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8/13 03:43:11
Name   호라타래
Subject   떠나며
빅데이터로 홍차넷 유저들의 성향을 분석하여 조회수가 많이 나올 만한 제목을 뽑아보았습니다. 제목은 낚시고요,

떠나기는 떠나는데 홍차넷을 떠나는 건 아닙니다 ㅎㅎ

한국을 떠나요. 원양어선 타고 태평양으로 갑니다ㅠㅠ

가나 출신 선장님 휘하 다국적 선원들과 열심히 참치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배만 타고 나와도 한몫 단단히 잡는다 했는데, 이제는 좋은 참치를 잡아서 미리미리 이력서를 채워둬야 한다더라고요. 어디나 대세는 신자유주의적 자기통치인 것 같습네다.

참치하면 한국에서는 동×참치 아니겠습니까. 바이럴은 아닙니다. 몇 개월 간 동원 회사 근처에서 일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아 물론 동원은 아니고, 근처의 자그마한 회사여요. 동원사옥 식당 밥이 싸고 맛있던 기억이 나네요. 동료들은 맨날 다른 곳 가서 먹자고 아우성이었는데, 저는 기회만 되면 '동원고?'를 외쳤어요.

예정된 퇴사를 하는데, 조금은 슬프더라고요. 좌충우돌 천방지축으로 다녀도 많이들 저를 좋아해줬거든요. 이제 좀 일이 손에 붙을라 하는데 떠나는 것도 아쉽고,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에게 머물 수 없다는 것도 아쉬워요.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 순간과 시절에 서로 즐겁게 지내면 그걸로 족한 게 아니겠습니까.

다녀오면 제가 물고빨고 하는 사촌동생은 대학생이 되겠지요. 중학생 들어 키가 빠르게 크고 있어요. 조금만 더 크면 저를 넘어설 것 같네요. 30여년의 경험이지만 내가 느끼고 깨달은 모든 것들을 언제나 전해주려 했다는 걸 이 친구는 알까요. 이해 못하더라도 머리 속에 담아두라 당부한 내용들이 삶에 부딪치는 그 어느 순간 불꽃처럼 튀기를 바라건만... 각자는 각자의 계절이 있으니 재촉할 필요는 없지요.

언젠가 탐라에 사촌동생에게 제 노트북을 주며 당부했던 이야기를 적었어요. 견디는 걸 능사로 생각하지 말고, 방법을 찾으라는 단순한 내용인데 기실 이는 저 자신에게 당부하는 내용이지요.

프랑스 릴에서 교환학생 하던 때가 떠올라요. 사정이 좀 꼬여서 돈이 없었는데 점심 대신에 학교에서 수돗물을 마시고는 했어요. 어느 날 친한 교수님이 점심에 뭐 했냐 물어서 'tap water' 먹었다고 하니 갑자기 "오오... 푸어킴... 오오 푸어 킴..."을 수업 시간 내내 외치는 게 아니에요. 개드립으로 받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왜 이러나 하며 얼굴이 새빨개졌었어요. 그런데 수업이 끝나더니 저를 데려고 가 학장님에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 학생을 근로학생으로 일하게 하고, 협동조합에서 바우처를 타도록 하자고요. 협동조합 가입 서류를 작성하는데 마지막 질문이 "학업을 무사히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였지요. 갑자기 생각나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라고 적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흘러 서류에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그렇습니다. 그 때는 학규 형의 '저녁이 있는 삶'이 히트를 칠 때였습죠. 여튼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어머니는 이 일화를 언제나 가슴 아파하셨어요. 형태가 무엇이 되었건 상실을 마주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 모든 부모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 갈라지는 구석이 있지요. 그 때 어머니에게 드렸던 말이 사촌동생에게도 당부했던 저 말이었어요. 상실을 통해 새로운 마음을 배웠으니 대견해 하시라고요.

물론 인생이 나루토도 아니고 한 번 마음 먹었다고 사람이 쉽게 바뀐답니까. 그 뒤로도 마찬가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는 했지요. 작년에 몇 달을 펑펑 울고 나서 어떤 단계를 넘어선 것 같기는 한데, 이마저도 착각일지 모르겠어요. 광활한 태평양으로 나가보면 알아볼 수 있겠지요 ㅋㅋ

동네에 아버지와 동갑내기인 58년 개띠 어르신이 한 분 계세요. 고등학교 동문회 회장 선배님이신데 지역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분이세요. 친하게 지낸지 거의 16년도 넘었지요. 니놈 지금 모습을 보면 옛날 모습과 달라서 황당할 정도라고 놀리고는 하세요. 단순 '방법을 찾는 것' 외에 이것저것 모두 합쳐서요.

사람은 애정을 가지고 오래 지켜봐야 한다. 그렇게 종종 알려주시고는 했어요. 언제 변할지 알 수도 없고, 심지어 평생 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본인의 마음가짐만 갖추어져 있다면 애정을 가지고 오래 지켜봐야 한다고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백명을 가르쳐 4~5명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으세요. 분별없는 애정을 베푸는 분은 아니지만 그 끊임없는 마음은 항상 본받게 되요.

오늘 멀리 떠나기 전 큰절을 한 번 올렸어요.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제가 사촌동생을 대하는 태도에는, 그 선배님이 저를 대했던 방식이 많이 깃들어 있어요. 기실 사촌동생 뿐만 아니라 내 옆의 의미있는 타자를 대하는 방식이 그러하고요. 아직은 선을 긋기보다 감싸안으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어리고 어리석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물론 운영진으로서의 저는 그러면 안 되요. 집단 속에서 일정한 권한과 의무를 맡아야 하는 입장은 다수가 용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중시해야 하지요. 언젠가 변호사 친구랑 수다 떠는 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인과를 무한히 따라가다보면 세상에 이해못할 일이 없겠다만, 무자비한 편협과 무분별한 관용 사이 어딘가에 임의로 선을 그어야만 한다고요.

운영진을 지원할 때, 운영진이 되고 나면 사이트 내에서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교류를 줄여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그 때문이었어요. 그건 몇몇 회원 분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다언삭궁(多言數窮)을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는 다른 역할을 다시금 맡게 된 스스로에 대한 고려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늘은 꽤나 수다스럽고 싶은 새벽이라, 소회를 잠깐 풀어봤어요. 그러고보니 요새는 꽤나 수다스러웠던 것 같네요.

상실이 없는 삶은 인간답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상실을 메꾸고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무늬가 빚어진다고 믿거든요. 어차피 상실을 피할 수 없다면, 그걸 다루어 나가는 방법만큼은 제 손으로 선택하고 싶더라고요. 어찌보면 저는 이곳에서의 제 어떤 면모를 상실한 셈이지만, 그걸 다루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또 새로운 모습을 얻을 수 있을테니 신나기도 해요. 다른 운영진 분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저는 몇개월 간 꽤나 신나있고요.

에구구, 말이 길어졌네요. 여튼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82
  • 줓천
  • 잘 다녀오세요! 몸 건강히!
  • 무탈하게 잘 다녀오세요!
  • 잊지 않을게요. 반드시 꼭 돌아와주세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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