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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18 17:19:17
Name   AGuyWithGlasses
Subject   [사이클] 랜스 암스트롱 (4) - 역관광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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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 (1) - It's not about the bike.
랜스 암스트롱 (2) - 뚜르 드 프랑스 산업
랜스 암스트롱 (3) - 고소왕 랜스


9-1. 



Floyd Landis(플로이드 랜디스)는 미국의 자전거 선수로, 현역 시절 못하는 게 없는 선수라는 평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랜스와 브뤼닐은 냉큼 2002년에 그를 USPS팀으로 영입하여, 2004년까지 TDF에서 그를 열심히 도메스티크로 씁니다. 이 당시 USPS는 TDF에서 천하무적이었죠. 랜디스는 3년간 암스트롱과 영혼의 단짝 수준이었습니다. 브뤼닐이 작전지시하기 참 좋은 선수였습니다. 산에서는 죽도록 끌어서 상대 에이스들을 모조리 낙아웃시키고, TT도 잘 해서 TTT에서조차 USPS가 타 팀과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도와줬고, 심지어 내리막도 잘 탔습니다. 랜스가 은퇴하면 차기 TDF 우승자는 랜디스가 될 것이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랜디스는 2005년 Phonak 팀에서 거액의 좋은 제안을 받고 이적합니다. 2005년도 TDF에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종합순위 9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랜스가 은퇴한 2006년, 한층 강화된 Phonak 팀을 이끌고 Stage 15까지 2위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10초 차이 선두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Stage 16에서 Landis는 죽죽 흐르면서 선두보다 10분이나 늦게 들어와버리고, 2위였던 선수와 8분 가량의 시간차이를 허용해 버립니다. 사실상 Landis는 끝났다고 생각한 Stage 17. Landis는 미친듯한 업힐 실력을 보이며 이 8분 차이를 30초 차이로 줄여버리는 괴력을 발휘하고, 결국 막판 ITT에서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여 순위를 뒤집어버리고 TDF 우승을 차지합니다.

...제 글을 계속 읽고 계시는 분들은 당연히 예상하셨겠지만 이 모든 것이 도핑이었습니다. 이 경기 1주일 후 조직위는 이 날(그러니까 괴력을 발휘한 Stage 17) 채취한 Landis의 소변 샘플 A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고, 열흘 뒤 샘플 B에서도 양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테스토스테론, 그리고 비율을 맞추기 위한 에피테스토스테론이 대놓고 검출된 거죠. 랜디스는 TDF 우승의 영광을 채 1주일도 누리지 못하고 커리어가 박살납니다. 랜디스는 팀에서 쫓겨나고, 2007년에는 이로 인해 USADA에 의해 2년 출장 정지를 받습니다. 2006년 TDF의 기록은 Stage 17 이후 기록이 전부 말소됩니다. USADA는 약물 복용이 적발될 경우 UCI에 기록말소를 요청하더라구요.

랜디스는 2010년까지 자신에 대한 약물 혐의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까지는요.


9-2.



사이클에서 2006년은 1998년만큼이나 언급하기 싫은 해로 분류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랜디스의 TDF 우승기록 말소에 이어, 시작은 2004년 3월에 있던 헤수스 만자노의 도핑 폭로로 시작되었지만, 스페인 경찰의 집요한 수색으로 2006년 그 정체가 공개된, 흔히 말하는 'Operación Puerto(오페라시옹 푸에르토)' 사건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도 정말 할 말이 많고 중요한 사건이라, 따로 글을 쓸 것을 약속드립니다. 위에 나온 사진은 해당 사건 수사 중 나온 혈액팩의 '일부'입니다.

이 사건에서 나온 이름들의 면면이 정말 화려합니다. 이때는 이미 고인이 된 판타니, 90년대 TDF 최고의 스프린터 치폴리니, 랜스의 초창기 동료이자 2004년 올림픽 ITT 금메달리스트 타일러 해밀턴(이 사람도 후에 다시 나옵니다), 랜스 최대의 라이벌이자 TDF에서 5번이나 콩을 먹은 얀 율리히, 프랭크 슐렉, 이반 바쏘, 알레한드로 발베르데(현 월드챔피언), 알베르토 콘타도르, 미켈레 스카르포니(2017년 사고로 사망)... 이외에도 거의 50명 단위의 선수들이 걸려서 스페인 법원이 무리해서까지 상당수의 선수들을 그냥 면소 판결을 합니다(그 예로 콘타도르는 A.C. 라는 메모까지 나왔는데도 위에서 언급된 선수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면소됩니다).

사이클은 다시 한 번 세기말이 됩니다. 이제는 정말 강력하게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 업계가 망하겠구나...는 생각을 '그래도 예전보다는' 하게 됩니다. 적어도 경기 끝나자마자 대놓고 숙소로 지정된 호텔에서 커튼 다 치고 냉동실에서 수혈팩 꺼낸다음 체혈기 꼽고 침대에 누워 주먹 쥐락펴락하던 시절은 '조금씩' 지나게 된 거죠.

랜스가 복귀하던 시점은 이런 시기가 좀 지나고 나서입니다.


10.



2009년 랜스가 복귀한 Astana 팀은 예전 USPS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브뤼닐은 2007년 시즌을 앞두고, Operacion Puerto 사건으로 스페인 팀들이 해체된 틈을 타서, 알베르토 콘타도르를 영입합니다. 그리고 디스커버리(USPS는 랜스가 은퇴하자마자 스폰을 끊었습니다) 팀이 2007년에 해체되자, 당시 2년차 팀이던 Astana로 팀원 대부분을 데리고 팀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이 아스타나라는 팀도 참 골때리는 팀인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자흐스탄 국영 팀입니다. 아니 왠 카자흐스탄...이냐고 하실 수 있는데, Alexander Vinokourov(알렉산더 비노코르프, 이하 비노로 부르겠습니다)라는 선수가 주축이 되어 만든 팀입니다. Operacion Puerto 사건으로 인해 스페인 팀들이 공중분해되자, 그 팀 중 하나의 라이선스를 사서 만든 팀인데, 웃기게도 비노가 2007년 TDF 진행 도중 혈액도핑이 적발되서 나가리됩니다-_-;;; 그러던 찰나에 브뤼닐이 이걸 보고 디스커버리 팀에서 핵심 선수들을 전부 데리고 아스타나로 온 겁니다.

콘타도르는 2007년 디스커버리 팀 소속으로 이미 2007년 TDF를 우승한 강자였습니다. 하지만 아스타나 팀의 작년 비노의 도핑 사건, 그리고 브뤼닐이 맡았던 USPS와 디스커버리의 약물 의혹으로 인해 지로와 투르에서 이 팀을 초청하지 않습니다. 지로는 경기 시작 1주일 전에 가서야 결국 못 이긴채 아스타나의 출전을 허가하게 되고, 콘타도르는 나가서 지로를 우승합니다. 투르는 끝내 초청받지 못해서, 부엘타에 또 나가서 이번에는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해 버립니다. 26살에 3개 투어를 모두 우승하는 미친놈이 탄생한 거죠. 랜스는 이런 분위기에서 아스타나에 온 것입니다.



브뤼닐은 어떻게든 랜스 위주로 다시 팀을 재편하려고 합니다만, 랜스는 아무리 과거 7연속 우승을 했다고 하지만 3년간 프로를 쉰, 30대 중반의 선수고, 콘타도르는 26살에 이미 최정점을 찍은 27살 선수입니다. 2009년 내내 이 팀은 잡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아무리 USPS 시절 랜스의 동료들이 몇몇 있었고, 브뤼닐도 랜스를 위해주려고 합니다만, 아스타나는 콘타도르의 팀이었고, 여기에 비노가 2009년 중반 복귀를 선언하면서 팀 내 정치질은 극을 달립니다.

랜스는 과거의 USPS 시절 동료였던 라이파이머와 함께 지로에도 나가고, 투르에서는 콘타도르와 열심히 리더싸움을 했습니다. 팀이 워낙 강해서 사실 이런 개판의 조직력을 갖고도 우승은 했습니다만, 2009년도의 투르 우승자는 알베르토 콘타도르였고, 랜스는 3위를 하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스타나는 결국 랜스의 팀이 아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언제나 남 위에 있었던 랜스는 이걸 참을 수가 없었겠죠.

게다가 감독인 브뤼닐은 비노 복귀 이후에는 카자흐스탄 정부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비노의 정치질은 역대 탑을 달리는데다 가재는 개 편이라 아스타나는 비노의 손을 들어줍니다. 심지어 비노는 콘타도르와의 파워게임에서도 나중에 이길 정도-_-;;; 게다가 이 시기 금융위기로 인해 카자흐스탄 경제가 대차게 꼴아박으면서 임금 체불까지 발생하는 등 사실 내부적으로는 정말 미친듯이 곪아있던 팀이었습니다. 결국 랜스와 브뤼닐은 미국 스폰서인 RadioShack의 지원을 받아 새로 팀을 창단하고, 디스커버리 시절 선수들의 대부분을 데려가는 것으로 아스타나 생활을 1년만에 끝냅니다. 콘타도르도 비노에게 빡쳐서 2010년을 끝으로 Saxobank(구 CSC, 예전 Tinkoff 팀)로 이적합니다. 참고로 비노는 은퇴 후 지금까지 아스타나 감독이고 2016년까지 아스타나는 도핑 문제로 시끌시끌했었습니다... 그래서 비노에 대한 평가는 현 시점 적폐의 끝판왕입니다.


11-1.



다시 미국 팀으로 돌아온 랜스, 하지만 랜스도 이제 한물 갔다는 평이 돕니다. 서른다섯이기도 하고, 예전처럼 TT에서 확실하게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파워도 떨어졌다는 평을 들었죠. 도핑에 대한 의혹도 나날이 커져갑니다. 랜스를 아직까지 추적하고 있던 폴 키미지는 랜스가 아스타나 시절에 출전한 Tour of California 대회 기자회견장에서 랜스와 설전을 벌였었죠.



양 옆의 조지 힝캐피(무려 모토롤라 시절부터 랜스와 함께 한 선수)와 레비 라이파이머(3년간 USPS에서 같이 있었고 아스타나부터 다시 동료가 됨)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랜스는 '우리(사이클링) 암이 4년간 차도가 있었는데, 암세포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한 키미지의 말에 자기 자신을 모욕했다고 화를 내면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약물 복용이 적발된 데이빗 밀러나 랜디스 등을 옹호하면서.

랜스는 2010년 시즌 초반부에 클래식 대회들을 나갈 것이라 발표햇습니다만, 부상으로 대부분의 출전을 포기하고, 캘리포니아 투어와 TDF만을 소화합니다. 예전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2010년 TDF가 마지막 공식 시합출전이 되고 맙니다. TDF에서는 종합순위 23위로 대회를 마칩니다. 사실 기량을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11-2.



2010년 5월, 플로이드 랜디스는 Tour of California가 열리기 직전, 미국 사이클 협회에 자신의 도핑 전력 일체를 털어놓은 이메일을 전송합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투어에 몇 분이라도 참가를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이건 거부당합니다. 그러자 랜디스는 자신의 도핑 전력을 언론에 밝히고, USPS팀 시절 팀의 조직적인 도핑을 폭로합니다. 처음으로 공식적인 내부고발이 일어난 거죠.

저도 이걸 통해서 처음 알았는데, 법조계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미국에는 False Claim Act라는 법이 있습니다. 흔히 링컨법이라고 부르죠. 허위나 부정을 통해 정부예산을 낭비했을 경우 일반인이 국가를 대위해서 해당 허위나 부정을 저지른 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구상 가능한 액수는 비리를 저지른 금액의 최대 3배까지이고, 승소했을 경우 최종적으로 국가가 회수한 금액의 최대 25%까지 국가를 대위하여 소송을 진행한 사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소송인이 부정행위에 참가했었던 사람이라도 무관합니다(단 퍼센테이지가 좀 깎입니다).

USPS는 엄연히 미국 정부의 예산이 들어간 팀이기 때문에, 랜디스는 이 법을 통해 내부고발자 자격으로 암스트롱에게 소송을 거는게 가능했습니다. 랜디스의 내부고발은 그 전의 여러 기자, 도움 인물들, 선수들의 증언과 폭로와는 차원이 다른 강펀치였습니다. 여기에 미 연방수사국과 USADA(미 반도핑기구)가 직접 수사에 나섰고, 사건이 굉장히 커지기 시작합니다. 랜스도 자신의 변호사들을 동원하고 적극적으로 언론플레이에 나서지만, 사태가 상당히 심각해졌죠.

이렇게 해서 장장 2년에 걸친 연방수사국과 USADA의 수사가 시작됩니다. 랜스가 누렸던 영광은 최대의 위기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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