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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2/09/30 18:34:37 |
Name | jo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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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대군사 사마의 감상. 나관중에 대한 도전. |
(yangsu bae 고깃집 사장님의 현란한 소금 뿌리기 기술과 철판구이) 저는 게으르고 둔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봤다는 것도 안 본 것이 허다하고, 본다 한들 유행이 다 지나가고 한참 후에야 보고 감탄하는 경우가 많지요. 대군사 사마의 역시 그러합니다. 벌써 5년 전에 나온 드라마이고, 한국 방영으로 인터넷에서 화재가 된 것도 4년 쯤 전의 일이건만 이제야 보고 감상을 씁니다. 중국의 삼국시대는 역사적으로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하나의 작품에 담기기에는 대단히 긴 세월입니다. 하진의 죽음(189)이 촉발한 혼란으로부터 통일 왕조의 서막을 연 고평릉 사변(249)까지만 해도 60년이죠. 그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인물들 중 이름 있는 자들만 모아도 수십 수백 명이 넘어가고, 삼국지연의 덕분에 우리에게 유명한 인물들만 모아도 열명이 가볍게 넘어갑니다. 조유손 3군주에 오호대장군, 공명중달만 따져도 벌써 열명이네요. 이렇게 기나긴 시대, 명멸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장구한 이야기 속에 녹여내어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야 하고, 그 커다란 줄기에서 가지를 뻗어나가며 등장인물들을 연결해야만 합니다. 이게 없으면 아무리 이야기가 재미있어도 술술 읽어나가며 이름들을 기억할 수가 없어요.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열국지, 5호16국 시대를 서술하는 자치통감 같은 책들을 읽어보세요. 여기도 세력들의 각축과 모사와 영걸들의 치밀한 모략들이 교차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넘치기는 하는데, 이야기에 중심축이랄 것이 없습니다. 등장하는 나라들 이름부터가 수십 개인데, 이 나라 이야기 했다 저 사람 이야기 했다 하다가 매력적인 인물이 나오나 했더니 얼마 못 가 죽어버리고 또 새 이름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의 친족들도 알아야 하고요. 이야기가 정신 없이 난잡합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삼국지연의의 주제는 명쾌하게 삼국시대를 설명합니다. 한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투쟁이지요. 초반부에 어지러워진 천하를 보여주고, 그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주인공 유비가 등장합니다. 유비를 돕는 형제들이 등장하고, 유비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조조가 대두하며, 유비의 방심 못 할 동맹인 제3의 세력 손권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 밖에 원소와 유표처럼 한 때 유비를 도와주었던 자들이나 여포처럼 유비를 핍박했던 자들의 이야기도 다뤄지고요. 때문에 유비와의 연결고리가 희박한 이름들의 이야기는 연의에서 생략되거나 간단하게 지나갑니다. 비록 유비는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죽지만 그 유지를 이어받은 제갈량이 제2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그러나 결국 제갈량 역시 수많은 노력 끝에 분사하는 것으로 삼국지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요약하자면 연의의 주제는 한漢과 한적漢敵의 투쟁입니다. 이 거대한 줄기를 가지고 수많은 가지를 뻗어나가 삼국시대의 인물과 이야기들을 연결할 수 있으니 대단히 훌륭하지요. 흔히 연의에서 유비가 주인공이 되고 미화되었다는 이유로 촉한정통론이나 나관중 개인의 성향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런 거 아니라도 이야기꾼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관중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유비가 아닌 다른 주인공의 관점에서 삼국시대를 서술하고자 한다 칩시다. 그러면 아래와 같은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삼국시대를 어떤 주제로 바라볼 것인가? 그 주제로 시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가? 그 주제를 씨줄로 삼아 다양한 인물들을 날줄로 엮고 극이 끝날 때 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저는 위 질문에 온전한 대답을 내놓은 작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유비 말고 누구를 주인공으로 해야 할까요. 일단 조조가 적합한 인물입니다. 창업군주이며 뛰어난 군인이자 시인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기에 소설로 써먹기에 훌륭하지요. 그런데 이야기 중간에 죽어요. 유비도 중간에 죽는 건 마찬가지지만, 유비는 제갈량이라는 슈퍼스타를 남겼습니다. 조조의 뒤를 이어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 인물? 저는 모르겠습니다. 조비도, 조예도 너무 일찍 죽어요. 더구나 ‘조조가 남긴 뜻을 이어간다’ 에서 그 뜻을 뭐로 잡아야 할 지 난감합니다. 아마도 삼국통일이긴 할 터인데, ‘천하의 3분의 2를 제압한 국가가 나머지 3분의 1을 반으로 나눠먹은 세력조차 어쩌지 못 하고 좌절하는 이야기’ 라니 어쩐지 이상합니다. 주인공은 강한데 적들은 약해요. 그거 재밌을까요? 그 다음 손권. 일단 오래 살았다는 거 하나는 장점입니다. 그런데 오나라는 중원의 다툼에서 비껴 있었던 세월이 너무 깁니다. 오나라 vs 외부 세력이란 구도로 삼국지를 이어나가기엔 연결고리가 너무 희박해요. 오나라의 산월족 토벌이나 강남 개발 등은 삼국시대의 판도와는 한 발 떨어져 있거든요. 손권의 무엇을 가지고 삼국시대를 설명할 거냐 하면...떠오르는 게 없네요. 창업군주들조차 이럴진대 휘하 무장이나 신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국 유비와 한漢이 그 시대를 설명함에 있어 얼마나 써먹기 좋은 꽃놀이 패인지만 재확인 하게 되는 거죠. 때문에 오늘날 삼국지를 가지고 창작을 하는 작가들은 대개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1. 큰 틀에서 나관중이 간 길을 따라가되 중간중간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인다. 2. 나관중이 쓰지 않은 것들을 쓰되 삼국지 전체가 아닌 일부의 이야기만을 쓴다. 3. 아예 삼국지의 구도와 인물만을 따와서 새로이 쓴다. 4. 그냥 일관된 주제와 이야기를 포기한다. 1은 가장 흔한 선택지입니다. 대표작으로 고우영 삼국지가 있지요. 2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작품은 조조 중심의 삼국지를 표방한 창천항로입니다. 조조가 죽으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조조로 시작해 유비로 끝난다는 평가처럼 삼국지의 함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 했습니다. 조조 vs 구시대적 유교질서 라는 구도는 역사왜곡을 제쳐두더라도 적으로 삼은 자들이 너무 허약해서 별 긴장감도 없고요. 게다가 유관장 3형제의 묘사부터가 연의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는 등, 연의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 했습니다. 결국 창천항로 또한 어쩔 수 없이 연의를 읽은 독자들을 고객으로 삼은 작품이지요. 창천항로의 그림작가(글 작가의 사망 이후 작품 전체를 책임진) 킹곤타는 정사 삼국지 무제기의 내용만 가지고 적벽대전의 허구설을 주장하며 ‘나는 연의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라고 자랑스레 선언하고 있습니다만, 이건 마치 부모가 사준 집에 살면서 ‘나는 내 힘으로 돈 벌어 성공했다’ 라고 말하는 철부지 도련님의 투정 같은 것이죠. 3도 최근 들어 흔해진 선택지죠. 저는 안 읽었지만 화봉요원이 대표적이겠네요. 4는 굉장히 드문 경우인데 삼국전투기가 해당합니다. 정통 삼국지를 포기하고 패러디와 개그로 많은 부분을 채우면서 각 전투들을 중심으로 삼국지를 서술합니다. 삼국시대 전체를 그려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이고 근래 보기 드문 쾌거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축이 없는 탓에 삼국지를 아는 사람에겐 재밌을지 모르나 모르는 사람에겐 불친절하며, 제갈량 사후가 재밌으려면 제갈량 생전의 이야기가 재미 없어야 한다는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삼국시대라는 거대한 고깃덩이에서 나관중은 맛있는 부위, 기승전결을 갖춘 코스 요리로 만들기 좋은 부위들만을 쏙쏙 발라내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나관중이 쓰지 않고 다듬어 내버린 재료도 물론 맛은 있겠지만, 그걸로 요리를 시도하던 조리사는 깨닫게 되는 거죠. 이걸 재료로 쓰다보면 나관중이 가져간 진짜 맛있는 부위를 즐기기 어렵다는 사실을요. 인간이 강가를 빌어 경작을 하는 것은 허용하되 인위적으로 물길을 통제하려는 것만은 한사코 거부하는 황하의 흐름처럼, 삼국지 또한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다양한 해석을 거부하는 매우 완고한 소재인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군사 사마의는 여태껏 범람한 삼국지 창작물 중에서도 매우 파격적인, 어쩌면 최초일수도 있는 과감한 시도를 한 작품입니다. 나관중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관중과 대등한 입장에서 삼국시대를 서술하려 했거든요. 비록 의대조 사건부터 극이 시작되며 그 이전 분량이 생략되긴 했으나 그 대신 제갈량이 죽고 한참 지난 고평릉 사변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거의 삼국시대 전체를 서술했다 해도 무방하지요. 이 드라마에서 관우와 장비는 나오지도 않으며 유비나 손권은 단역 수준으로 얼굴만 잠깐 비춥니다. 그 대신 위나라의 중신들과 내부 권력 투쟁이 집중 조명됩니다. 한나라를 지키려는 자들과 조조의 편에 선 자들의 대립, 휘하의 신하들을 그 개인이 아닌 그 뒤에 있는 씨족과 호족들의 이해관계로 파악하며 자유자재로 다루는 조조, 그 후계를 둘러싼 조식과 조비의 경쟁, 그들을 따르는 자들의 암투 등등이 주요소재가 되지요. 특히나 초반부에 나오는 조조의 용인술과 인재론은 기존의 삼국지의 영웅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개인과 가문' 이라는 소재를 제대로 발굴하여 매력적으로 보여줍니다. 순욱에게 중요한 건 순욱 개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순욱의 뒤에 있는 영천 호족 수천이다, 처럼 말이죠. 이는 나관중이 쓰지 않은 재료들을 가지고 나관중에게 도전해 보려는 실로 대담한 시도입니다. 유관장 도원결의 대신에 조조 조비 조식을 가지고 재미를 주면 될 것 아니냐는 거죠. 물론 이런 시도는 여태껏 얼마든지 있었습니다만, 위에서 말했듯 특정한 주인공과 주제를 가지고 삼국시대 전체를 서술하는데 성공한 작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국소적인 재해석이 아니라 큰 틀에서 이야기 자체를 바꿔보려는 시도를 한 작품은 제가 아는 한 대군사 사마의가 유일합니다. 완전히 가상의 영역으로 들어선 작품들은 제외하고요. 다행스럽게도 사마의는 유비를 대신할 주인공이 되기에 적합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사마의는 오래 살았습니다. 이거 무지 중요합니다. 아무리 잘난 인물도 일찍 무대에서 퇴장하면 주인공으로 쓸 수가 없어요. 사마의는 황건적의 난 이전에 태어나서 조예가 죽고 조방이 즉위할 때까지 살다가 최후의 순간에 승자가 되었으니 아주 훌륭하죠. 사마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면 삼국지의 거의 끝을 볼 수 있어요. 두번째, 사실상의 창업군주로서 수많은 군공을 세우고 많은 이들과의 접점을 만들었습니다. 그저 오래 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무대에서 오랜 세월 주연을 맡았단 말이죠. 삼국지의 슈퍼스타 제갈량과의 라이벌리처럼 이야기로 쓰기 딱 좋은 소재도 있고요. 평생 칼을 갈아온 이의 최후의 뒤집기 한 판, 듣기만 해도 소설 소재네요. 이만한 장점을 두루 갖춘 이는 삼국지 전체를 봐도 딱히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유비 이외의 주인공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들을 해소해줄 수 있어요. 그 대신 단점도 있습니다. 생애를 일관하여 한의 기치를 내세운 유비와 달리 딱히 삶의 전반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없다는 점, 조조가 개척한 위나라의 간판을 진으로 바꿔 달은 모반자에 불과하다는 점, 삶 자체가 투쟁이었던 창업군주들과는 달리 생에 종반까지 투쟁이라 할만한 것이 부족하다는 점 등입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밋밋해요. 그래서 대군사 사마의는 끊임없이 사마의의 삶을 투쟁 속으로 몰아 넣고, 그 투쟁으로 삼국시대의 중요 사건들을 엮어 서술합니다. 초반에는 가문을 구하기 위해 조조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조조의 후계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투며, 조비가 황제가 된 후로는 종친들과 반목하고, 조예의 밑에서는 제갈량과 맞서는 한 편 자신을 의심하는 황제로부터 살아남으려 애를 씁니다. 이 투쟁에서 사마의가 추구하는 건 자신과 가문을 위협하는 이들을 막아내고 살아남는 것이죠. 본디 큰 뜻도 없고 그저 가족의 안위를 바랐던 청년 사마의는 이 과정에서 서서히 냉혹한 철권독재자로 변해가고요. 드라마는 그렇게 꾹꾹 참고 막고 또 막아왔던 사마의가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때문에 사마의의 인생 전반기에서는 촉과 오의 이야기가 거의 비중이 없다시피 하지만 후반에 접어들어서는 제갈량과의 라이벌리 덕에 촉나라 이야기 또한 잘 써먹을 수 있고요. 이걸 기회로 상방곡 전투나 공성지계처럼 연의 속의 매력적인 소재들은 또 은근슬쩍 끌어다가 씁니다.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대군사 사마의의 주제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인 겁니다. 한과 한적의 투쟁이라는 연의에 비하면 제법 소박해보이는 주제지만, 또 그런 만큼 현대인들에게 잘 와 닿을만한 주제기도 하지요. 비록 이를 위해 모든 것은 사마의가 했다는 식의 지나친 윤색과 몇몇 캐릭터에 대한 역사 왜곡 수준의 각색을 동원해야 했고, 이 때문에 비판 받기도 하나 저는 어차피 재미를 주기 위한 창작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만 하다고 봅니다. 조비의 인성이 깨끗이 세탁된 것은 좀 심했다 싶지만요. 그 밖에 연출이나 조명, 배우들의 연기, 엑스트라 동원, 전쟁씬 등등 '드라마' 로서의 조건들도 훌륭한 편입니다만 여기선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대군사 사마의는 연의의 그늘에서 벗어났는가? 나관중과 다른 관점에서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어 창작자들의 오랜 숙원을 이뤄냈는가? 유감스럽지만 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삼국지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죠.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이 대군사 사마의 1화를 본다면 이해를 하기 어려울 겁니다. 도대체 조조가 누구고 헌제는 왜 꼭두각시인지, 의대조는 또 뭐고 한나라의 신하들과 조조의 부하들은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겠죠. 물론 이건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연의의 그림자가 너무나 광활히 퍼져 있기에 사람들이 다 아는 배경 지식을 설명하는 데에 초반부를 할애하는 건 시간낭비이기도 하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최소한 어린 시절의 사마의를 등장시켜서 그가 어릴 때 발발한 황건적의 난이나 동탁의 전횡, 큰 형 사마랑이 집안을 구한 이야기 등을 1~2화 만이라도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싶긴 합니다. 뒷부분에 가서 늘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더더욱 이나. 또한 삼국시대를 다루는데 삼국정립 단계에서 벌어진 군벌들의 다툼이 거의 생략되어 버린 것 역시 분명한 단점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 사마의 라는 인물 자체가 가진 어쩔 수 없는 단점이니 제작자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만. 마지막으로 조조가 죽으면서 긴장감이 뚝 떨어지고 사마의의 적들이 지극히 평면적인 악당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아쉬운 점입니다. 조조가 죽기 이전까지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사마의의 적들조차 입체적으로,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사마의가 자신의 숙적이었던 양수를 향해 ‘저는 당신을 적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을 볼 때면 거울을 보는 듯 했지요’ 라고 말할 정도죠. 그러나 조조 사후에는 조씨 종친들이 놀부가 되어 사마의를 공격하지요. 사마의 또한 그들을 용렬하고 탐욕스럽다 무시합니다. 또, 조조 생전까지만 해도 의미 있게 다뤄지던 '피폐한 민생과 고통받는 백성들' 이라는 화두가 후반으로 갈수록 너무 쉽게 퇴색되어 사라진 것도 아쉬운 부분이고요. 아쉽게도 이야기로서의 매력을 볼 때 대군사 사마의는 연의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다소 모자랍니다. 그러나 연의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마음 속에 기호를 형성해버린 작품이고, 검증된 길을 놔두고 다른 길을 통해 고전에 도전해야 하는 후대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만큼 해낸 것만도 충분히 박수를 보낼 일입니다. 저는 삼국지의 팬도 아니고 그저 연의나 삼국지 관련 만화를 조금 들춰본 정도라서 여태껏 삼국지 관련 창작물에 무관심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삼국지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3줄 요약. 1. 글쓰기의 신은 존재하며 그는 명나라 사람이다. 2. 견부인이 예뻤다. 3. 양수가 철판구이를 기막히게 맛있게 구워먹어서 야식 충동 느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10-11 07:3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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