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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1 00:45:14
Name   sisyphus
Subject   비혼이라는 설익은 거짓말
1. 일리 있어 보이는 거짓말들


“우리는 먹을 것 이외에도 거짓말을 먹고 산다. 이 거짓말은 노래, 문학, 가치, 희망, 덕, 권력, 인본주의, 자아실현 등 여러 보이지 않는 것이며 끝까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면,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진리)‘을 택해야 한다. 이 말 또한 부정한다면, 사람은 그 어떤 판단도 주체적으로 내릴 수 없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바보는 아첨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생존으로부터 위협받는다. 생존을 위해선 아첨으로부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거짓말을 믿는 것은 진실을 만들어보려는 작업이다.”


2. 비혼을 축하할 수 있는 거짓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혼과 달리 비혼은 ‘자발적’ 독신이다. 결혼을 축하하지 않는 사회가 있는가? 결혼과 달리, 비혼을 긍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혼의 위상만큼 비혼의 위상을 높이고, 이를 아름답게 보기가 어렵다. ‘결혼이 좋아 비혼이 좋아?‘ 라는 물음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물음처럼 만들 수 있는가? 낙관주의자의 아름다운 거짓말이 아직 절실하다.


3. 결혼이라는 완벽한 거짓말


우린 결혼을 창조한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창조라는 어감이 어색하지만, 발명보단 창조가 확실히 더 어울린다. 이 스승은 부처, 예수, 공자만큼 위대한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결혼은 ‘운명을 공유하자는 서약’이다. (이에 관해선 다음 기회에.) 결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회를 조화롭게 만들었다고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전쟁에서도 당연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등장 이전의 문화는 무엇이 있었는지 조화로운 상태였는지 조차 우리는 예상할 수 없다. 그 이전의 다른 문화를 결혼이 지워버린 것으로 보아, 결혼의 압도적으로 승리했다는 추측만 할뿐이다. 결혼이라는 거짓말이 이전의 다른 거짓말을 대체한 셈이다.

여담으로, 결혼 없이 분업이 가능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결혼은 최초의 분업일까? 아니면 그 이전에도 분업이 있었을까? 결혼이 먼저냐, 원시적 사회계약이 먼저냐? 운명을 공유하자는 방법이외에, 분업을 성사시킬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결혼이 분업을 가져왔건, 분업이 결혼을 더 잘 활용했건 순서는 중요치 않다. 결혼은 분업과 함께 효율을 줬고, 동시에 지켜야할 질서도 따라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당연히 분업은 불평등을 인정한다. 따라서 모든 결혼이 좋을 순 없다. 때문에 이혼이 있다. 이런 흠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버금가는 거짓말은 안 보인다. 우린 욕심이 많아서, 아쉽게도 수도자의 삶을 따를 수 없다.


4. 결혼에 대한 도전장


지금껏 사회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결혼이 이룩한 조화는 이후에 등장한 발명을 압도하고, 사회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근대에 와서야,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려는 가장 큰 도전이 있었다. 도전장을 내민 건 200년 전 유럽인들이다. 운명을 공유하는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거나 운명을 공유하지 않고도, 더 멋진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짓말을 만들겠다는 시도였다. 특히 자유주의자들이 이 도전을 하는 중이다.

교육제도에 대한 태도를 보면, 자유주의자 내에서도 결혼과 비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갈릴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유주의자조차 사회에서 정상이라 불리는 교육을 받았고, 이 교육제도를 긍정한다. 가이드라인이 없는 다른 방식의 교육을 선호하는 자유주의자는 드물다. 결혼 이전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이미 다져진 조화라는 지반을 고려해야, 새로운 창조를 긍정할 수 있다. 사회를 위한 조화를 전면으로 부정하려는 자유주의자는 없다.


5. 영웅은 종종 호구처럼 보인다.


예술가적 삶을 추구하고, 다른 길을 터줄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예술가의 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그 도전자체는 아름답다. 겁쟁이들은 이들을 호구라고 부른다. 근데 호구가 세상을 바꾼다. 얼리호답터는 기술 발전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할 사람은, 자기는 길 터기를 싫어하면서, 남에게 도전을 하라고 유혹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비혼을 함부로 축하하거나 장려하기란 쉽지 않다.

결혼에 버금가는 거짓말을 창조하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발명자의 인생이 성공해서 끝날게 아니다. 그 삶이 가이드라인이 되어 지속가능해야한다. 역설적으로 기혼자가, 결혼만큼 아름다운 거짓말을 창조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창조를 시도하는 예술가에겐, 찬사를 보내자. 그 예술가를 따라도 좋다. 다만 남에게 긍정하진 말자. 당신의 긍정들을 빌미로, 악마는 더 많은 무작위 실험체를 얻으려 할 것이다. 사업 생각이 없고 돈에 눈먼 이들에게, 돈을 보여주며 창업하라고 떠미는 행위다.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비혼이 사업이라면 결혼은 공무원이고 미혼은 회사원이다. 현재 청년의 눈엔 모두다 사업으로 보이기도 한다.


6. 자유주의의 청구서 / 결정장애


자유주의의 도전 정신은 좋았다. 그런데 날아오는 청구서들이 문제다. 200년 전 자유를 확장하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도전에 대한 청구서 말이다. 한 프랑스인은 유럽인들이 자유주의를 건 내기에서 졌다고 얘기한다. 그가 보는 프랑스는 특정 종교에게 강한 어퍼컷을 맞고 쓰러져 있다. 분별없는 열정이었다고 한탄하는 미국인도 있다. 몇몇 국가는 동거로 출산율을 당겨왔지만, 동시에 동거로 발생하는 소송과 입법으로 골치 아파한다. 동거는 결혼의 품을 벗어나 새롭게 자립할 수 있을까?

자유주의는 분명 자립심을 고취 시켰다. 동시에 노오력도 따라왔다. 현대인이 무기력한 이유는 과도한 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점점 자유의 확장이 되려 우릴 파멸시키고 있다고 진단하는 이가 자주 보인다. 보편적 인간은 무한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걸 선호하는 것일까? 결정장애는 이를 슬쩍 보여준 걸까? 아직 안 끝났다며 이를 긍정하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찾기 힘들다. 이미 멀리와 버려서, 다시 뭉치면 된다는 낙관과 아직 자유에게 더 기회를 줘도 좋다는 낙관 둘 중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여기서도 도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결정장애에 의한 무작위 선택도 자유라고 봐준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머리를 다친 환자의 선택이 자유인가? 다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택해도 된다. 청구료만 잘 갚으면 된다.


7. 거짓말을 대하는 태도


새로운 비혼 예술가들의 도전은 반 비혼주의자들이 결혼을 더 의미 있게 만들게 할 수 있다. 국가는 생존을 위해 결혼에 사탕을 주고 있다. 어느 거짓말을 믿든 개인에게 운은 반드시 작용한다. 어떤 거짓말을 택해도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생긴지 얼마 안된 거짓말을 장려하거나 추천하는 것은 의심하자. 아직 비혼에겐 아름다운 거짓말이 절실하다. 꼭 비혼만이 예술이 아니며, 결혼도 미혼도 예술이 될 수 있다. 굳이 비혼이라는 더 복잡하고 위험한 예술을 할 필요가 없다. 도전하는 자에게 박수 쳐 주는 것으로 족하다. 미혼이나 기혼자가 비혼을 위한 아름다운 거짓말을 빚어낼지 누가 아는가?
축하가 먼저인 비혼과, 미혼이 만들어낸 축하는 다르다. 그때서야 우리는 비혼에도 먼저 축하를 보낼 것이다. 결혼과 비혼이 엄마아빠 같은 선택이 되는 날 말이다.



P.S. “우리들은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애쓰기보다는 행복하다고 남에게 생각되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이 애를 쓴다.” - 라 로슈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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