은 작가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이나 잔혹한 장면 같이 감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장면도 모두 차갑고 냉정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이 단편집 중에 인상 깊은 작품으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원제 A Small, Good Thing)」과 「대성당」을 들 수 있다. 「별 것 …」은 8세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의 부모가 겪게 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의 어머니는 빵집에 아이의 생일 케잌을 주문한다. 아이는 하굣길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다. 아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만 의사는 끊임없이 혼수상태는 아니라고 말한다. 정신이 없는 아이의 어머니는 케잌을 주문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도’ 잊어먹는다. 병원에서 아이를 간병하다가 옷을 갈아입으러 온 아이 아버지는 늦은 밤 걸려온 전화에 놀란다. 게다가 그 전화는 별 말없이 끊어진다.

  그러다 아이가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어 죽고 만다.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다시 늦은 밤 전화가 걸려온다. 그것은 아이의 케잌을 주문한 빵집 주인이 한 것이다. 화가 난 부부는 빵집을 찾아가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미안한 빵집 주인은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부부에게 자신이 구은 롤빵을 권한다.

  「대성당」은 부인과 아는 맹인이 집에 방문하면서 생긴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아내의 아는 사람인 맹인이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인 ‘나’는 맹인과 이렇게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있어 본 적이 없다. 아내는 잠들고 나는 맹인과 TV를 보고 있었다. 그 때 TV에서 대성당에 대한 다큐를 방영하고 있었다. 나는 대성당을 맹인에게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곧 알아차린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보이는 것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맹인은 나에게 인식의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이 두 이야기 모두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하나는 케잌이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다큐가 발단이었다. 작가는 우리가 늘 상 부딪히기에 별 거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 위기의 징후를 끄집어낸다. 그 위기는 바로 현대 문학에서 가장 첨예하게 이야기되는 ‘의사소통의 위기’이다. 바벨탑의 몰락 이후 인간에게 남겨진 그 숙명 말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함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 위기는 아이가 걱정되는 부부에게 빵집 주인은 늦은 밤 전화를 걸어 그냥 끊어 버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에게 파란 하늘에 높게 솟은 대성당의 첨탑에 대해 설명하려 하면서 촉발된다. 위기는 참으로 사방에 편재되어 있다. 이러한 인간의 위기는 의사소통의 근원적 부재에 기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홍차넷 게시판에도 가끔 출몰하고!)

  카버는 이 두 작품에서 의사소통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려 한다. 아이의 부모는 빵집 주인이 주는 롤빵을 먹으며 빵집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맹인은 나에게 인식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함께 시도해 본다.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그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해서는 방법이 없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으로 인하여 혹 희망을 찾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희망은 그 차가운 문체, ‘더러운 리얼리즘’에 의해 증폭된다. 감정을 절제한 묘사가 오히려 그 상황을 희망적이게 보이게 한다. 그것은 함부로 말하여 지지 않은 희망이라 오히려 긍정적이다. 

  과연 인간은 이 위기를 극복해 내어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을까? 사실, 요원하다. 하지만 기껏 힘들여 말한 희망을 굳이 부정할 필요 역시 없다. 회의와 희망, 두 가지는 항상 같이, 동등하게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가 너무 비대해 지는 것도, 약해지는 것도 위험하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정확히 반씩 있는 것도 역시 위험하다. 결국 언제나 위험하다. 뭐, 그게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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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료사
    눈물젖은 롤빵을 먹어보지 못한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흐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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