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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7/27 01:28:47수정됨 |
Name | 구밀복검 |
Link #1 | https://raceandgenetics.wordpress.com/ |
Link #2 | https://raceandgenetics.wordpress.com/2017/04/22/sports-performance/ |
Subject | [번역] 인종 평등을 위한 과학적 기초 下 |
현대 연구 유전적 변이에 대한 연구는 숫자로부터 힘을 얻는다. 보다 많은 개인으로부터 보다 정교한 기술로 보다 많은 유전자 표지를 검사한다면,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보다 적은 개인으로부터 보다 덜 정교한 기술로 보다 적은 유전자 표지를 검사한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확신할 수 있다. 언급했듯이 르원틴의 원래 연구는 당시 활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도구들을 가지고 7개 집단으로부터 17개의 유전자 표지를 검사했다. 보다 최근의 연구는 과거에는 처리가 불가능했을 복잡한 통계적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를 포함하여 훨씬 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여 더 많은 집단의 유전자 표지를 검사했다. 이러한 연구로부터 드러난 유전적 변이의 그림은 빛을 더한다. 아래의 도표는 인간의 유전적 변이에 대한 몇몇 최근 연구를 보여준다. 도표들은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전세계의 원주민들 사이의 유전적 거리, 혹은 유전적 변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도표를 해석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하학적 관점에서 유전적 거리를 생각하는 것이다. 두 개체군 사이의 유전적 거리는 단순히 두 점 사이를 측정한 유클리드 거리일 뿐이다. 첫 번째 도표에서 최대 유전적 거리는 남아프리카의 산 부시먼과 호주 에버리저니 사이이다. 두 번째 도표에서 최대 유전적 거리는 산 부시먼과 파푸아 뉴 기니 원주민 사이이다. 세 번째 도표에서 최대 유전적 거리는 남아프리카의 코사와 아마존 유역의 원주민 사이이다. 도표 6. Human genetic variation. Li et al. 2008. 도표 7. Human genetic variation. Cavalli-Sforza et al. 1988. 도표 8. Human genetic variation. Alvarado-Hernandez et al. 2011. 어느 두 집단이 가장 큰 거리로 이격 되어 있는가? 산 부시먼과 호주 애버리저니? 코사와 아메리카 원주민? 해답은 전반적인 교훈보다 덜 중요하다. '최대 유전적 거리는 최장 이주 경로와 사막/바다/산맥과 같은 가장 광대한 자연적 장벽에 의해 격리된 집단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연구 결과에서 볼 수 있다. 아래 도표는 높은 유전적 변이를 드러내는 최대 거리로 이격되어 삼각형으로 배열된 남아프리카/아메리카/오세아니아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낮은 유전적 변이를 반영하는 보다 짧은 거리로 이격된 유럽/중동/남아시아/동아시아의 사람들은 가운데에 함께 모여 있다. 도표 9. Human genetic variation. Ramachandran et al. 2005 이러한 해석은 우리가 인간의 이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뒷받침하면서 그에 의해 뒷받침되기도 하므로 만족스럽다. 이러한 일치를 높이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약 65000년 전에 토바 대재앙에 뒤이어 인간은 아프리카를 대량으로 떠나 전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각기 다른 장소에 나타난 날짜와 그들이 따라간 길은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약 60000년 전 북아프리카에서 나와서 아라비아와 시나이 반도를 거쳐 중동에 도달했고, 약 5만 년 전에 인도 아대륙과 아시아를 향하여 남쪽과 동쪽으로 퍼져 나갔고, 약 40000년 전에 남아시아의 섬에서 섬으로 넘어가 호주와 인접한 땅덩어리에 도달했고, 약 15000년 전에 베링 해협을 곧장 건넜으며, 아메리카를 종횡으로 가로질러 약 10000년 전에 파타고니아에 도달하고 약 4000년 전에 그린란드에 도달했다고 추정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인다. 이러한 이주 경로 및 날짜는 아래 도표에 나와 있다. 도표 10. The migration of anatomically modern humans. Jones D, 2007. Going global: How humans conquered the world, New Scientist, October, 2007. 유전적 거리는 유전자 교류로 인하여 두 유기체의 게놈이 얼마나 분리되었는지를 측정법이라는 것을 상기하라. 낮은 유전적 거리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유전자 교류를 의미하는 반면 높은 유전적 거리는 더 적은 유전자 교류를 의미한다. 따라서 제약 없이 뒤섞이는 개체군은 더 낮은 유전적 거리와 더 적은 유전적 변이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어떤 식으로든 고립된 개체군은 더 높은 유전적 거리와 더 많은 유전적 변이가 예상된다. 언제 어디서든 그들이 할 수 있을 때면 인간은 무역이나 탐사나 정복을 위해서 또는 질병이나 환경적 압력으로 인해서 항상 식량과 자원을 찾았다. 이러한 변함없는 움직임은 거의 변함없는 유전자 교류를 야기하여 상호 접근 가능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연결했고 그들 사이의 유전적 변이를 감소시켰다. 그리하여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사람들은 상당한 거리가 수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자유로이 혼합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이 통과해야 했던 지형이 이동을 제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적은 유전적 변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아프리카와 호주, 또는 파푸아뉴기니와 아마존 유역의 사람들은 다소 섞여 있기는 할 것이나(수반된 시간의 길이가 이것을 불가피하게 한다), 사하라 사막, 아시아 군도, 인도양과 태평양과 같은 자연지리적 장벽에 의해 충분하게 고립된 채 남아 있다. 그들은 다소 유전적으로 고립된 채로 남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유전적 변이가 축적된다. 세계 각지 사이의 상대적인 이주 용이성의 차이, 유전자 교류와 유전자 변이의 정도는 복수의 유전자 표지와 세련된 통계적 기법의 분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진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유전적 변이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광범위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의 변이에 대한 관찰 가능한 패턴은 무엇인가?" 이러한 패턴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게놈은 인간이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구역에서는 그들 사이의 거리에 비례하는 유전적 거리와 더불어 점진적 또는 연속적 변이를, 중대한 자연지리적 장벽이 오랜 기간 유전자 교류를 제약하는 지역간의 불연속적인 단절과 더불어서는 보다 큰 변이를 보인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노아 로젠버그는 이 견해를 연속체, 무리, 그리고 인간 개체군 구조의 추정에 연구 설계가 갖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요약했다. "충분한 표지를 충분히 광범위한 전세계적인 표본과 함께 사용한다면 개인들은 지구의 주요 지리적 구획과 일치하는 유전적 군집으로 분할될 수 있으며, 중간지대의 일부 개인은 인근 지역에 해당하는 군집에서 복합적 지위를 갖는다. 동일한 군집의 개체군 쌍의 경우 지리적 거리가 증가하면서 유전적 거리는 연속적인 개체군 구조와 일치하여 선형적 방식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군집의 쌍의 경우, 유전적 거리는 동일한 지리적 거리를 가지는 군집내 쌍 사이보다 대체로 크다. 예를 들어 유라시아의 한 개체군과 동아시아의 다른 개체군이 갖는 개체군 쌍의 유전적 거리는 유라시아 또는 동아시아 내의 동등한 지리적 거리의 한 쌍의 유전적 거리보다 크다. 느슨하게 말하자면 지리적 영역에 해당하는 군집을 변별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유전적 거리상의 이런 작은 불연속적 도약들 - 대해, 히말라야,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 이다." 만약 당신이 이 군집들을 인종이라고 부를 것이라면, 그렇게 해도 좋다. 그러나 당신이 편의에 따라 '아프리카인'이나 '유럽인'이나 '아시아인'이나 '인도인' 같은 여러 군집을 함께 둔다면 그 범주는 훨씬 덜 유효해진다. 인종적 범주가 적어도 유전적 변이 측면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반투', '라프, '파슈툰', '베두인', '아이누', '몬 크메르' 또는 '마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며, 당연히 이러한 집단들 자체도 의심의 여지 없이 훨씬 정밀하게 분해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충분한 표지를 충분히 광범위한 전세계적인 표본과 함께 사용하면'이라는 로젠버그의 논평의 첫 부분을 주목해 보고 싶다.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강력한 통계로 우리가 수많은 유전자 표지를 검사해야 한다는 사실은 위에서 내가 언급한 것, 즉 우리 사이의 차이가 극히 작고, 압도적인 유사성이란 배경을 마주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변이의 광범위한 패턴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위에서 제기된 두 번째 질문인 "이 패턴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유전적 차이를 만드는 힘 유전적 차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작용하는 복수의 힘에 의해 생성된다. 한 가지 힘은 유전적 고립의 정도를 달리하는 개체군 내의 무작위 돌연변이의 점진적인 축적이다. 다른 힘들은 유전적 병목과 유사한 과정을 포함한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토바 대재앙과 같은 유전적 병목은 우리의 유전적 유사성을 만들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또한 유전적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기 위해서 가젤과 같은 대규모 짐승 무리를 생각해 보자. 가령 작은 가젤 집단이 산맥의 반대편으로 건너가거나 새로운 계곡을 통과하여 주 집단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필시 그것의 유전적 다양성은 유전적 병목의 원리에 따라 큰 집단보다 낮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은 집단의 유전자 변형 빈도는 큰 집단과 다를 것이다. 즉, 작은 집단은 덜 다양한 유전자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유전자를 포함할 것이다. 이리하여 작은 집단은 큰 집단과 다르게 된다. 작은 개체군이 큰 집단에서 분리되면서 유전적 다양성은 줄고 작은 개체군과 큰 개체군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증가하는 이 과정은 창시자 효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먼 섬으로 날아간 새나 갑자기 개울/호수/유역에서 이탈된 물고기 등 무주지에 서식하는 종들 사이에서 흔히 관찰된다. 창시자 효과는 아마도 보다 작은 집단들이 보다 큰 집단들으로부터 분리될 때 발생하는 유전적 병목의 일종으로 가장 잘 이해될 것이다. 유전적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과정은 유전적 편류Genetic drift라고 알려져 있다. 유전적 편류는 매우 작은 개체군 내의 무작위 돌연변이나 유전자 집합이 전체 유전적 구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로를 해명한다. 다시 한번 대규모의 가젤 무리를 생각해 보자. 이 무리 안에는 다량의 유전적 다양성이 있다. 만약 어느 개체가 특정한 유전자 집합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이러한 유전자들은 결국 무리의 다른 유전자들에 의해 혼합되고 희석되고 포섭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래에 서술된 것과 같은 추가적인 진화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한 무리의 유전자 빈도수는 대체로 안정되이 유지될 것이다. 실제로 대규모 집단의 유전자 빈도수는 유전법칙 및 멘델 유전학을 따라 상당히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정량화할 수 있다. 핵심은 집단이 충분히 크다면 유전자 빈도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제 아주 작은 집단이 보다 큰 집단과 분리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당연히 작은 집단의 개체들은 특정한 유전자 집합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러한 유전자들은 다른 유전자들과 뒤섞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작은 집단에 존재하는 무작위 유전자 집합이 우세할 것이다. 그들의 빈도수는 원래의 개체군에 비해 증가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두 집단은 달라질 것이다. 유전적 편류의 영향은 개체군 규모에 비례한다. 작은 집단에서 유전적 편류는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인간에게 확대될 수 있는지는 이해하기 쉽다. 인간이 전세계로 흩어질 때, 그들은 산맥과 사막을 횡단하고, 강과 바다를 건너고, 평원과 계곡 전역에 퍼져나갔다. 각각의 영역 확장은 창시자 효과에 따라 유전적 구성을 바꾸는 기회를 의미했다. 지구상의 점진적인 인간 정착은 추후에 달라진 유전자 교류에 의해 완화되는 일련의 창시자 사건들로 볼 수 있다. 이 가설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유전적 거리에 대한 연구는 전세계 원주민의 유전적 다양성이 아프리카 원주민의 유전적 다양성보다 낮다는 것을 한결같이 확인한다. 전세계 인구는 비록 그 규모가 막대하게 성장했지만, 작은 시조 인구, 아니 차라리 다수의 소규모 시조 인구로부터 유래되었다. 그 결과 전세계의 유전적 다양성이 아프리카의 유전적 다양성보다 낮은 것이다. 이 견해는 내가 나중에 복기할 몇 가지 흥미로운 함의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태평양 제도나 히말라야나 안데스 같은 대산맥의 고산지대나 사하라 사막이나 아마존 우림에서 보호받던 원주민과 같이 상당 시간 비교적 고립된 채 남아 있던 집단도 유전적 편류로 인해 어느 정도 유전적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최소한 오늘날 우리가 관찰하는 유전적 차이의 일부를 분명히 만들어냈다. 더 나아 가기 전에, 나는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존재하는 인간의 작은 유전적 다양성을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이상 이러한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다르기보다 압도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것들은 유전적 차이를 만드는 유일한 과정이 아니다. 대신에 무작위 유전적 돌연변이, 창시자 효과 및 유전적 편류는 다른 진화압들이 기능할 다양성의 바탕을 제공했다. 이러한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적 변화를 추동하는 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다윈의 진화를 추동하는 두 가지 주요 원리는 자연선택과 성선택이다. 나는 각각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인간의 유전적 변이에 대한 그것들의 상대적 기여에 대해 논할 것이다. 자연선택은 특정한 환경에서 생물이 살아남게끔 도와주는 형질의 발달을 유도한다. 대형 포유류의 경우 먹이를 잡거나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강력한 근육과 억센 뼈, 온기를 유지하기 위한 두터운 털, 섬세한 감각 등이다. 그것이 시각적으로 너무나 충격적이기에 고전적인 예로는 기린의 길쭉한 목이 있는데, 이는 이 생명체들이 다른 경쟁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채 나무들의 군엽 윗부분을 흡족하게 뜯어먹게끔 하여 그들 나름의 생태 지위를 차지하도록 한다. 그러나 나는 억센 뼈나 긴 목과 같은 것에 더하여 자연선택은 군거 본능, 모성애 등과 같은 행위를 포함한 보다 미묘한 형질들의 발달을 유도하는 데에도 동등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덧붙여야 한다. 생물들이 그들의 환경에서 살아남게끔 돕는 어떤 형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유지되거나 증대될 것인데, 이러한 형질들을 창출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체들은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자손을 낳을 것이며, 그리하여 이러한 유전자를 대대로 물려주는 반면, 이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개체들은 오래 살지도 않고, 많은 자손을 낳지도 않을 것이고,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유전자는 동일한 정도로 존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선택은 그들의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들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며, 자연계는 무한한 변이와 미묘한 복잡성과 더불어 작용하는 이런 과정의 무수한 고혹적인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핵심은 자연선택은 생존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이 작동하려면 특정한 특질을 형성할 상당한 환경압이 있어야만 한다. 성선택은 자연선택의 이채로운 맞수로 생각될 수 있다. 자연선택은 생존에 필수적인 형질들의 발달을 유도하는 반면에 성선택은 생존을 돕든지 아닌지 혹은 심지어 방해하든지 상관없이 번식에 필요한 형질들의 발달을 유도한다. 생물들이 번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형질은 강조될 것인데, 이러한 형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은 더 많이 번식하고 더 많은 유전자를 대대로 물려줄 것이고 반면에 이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개체들은 더 적게 번식하고 더 적은 그들의 유전자를 그들의 자손에게 물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의 고전적인 예로는 현란한 배열로 펼쳐진 밝은 빛깔의 깃털이 한 다발인 공작 꼬리다. 성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생물학자들은 공작 꼬리를 설명하는 데 곤란을 겪을 것이다. 결국 꼬리는 생성/유지/전시를 위하여 다량의 에너지를 요하며, 공작이 지면 위를 날아 이착륙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그리하여 공작이 포식자에게 취약하게 만든다. 순전히 자연선택의 원리에 의거하면, 기린의 목이 길어진 만치 공작의 깃털은 시간이 지나면 짧아질 것으로 보일 것이다. 어째서 공작들은 꼬리를 갖는가? 꼬리가 공작의 번식을 돕는다는 해석이 있다. 빛나는 꼬리 깃털은 공작 암컷에게 추앙받는데, 아마 그것이 유전자의 전반적인 좋은 질을 선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나는 아름다운 꼬리에도 불구하고 용케 살아남았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 긴 꼬리를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공작은 더 많이 번식하여 더 많은 이러한 유전자를 대대로 물려준 반면, 긴 꼬리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거나 약간 짧은 꼬리를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공작은 더 적게 번식하여 더 적은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주게 된다. 이것이 성선택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나는 성선택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형질은 꼬리 깃털과 같은 신체적 특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재차 말해야 할 것이다. 성선택은 행동적 형질에도 동일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정교하고, 때로는 웃기고, 종종 당혹스러운 다양한 종의 교미 습성을 연구하는 것은 생물학의 가장 흥미롭고 유쾌한 일면이다. 그렇다면 자연선택과 성선택은 인간의 변이 패턴을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첫째, 대부분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의 많은 특질은 모든 생물의 특질과 마찬가지로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결합된 효과의 산물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가령 직립 자세, 큰 두뇌, 복잡한 언어, 음악과 예술의 감상 등 우리를 진정으로 인간으로 만드는 형질 중 일부를 선별하는 것은 이러한 진화적 과정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특질이 대개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변이 패턴들은 같은 방식으로 생성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지 않다. 첫 번째 사례에서 큰 두뇌가 우리 조상들에게 생존적 이점을 부여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다. 두 번째의 경우 1) 두뇌 용적이 세계 각지에서 규칙적인 방식으로 다르다는 것 2) 동일한 방식으로 환경이 다르다는 것 3) 환경이 두뇌 용적에 차등적인 선택압을 가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더 어렵다. 이러한 차이를 염두에 두고, 자연선택의 산물로 보이는 인간 변이의 패턴이 있는가? 그렇다.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피부색과 신장이다. 피부색은 가장 명백한 예이다. 나는 전세계적으로 피부색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적도와 열대 지방 종족은 대체로 피부가 어둡고, 온대나 극지 종족은 피부가 밝다). 여기서 나는 어째서 피부색이 이런 식으로 달라지는지 설명할 것이다. 피부색은 표피의 최하층에서 특화된 세포가 생성하는 멜라닌의 양과 관련이 있다. 더 많은 멜라닌은 어두운 색소를 만드는 반면, 더 적은 멜라닌은 밝은 색소를 만든다. 결국 멜라닌은 자외선을 흡수하고, 그리하여 태양의 해로운 영향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한다. 어두운 피부는 유해한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반면 밝은 피부는 비타민 D를 생성하는 데 충분한 햇빛이 투과되도록 한다. 따라서 피부색은 자외선 차단과 비타민 D 생성의 균형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가령 인도 아대륙 원주민이 북극에 이주된다면 그들은 필시 비타민 D 결핍증이 생길 것이며, 반면 열대지방에서 살도록 강요된 그린란드 원주민은 피부암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것이다. 주로 온대 지방 출신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열대지방의 대륙인 호주는 세계에서 피부암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위도에 따른 피부색 변이는 일정하며, 아마도 이주의 결과이거나 육괴陸塊의 단속적인 분절 때문일 약간의 변동을 허용한다. 신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연관성은 간단하다. 밀림이나 삼림 지대의 원주민들은 보다 작은 경향이 있는데, 추측컨대 그들의 작은 신장은 울창한 덤불을 헤쳐 움직여 살아남도록 해 주기 때문일 것이며, 반면 사바나와 평원 지대의 종족은 보다 큰 경향이 있는데, 아마 더 큰 신장은 보다 적합한 보폭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더 큰 열손실이나 여타 다양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와 무관하게 연관성은 일반적으로 일정하며, 재차 말하지만 일부 자연적 변동을 허용한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과학의 또 다른 중심적인 발견에 도달하는데, 자연선택의 산물인 인간의 변이 패턴은 피부색과 신장을 제외하면 규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일반적인 오해를 바로잡겠다. 전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흔한 곱슬머리는 더 나은 일광차단을 선사하지 않는다. 아시아인에게 흔한 몽고주름은 밝은 빛에서 더 나은 가시성을 주지 않는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좀 더 과장된 예를 지어낼 수 있는데, 만약 그것이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인종주의적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우스울 것이다. 흑발은 아시아인들이 밤에 숨는 것을 돕기 위한 적응이 아니고, 안데스인들의 매부리코는 산에서 눈 냄새를 맡도록 도와주는 적응이 아니고 등등. 과학이 자연선택의 산물인 인간의 변이 패턴의 두 가지 예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 같지만, 그 기준이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을 상기하라. 누구든 어떤 특질은 세계 각지에 걸쳐 변이하며, 환경의 일부 측면도 같은 방식으로 변이하며, 환경이 차등적인 선택압을 문제의 특질에 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입증하기 어려운지를 예증하기 위해 우리는 지능과 같은 근본적인 특질들을 고려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그 단어의 한 지역의 사람들이 명증하게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더 지적이라고 단언하고 이 견해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시간에 따라 지능에 선택압을 행사하여 보다 지능적인 어느 종족 집단을 만드는 어떤 환경의 차이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아마조니아 원주민들보다 더 지적이라고 주장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시베리아에서 추운 기후가 사람들로 하여금 추운 기온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그들의 지능에 의존하도록 강요했고, 이것이 더 나은 지능의 진화를 추동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신은 또한 아마존에서 삶에서 제기되는 여타 동등하거나 어쩌면 더 큰 도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환경은 생존에 나름의 도전을 제시하며,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나은 지능의 진화를 추동하는 그럴듯한 기제는 없다. 공격성, 사랑, 폭력, 야망, 범죄성, 성적 능력, 공감, 종교적 신앙 등과 같은 여타 근본적인 특질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기제를 규명하려는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연선택이 이러한 형질의 규칙적인 변이 패턴을 만들 수 있는 그럴듯한 기제는 없다. 넘어가기 전에 정리하고 싶은 점이 하나 더 있다. 긴 수명과 적은 자손을 갖는 인간과 같은 생물에 있어 자연선택에 의해 생성되는 근본적인 특질의 변화는 출현하는 데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며, 아마 수만 년일 것이다. 여하간 수반되는 기간은 전세계인의 집단 사이에 인식 가능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났으리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기간, 특히 인간이 아프리카를 대량으로 떠난 때부터 현재에 이르는 최근 65000년보다 훨씬 더 길다. 따라서 자연선택에 의해 규칙적인 변이의 패턴을 생성하는 기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성선택은 어떠한가? 변이 패턴을 생성하는 기제로서 자연선택을 소거했으므로 우리에겐 성선택이 남게 된다. 여기서 다시 과학은 명확한 답을 제공한다. '인간의 변이 패턴은 비록 위에서 설명한 것과는 약간 다른 종류이지만 주로 성선택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전세계로 퍼지면서, 무작위 분포, 유전 병목 등과 같은 위에서 서술한 이유로 인하여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 사이에 다소간의 자연적인 변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내집단의 형질을 매력적이라 보고 선호하게 될 것이고, 그러므로 그 집단 내에서 번식하면서 이러한 형질을 부각시킬 것이며, 물론 타집단과 접촉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상당한 혼합과 유전자 교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연선택에 의해 부과된 경계 내에서 작동하면서 얼굴과 몸의 특색, 모발의 종류와 색, 눈의 모양과 색, 심지어 신장과 피부색과 같이 성적으로 달리 선택된 신체적 특질의 모자이크를 생성한다. 중요한 점은 근본적인 특질들과는 달리 성선택에 의해 형성된 피상적인 신체적 특질들은 분명 변이의 패턴이 나타난 65000년의 기간 내에 비교적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상적인 신체적 특질에서 변이의 패턴이 나타나는 명확한 기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인간의 성선택은 다른 생물들의 성선택과는 다소 다르다고 언급했다. 우리는 문화에 의해 정의되고 창조되며, 문화는 그 자신의 선택압을 가한다. 예를 들어, 번식 선호도는 언어, 종교, 지역적 관습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문화적 선호도는 성선택의 한 형태를 구성하며, 인간의 변이 패턴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조상 이야기'의 도킨스로 돌아간다. "우리가 언어, 종교, 그리고 여타 문화적 변별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무작위 번식으로부터 매우 강하게 비롯된다는 사실은 과거 우리의 유전학에 매우 이상한 일을 했다. 비록 유전자의 전체를 계산에 넣을 경우 우리는 매우 획일적인 종이지만, 우리는 사소하지만 또렷한 피상적인 특질에 있어 놀라울 만치 가변적이다." 나는 자연선택이 근본적인 형질에 있어 변이의 패턴을 생성할 수 있는 그럴듯한 기제를 제안하는 것이 어째서 어렵거나 불가능한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성선택에도 똑같이 할 것이고, 그리하여 진화적 과정에 대한 또 다른 요지를 정리할 것이다. 공격성을 생각해 보자. 한 집단에서 공격성과 같은 형질이 성선택에 의해 선호되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더 공격적인 개인은 더 자주 교배를 할 수 있고, 덜 공격적인 개인은 그만큼 교배를 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이 집단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어느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왜 더 공격적이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기제를 제시한다면, 왜 다른 집단에서는 공격성이 동등하게 선호되지 않았는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경쟁적인 제전과 살인과 전쟁과 같은 폭력적인 행동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다른 근본적인 특질도 마찬가지다. 어느 집단이나 문화가 이러한 형질을 발달시킨 반면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고 가정할 만한 타당한 이유는 없다. 따라서 우리의 피상적인 신체적 특질은 시간에 따라 변했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특질은 변하지 않았다. 개별적 변이와 환경적 영향 내 주장이 전세계인의 집단 간의 근본적인 특질에 규칙적인 차이가 있다는 개념을 논박하는 쪽으로 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설사 그러한 차이가 존재했다고 한들, 어째서 그것들이 1) 발견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2) 본질적으로 무의미한지 강력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왜 이것이 옳은지에 대한 해석은 개별적 변이와 환경적 영향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과 연관된다. 지금까지 나는 핵심을 예증하기 위해서 대형 포유류와 같은 동물계의 사례를 이용했다. 여기서 나는 단지 그 수치들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식물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같은 주장을 인간의 변이로 확장할 것이다. 아래 첫 번째 그림은 보다 짧은 쪽과 보다 큰 쪽 두 식물 집단을 보여준다. 보다시피 짧은 집단의 평균 높이(9.90cm)는 키가 큰 집단의 평균 높이(10.35cm)보다 약간 낮다. 그러나 두 집단의 평균 높이 차이는 각 집단 내 개별 식물의 높이 차이보다 훨씬 작다. 이는 식물에서든 동물에서든 우리가 연구하기로 선택하는 거의 모든 특질에 해당된다. 개별적 변이는 거의 항상 유사한 조건에서 사는 밀접하게 관련된 개체군 간의 평균차보다 훨씬 더 크다. 아래 두 번째 그림은 또한 두 집단의 식물을 보여주는데, 한쪽은 영양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재배되고 다른 한쪽은 영양소가 풍부한 환경에서 재배된다. 영양소 부족 집단의 평균 높이(3.75cm)는 영양소 풍부 집단의 평균 높이(20.95cm)보다 훨씬 낮다. 이 경우 환경적 조건에 의해 빚어진 높이의 차이는 한 집단 또는 다른 집단 내의 개별적 변이에 의해 유발된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당신은 그것이 심층적인 유전적 변이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혹은 영양 결핍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말할 수 없을 것이므로 집단 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식물이나 동물의 많은 특질에 해당된다. 환경의 영향은 강력하며 크게 약한 개체와 집단의 변이를 은폐한다. 그림 11. 개별적 변이가 식물 높이에 미치는 영향. 그림 12. 환경적 조건이 식물 높이에 미치는 영향. 어떻게 이런 개념들이 인간의 변이로 확장될 수 있을까? 논의를 위해,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것과 달리, 전세계인 사이에 근본적인 특질에 차이가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이미 지능과 공격성에 관한 예를 제시했으므로, 비록 우리가 언어 능력, 관념적인 기호들에 대한 능숙함, 또는 여느 신체적 또는 정신적 특질에 대해서도 똑같이 논할 수 있겠지만, 수학적 능력을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수학적 능력에 대한 어떤 유형의 검사를 고안했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두 집단 사이에 작은 차이, 예를 들어 1%나 1%의 분수꼴 차이를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위와 같이 이 차이는 같은 집단의 구성원들 간 수학적 능력의 개별적인 차이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 자신의 수학 수업을 돌이켜 보자. 확실히 학급의 모든 학생들의 성적은 1%가 아니라 5%, 10%, 20% 혹은 그 이상 달랐다. 비슷한 방식으로 한쪽은 교육 기회가 거의 혹은 전혀 없는 지역에 속하며 다른 한쪽은 학교 시스템이 잘 발달된 지역에 속하는 서로 다른 두 집단에 수학 시험을 적용했다고 상상해 보자. 분명히 수학이나 어떤 종류의 교육에도 거의 혹은 전혀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 비해 전통적인 수학 시험에서 변변찮을 것이다. 내 요지가 분명하기를 바란다. 비록 전세계인 사이의 근본적인 특질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은 어떤 집단 내의 개별적 변이와 집단간 환경 조건의 차이에 의해 전적으로 무마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우리가 결코 그런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이며, 만약 우리가 찾는다 한들 그것들은 인간의 행위나 성취에 대한 어떤 의미 있는 논의와도 무관할 것이라고 믿는 이유다. 결론 우리가 밀접하게 관련된 다수의 주제를 넘나들었으므로, 주요 결론을 요약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 모든 인간은 단일종인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성공적으로 서로 번식할 수 있고 실제로 번식하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있다. - 모든 인간은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대부분의 대형 포유류와 영장류를 포함하여 여타 동물들보다 훨씬 더 유사하다. - 인간의 평균 전지구적 FST는 약 0.05와 0.15 사이에서 달라진다. 이것은 종을 인종과 동일한 의미인 생물학 용어 아종으로 분류하는 데 허용된 한계치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인간의 인종을 구분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 인간 사이의 유사성은 필시 인간이 지구 전역에 대량으로 흩어지기 이전인 약 70000년 전 토바 대재앙 기간에 발생한 유전적 병목에 의해 야기 되었을 것이다. - 우리의 유전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원주민들 사이에는 규칙적인 변이의 패턴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변이에 관한 관찰자간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에 이를 알고 있다. - 우리가 많은 사람의 많은 유전자 표지를 많이 연구하면 인간은 먼 거리와 대륙/대해/산/사막과 같은 가공할 자연적 장벽에 의해 분리된 지리적 영역과 연관된 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장벽들은 정도를 달리하는 유전적 고립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항상 이주했고, 유전자 교류는 항존했지만, 어떤 지역은 차이가 발달할 정도로 충분히 고립되이 남아있었다. - 원주민 집단 간의 차이는 인간이 아프리카를 대량으로 떠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근 65000년 동안 발전했다. 이것은 진화적 변화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짧은 시간이다. - 원주민 집단간의 차이는 자연선택, 장기간의 세계적인 작용, 성선택, 지역적 활동, 단기간의 국지적 작용을 포함하는 여러 과정에 의해 생성되었다. - 원주민 집단 간의 차이는 피부색, 신장, 얼굴 및 신체 특질과 같은 피상적인 신체적 특질로 제한된다. 근본적인 특질에 차이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우리가 이런 차이점들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 우리가 이러한 차이를 결코 발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이유는 1) 이러한 차이들은 압도적인 유전적 유사성을 배경으로 마주하면서 존재하며 2) 이러한 차이들이 발달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으며 3)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그럴듯한 선택 메커니즘은 없었으며 4) 개별적인 변이와 환경적 조건의 영향은 집단 간의 평균 차이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들은 수백 년간 과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고수했던 인종주의적 관점이 명백히 거짓임을 보여 준다. 인종은 없다. 그것은 또한 근과거에 과학자들이 고수했던 관점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비록 이러한 차이는 매우 작지만 전세계 원주민 사이에는 인식가능한 차이들이 있으며, 피상적인 신체적 특질에만 국한된다. 현대과학의 성과들은 탁월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고고학, 인류학, 생물학, 유전학의 광범위한 증거로 뒷받침된다. 게다가, 그들은 새로운 증거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검사 될 수 있고, 검증되거나 폐기될 수 있는 폭넓고 다양한 가설을 제공한다. 내가 이 정보를 가능한 한 분명하게 설명했으며 인종 평등을 위한 강력한 과학적 기반을 확립했기를 바란다. 스포츠 기량 스포츠 기량은 이 토론에 포함시키기에 이상한 주제처럼 보일 수 있다. 본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종과 유전학을 이야기할 때 결국 우리는 대개 지능이나 공격성 같은 근본적인 특질을 주목하는 것이지, 특정인이 얼마나 멀리 공을 던질 수 있는지 얼마나 높이 점프할 수 있는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공개된 분야의 일종으로 기능하는 사회의 대중적이고 가시적인 부분으로, 잘못된 신념과 인종주의적 신화가 투영되고 전파되는 곳이다. 또한 스포츠 기량에는 설명을 요하는 일정한 측면이 존재하며, 어쩌면 인종과 유전학에 대한 보다 확장된 논의의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다. 몇 년 전, 내 학생 중 한 명이 내게 흑인 선수들이 백인 선수들보다 더 빠르게 '근육량이 증가시킨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이 학생은 총명하고 성실했으며 인종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흑인 선수들이 몇몇 스포츠에서 백인 선수들보다 더 성공적인 듯이 보인다는 관찰을 설명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는 흑인 선수들은 남다르며, 그들의 신체나 뇌가 그들을 특별히 경쟁에 적합하게 만든다고 조리 있을지언정 그릇되이 추정했다. 나는 훈련에 반응하여 어느 개인이 다른 이보다 근육량을 상당히 더 빨리 발달시킬 수도 있지만, 흑인 선수가 집단적으로 백인 선수보다 근육량을 더 빨리 증가시킨다는 증거는 없다고 대답했다. 흑인 선수들이 그들을 보다 경쟁적이고 공격적으로 만들어주는 테스토스테론을 더 높은 정도로 가지고 있다든지, 대체로 노예의 후손이며 '적자 중의 적자'를 대표하며 과거의 노예무역의 잔혹함에서 살아남은 가장 강한 개체들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오늘날 스포츠를 지배하고 있다는 관념과 같은 다른 통설에도 진실이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흑인 선수들이 일부 스포츠에서 불비례적으로 성공적인가? 나는 이 웹사이트에서 내가 따랐던 것과 같은 접근, 즉 인간 인종을 구분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할 것이지만, 우리의 역사는 스포츠 기량을 포함하여 몇몇 영역에서 돋보이는 희귀한 변이를 만들어냈다. 우선 우리는 흑인 선수들이 백인 선수들보다 더 성공적이라는 것을 규명해야 한다. 북미에서는 흑인 선수들이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인 농구와 미식축구를 지배한다. 야구는 더욱 다양하며 백인과 라틴계 선수들은 무시 못 할 성공을 만끽한다. 만약 우리가 럭비, 라크로스, 배구와 같이 유사한 역량을 필요로 하는 다른 스포츠들을 검토한다면, 우리는 놀랍게도 흑인 선수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팀과 공이 수반되는 야외 스포츠만을 포함한다. 수영, 체조, 테니스, 골프, 조정 또는 세일링과 같은 스포츠를 고려한다면 소수의 주목할 만한 예외에도 불구하고 흑인 선수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국제 스포츠를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의 시야를 확장한다면, 양상은 바뀐다. 유럽 농구는 주로 백인 선수들이 한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인 축구는 지극히 다양하며, 대다수가 백인인 국가에서 그들이 배출되는 것일지라도 흑인 선수들이 지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이클은 거의 전적으로 백인이다. 100년 이상 되었으며 시청자 수로는 올림픽과 월드컵에 버금가는 프로 로드 사이클의 대표 행사인 뚜르 드 프랑스의 우승자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소수의 경쟁력 있는 라틴 아메리카 사이클 선수들과 그보다 더 적은 아시아 사이클 선수들, 그리고 훨씬 적은 흑인 사이클 선수들이 있다. 최근, 어느 아프리카계 사이클 선수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그는 백인이고 영국에서 자랐다. 크리켓과 같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와 탁구, 배드민턴과 같이 아시아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는 놀랍잖게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있다. 겨울 스포츠를 고려하면 양상은 재차 바뀐다. 흑인 선수들은 아이스하키나 다양한 스키 부문에 거의 완전히 부재하다. 마지막으로, 여성 스포츠를 생각해 보면, 양상은 유사하며. 다소간 변동이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성공한 남자 축구팀은 브라질이고 가장 성공한 여자 축구팀은 북미이다. 이 개괄은 흑인 선수들이 모든 스포츠의 모든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백인 선수들이나 여타 선수들보다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스포츠의 성공은 상당히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몇몇 중요한 요인으로는 역사, 전통, 소득, 빈곤, 사회적 계층, 경제적 유인, 마케팅, 기후, 지리, 역할 모델, 물리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포함하는 인프라, 그리고 경우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이 포함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왜 흑인 선수들이 미식축구와 농구 같은 스포츠에 참여하고, 백인 선수들은 골프와 세일링 같은 스포츠에 참여하는지 설명해준다. 그들은 또한 왜 흑인 선수들이 겨울 스포츠를 하지 않는지(흑인이 많은 국가들은 추운 겨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 흑인 선수들이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지 못했는지(많은 흑인 인구를 가진 국가들은 필요한 인프라가 없다), 그리고 왜 흑인 선수들이 크리켓이나 탁구 같은 스포츠를 지배하지 않는지(이 스포츠들은 흑인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는 인기가 없다)를 설명한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언명에 불복할 것이다. 동시에 나는 '스포츠에서의 성공은 오직 문화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만족스러운 설명이 아니며 확실성보다는 더 큰 의혹으로 이어진다. 문화가 정말로 스포츠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을까? 흑인들은 정말 백인 선수들과 같은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1)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있고 2) 역사/국적/소득/사회적 계층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에 의해 행해지고 3) 인프라가 거의 필요하지 않은 스포츠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달리기라는 강력한 후보가 존재한다. 물론 달리기는 문화의 영향을 받지만 다른 스포츠보다는 훨씬 덜 받는다. 따라서 이것은 다른 선수들의 성과를 비교하기 위한 이상적인 배경을 제공한다. 과거에 유명한 주자들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중동, 인도, 아시아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왔다. 전설적인 안데스인 장거리 주자, 영국인 1마일 주자, 모로코인 중거리 기록 보유자, 인도인 단거리 주자, 그리고 일본인 마라토너 등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부터는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같은 주요 국제대회에서 흑인 선수들이 달리기 종목들을 석권했다. 100M 달리기같은 단거리 종목들은 대개 카메룬이나 코트 디부아르와 같은 서아프리카 국가들이나 혹은 자메이카나 미국과 같이 이러한 국가들의 노예들이 이주한 구 식민지들의 크고 강한 선수들이 우승한다.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종목는 대개 케냐와 에티오피아 같은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작고 가벼운 선수들이 우승한다. 중거리 종목은 아프리카 전역, 특히 북아프리카의 선수들이 우승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대회 양쪽 모두 사실이다. 이따금 백인 선수들이 결선에 도달하지만 우승자들은 거의 항상 흑인이다. 흑인 주자의 성공은 설명을 요구하다. 문화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하기 마련이며 심지어 큰 역할일 수 있다. 문화적인 요인들은 종종 순환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즉 주자들이 인정과 부를 획득하면서, 그들의 국가는 점차 지원 체계와 인프라를 발전시키고, 더 성공적인 선수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흑인 주자들의 압도적인 성공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만족스러운 설명은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 해답은 앞에서 논했던 과정, 즉 유전적 병목과 창시자 효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약 65000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이 더 큰 시조 집단의 하위 개체군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라. 이 이주와 모든 후속 이주는 일련의 창시자 사건을 의미한다. 아프리카를 떠난 인간들은 뒤에 잔류한 유전적 다양성의 극히 일부만을 지녔다. 반면 아프리카에 잔류한 인간들은 떠난 이들보다 더 많은 유전적 다양성을 가졌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사라 티슈코프와 그녀의 동료들은 121명의 아프리카인 개체군, 4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개체군, 60명의 비아프리카인 개체군으로부터 1000개 이상의 유전자 표지를 검사했다. 아래 그림은 그들의 분석 결과를 보여준다. 축(회색 선)은 다양한 통계 변수를 나타낸다. 데이터(색칠된 구체)는 축에 따라 분포되며 유전적 거리의 3차원의 화상을 제공한다. 구체들이 더 멀리 떨어져 있다면 더 큰 유전적 거리가 개체군 간에 존재하고, 구체들이 함께 가까이 있다면 더 작은 유전적 거리가 존재한다. 첫 번째 그림(A)에서 당신은 하즈다와 사하라 아프리카인과 같은 아프리카 인구 사이의 유전적 거리가 유라시아인과 오세아니아인과 같은 다른 국가들의 인구 사이의 유전적 거리보다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그림(B)에서 아프리카의 유전적 다양성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즈다와 피그미 개체군, 그리고 일부 사하라 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개체군은 실질적인 유전적 거리에 의해 분리된다. 이 연구는 주목할 만한데,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아프리카의 유전적 다양성이 세계 어느 곳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표 13. Human genetic variation in Africa. Tischkoff et al. 2009. 아프리카는 세계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른 단거리 주자와 가장 빠른 마라톤 주자를 찾으리라 예상한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또한 가장 느린 단거리 주자와 가장 느린 마라톤 주자를 찾으리라 예상한다. 만약 서아프리카 주자가 마라톤에 참가하거나 동아프리카 주자가 100M 달리기에 참가한다면 그 결과를 상상해 보라. 동일한 추론의 궤적을 따라,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극단적인 특질을 찾으리라 예상한다. 다시 한번 신장으로 돌아가 보자. 아프리카에서 가장 키가 크고 키가 작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가? 키에는 환경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국가들을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키가 매우 큰 종족과 매우 작은 종족이 아프리카에 있는데, 가령 케냐의 극히 키가 크고 날씬한 사람들인 마사이와 중앙아프리카의 피그미의 여러 토착 집단 중 하나인 음부티가 있다. 이것은 일부 스포츠에서 흑인 선수들의 불비례적인 성공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그것은 성공이 상당 부분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유전적 요소도 있을 것이라 강변한다. 그것은 유전적 변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기제를 제공하며, 증거에 의해 지지된다. 게다가 그것은 보통 고수되는 어떤 인종주의적인 신념도 지지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것은 인간의 변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탐구를 필요로 하는 종류의 해석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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