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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02/19 22:33:38 |
Name | joel |
Subject | (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
하지만 뒤를 돌아보고 앞을 대비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겼냐 졌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기고 졌느냐 입니다. '어쨌건 이기지 않았느냐' '어쨌건 OO 아니냐' 라는 말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르단 전은 경기의 승패 이전에 너무나도 끔찍했던 졸전이었습니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1. 빌드업을 위한 기초조차 없다. 후방의 센터백이 공을 잡고 빌드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데 전방과 후방을 연결해줘야 할 저 공간에 선수가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선수들로 이어지는 패스의 사선에는 모두 요르단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고요. 이 다음 장면에서는 이 구도를 깨뜨리려는 전술적 움직임도 없이 그냥 롱패스를 해버립니다. 이 경우는 롱패스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복안도 전술도 뭣도 없이 그저 공을 줄 곳이 없어 허겁지겁 걷어내는 것일 뿐이죠. 센터백에게서 공을 넘겨 받은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가 패스할 곳을 찾고 있지만 선수들이 전부 올라가서 공만 기다릴 뿐 가운데에는 요르단 선수들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롱패스로 한 번에 측면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양 날개가 높이 전진해 있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그조차도 아닙니다. 어디다 공을 줘야 하죠? 후방에서 공을 받아줘야 할 선수들이 모두 요르단 선수들과 딱 달라붙어서 제대로 공을 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도 오히려 오른쪽 아래의 요르단 선수 한 명이 추가로 남아서 자유로운 압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맞습니다. 이건 단순히 패스를 빼앗긴 김영권의 실수로 치부할 일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공을 가로챈 요르단의 10번 선수는 김영권이 패스를 하기도 전에 미리 패스 경로를 예측하고 뛰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선수들은 이미 압박에 갇혀 있고, 김영권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나마 압박에서 자유로운 레프트백 설영우에게 주는 것 뿐인데, 설영우는 지나치게 전진해 있어서 패스의 사선에 요르단 10번이 서 있습니다. 상대는 그걸 뻔히 알고 있었고, 이런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죠. 2. 공간을 점유하는 규칙도, 약속된 움직임도 없다. 한국이 후방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요르단의 선수 2명은 한국 센터백들과 아주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여유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왼쪽면이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레프트백은 지나치게 전진해 있고 그 자리를 커버하는 선수도 없습니다. 요르단의 10번은 흘낏 측면을 돌아보고는 왼쪽으로 넣어줄 수 있는 패스 경로를 막았고요. 어쩔 수 없이 중앙으로 공을 받으러 왔던 황인범이 더 밑으로 내려와 센터백 왼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공격진 전체가 공을 받으러 내려옵니다. 그 결과, 손흥민을 필두로 공격진 4명이 모두 센터 서클 근처까지 내려와 있어서 누구도 요르단의 뒷공간에 위협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요르단의 공수 간격 사이에 참 예쁘게도 밀집해 있어서 패스를 받아 뭘 해보기도 어렵습니다. 왼쪽 공간은 누구도 점유하지 않고 있어서 아예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레프트백 설영우는 너무 전진해 있어서 완벽히 고립되어 있고요. 다행히 황인범과 황희찬이 이 문제점을 알아차리고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황인범은 앞으로 전진하고, 황희찬은 왼쪽으로 내려와서 리턴 패스를 주고 받습니다. 이렇게 황희찬이 상대 수비 사이의 넓은 공간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척 보기에도 이 공격은 이미 글렀습니다. 쓸데없이 공 주변에 선수가 둘이나 몰려 있고, 요르단은 뒷공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3명의 선수들로 압박이 가능합니다. 혹여나 이 장면을 두고 이게 다 레프트백의 지나친 전진 때문이 아니냐고 하실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렇게 레프트백을 높이 올리는 전술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거든요. 다음 장면을 참고해 봅시다. 월드컵 우루과이전에서 나온 비슷한 장면입니다. 여기서도 레프트백 김진수는 화면에 잡히지 않을 만큼 높이 전진해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이재성이 왼쪽 공간으로 내려와 센터백과 김진수를 잇는 가교가 되어줍니다. 이재성이 내려온 공간은 손흥민이 메우고 있고, 나머지 공격진들은 넓게 넓게 서서 우루과이 수비진을 분산시키고 있지요. 그 결과 다양한 선택지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위 장면에서는 그러한 전술적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남는 건 고립 뿐이지요. 3. 중원에 숫자만 많다고 빌드업이 쉬워지는 게 아니다. 본래 한국의 포메이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박용우였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경기에서 박용우가 믿음직스럽지 못 한 모습들을 보여준 탓이지, 이번 경기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자주 밑으로 내려와 공을 받아주는 장면들이 보였습니다. 여기서도 이재성이 센터백 앞까지 내려가서 공을 받아주고 패스를 돌려준 후 올라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전방에 있어야 할 황희찬까지 중앙선을 넘어와 공을 받을 준비를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이득이 없다는 겁니다. 요르단이 아주 강하게 압박을 걸고 있는 것도 아니고, 중앙에 가담하는 선수 숫자를 늘려야 할 상황도 아닙니다. 요르단은 뒤로 물러서서 느긋하게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지원하러 중앙 공격수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어요. 황희찬이 내려온 탓에 손흥민은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에 둘러 싸여 고립되어 있고, 이강인도 공을 받아 뭘 해보기엔 공간이 너무 없습니다. 요르단으로서는 압박을 걸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스스로 물러나주는 정말 고마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공격진 3명이 옹기종기 센터 서클 근처에 가까이 모여 준 덕분에 요르단이 수비하기 아주 좋습니다. 또, 이 장면에서도 레프트백 설영우만 유일하게 화면에 잡히지 않을 만큼 높이 전진해 있습니다. 오른쪽의 김태환은 물러서서 공을 받아줄 수도 없고, 한 번의 롱패스로 상대의 후방을 타격할 수도 없는 정말 어정쩡한 자리에 서 있고요. 경기 내내 이런 식으로 설영우가 전진하고 김태환이 뒤에 있는 장면들이 나왔는데 이건 벤치의 전술적 지시가 있었다고 봐야죠. 설령 선수가 자기 위치를 잘못 잡았다 해도, 벤치에서 뛰쳐나와 당장 움직이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공간 점유가 이어지자 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가뜩이나 왼쪽 경로가 버려지다시피 한 상황에서 오른쪽 공간마저 텅 빕니다. 상대 수비가 좁혀오는 상황에서 무작정 공을 받아주러 가까이 가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패스를 받는 선수마저 압박에 노출됩니다. 전방으로 패스를 줄만한 곳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공격이 되겠습니까? 저 다음 장면에서 박용우가 패스를 받았다가 빼앗기고 역습 당하는데, 이건 박용우만 탓할 일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입니다. 빌드업에 있어서, 압박 당하는 동료를 돕는 방법은 무작정 공을 받아주러 가까이 가는 것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전진함으로써 상대를 넓게 끌어 당기고, 패스를 받아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요. 압박과 탈압박의 핵심은 패스의 선택지를 지우느냐, 늘리느냐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 명확한 예시를 우리는 이미 우루과이 전에서 선보인 바 있습니다. (데이터 주의: https://redtea.kr/pb/data/mine/Honeycam_2024_02_10_20_51_07.mp4) 단 두 번의 패스로 우루과이의 압박을 완전히 벗겨내고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만드는 전술적인 움직임의 정석. 김영권(19)이 압박당하자 김진수(3)는 공을 받으러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전진해서 수비를 끌고 들어갑니다. 그 빈 자리에 손흥민(7)이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고, 이재성(10)과 황인범(6)은 수비를 끌고 왼쪽으로 이동해 오른쪽에 공간을 만든 후 손흥민이 롱 패스로 멋진 전환을 성공시킵니다. 이 멋진 장면을 연출했던 선수들 중 대부분이 현 대표팀에 그대로 남아있고, 시기 상으로도 겨우 1년 3개월 가량이 지났을 뿐입니다. 이랬던 팀이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4. 나쁜 의미의 포지션 파괴. 스위칭의 기본조차 없다. 이 날 경기에서 내내 답답했던 빌드업 때문인지, 오른쪽에 있던 이강인이 공을 받기 위해 중앙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는 오른쪽 미드필더 황인범이 이미 중앙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이강인마저 빠져버리면 오른쪽이 완전히 비어 버립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이강인을 쓰려고 한다면 이강인이 중앙으로 내려오고 황인범이 밖으로 빠지는 스위칭 플레이를 해주던가, 아니면 라이트백 김태환이 전력질주로 오른쪽 공간을 잡아줘야 합니다. 하지만 둘 다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황인범은 이강인이 올라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챘고, 김태환은 거의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황인범이 좋은 위치에서 이강인에게 공을 받았지만, 금방 압박에 다시 갇혀버렸습니다. 그래서 기껏 좋은 자리에서 공을 잡아놓고 백패스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이 장면에서도 저 좁은 공간에 한국 선수 6명이 모여서 극히 비효율적인 공간 점거가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네요. 그리고 이 장면은 잠시 후 똑같이 반복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 옵니다. 이번에도 이강인과 황인범이 모두 중앙으로 몰리면서 오른쪽이 텅 비었습니다. 중앙에 3명의 선수들이 너무 밀집해 있어서 요르단은 수비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공을 잡은 박용우가 해봄직한 패스는 원터치로 황인범에게 주거나 아니면 백패스 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요르단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았죠. 박용우가 공을 잡기가 무섭게 이미 요르단 선수들은 박용우가 패스할만한 곳을 향해 쇄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새로울 것도 없는 장면입니다. 전반 내내 이랬거든요. 한국은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공간을 사용했고, 패스의 선택지와 경로는 늘 제한적이었습니다. 요르단은 일단 물러서서 이걸 지켜보다가 기습적으로 달려들며 박용우를 압박하는 것으로 쉽게 한국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저 패스 미스 때문에 박용우가 엄청나게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건 박용우 한 사람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박용우가 저기서 바로 앞의 황인범에게 패스를 넣어주지 못 하고 안이하게 백패스를 택한 건 잘못이긴 하나, 처음부터 완벽하게 전술적으로 실패한 이 장면은 선수 하나 갈아치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5. 전술의 실패가 아닌 전술의 부재. "과연 이게 우리에게 맞는 옷이냐, 사실 맞는 옷이냐고 이야기 하기 전에 '이게 옷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황덕연 해설위원. 이 날 경기장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없었습니다. 단지 11명의 프로 선수들이 있었을 뿐이죠. 하지만 이 날 경기장에서 나타난 형편 없는 경기력과 선수들의 실수들이 선수들의 몫으로만 전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수 한 명이 실수를 하면 그건 선수 문제겠지만, 모든 선수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건 감독의 책임이지요.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기는 커녕 실수를 안 하는 게 대단한 환경을 만들어 놓은 사람에게 화살이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축구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 합니다. 전문가가 아님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널린 식견 있는 축구 팬들에게도 견줄 수 없는 평범한 축구 시청자에 가깝습니다. 그저 남들도 다 아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들만 조금 아는 정도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가급적이면 축구 이야기를 할 때에 전술에 대한 평가는 최대한 자제해서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전술이 없다' 라고 하는 감독조차도 일개 축구 팬 따위에 비하면 차원이 다른 방대한 축구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전술이 없어 보이는 경기 조차도 알고 보면 전술이 없는 게 아니라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클린스만도 무전술 축구라고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만, 엄밀한 의미에서 진짜로 전술이 없는 것이야 아니겠지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클린스만에게도 기본적인 전술적인 방향 정도는 있을 겁니다. 중간중간 교체로 변화를 주기도 했고요. 그러나, 그 어떤 축구를 하건 간에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조차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선수들의 동선조차 겹치고 엇갈린 채 비효율적으로 방치되고, 공간의 점유와 배분에 있어서 최소한의 원칙조차 없는 축구를 어떻게 전술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한 두 번의 승리에 취해 전술의 부재를 '자율 축구' 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은, 법이 없어지면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믿는 헛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여 봅니다. 2014년 월드컵 예선 당시, 협회는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고 최강희 감독을 1년 시한부 라는 황당한 조건으로 선임하는 등의 졸속행정을 거듭하다가 월드컵을 1년 앞두고서야 홍명보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합니다. 이 홍명보 조차도 연령별 대표팀에서 성과를 냈을 뿐 프로팀 감독 경력은 전무한 사람이었고, 사실상 떠밀리듯 감독을 맡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이런 말도 안 되는 선임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 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지요. 그리고 14 월드컵은 우리가 02 월드컵 이후 유일하게 1승도 못 하고 탈락한 대회가 되었습니다. 홍명보는 국민적 비난 속에 떠났고 이로써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키워오던 차기 대표팀 감독감을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뿌리부터 불공정한 과정의 결과물이, 일단 시행해본다고 해서 공정해질 수는 없습니다. 부정하게 입학한 학생이지만 입학해서 공부 잘 할지도 모르니 일단 지켜보자는 말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설령 진짜 그렇게 해서 단기적인 성과가 난다 한들, 그 알량한 성과주의가 정당화 할 부정과 부패의 해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요. 축구 한 번 잘 했다고 끝날 거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 라는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줄 요약. 작별이다. 슈틸리케. '전직' 한국 축구 사상 최악의 감독. 클린스만이 오기 전에 한국에 왔을 뿐인 범부여.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3-05 08:1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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