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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23 09:43:58수정됨 |
Name | 호라타래 |
Subject | 섹슈얼리티 시리즈 (6) - 좋거나, 나쁘거나, 미운 폴리아모리 |
Séguin, L. J. (2019).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Lay attitudes and perceptions of polyamory. Sexualities, 22(4), 669–690. https://doi.org/10.1177/1363460717713382 들어가며 이 논문 소개에서는 폴라이모리를 둘러싼 여러 태도와 인식들을 살펴봅니다. 과거보다 일반화 되기는 했지만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하지요. 부담없이 슬렁슬렁 읽을 수 있는 서술적인 내용입니다. CNMs? 논문에서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폴리아모리 대신, consensual non-monogamies(CNMs)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합의에 따른 비독점적 관계'이라 길게 번역할 수 있겠네요. CNMs에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1) open relationship : 두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도 따로 섹스를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1:1 관계를 유지 2) monogamish / threesome-only / swinging relationship : open relathionship과 비슷하지만 배우자 서로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만 타인을 불러 함께 섹스하는 형태 3) polyamorous relationship : 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1:1 관계에서 독립된 형태 정도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CNMs는 원나잇이나 Friend with benefits(FWB) 등 가벼운 성적 관계와는 달리, 어느 정도의 관계 헌신을 요구합니다. CNMs에 대한 태도와 인식 CNMs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다만 CNMs을 향한 인식의 구조는 개인을 둘러싼 여러가지 사회적 요소와 연관을 맺지요. 결혼이나 독점적 연애 관계인 사람들이 CNMs에 부정적인 인식을 지닌다거나, 정치적 보수수의/종교적 근본주의 등이 폴리아모리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역의 관계를 지닌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몇몇 연구는 폴리아모리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사랑'을 언급할 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 진다는 조사를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고, 때문에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낙인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폴리아모리를 향한 부정적 인식은 폴리아모리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가정에 근거를 둡니다. 또한 진화심리학 관점을 차용하는 많은 연구들은 질투나 애착 같은 감정이 인간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기능을 한다고 바라보면서 폴리아모리를 향한 부정적 판단에 근거를 제공했지요. 연구방법 연구는 질적 연구입니다. 온라인을 바탕으로, 공개되어 있는 자료를 질적으로 분석해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인식과 태도를 귀납적으로 밝히고자 합니다. 분석은 주제분석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생략! 관심있으신 분은 pp.672-673을 보시면 됩니다. 온라인 기반의 참여관찰로 요약할 수 있고, 저자는 폴리아모리 관련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플랫폼 참여자들이 평균적으로 어떤 사회경제적 특징을 지니는지도 병행해서 제시합니다. 본문 중 일부 '열린 사고과 넒은 마음': 타당하고 유용한 폴리아모리 사람들의 폴리아모리 담론에서 앞서 언급한 open relationship, monogamish 등은 뒤섞여서 사용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폴라아모리가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 타당성과 유용성을 주장했어요. 이 때 직/간접적 경험으로 주장을 뒷받침했고요. "내 절친은 폴리아모리 결혼 커플이고, 여자가 죽기 전까지 4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어요. 전 폴라이모리 관계를 30년 동안, 폴리아모리 결혼 생활은 12년 간 유지했어요. 제 친구만큼이나 멋진 결혼 생활이었고요. 수많은 사람들이 폴리아모리 결혼을 해요.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요. 결혼도 그렇잖아요? 하나로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죠 My best friends are a polyamorous couple who were married over 40 [years] when she died and they were poly the entire 40 [years]. I’ve been poly for 30 [years] and in a poly marriage for 12, we have a great marriage, as did my best friend. I know LOTS of people for whom it works great! But it’s not for everyone, just like marriage. One size does not fit all!" 이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폴리아모리 관계를 사랑, 헌신, 평등주의, 참여자 간 진실하고 열린 대화, 동의 등의 언어로 표현했어요. 더하여, 폴리아모리는 질투 등을 넘어서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요. 컴퍼션(Compersion)이라는 감정이 새롭게 정의되요. 질투에 반대되는 용어인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는 걸 보며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즐기는 개념' 입니다. 이런 감정은 폴리아모리가 작동하기 위해 타당하고 본질적인 요소로 제시되지요. 에릭에 따르자면, "우리가 관계나 결혼을 독점적인 것으로 인지하도록 사회적으로 조건되어 지지만, 그게 인간 본성일 필요는 없어요. 당신 배우자가 즐거운 성적 조우를 찾아 당신을 떠나는 걸 기뻐하는 건 덜 사회적이지도 않고요. 반대로, 저한테는, 이건 가장 진정한 형태의 무조건적 사랑이에요 While we are socially conditioned to be monogamous in a relationship/marriage, that isn’t necessarily human nature. To be happy that your partner had an enjoyable sexual encounter away from you is even less socially acceptable. Yet, to me, it is probably the most sincere form of unconditional love. ' 컴퍼션 경험은 한 개인이 상대방의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권리(entitlment)와 소유권(ownership) 없이도 사랑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제시되요. 이런 '무조건적' 사랑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숙을 전제한다고 이해되고요. 그 외에도 폴리아모리 파트너들 사이에 공개적이고 진실된 의사소통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는, 혹은 질투를 극복해야 하기에 내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다는, 여러 사람이 한 가구를 구성하기에 재정적/물질적으로 자녀 부양에 긍정적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폴리아모리의 장점을 나열합니다. '누군가는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어요': 지속불가능한 폴리아모리 대다수는 폴리아모리가 타당하지 않고, 지속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니 폴리아모리 관계는 일시적이고,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고요.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사람들은 폴리아모리 관계가 그 본질과 구조 때문에 불안정과, 분노/고통/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촉발한다고 이해했어요. 그러니 폴리아모리 관계는 관계와 관계 참여자들에게 해로운 것이었지요. "우리는 이를 판타지랜드라 불러요. 저를 포함한 그 누구도, 어떤 때이건, 심지어 찰나의 순간이더라도, 분노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충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닭들이 집으로 돌아오리라 진심으로 믿지 않습니다 FantasyLand is what it’s called. NO ONE, including [the author] here, can TRULY believe that, at some time or other, even if not immediately or short-term, ‘the chickens won’t come home to roost’ in resentment, feelings of inferiority, unfulfillment [sic], etc." 독점적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개방하는 건 관계를 위협하는 일이며, 배우자를 모욕하는 일이지요. 질투는 필연적인 감정일 뿐만 아니라, 다루기 힘든 감정이기에 갈등을 야기하고 관계를 해체시킨다고 이해되요. 조시가 말하기로는, "여러 사람과 사랑을 하고 헌신할 수 있다는 건 환상이죠. 인간은 언제나 질투에 취약하고, 그 감정이 끝으로 차오르면 얼마나 악을 불러일 으키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잖아요 It is an illusion for anyone to think that they can be in a committed relationship and have multiple lovers because humans being humans are always prone to jealousy, and when full-blown, you cannot imagine how much evil this emotion can cause." 이런 주장은 폴리아모리를 다룬 몇몇 기사들이 '질투라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관련된 흐름을 세세히 기술하는 것과 공명해요. 질투에 눈 먼 파트너가 상대방이나 제 3의 파트너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무리를 써서라도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그런 흐름이요. 질투는 그 자체로 [간관계적 통제 기제(intrarelationship control mechanism)]로 정의되지요. 또한 폴리아모리가 불안정한 것으로 제시되는 만큼,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너무 비용이 크다고 묘사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도착적 생활양식을 퍼트려고 해요": 도착적인, 비도덕적인, 매력없는 폴리아모리 폴리아모리 관계가 필연적으로 불안정하고 붕괴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은 폴리아모리가 '가정'을 붕괴시키고, (폴리아모리 커플의) 자녀들에게 해롭다는 인식과 연관됩니다. 에밀리에 따르면, "애들은 완전한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25년간 축적된 자료가 있어요. 가정의 붕괴를 촉진하는 모든 것들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대한 관심을 받아야 해요. 한부모 혹은 이혼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폭력 범죄에 가담하기 쉽고, 학교에서 성취도 낮으니까요. 이런 순환은 자기영속적이에요. There is over 25 years of hard data proving that children have the best outcomes when raised in intact homes. Anything that promotes the destruction of the family should be of grave concern from a sociological perspective because children from broken and single-parent homes are far more likely to become engaged in violent crime, perform poorly academically, become impoverished as adults and for girls specifically, are 75% more likely to end up divorced themselves, thus perpetuating the cycle." 폴리아모리와 이혼, 가정붕괴를 연관시키는 도식은 폴리아모리가 사회의 기초에 해롭다는 관점과 연관되지요. 많은 이들은 온전한(intact) 핵가족을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폴리아모리가 사회를 붕괴시키리라는 이해는 무도덕성(amorality)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되요. 톰이 말하기로는, "제가 무도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저는 도덕성이 진화적인/미학적인 세계관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써요. (...) 방정식에서 신을 제외하면, 윤리와 도덕은 사람들 각자의 것일 뿐이겠지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고,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 것도 없고요. (...) '누구든지 언제든지 원하는 사람과 섹스하라'는 태도는 가족을 상처입혀요. 물론 그게 불법적이라 규정하는 법은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옳다는 뜻은 아니에요. 사회에 도움이 되거나 혹은 심지어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이롭다는 뜻도요. 신이 우리에게 도덕적 기준을 드러내보인 나름의 이유가 있으시고, 이는 즐거움에서 거리를 두는 건 아니에요. 신의 도덕은 우리를 해악으로부터 보호하고, 축복을 주며, 사랑과 관심을 나누어줘요. 신은 그 자신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섹스라는 선물을 주셨지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섹스는 오용될 수 있고 저주로 돌변할 수 있어요 (...) 폴리아모리가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 뿐만 아니라 이혼 증가, 성병 증가, 사회 내에서 가족과 결혼의 가치 약화를 포함할 수 있어요. When I use the word amoral, I mean that morality cannot be derived from an evo- lutionary/atheistic worldview. [...] When we remove God from the equation, ethics and morality is a free for all. Each to his own. There is no absolute right and wrong, ethical or unethical. [...] This type of ‘hook up with whoever you want to whenever you want to’ attitude will damage families. Of course there is no law against it so it is legal, but that does not mean it is right, helpful to society, or even beneficial to the people involved. God has a reason for revealing moral standards to us and it is not to keep us from having fun. God’s morality protects us from harm and brings blessing and are given out of love and concern for us. He gives His blessing on the gift of sex He has given to us, but as anything, it can be misused and turn into a curse. [.. .] Costs to society from polyamory could include more divorce, more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 an overall weakening view of marriage and family in society, as well as a continuing moral breakdown in individuals." 종교적 관점이 포함되면 폴리아모리는 신이 정한 결혼의 정의를 위배하는 걸로 해석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폴리아모리 참여자들이 폴리아모리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고 인식하고, 따라서 사회를 해체시킨다고 보았지요. 세세히 보자면, 폴리아모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밀어붙여 새로운 폴리아모리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비판했어요. 전반적으로 폴리아모리를 기술하는 논조나 단어들은 동성애혐오 담론과 닮아 있어요. 종교적 관점 외 진화론적 논조를 견지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질투가 관계를 단혼화시키기 위해 진화한 감정이라거나, 인간은 단혼적 관계를 맺도록 진화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폴리아모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미성숙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애적이고, 멍청하고, 진실성과 자기존중이 없다고 표현하고는 했지요. 섹스 중독이라거나, 성병을 퍼트린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Rubin(1984)이 제시했던 성적 위계(sexual hierarchy)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어요. 서로 다른 성적 행동과 섹슈얼리티는 다른 사회문화적 위계에 위치해 있지요. '각자의 삶이 있는거죠': 받아들일 수 있는 폴리아모리 몇몇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를 긍정적으로 기술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좀 더 미묘한 방식으로 폴리아모리를 수용했어요. 중립적인 뉘앙스로 '각자 삶이 있는거죠'라 접근했지요. 이 관점은 사람들은 각자에게 맞는 관계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봐요. 관계가 윤리적으로 유지되는 한, 이런 개인적 선택은 외부의 판단을 보증하지 않지요. 여전히 폴리아모리는 독점적 관계와 비교되고는 하지만, 차이를 강조하기 보다는 폴리아모리를 일반화(normalize) 하기 위해 비교되요. 사라는, "더 성숙한 것도 아니고, 더 나은 것도 아니여요. 그냥 다를 뿐이고, 몇몇 사람들에게는 잘 먹힐 뿐이지요It’s not more mature, it’s not better. It’s just different and it works for some people"라 주장합니다. 캐시에 따르면, "모두에게 들어맞는 완전한 스타일이란 없어요. 불안, 경쟁, 안전, 성병 등등... 각자 어떻게 관계가 잘 작동하는지 말할 거리를 가지지요. 저는 모두에게 들어맞는 하나가 존재하기를, 모두에게 힘을 불어넣는 관계를 유지할 확실한 방법이 있기를 희망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그게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고, 각자의 이상과 가치를 지니는 놀라움 아니겠어요 There is no one perfect style to fit everyone. Insecurities, competition, security, STD’s and more, all have a say in how well any relationship works. I wish there was a one size fits all and a sure way to keep relationships energized for everyone, but there isn’t. That is the wonder of being human and having our own ideals and values." 관계 구조와 계약 방식은 영속적으로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와 조응하는 것이기에, 폴리아모리도 독점적 관계도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며, 사회문화적 산물이라 이해됩니다.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에요': 결함으로서의 폴리아모리 여러 사람들은 폴리아모리를 관계 속에서 무언가 결여되어 있을 때나 가능한 선택지라는 인상을 공유했어요. 열성, 친밀감 등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공통적인 건 '사랑'의 결여였지요. 이 관점에서 보자면 독점적 관계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폴리아모리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을 거예요. 사실 이런 관점 - 사랑과 헌신이 비독점적 관계와 양립 불가능하다 -은 선행하는 관계 연구(relationship research)에서 변수를 정의하고 조작하는 방식에도 녹아들어가 있어요. 예를 들자면 관계 헌신을 타인과의 사랑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이라 정의한 Acker와 Davis(1992)처럼요. 앞서 언급했던 컴퍼션은 오히려 사랑과 헌신이 전혀 없는 것으로 이해되요. 엠마는 "제가 만약 제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허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도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 순간 사랑과 열정이 죽었다는 걸 깨닫고 보내줄걸요 When I feel happy about the idea of my husband ‘‘banging’’ someone else, I will know it’s dead – all the love and passion, and I would let him go’."라 말했어요. 서구 문화권에서 사랑, 섹스, 헌신은 상호연결되어 있고, 독점적 관계라는 범위 내에 국한되어서 이해되요. 사람들이 컴퍼션이라는 감정을 관계 속에서 타당한 감정으로 경험할 여지는 없지요. 때문에 사람들은 컴퍼션을 경험했다는 몇몇 사람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어요. 그것이 과연 진실된 감정인지를요.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관계맺는 걸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건 원래부터 관계에 문제가 있었거나, 복종/정당화 기제로서 혹은 고통을 숨기기 위해 컴퍼션을 경험한 것으로 이해했지요.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은 컴퍼션은 대개 혹은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 경험한다고 믿었어요. 릭에 따르면, "흥미로운 것은... (폴리아모리 이야기의) 저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들의 선언은 계몽된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극단적인 평등주의로 위장된 복종적 자기 혐오에 가깝지요. 불평등한 사회에서 폴리아모리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모르몬 교도들의 관계 양식과 닮아있어요. 어느 일요일 오후에 아내가 새로운 남자와 하고 온 이야기를 즐겁게 말한다면, 남편이 얼마나 '컴퍼션'을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Interesting .. . though I find it of no coincidence that the author is a woman, which makes her declarations seem less a product of enlightened thinking and more like submissive self-abnegation disguised as radical egalitarianism. Polyamorism [sic] in an unequal society means this ‘love partnership’ is, in actuality, more akin to some polygamous Mormon sect than anything else. I wonder how much ‘compersion’ her husband would feel if he – after wondering for years whether his wife had a sex drive – had been subject on some sunny afternoon to his wife’s gleeful recount of getting it on with a new man" 릭이 보여주듯이, 컴퍼션 경험은 이성애적 맥락 속에서 젠더화되고, 불균형적으로 인식되요. 그 기저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자신들의 동의 방식을 더 정당화하고, 불평을 더 숨긴다는 관점이 있었지요. 논의? 언제나처럼 분석은 생략합니다. 연구 자체도 분석이나 종합보다는 귀납적 기술과 유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나가며 위 연구에서는 연구가 수행된 필드의 특징, 그러니까 CMC 상황에서 강조되는 반성적 성격이나 내러티브의 자기완결성을 강하게 고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온라인 토론이나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현시하는 것과 달리, 대다수는 정밀하고 명백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살고 사랑하지 않아요. 가지더라도 그와 별개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니 각각의 주장 중 무엇이 타당한가에 매달릴 필요는 없어요. 각자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화 하고 정당화하는지, 그 기저에 깔린 전제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쪽이 편하실 거예요. 폴리아모리라는 주제를 두고 '모두'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폴리아모리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세계가 폴리아모리를 인식하는 방식을 더 많이 드러내 보이니까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7-05 21:2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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