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9/04/21 20:35:49수정됨
Name   메존일각
File #1   ydvil.jpg (238.2 KB), Download : 21
Subject   현대에도 신분제도는 남아있을까?


* 본 글에는 어떤 형태의 비하 의도도 담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제가 직접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것은 아니므로 사실관계에 있어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신분제도는 있을까요 없을까요? 현대에 돈이나 권력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신분제도 말고, 조선시대까지의 양반, 중인, 양인, 천인 등의 신분제도 말입니다. 저는 모 김씨 가문의 33대손이던가 그런데요.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할 뿐이지, 실제로도 양반이었는지 아니면 족보 세탁을 한 것인지는 모릅니다. 관심도 없고요.

신분제도는 주지하시는 바처럼 현재는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신분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공식적으로 혁파됐고, 그나마도 온나라가 뒤집힌 6.25 전쟁 이후 대부분 사라졌지요.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으로 경주 양동마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여강 이씨와 외가인 경주 손씨가 양대 문벌을 이루며 수백 년간 집성촌으로 발전한 곳입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라 많이들 가보셨을 테고, 가보신 분들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셨을 테죠. 한데 이 마을의 몇몇 기와집 외에 아직도 많은 초가집들은 옛날 양인들이나 양반집 외거노비들이 살던 가랍집이었습니다.

예전 관련 논문을 읽어본 바로는 신분제도가 1970년대까지 상당히 공고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시대가 변했지만 이곳은 여전히 조선시대였던 거죠. 때문에 그 옛날 신분이 낮았던 집의 젊은 사람들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기 상당수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집이 헐리거나 거주자가 바뀐 경우가 많고요. 초가집에 살던 사람들이 마을을 '아예' 떠남으로써 신분제도가 어느 정도 희석된 거죠.

저도 오랫동안 이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만, 2~3년 전 관련 연구를 진행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신분제도는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양반 자손들은 양인이나 천인 출신 자손들과 말조차 섞지 않는다는 말씀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양동마을 초입에는 기와로 지붕이 덮힌 초등학교가 있는데요. 몇 년 전 방문할 땐 신기하기만 할 뿐이었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학교에서 교육받는 아이들 간 미묘한 차별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경주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양동마을은 중요민속자료로써 보존되고 있었지만 세계유산에까지 등재가 됨으로써 마을 전체가 아주 엄격하게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등재된 세계유산은 별도의 세계유산 관리조직을 신설하고, 매년 정기보고서를 작성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하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아주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고서는 유산을 변경하는 행위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가옥들은 그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이미 새롭게 들어온 집의 주인들이야 종갓집 사람들과 만나도 별로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으나(모르긴 해도 마을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려면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고향을 떠날 수 없어서 여전히 집을 지키며 살아오신 분들은 21세기가 되어도 마을을 아예 떠나지 않는 이상 불편한 신분제 하에서 살 수밖에 없겠죠. 

원 취지는 문화유산이 됨으로써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박제가 된 셈입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5-05 13:0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74 문화/예술한문빌런 트리거 모음집 27 기아트윈스 22/03/06 4994 53
    1003 문화/예술한복의 멋, 양복의 스타일 3 아침커피 20/08/30 4684 5
    187 요리/음식한식판 왕자와 거지, 곰탕과 설렁탕 45 마르코폴로 16/04/18 9652 13
    842 정치/사회한일간 역사갈등은 꼬일까 풀릴까? 데이빋 캉, 데이빋 레헤니, & 빅터 챠 (2013) 16 기아트윈스 19/08/10 5993 14
    294 문화/예술할로윈 시리즈 2편: 서구문화의 죽음을 기리는 풍습 20 elanor 16/10/30 6721 3
    567 일상/생각할머니가 돌아가셨다. 8 SCV 17/12/28 6632 27
    955 일상/생각할아버지 이야기 10 私律 20/05/03 4280 17
    1130 일상/생각합리적인 약자 9 거소 21/09/19 5016 32
    944 정치/사회해군장관대행의 발언 유출 - 코로나 항모 함장이 해고된 이유. 4 코리몬테아스 20/04/07 5572 11
    524 일상/생각해외 플랜트 건설회사 스케줄러입니다. 65 CONTAXS2 17/10/05 12257 18
    505 정치/사회핵무기 재배치의 필연적 귀결에 대한 "무모한" 설명 43 Danial Plainview 17/09/04 6035 3
    713 일상/생각햄 버터 샌드위치 30 풀잎 18/10/13 7300 24
    144 경제행복과 행복에 관한 생각들 21 Moira 16/01/21 9978 5
    733 기타향수 초보를 위한 아주 간단한 접근 18 化神 18/11/22 7048 23
    1152 일상/생각헌혈하는 것의 의미 9 샨르우르파 21/12/14 3745 24
    1029 정치/사회현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_ 관심에 대해서 9 Edge 20/11/09 4354 10
    1188 정치/사회현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결정적인 이유 63 카르스 22/04/19 6685 21
    797 역사현대에도 신분제도는 남아있을까? 10 메존일각 19/04/21 5639 11
    368 기타현실 직시하기, 그것의 어려움 39 은머리 17/02/17 7634 14
    1326 일상/생각현장 파업을 겪고 있습니다. 씁슬하네요. 6 Picard 23/09/09 2863 16
    239 정치/사회혐오를 정당화하는 자들에 대한 혐오감 56 데스꽁치 16/07/27 8437 18
    735 정치/사회형벌의 목적, 책임주의, 그리고 음주운전 28 烏鳳 18/11/20 6194 35
    1204 일상/생각형의 전화를 끊고서, 진토닉 한 잔을 말았다. 4 양양꼬치 22/05/26 3793 33
    406 일상/생각호가호위 12 헬리제의우울 17/04/06 6161 11
    376 일상/생각호구의 역사. 23 tannenbaum 17/02/27 5848 28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