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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3/03 10:37:49
Name   The xian
Subject   3.3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그 때의 기억들
- 당시(물론 지금도) 이윤열 선수의 팬이던 저는 이윤열 선수가 달성할 수 있었던 연속우승의 위업이 마모씨에게 좌절된 상태라 마모씨에 대한 감정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3.3이 다가왔을 때는 - 당시에 제가 어떻게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 사실. 내심으로는 차라리 그냥 이 참에 마모씨가 다 해먹어라.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절대강자의 대관식이 열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랄까요. 모르긴 해도 그 때 마모씨가 질 거라고. 그것도 3:0으로 질 거라고 확신하던 사람은 제 주변엔 없기도 했고요.

그래서 당시. 마모씨의 패배에 후련함보다는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3년 뒤에는 그 안타까움이 분노로 바뀌고 말았지만요.


- (추가)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 때의 상황은 방송사를 옹호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권리 측면에서는 똑같은 존재였을지 모르지만 시장 확대 운운하며 볼 권리 자체를 볼모로 삼는 협회의 행동을 졸게 봐 줄 건덕지가 요만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딴 건 모르겠고 당시 PGR21이 글쓰기 버튼을 막아버린 건 희대의 뻘짓이었습니다.


- 승부조작 사건은 충격을 넘어서서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제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들을 처음부터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할 정도가 된 건 아니지만 그 날 이후로 저는 e스포츠를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떤 이들은 우습게도 승부조작의 브로커가 되거나 조작에 가담한 범죄자들을 '아직 뭘 모르는 아이들' 정도로 묘사하면서 간접적 쉴드를 치거나 이 일을 별 것 아닌 일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브로커질은 했지만 조작질은 안 하지 않았느냐'는 희대의 헛소리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화가 나는 일입니다. 이건 게임밖에 모르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열등하거나 개념이 없다고 셀프 디스를 하는 식의 말이고, 한때 자기들이 우상으로 여겼던 자들을 잘못이 있어서 비판한다기보다 자기 이미지까지 나빠진다고 손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러모로 슬픈 일입니다.


- 뒤이어 터진 스타크래프트 저작권 분쟁에서 저는 당시 협회를 아주 격하게 비판하는 쪽에 섰습니다. 나중에는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써 가며 날이 선 목소리를 냈는데. 굳이 변명을 하자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 매체에 정기적으로 고료를 받고 기고를 하고 있었는데 저작권 분쟁이 예견되던 초창기만 해도 서로의 영역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기고를 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 협회의 행동은 제 눈으로 보기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작권을 가지지 않은 쪽에서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 분쟁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협회 측에서 당시에 나온 변명이 '우리도 게임 대회에서 정품 CD 쓴다' 수준의 발언이었던 것은 지금 봐도 코미디입니다.

무엇보다. 그 저작권 분쟁의 시작을 자초한 것이, 블리자드의 개입 이전에 2007년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에서 '저작권을 가지지 않은' 협회가 '중계권'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주장하며 게임 방송사와 싸움질을 한 것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하면 저는 그 때로 다시 돌아가도 당시의 협회를 옹호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참. 당시 e스포츠 기자님들과도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분들은 저를 아직도 죽이고 싶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승부조작 사건 관련자들이 소위 마프리카 어쩌구 하면서 인터넷 방송 활동을 할 때 저는 제가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극렬한 반대 목소리를 냈습니다. 당시 활동하던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연재하던 매체의 힘을 빌려서 그들은 더 이상 e스포츠 선수로서 가졌던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e스포츠 선수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서 영구제명을 당했습니다. 형사처벌은 끝났을지 모르지만 e스포츠 선수로서의 제명이란 처벌은 영원한 것이고. 따라서 더 이상 e스포츠 선수로서 팬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이니까요.

비슷한 이유로 제가 화를 냈던 게 이윤열 선수가 진모씨가 여는 사설리그에 참여할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들렸을 때였습니다. 사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당시 저는 이윤열 선수가 선수 시절 쌓아 놓은 명예가 혹시나 별 것 아닐 수 있는 선수 생활 이후의 행동으로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고. 물론 저의 글 속에 숨은 뜻을 이윤열 선수가 잘 받아들이고 사설리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글을 써 주셔서 다행스럽게 끝났습니다.

다만. 어처구니없게도 그 범죄자들을 옹호하는 작자들은 그에 대해 '남의 인생에 돈 한푼 보태준 적 없는 인간이 나대지 말라'거나 '이미 선수 은퇴했는데 프로게이머의 도덕을 강요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마치 '고작 게임질에 도덕을 부여하지 말라'는 식으로 저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 때는 물론이고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참으로 웃기는 노릇입니다.

한 번 훼손된 명예는 절대 쉽게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뜨리기는 쉽습니다.


-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저는. 어떤 이들이 - 심지어는 게임팬, e스포츠 팬들이라는 자들까지도 - 스포츠가 될 필요도 없다거나 도덕조차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임질'로. 지금까지도 밥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당시 벌어지는 그 꼴들을 참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손스타로 컴까기도 어려울 정도로 손에 힘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때로 돌아가도 저는 똑같이 할 것 같습니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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