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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4/24 23:24:39수정됨 |
Name | 메존일각 |
Subject |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고택의 현황과 활용상 문제 |
* 뾰족하게 어떤 결론을 내고자 하는 글은 아닙니다. 그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요. 보존가치가 있는 전통 건축물들은 국가민속문화재(구 중요민속문화재)나 지방민속문화재, 사적 등 문화재로 지정됩니다. 개중에는 격이 좀 낮은 기념물도 있고, 문화재적 가치는 있지만 지정까지는 안 된 비지정문화재도 있습니다. 아무튼 유형 문화재들은 전국에 퍼져 있는데 경북 지방에 더 많고, 사찰 건물이나 양반집 민가 비중이 높습니다. ## 문화재 지정 고택의 현황 민가(살림집) 고택들은 현대식 가옥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이 살기는 참 불편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중부지방 이하 기준으로) 한옥은 겹집(앞뒤로 방이 붙은 집)보다 홑집(방들이 일렬로 늘어선 집)이 많고, 벽체를 구성하는 흙은 스티로폼보다 단열효과가 떨어져 겨울에 더 춥습니다. 집으로 들기 위해선 기단에 올라야 하고 문을 넘나들 때도 하방의 턱이 높아 불편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부재가 뒤틀리고 벽채가 갈라져 꾸준히 보수도 해줘야 합니다. 보통 한 변이 8자(2.4m) 이내로 구성되는 단칸 방은 어찌나 작은지 가구라도 한 두개 놓는다 치면 발 뻗고 잠도 편히 못 잡니다. 고택에 오래 거주하신 분들도 살기가 불편한 건 매한가지입니다. 거주자의 상당수가 노인이 되어 다리도 불편하고 거동이 쉽지 않은데 공간이동이 불편한 한옥에서 사시려니 오죽하시겠습니까. 요즘의 현대화한 한옥이라면 양옥 대비 시공비는 비싸다 해도 재료도 마음대로 쓰고 집 구조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고치지만, 문화재로 지정되면 집주인이라도 구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생활의 불편함을 줄일 수 있도록 '중요민속문화재 생활기본시설 설치기준' 등을 통해 변경이 가능한 범위를 정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현대식 가옥보다는 못하니 거주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작게라도 변경을 거치면 문화재 원형이 훼손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고택 관리의 어려움 이런 고택은 대체로 안마당 바깥마당 등등 건물마다 마당을 끼고 있어 면적이 넓은 게 특징입니다. 그런데 거주자의 상당수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이 넓은 땅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히 버겁겠죠. 문화재로 지정되면 국가 또는 지자체에서 일정 정도 지원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집을 제대로 유지할 정도는 아닙니다. 한때 마을 유지의 집이나 종택이었더라도 지금은 거기에 사시는 분들이 별로 없게 된 중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대 가옥도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습한 곳은 곰팡이로 가득차는 판에, 한옥은 집 대부분의 재료가 습기를 잘 머금는 목재와 흙으로 되어 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한옥은 그대로 놔두면 서까래 내부가 썩고 추녀와 사래가 처지면서 기와 변형이 일어나고, 벽체는 갈라지거나 회칠이 떨어지고 배부르며, 기둥 밑둥은 썩어 결국 집을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갑니다. 시골의 한옥 폐가들이 딱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지요.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의 집주인 분들이 나가 사시더라도 이를 테면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여 문 좀 열어주고 구들장도 뎁히고 합니다만 직접 사는 것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관광객 등 일반인의 출입도 허용하지만 내부까지는 공개를 잘 안 하기 때문에 사람이 드나든데도 방치된 것과 별 차이는 없고요. 오히려 잘 살던 거주자가 관광객이 부담되어 나가서 사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도저히 집을 유지할 수 없어 소유권을 지자체에 넘기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러면 집의 상태는 급속히 나빠지겠죠. 아예 관리하는 사람도 없이 페가처럼 방치되는 곳들도 적지 않습니다. ## 보존 정책의 비현실성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에 CCTV 설치 비용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CCTV를 설치해도 소유주 분들이 작동을 잘 안 시킨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CCTV 작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기요금 등을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방문한 경북의 모 종택 사모님은, 매달 8만원 정도의 금액이 부담되어 아예 꺼둔다고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연 100만원이면 적지 않은 금액이니까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장비를 설치했건만 사용조차 안 한다니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죠. 거주자 분들은 관에 몇 가지를 요구합니다. 그중 하나가 집은 그대로 놔두고 자그마한 별채라도 하나 지어주면 거기서 살겠다는 겁니다. 한데 내부 공간에 별채를 짓자니 문화재현상변경에 해당하여 절차가 까다롭고, 별도의 부지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이후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까지 뭐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그냥 안채에서만 살 테니 사랑채라도 개조하여 한옥스테이처럼 해달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랑채를 개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문화재 자문위원들이 와서 취향에 맞게 툭툭 몇 마디 던지고 가면 그게 관을 거치며 말이 또 달라지고 사업은 점점 산으로 갑니다. 집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집이 망가지는 경우가 흔하지요.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절차'대로 행했으니까요! ## 고택 활용의 한계 내 집인데 내 마음대로 집 구조도 바꿀 수 없고, 별채도 안(못) 만들어주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집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조된 건물을) 숙박시설로 활용하거나 집에서 신혼부부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전통 혼례 체험을 하거나 전통 다과나 음식을 제공하는 등 여러 모로 쓰읾새가 생기길 바랍니다. 사람이라도 드나들면 적적하고 심심한 게 덜할까 해서요. 요샌 관광공사를 필두로 한옥 스테이 개념도 부각되는 모양입니다만, 근본적으로는 고택을 한옥스테이로 등록해주고 숙박시설에 필요한 약간의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정도에 그칩니다. 농사나 겨우 짓는 노인 분들이 한옥 스테이에 쓰일 만한 색다른 콘텐츠를 직접 만드실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을 관계 부처에서 직접 제공해줘야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더욱이 아예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공간을 구성하고 조경에도 신경 쓴 단정한 신축 한옥들도 하나 둘 늘면서, 고택은 '오래되어 보존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 말고는 소비자들이 찾아와 묵을 만한 메리트가 별로 없는 것이 솔직한 상황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문화재청이나 지자체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국가지정 문화재가 아닌 이상 관리할 인력이 없습니다. 문화재에 별 이해가 없는 행정 공무원들이 문화관광과에 자리를 채우는 지방 관청은 더하지요. 가뜩이나 한직인데 일은 많고 보람은 적으니 활용에 대해 직접 신경쓸 생각도 여력도 없습니다. ## 마치며 도심에 사는 분들은 눈에 안 보이는 곳의 얘기라 쉬이 실감이 안 나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와 극명히 대비될 만한 활용이 아주 잘 되는(그보다는 대단히 신경을 쓰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고궁입니다. 예컨대 경복궁은 1990년부터 행해진 제1~2차 복원사업을 통해 많은 전각들이 복원되고 있습니다. '민족 정기의 회복'을 명분으로 삼은 구 조선총독부 청사 폭파는 경복궁 복원과 관련된 상징적인 사건이죠. 경복궁의 강녕전 등 침전영역이 복원된 지는 벌써 이십 수년이나 흘렀습니다. 그리고 본래 왕과 비, 세자와 세손, 환관과 궁녀 등 수많은 이들이 살고 있던 궁궐은 이제 더 이상 거주를 위한 공간이 아니며 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개별 복원 건물의 법식이 잘 맞는지, 건물들이 원 위치에 잘 세워졌는지 등 고증의 문제나, 궁궐은 본래 건물 하나라도 수많은 의미를 부여해가며 지었는데 현대의 복원이 과연 거기에 부합하는가 하는 철학의 문제 등 논란도 여럿 있습니다. 그래도 논란을 뒤로 하고 어느 정도 외형을 갖출 만큼 복원이 되자 문화재청은 종묘제례 등 공식 국가 의례의 재현이나 달빛기행 같은 해설관람 프로그램, 궁궐의 일상 체험 프로그램이나 궁궐과 관련된 인문학 특강, 미디어 파사드 등을 기술과 연계한 문화행사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궁궐이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품격은 높게, 문턱은 낮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성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죠. 일반 살림집이야 국가지정문화재나 지방지정문화재냐에 따른 격의 차이도 있고, 예산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관리에 한계가 분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잘 보이는 곳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고 잘 안 보이는 곳은 너무 방치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건축물의 형태를 굳이 유지할 거라면 거주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 상황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5-05 13:0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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