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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4/30 16:33:18
Name   AGuyWithGlasses
Subject   [사이클][데이터주의] 2019 Amstel Gold Race Review - MVP


'클래식의 여왕' 파리-루베가 끝나면, 원데이 클래식 시즌은 막바지로 접어듭니다. 4월 21일 일요일에 열렸던 Amstel Gold Race, 4월 24일에 열렸던 La Fleche Wallonne, 그리고 4월 28일에 열렸던 Liege-Bastogne-Liege 이 세 대회를 가리켜 아르덴 클래식이라 부릅니다. 2차 대전의 그 아르덴 맞습니다.

이 대회들의 특징은, 미친듯한 언덕의 연속에 있습니다. 위의 사진과 같은 고도의 크고작은 언덕배기를 200km가 넘는 코스 내내 수십 번씩 넘나듭니다. 평지의 나라 네덜란드나 벨기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구불구불한 곳들을 지나가는데, 총 거리 200km 남짓에 대충 남산만한 업힐을 한 50번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올해 암스텔 골드 레이스의 코스 고도표입니다. 대번에 이 대회들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도로폭도 좁기 때문에, 주요 선수들은 쉬지 않고 앞에서 달릴 것을 요구받습니다. 강력한 파워보다는 지속적인 파워를 요구받는 대회들이고, 지형 특성상 코스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경기양상이 매년 같고 우승하던 선수가 계속 우승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서 인기가 좀 떨어집니다. 때문에 암스텔 골드 레이스의 경우 작년부터 평지 구간들을 추가해서 파워가 있는 독주형 선수들의 참가를 중용했고, 작년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왈롱이나 LBL도 조만간 그렇게 좀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회 전 가장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바로 이 선수, Corendon-Circus 소속 매튜 반더포엘(Mathieu Van Der Poel, 영어권에서는 이름의 약자를 따서 MVdP라고도 부릅니다)이었습니다. 작년부터 로드 선수로도 뛰기 시작한 벨기에의 와웃 반 아트와 함께 CX(사이클로클로스) 대회에서 아주 유명한 선수입니다.
CX에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로, 18살에 이미 주니어부는커녕 성인부 월드 챔피언을 먹고, 23살까지 나오는 대회마다 다 쓸어먹어서 이미 레전설에 올라간, 규격 외의 미친놈 소리를 듣던 선수입니다. 원래는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으로 CX를 마무리하고 로드로 올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워낙 압도적이고 23살에 이미 더 증명할 게 없어서(...) 올 시즌 로드로 좀 일찍 전향했습니다. 저도 CX분야를 잘 몰라서 뭐라 더 설명하기 힘들긴 한데 우승기록을 보면 정말 농담 안하고 1st로 좍 도배되어 있습니다. 전성기 이창호, 이영호급 먼닭이라고 하면 될 듯합니다.

로드로 오자마자 이미 5경기에서 2승, 그것도 RVV의 전초전격 대회인 Dwars door Vlaanderen과, 아르덴 클래식의 전초전격 대회인 Brabantse Pijl을 우승하면서 로드에서도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선수입니다. 그 외에도 첫 출전한 플랜더스 클래식에서 헨트-베벌햄에서 4위, RVV에서 4위를 하는 등 첫 출전에 사실상 원맨팀 수준의 로스터로 혼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는 등 로드에서도 보통 미친 신인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95년생으로 아직 나이도 한창입니다. 피터 사간도 데뷔시즌 이정도로 센세이셔널하진 않았을 텐데..

그외에는 브라반츠 필에서 반더포엘에게 일격을 맞은 올 시즌 최고의 컨디션 줄리앙 알랑필립, 번번히 알랑필립에게 밀렸지만 여전히 최상의 폼을 유지하고 있는 아스타나의 야콥 풀상, 현 월드챔피언이자 역대 아르덴 클래식 승수 1위(...인데 암스텔은 묘하게 우승이 없는)를 기록하고 있는 무비스타의 알레한드로 발베르데 등이 우승후보로 꼽혔습니다.



경기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시작합니다. 네덜란드는 벨기에와 더불어 유럽 전체에서도 가장 사이클이 인기있는 지역인데, 월드투어 대회는 이 대회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이 대회도 의외로 인기가 대단히 높습니다. 네덜란드의 자전거 인기는 2015년 TDF때 위트레흐트에서 투어를 시작했을 당시의 열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려 반 바스텐(고향이 위트레흐트죠)이 나와서 대회 축하인사를 할 정도..



림버흐 지방을 지나는 선수들의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후반부까지 꾸준하게 파워를 유지해야 승리할 수 있는 경기이다 보니 180km가 넘는 코스 중 마지막 구간에서 파워대결로 끝나는 것이 보통의 대회 진행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혀 의외의 어택이 하나 발생합니다. 아직 44km나 남았는데 반더포엘이 단독 어택을 칩니다. 뭔 깡으로?



여기에는 뒤에 있던 아스타나의 고르카 이자카레가 붙어서 따라갑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어택이었고, 반더포엘을 의식한 펠로톤의 강력한 선수들에 의해 금방 따라잡힙니다.



5km만에 흡수된 반더포엘. 힘만 낭비한 꼴이 됩니다. 프로 사이클 경기에서는 아무리 압도적인 선수라도 이 정도 실수는 치명적입니다. 요즘은 파워미터에 무전기가 일반화된 시대라 계산 하나하나 해가면서 코치 지시하에 어택을 치는, 어떻게 보면 낭만이라는 게 허락이 안 되는 시대...



진짜배기 어택은 조금 뒤 나옵니다. 이미 업힐코스가 시작되어 펠로톤이 쪼개지는 순간에, 현재 펠로톤에서 가장 강력한 업힐 스프린터로 꼽히는 알랑필립이 어택을 날립니다.



여기에는 최종적으로 야콥 풀상만 붙어서 알랑필립과 독주를 하기 시작합니다. 약 한달 반 전 즈음에 소개한 Strade Bianche와 상황이 거의 같아졌습니다. 그때도 둘이 끝까지 달리다가 결국 마지막 업힐 이후 알랑필립이 스프린트 능력을 발휘하여 풀상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었죠.



3km 남은 상황에서 알랑필립과 반더포엘 그룹은 차이가 1분도 훨씬 넘게 벌어져 있습니다. 2위 그룹과도 40초 차이니 사실상 알랑필립-풀상 1:1로 끝난 상황입니다.



알랑필립-풀상을 죽도록 추격하는 2위 그룹의 크비앗콥스키와 트렌틴. 크비는 아르덴으로 전향한지 좀 된 선수고, 트렌틴은 순수 스프린터에 가까운 선수입니다. 선두에서 두 선수가 서로 견제하면서 교대를 안 받는지(30km 넘는 어택을 쳤으니 지쳤기도 할 겁니다) 격차가 조금씩 줄어듭니다.



반더포엘 그룹이 3위 그룹을 잡아냅니다. 선두와의 격차는 약 50초. 반더포엘은 계속 선두에 서서 노빠꾸로 페달을 밟아갑니다. 우직함 그 자체입니다. 전략이고 뭐고 그저 남자라면 힘!



1.7km를 남겨두고 계속 선두와 차이가 좁혀지자 크비앗콥스키가 힘을 내봅니다. 트렌틴을 버려두고 선두를 쫓으려 어택을 날리고, 트렌틴 뒤에는 역시 뒷그룹 어딘가에서 어택나온 슈처만이 붙습니다. 워낙 경기가 정신없어서 카메라나 해설진도 일일이 상황 캐치를 못 합니다.



...저기요?

1.3km 남겨둔 상황에서 반더포엘이 2그룹까지 잡아냅니다! 반더포엘 뒤는 어차피 반더포엘 피나 빨면서 추격하기 급급한 선수들입니다. 저런 행위를 보통 피 빨기(영어로도 wheelsucking)라고 하는데, 반더포엘은 워낙 힘이 압도적이라 그런가... 무슨 전성기 파비앙 캉셀라라 보는 듯합니다.



이제 피니시까지 1km도 안 남은 상황인데, 지쳐있는 알랑필립-풀상 그룹에 크비앗콥스키가 주차하는데 성공합니다. 반더포엘 그룹은 벌써 저기까지 추격중입니다! 어 설마 이걸?



크비는 앞선 2명이 힘이 빠져있는 걸 확인하고 냅다 달려서 선두로 끌기 시작합니다. 이거 끌면서 반더포엘 추격을 뿌리치더라도 끝까지 파워를 유지할 자신이 있다는 계산이었겠죠. 이후 피니시지점을 앞두고...



반더포엘은 지치지도 않았는지 그냥 우직하게 따라잡아 버린 다음 롱 스프린트까지 칩니다. 아니 뭐야 이 인간? 어어어? 하는 사이에 결승선을 먼저 통과해버리는 반더포엘. 2019 Amstel Gold Race의 우승자가 탄생합니다.



피니시라인 통과 직후 자기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반더포엘. 하긴 경기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경악에 빠졌을 수준의 충격적인 경기결과인데 본인도 그랬을법 합니다.



본국에서 열린 유일한 UWT급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등극한 반더포엘. 6경기 중 벌써 3승째입니다. 3승 모두 상당히 강력한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한 거고, 플랜더스 클래식에서도 2개 대회에서 4위에 오르는 등 거의 뭐 만화에 나와도 욕먹을 법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이날 네덜란드 펍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고... 그야말로 CX의 레전설에서 로드에서까지 전국민적인 스타가 된 거죠.



포디엄에 오른 선수들에게는 주최측인 Amstel에서 맥주를 제공합니다. 포디엄에 올라 시원한 맥주 한 잔 크으...


PS. 암스텔 골드 레이스에서 일격을 맞은 알랑필립은 이후 열린 La Fleche Wallonne에서는 풀상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왈롱에서조차 콩을 먹은 풀상은 기어이 마지막 봄철 클래식 대회이자 모뉴먼트인 Liege-Bastogne-Liege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합니다. 알랑필립이야 올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승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풀상에게도 해피엔딩인 올 시즌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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