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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9/09 18:34:24
Name   Picard
Subject   현장 파업을 겪고 있습니다. 씁슬하네요.
안녕하세요. 중견기업 중년회사원 피차장입니다.
요즘 현장 협력사 파업으로 대체근무 들어가느라 밤낮없이 일했는데, 어제 저녁에 오늘은 근무가 없다고 공지가 떠서 여유가 생겼네요.

대부분의 제조업이 그럴것 같은데, 아웃소싱이 가능한 업무는 협력사(라고 쓰고 자회사라고 읽는)에게 외주를 주고 있습니다.
협력사 사장 및 팀원은 대부분 저희 회사의 (임원승진은 안될) 고참 부장들이 쓰임새(....)가 다하고 나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낙하산으로 내려갑니다. 사장으로 가시는 분은 퇴직금으로 그 회사 지분의 51%를 인수하는 형식이고, 그렇게 2-4년 사장을 하다가 다시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후배에게 51%를 넘기고 그만둡니다. (본인이 51%의 대주주지만, 임기 2년마다 갱신..)
차장에서 가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분들은 협력사의 팀장급으로 갑니다. 사장으로 가시는 분들보다 이른 나이에 가고 보통 60 정년까지 다니십니다. (애초에 차장에서 내려가는 사람이 잘 없습니다. 사직시킬 정도는 아닌데, 부장 승진이 막힐 정도의 애매한 사고를 치거나 줄을 잘못타서 부장 승진이 요원해지거나, 높은 분들에게 대들었다가 잘 안 풀려서 내려가거나 하는게 제가 본 케이스들.. )

그런데 몇년전에 현대(였던가?)쪽에서 이런 협력사를 싹 다 자회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비정규직 노조에서 정규직 고용을 요구했고 법원에서 '이정도 업무면 아웃소싱,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 맞다' 라고 판결이 나왔고, 그래서 현대(?)에서 자회사를 차려서 거기 정규직으로 고용을 했고, 노조는 당연히 '우리는 직고용을 원한다' 라고 다시 소송을 걸었는데 1심인가 2심인가까지는 '꼭 원청회사 직고용이 답이라고 할 수 없다. 자회사라도 정규직 고용했으면 맞는것 같다' 라고 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협력사 체제에서 자회사 체제로 변경합니다.
새 오너가 직원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극히 싫어 하기 때문에... (이분에게 직원은 필요할때 쓰다가 쓰임새 떨어지면 버리는 것) 자회사 하나를 만들어 여러개의 협력사를 통폐합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새 자회사 사장이 인사팀장 출신이 갑니다. 눈치없는 후배들은 '이제 공장 협력사 사장도 본사가 꿰차는구나~' 했지만, 저처럼 고참들은 눈치를 채기 마련입니다. '이건 협력사 노조 관리를 위한 것이구나...'

자회사로 이동하면서 여러가지 당근을 제시했는데, 기존 원청사 대비 80~85% 수준이었던 임금을 85~90%까지 올려주고, 복지도 저희 회사의 90% 수준으로 맞춰줬습니다. (현실적으로 이거보다 더 높여주면 저희 노조가 또 우리도 더 올려줘야지 하고 들고 일어날거라..) 그외에 저희 회사의 자회사가 아니라 그룹의 계열사다 같은 말장난 같은 조건도 있었고...
하지만, 3개 회사 300여명의 협력사 직원들중 1개 회사는 전원 이직, 나머지 2개 회사는 절반만 이직해서 약 100여명의 인원이 기존 협력사에 남게 되고, 자회사와 기존 협력사 이원화 체제로 굴러갑니다.

배경설명이 너무 길었네요.
하여튼 그렇게 100여명의 협력사 노조원들이 몇달동안 협상을 하다가 결국 기습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기존에 이미 파업권을 획득했고, 파업찬반투표도 찬성이 100%(보통 저희 회사 노조가 찬반투표하면 80% 전후 나옵니다.) 나왔기 때문에 불법은 전혀 아니고, 다만 전날 '우리 내일부터 파업임' 하고 기습적으로 파업을 했기에 초기에 우왕좌왕했습니다.

초반에는 제품 출하가 몰리고, 출하되어야 매출이 잡히기 때문에 가장 타격이 큰 월말 3-4일에 파업을 하면 회사가 손들겠지 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한것 같아요. 그런데, 회사는 저희 회사 및 자회사 직원들을 동원하는 걸로 대응했고, 노조가 기대했던것 보다 큰 타격을 못 입혔습니다. 3-4일 파업하면 월매출의 15% 정도 타격이었어야 하는데, 자격증이 필요한 포지션은 저희 회사 현장분들이랑 자회사분들중 자격증 있는 사람 찾아서 배치하고, 자격증 필요 없는 포지션은 사무직들을 정상 배치 인원수의 150%~200%로 인해전술로 나가면서 5% 정도의 미달로 어찌어찌 막았습니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파업을 하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급여가 안나갑니다. 열흘 파업하면 급여의 1/3이 안나오고, 이거저거 수당 따지면 더 안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파업을 한다는건 그냥 회사 안나오고 노는게 아니에요. 월급쟁이 수입 빤하고, 거기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한달 지출 계획이 있는 법인데, 갑자기 수입이 줄면 집에 뭐라고 하겠습니까...

파업 3일째에 협력사 경영진과 노조 집행부가 협상을 했는데, 노조측에서 '우리는 요구한거에서 하나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고, Yes 외에는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겠다.' 라면서 눈감도 입닫고 사측의 얘기에 무반응이었답니다. 그렇게 30분만에 결렬나고, 원청사(저희 회사)는 협력사에 '너네 잘못으로 너네 회사 직원들이 파업을 해서 우리 회사에 피해를 끼치고 있으니, 계약에 따라 도급계약 해지하겠다' 라고 공문을 보냅니다.
협력사는 '우리 이 계약 해지되면 유일한 고객이 없어지므로 회사 망합니다' 라고 호소문을 노조원 및 가족들(비상연락처)로 보냈고, 이때부터 조금씩 복귀자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현재는 30% 정도 복귀했습니다. 자회사는 채용공고를 내면서 압박을 하는데, 얼추 비공식적으로 '한달까지는 기다려주마, 그 뒤로는 복귀하고 싶어도 신규채용자들이 있어서 복귀 못함' 이라는 말을 퍼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노무쪽에서 전해들은, 복귀자들 말로는 '위원장은 그저 나 믿고 끝까지 따라 와라.' 라는 말만 할뿐 계획이 뭔지, 원청사의 강경기조에 강경으로만 맞설 것인지, 회사(협력사) 망하면 우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얘기는 전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파업은 2주를 채웠고, 회사는 손배소송을 걸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현장 투입되면서 받는 특별수당도 다 손배에 넣는 답니다. 저도 같은 노동자로서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파업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철저하게 패배로 끝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왜 이번 파업이 이렇게 실패했나 보면...

1. 노조의 쟁의기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 제가 노무쪽에서 들은 바로는 회사는 노조가 파업 안할거라고 봤답니다. 쟁의기금이 턱없이 부족해서요. 쟁의기금이 충분하면 집회도 크게, 여러번  할 수 있고, 파업기간동안 생활비 지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차 같은 대기업 노조는 협상하면서 손배소송 취소나 타결축하금 지급 같은 조건을 넣어서 파업기간동안 급여손실을 커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협력사 노조는 생긴지 얼마 안되고, 다시 자회사로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쟁의기금도 2/3이 빠져버려서 제대로 플랭카드도 몇개 못 걸고, 호소문 인쇄 배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집회도 파업 첫날 반나절 밖에 못했습니다.

2. 요구가 과도했고, 그게 블러핑이 아니었다.
  - 협력사 노조가 처음 요구한 것은 원청사와 동일 급여, 동일 복지였습니다. 원청사와 새로생긴 자회사간의 급여/복지가 10% 정도 차이 나고, 자회사와 협력사의 급여/복지가 10% 정도 납니다. (자회사는 복지라는게 좀 있는데, 협력사는 내세울만한 복지가 부족) 그런데 원청사 100에 맞춰달라고 하면, 원청사 입장에서는 자회사도 다시 110으로 올려줘야 하고, 원청사는 120 으로 올려줘여 하고, 그럼 다음해에 협력사는 또 120 올려줘여 하고.... 무한루프에 빠집니다. 그래서 처음에 원청사측에서도 실질적인 요구사항은 따로 있고 뻥카 확 지르는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거기다가 이해가 안가는건 '원청 직고용'이 아니라 '원청과 동일급여'를 요구했다는 겁니다. 원청에 그 업무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동일 임금 계산이 안되고, 법적으로 이 경우 회사가 장난칠 가능성도 있죠. '응, 우리 100 주는데, 너네 업무는 난이도가 어렵지 않고 기술력이 필요 없어서 계산된 급여가 이정도네?' 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 현장 업무 한번 안해본 사무직들이 일주일만에 90%를 소화 하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원청 직고용을 요구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3. 타이밍을 잘 못 잡았다.
  - 현재 원청 노조도 임단협중이고, 현장에서 집행부를 향해 '너네 어용이냐? 제대로 좀 얻어내자. 파업 한번 하자' 라는 요구가 많아요. 사실 협력사 경영진측에서도 '원청사 임단협 결과 보고 파업을 하든 뭐든 하자..' 라고 설득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8월말에 기습 파업을 했습니다. 원청 입장에서 이번 파업에 잘못 대응하면 원청 노조 파업까지 여파가 끼칠거라 강경하게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왜 노조 집행부가 두달을 협상했으면서 한두달을 더 못 기다렸나 궁금합니다. (저희 회사는 20년동안 파업이 없던 회사입니다.)

4. 원청 및 자회사 노조와 협력 하지 않았다.
  -  이건 사실 협력사 노조 입장에서 안한게 아니라 못한겁니다. 부끄럽지만, 회사 현장 분들이랑 일을 하다보면 '나는 원청사 정규직이고, 쟤네는 하청 비정규직, 협력사 직원' 이런 식으로 카스트 나누는걸 대놓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몇년전 협력사 노조 생길때 원청사인 저희 노조가 도움을 전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위노조인 금속노조 도움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 원청 노조는 한 10여년전 노조위원장이 '사무직 줄돈 있으면 우리 줘라.' 라면서 사무직과 현장 생산직을 가르는 협상을 했고, 그 전까지 회사에서도 임단협 결과에 준해서 사무직도 해주던걸 완전 이원화 시켜버렸습니다. 아마 그 기조에서 원청사 노조도 '저쪽 올려주면 우리가 덜 받는다' 라는 마인드를 집행부에서 가지고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한심....)  
  - 자회사 노조는 애초에 협력사 없애고 자회사화 한다고 할때 순순히 따랐던 사람들이라, 강경 노조 위원장을 따르지 않았을 사람들입니다. 만약 자회사 이전 없이 파업 찬반투표를 했으면 생각보다 찬성율이 낮거나 부결되었을지도 모르죠. 옮긴 사람들이 2/3 였으니...
  - 위에 '자격증' 필요한 포지션은 저희 원청 생산직이나 자회사 기술직들을 투입했는데, 노조간 협력이 되었으면 이걸 거부했을거고 그러면 회사도 지금보다는 많이 곤란했을 겁니다. 무자격자를 투입해서 중장비를 운전하면 불법이라 회사가 약점을 드러내게 되는거죠.

그래서 결국, 자회사 이직도 거부하고, 파업 찬반투표도 100% 찬성했을 정도의 노조원들이 열흘만에 1/3이 이탈할 정도로 이번 파업은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원청사는 원하던대로 협력사들과 도급계약 해지를 통해 회사들을 폐업시키고, 자회사화하는데 성공할 것 같고요. 아마 추석전까지 절반 이상이 복귀 할 것으로 예측되고, 이렇게 무너지기 시작하면 복귀자들이 급속히 늘어날겁니다. 저희도 첫주에는 휴일없이 주 7일을 현장 업무와 사무업무 동시에 다 하느라 죽을 것 같았는데, 열흘째 되니 복귀자들이 생기면서 현장근무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음주 시간표 나왔는데 더 줄었더군요. (월말, 월초 마감 및 실적 보고자료 만드느라 무지 힘들었는데..)

저희끼리는 대체 협력사 노조위원장이 왜 이런 악수를 계속 뒀나? 금속노조에서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이런 조언을 해줬으리는 없잖냐... 혹시 뒤로 회사랑 짜고 일부러 파업하고 망하게 한거 아닐까? 우리 회사 인사/노무라면 가능하다. 음흉한 놈들... 뭐 이런 음모론까지 얘기할 정도입니다.

이제 남은건 손해배상소속인데, 저희가 월 매출 10%만 빠지고, 영업이익률 5%만 해도 수십억입니다. 거기에 이런 저런 추가비용까지 하면 100억 가까이 될텐데, 끝까지 남은 수십명은 100억 가까운 손배소송에 시달리겠죠. (노란봉투법 시급합니다.) 아는 분중에 쌍용차분이 계신데 그분은 불법해고 투쟁하면서 일용직으로 버티셨습니다. (제대로 취업을 하면 안된다고..)  장외투쟁도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블라인드에 저희 원청 노조가 '협력사도 파업하는데, 우리도 한번 하자! 우리가 파업하면 사무직들로 못 채운다!' 라고들 하던데...
파업도, 시작하는 것 보다 언제 어떻게 어떤 조건으로 파업을 끝내고 타결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인데...

협력사도 파업 며칠 하면 회사가 백기 들겠지? 지들이 우리 없이 일이 될거 같아? 라는 근자감으로 달려들었다가 깨졌는데...
우리 원청 노조가 파업하면 회사가 백기 들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희 회사가 여기저기 공장과 물류창고 부지로 갖고 있는 땅값이 으마으마 합니다. 1조 넘어요. 회장은 파업하면 '아이고, 강경노조 때문에 우리 회사 망했어요~ 대통령님~ 조선일보님~ 강경노조가 수출만 1조 하는 토종기업을 망하게 했어요~' 하고 회사 문닫고 땅팔면 회사 인수할때 투자금액의 3배는 뽑습니다. 지금 저희 업계 공급과잉이라 회사 망하면 업계 다른 회사들 표정관리 하느라 바쁠거구요. (저희 10년전 처음 망했을때도 '시장원리에 따라 망할 기업은 망해야 한다. 공급과잉이다' 라면서 쌩까고 뒤에서 웃던 자들입니다.)

누울 자리도 좀 발 뻗을 자리 보면서, 어떻게 파업 끝낼지 전략적으로 사고하면서 좀... 질렀으면 좋겠습니다.
준비안된 파업으로 같은 노동자들이 철저하게 패배하는걸 옆에서 보는게 참... 슬프네요 회사에서 대체근무 들어가라고 난리를 치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저희도 씁쓸하구요  노동자는 이렇게 무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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