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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8 11:09:41
Name   Fate(Profit)
Subject   로마첸코-로페즈 : 초속과 변칙

-바실 로마첸코-테오피모 로페즈에 부쳐.



1. One and Only Notable Fight in Boxing...

COVID-19로 모든 스포츠가 멈춰버린 후, 축구냐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을 비롯한 스포츠가 제한적으로 다시 재개되었지만, 복싱은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이는 리그가 열려야 수입이 생기는 축구, 야구 등의 구조와, 예상수입이 있어야 경기를 열 수 있는 복싱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싱 월드의 모든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랜만에 벌어지는 주목할 만한 한 경기에 쏠리고 있다.

14승 1패와 15승 무패 선수 간의 대결. 둘 모두 열 여섯번째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 선수들이지만 둘이 갖는 무게감은 완전히 다르다. 14승 1패의 선수는 이미 아마추어 전적 396승 1패에, 프로 복싱 커리어 12전 만에 3체급 제패를 해낸 복싱 마스터이며 15전 무패의 선수는 이제 막 전성기를 향해 발돋움 해 나가고 있는 젊은 스타 선수이다. 바실 로마첸코와 테오피모 로페즈. 현재 가장 치열한 디비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이트급(-135lbs)에서 최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두 선수간의 대결이다.

혹자는 현재 라이트급의 정점에 올라 있는 로마첸코에게 도전한 테오피모를 무모한 만용이라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어떤 이들은 로마첸코의 압도적인 모습은 -130 디비전과 -126 디비전에 한정될 뿐, 라이트급에서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두 손에 충분한 펀칭 파워를 갖고 있는 로페즈의 탄력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브루클린 토박이가 우크라이나 복서를 격침시킬 수 있는 광경을 본다.

규칙을 만드는 자와 깨트리려는 자의 대결, 노련한 복싱 마스터와 떠오르는 패기있는 젊은 스타 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이 경기는 2013년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카넬로 알바레즈의 메가 매치를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이 스포츠를 사랑해 왔던 수많은 팬들에게 이 경기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복싱계의 모든 시선이 한 경기로 집중되는 지금,

누구를 고를 것인가?


2. Vasyl Lomachenko : 'High-Tech'라는 단어 그 너머.




결국 언제나, 둘의 승패는 흥행 문구를 떠나 두 선수가 어떤 선수인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바실 로마첸코만큼 많은 이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선수도 드물다. 복싱 해설자들부터 분석가들까지 magician, matrix 따위의 용어를 남발하다 보니 막상 로마첸코가 링에서 무슨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미사여구의 홍수에 묻히고 있다. matrix라는 용어는 무엇인가? 남들의 동작을 슬로우 모션으로 본다는 뜻인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수사는 자신의 무지를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로마첸코 복싱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이다.

1) 지속적인 압박

로마첸코는 절대 상대가 리듬을 주도하도록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펀치를 내며 상대가 자신의 펀치를 계속해서 쳐내도록 만든다. 그의 압박은 마치 물과도 같아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대가 물러나면 들어오고, 상대가 치고 나가면 뒤로 빠진다. 끊임없이 잽으로 상대를 압박하되 인파이터처럼 계속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상대에게 프레싱을 가한다. 그의 공격 무기가 잽뿐이라면 상대가 이렇게 어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상체를 계속해서 흔들며 오른쪽 슬리핑 후 앞손 어퍼와 같은 다양한 공격을 통해 계속해서 상대를 압박한다. 그의 활동량과 끊임없는 압박은 로마첸코를 상대하는 모든 복서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2) 체중이동보다는 타이밍과 앵글.

일반적으로 펀치를 제대로 치기 위해서는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체중이 팔로 전달되는 과정이 수반된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펀치 리듬은 강하지만 상대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게 된다. 로마첸코는 상대가 진정으로 펀치에 타격을 입는 순간은 내 펀치가 강할 때가 아니라, 상대가 약한 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계속해서 지대를 옮겨 다니면서 상대의 빈틈을 보고, 그 때 정확한 펀치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 내 펀치가 발끝에서 시작하든, 허리에서 시작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듯이 행동한다. 때로는 어께만으로, 때로는 그저 전진하는 힘만으로 로마첸코는 정확한 타격을 터트린다. 물론 그렇다고 로마첸코가 정석적인 펀치를 치지 않는 복서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보다 큰 복서를 상대로 첫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은 언제나 이런 변칙적인 순간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펀치를 전달하기만 한다면, 체중이동은 필요 없다.

3) 콤비네이션 중간의 지대 이동

일반적으로 4연타 이상의 콤비네이션은 목적이 되는 펀치를 위한 셋업 과정과, 목적이 되는 펀치를 맞췄을 때 그 타격을 극대화시키는 펀치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원투-레프트훅-라이트어퍼-레프트훅-라이트 스트레이트라는 6연타 콤비네이션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핵심 펀치는 세번째 나오는 레프트 훅이다. 처음의 원투로 레프트 훅을 맞출 수 있도록 셋업해 놓고, 레프트 훅이 적중되어 상대가 비틀거리면 라이트 어퍼-레프트 훅-라이트 스트레이트로 상대가 더 흔들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원투-레프트바디-레프트훅-라이트 훅이라는 5연타 콤비네이션도, 레프트 바디를 넣기 위해 앞의 원투를 셋업하고, 레프트 바디의 효과를 더 확대할 수 있는 펀치들이 뒤에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전과 확대용의 펀치는 상대가 맞는 순간 계속해서 움직이면 생각보다 제대로 때리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 실력이 현격히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완전히 상대가 비틀거릴 때 자신이 5연타, 6연타를 연거푸 집어넣는 상황은 12라운드 중 서너 번도 되지 않는다. 가까웠던 경기 중 매니 파퀴아오-키스 서먼 경기를 보자. 파퀴아오가 서먼을 몰아넣고 때린 순간은 1라운드, 4라운드, 10라운드를 비롯하여 약 다섯 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로마첸코가 경기를 수행할 때 다른 복서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런 콤비네이션에서 목적이 되는 펀치를 맞춘 다음, 상대가 비틀거리고 자신에게는 비틀거리는 상대를 맞출 수 있는 한 타이밍이 왔을 때, 펀치를 바로 내기보다는 그 순간 번개같이 상대의 뒤쪽이나 옆으로 스탠스를 옮겨 버린다는 것이다. 그 때 상대는 완전히 자신의 위치를 놓치게 되고, 그 때 로마첸코는 상대를 보면서 안전 지대를 점유한 채 다음 펀치를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가, 상대가 멈췄을 때 더욱 더 펀치를 이어 나간다.

같은 방식을 과거 로이 존스가 그와 격차가 심한 복서들을 상대로 보여준 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움직임이 갖는 파괴력을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4) 시계 방향으로도 능숙하게 서클링할 수 있는 사우스포

일반적으로 오소독스 복서는 뒷발을 찰 때 체중이 더 안정적이기 때문에(서클링의 중심에 체중이 없고, 바깥쪽에 체중이 있기 때문에) 시계 방향으로의 서클링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사우스포는 그 반대이다. 오소독스가 반시계 방향으로 서클링을 하고 싶다면, 일반적으로는 앞발을 차기보다는 두 발을 스위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사우스포인 로마첸코는 반시계 방향뿐만 아니라 시계 방향까지 전광석화처럼 이동할 수 있다, 그것도 극단적으로.



로마첸코가 시계 방향 서클링을 하는 방식은 사실 발로 찬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그보다는 넘어간다는 쪽이 옳을 것이다. 로마첸코는 두 다리를 타닥 하면서 튕기는 방법으로 상대의 우반면으로 손쉽게 진입할 수 있고, 무엇보다 상대의 측면, 더 나아가 상대의 후면을 점유한다.우리가 보통 횡으로 스텝을 밟아도, 90도, 120도 정도 돌지 상대의 후면을 점유하진 않는다. 복싱에서 후두부 가격은 반칙이고, 심지어 벨트라인 아래나 등 쪽의 신장만 때려도 바로 반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의 뒤편을 점유한 다음, 펀치만 치지 않으면, 자신은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볼 수 있지만 상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을 찾으려 얼굴을 돌릴 때 자신은 원하는 대로 상대를 요리하면 된다.

복싱에서 말하는 앵글과 지대는 보통 자신은 때릴 수 있지만 상대방이 때릴 수 없는 공간을 의미한다. 메이웨더가 하는 것처럼 상대의 왼발과 자신의 왼발을 마주보게 함으로써, 상대의 오른손에 대한 공격을 차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로마첸코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은 때릴 수 있지만 상대방은 때릴 수 없는'에서 '상대방은 볼 수 없지만 자신은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렸다. 거리를 통한 방어로부터 시선을 통한 방어의 수준까지 올라간 셈이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서클링을 양방향으로 자유롭게 하는 데서 기인한다. 극단적으로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갈 수밖에 없지만 로마첸코는 그 자신의 독특한 스텝으로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싱을 하기 전 로마첸코가 했다는 우크라이나 전통 춤이 어떤 방식인지 문득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상과 같은 로마첸코 복싱의 4가지 특징은 현재까지 그를 복싱 마스터를 넘어 매지션으로 부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로마첸코의 복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최근의 루크 캠벨과의 경기가 내가 생각하는 로마첸코 파훼법의 정석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보다 작고 빠른 상대하면서 자세를 낮추고, 두 다리를 넓게 벌려서 상대가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잽은 세게 던지는 대신 계속해서 거리를 재며 상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저지력으로서 활용한다. 중간의 펀치 교환에서 조금씩 밀리더라도 잽을 통한 거리 확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링 주도권을 가져가는 방식인데, 실제로 나는 이 경기에서 1, 2라운드를 루크 캠벨에게 주었다.

그리고 로마첸코는 어떻게 대처했는가? 스텝을 활용해서 지속적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고, 상대의 잽뿐만 아니라 스트레이트까지 허용할 수 있는 근접거리까지 파고든 다음 그곳에서의 모든 펀치 교환해서 승리하며 나머지 모든 라운드를 가져와 경기를 끝냈다. 여기서 -135 디비전에서의 로마첸코 복싱의 마지막 특징이 드러난다.


5) 상대보다 파워가 밀리든 리치가 밀리든 내가 복싱을 더 잘한다.

135파운드의 라이트웨이트 디비전에서 로마첸코는 언제나 사이즈, 맷집, 파워에서 열세였다. 하지만 모든 경기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펀치력이 더 센 것도 아니고, 리치가 더 긴 것도 아니다. 자신보다 더 사이즈가 우월한 상대방에 맞서 아마추어 스텝을 활용하여 잽 거리에서 한 발자국씩 넣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하면서 힘들게 싸우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상대보다 복싱을 더 잘할 뿐이라는 믿음으로 근접거리에서 자신의 테크닉과 경험을 믿고 정면에서 펀치교환을 하고 있고, 승리하고 있다.

로마첸코가 이렇게 수준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연타가 어떤 특정 펀치를 던지겠다는 사전 생각이 없고, 그 순간순간에 맞는 펀치가 즉각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때로 상대의 스트레이트나 잽을 기다렸다가 그에 맞춰서 카운터 치기도 하지만, 로마첸코의 많은 공격들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앵글과 스탠스, 가드에서 바로바로 몸에 반복적으로 저장된 동작들이 바로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최근 미식축구에서 대학부터 프로까지 휩쓸고 있는 공격 시스템인 Air-Raid Offense를 떠올리게 한다. 사전 우선순위 없이 끊임없는 반복 플레이를 학습시켜서 즉각적으로 수행하는 것.


-이런 움직임은 사전에 계획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복싱에서 승리하는 공식이란 결국 상대에게 위협받지 않는 안전 지대를 점유한 채 공격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라고 보고 있고 ( http://aquavitae.egloos.com/3518032 참조) 메이웨더 역시 그런 방식을 제일 잘 수행하는 복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마첸코는 다르다. 언제나 상대방의 위험 지대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강요당함에도 상대 선수와의 수준 차이를 보여주며 웬만한 펀치 교환에서 지지 않고 있다. 전 세계 복서들의 거의 정점에 도달한 세계 챔피언들 사이에서도 이런 수준 차이를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운드 포 파운드(Pound 4 Pound)의 정의에 가장 들어맞는 선수는 로마첸코일지도 모른다.


3. Teofimo Lopez : 좋지만 아직 단조로운.



예전에 스타일 분류에 대해 올린 글에서 말한 대로, 사이즈나 리치, 누가 들어가고 누가 빠지느냐와 관계없이, 복서와 인파이터를 나누는 기준은 대치상태에서 누가 이득을 보느냐이다. 복서는 규칙을 만들고 인파이터는 그 규칙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속된 대치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테오피모 로페즈보다는 바실 로마첸코이고, 로페즈는 해결책을 찾아야만 하는 입장에 서 있다.

로페즈의 경기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테오피모 로페즈의 기본적인 스탠스만 놓고 보면 두 발을 넓게 하고 앞손을 내려 시야를 확보한 숄더 롤(Shoulder Roll) 스탠스로 방어를 수행하며, 탄력을 이용해 인앤아웃과 서클링을 로마첸코와 대등한 속도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의 복서이다. 또한 그의 매서운 펀치의 스피드는 절대 라이트급의 초일류 복서들 사이에서도 밀리는 수준이 아니다.

테오피모 로페즈는 충분히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포텐셜을 갖췄다. 무엇보다 내게는 특히 앞발 무릎이 눈에 띄는데, 리처드 코미를 2라운드만에 넉아웃시켰을 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라이트 속도보다, 라이트를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서 쳤는데도, 바로 레프트 훅을 끌어당기는 그의 앞무릎의 탄력이었다. 일반적인 복서라면 그렇게 전력으로 라이트를 던지고도 바로 앞손을 회수할 수 없다.



로페즈의 놀라운 앞무릎. 10분 17초부터.

무엇보다 그의 무릎과 허리가 갖는 엄청난 탄력으로 로페즈는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변칙적으로 강한 공격을 던질 수 있다. 콤비네이션의 속도가 곧 발과 허리에서 오기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탄력은 잽도 닿지 않는 거리에서 한 번의 점프로 상대 턱까지 단숨에 파고들게 만든다. 로페즈는 로마첸코를 넉아웃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페즈가 어려울 거라고 보는 이유는 그의 단조로운 공격 패턴 때문이다. 나카타니 전에서 잘 드러났듯이 테오피모 로페즈가 공격을 여는 방식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다. 공격의 대부분이 왼손에서 시작하고, 오른손은 정석적인 스트레이트라기보다는 들어가면서 치는 변칙 스트레이트에 가깝다. 물론 그의 펀치 속도나 각만 놓고 봤을 때 완성도는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다양성에서 로마첸코를 어렵게 만들 능력이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결정적이다. 무엇보다 앞손 활용이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사우스포와의 대전에서 로페즈의 장기인 점핑 레프트 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도 미지수이다.

로페즈가 자신의 상품 가치를 한껏 끌어올린 리처드 코미 전은 물론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 경기로부터 불과 다섯 달 정도만 시간을 돌려 보면, 수준 차이가 꽤 나는 나카타니와의 경기에서도 로페즈는 경기를 압도하지 못했다. 펀칭 파워와 스피드에서 현격한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의 단조로운 공격에 나카타니는 적응하고, 다시 펀치를 되돌렸다. 그런데 로마첸코를 상대로 로페즈가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풀어 나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로페즈가 기댈 수 있는 무기는 크게 세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카운터이고 두 번째는 뒷손 더블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디샷이다. 로마첸코와의 경기에 앞서, 로페즈는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판정승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12라운드 중 단 1개의 라운드를 가져가지 못하더라도 로마첸코에게 어떻게 큰 타격을 입힐까만 집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첸코가 공격 리듬을 바꿔 가면서 들어올 때 타이밍 맞춰 적절한 카운터를 전달한다면 가능성이 있고, 뒷손 스트레이트와 뒷손 어퍼가 동일 스탠스, 동일 자세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 원-투와 원-어퍼를 섞으면서 로마첸코를 맞출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바디샷은 과거 라이트급의 황제였던 로베르토 두란의 장기를 활용해, 언제나 좌우 앵글을 이동하는 로마첸코의 허리를 앞손으로 끌어당겨 잡고, 뒷손으로 바디샷을 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경기를 진흙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왜 올랜도 살리도가 로마첸코와 그렇게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는지 배워야만이 규칙을 깰 수 있는 방법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Exogenous Variable : COVID-19, 로마첸코의 노쇠화.

너무 당연한 이야기여서 생략한다. 아직까지 로마첸코의 노쇠화는 특별히 관찰되지 않았고, 코로나-19로 인한 트레이닝 캠프의 영향은 여기서 추측하기 어렵다.


5. Legend vs. Young Star

로마첸코는 복잡한 퍼즐과도 같다. 페더급과 슈퍼페더급에서 로마첸코가 보여준 모습에 비하면, 라이트급의 로마첸코는 70% 정도의 기량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복싱을 더 잘하기 때문에 같은 거리에서 지지 않는다는 그 자신감은 모든 변수를 무시한 채 자신의 복싱을 끊임없이 증명해 보였다.

이런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맞서 로페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했던 것처럼 매듭을 풀 생각을 버리고 계속해서 칼로 내리쳐야 한다. 로마첸코와 복싱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큰 펀치를 맞추어 결정적인 기회를 잡고, 그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을 때 경기를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로마첸코를 맞출 수 있는 무기를 갈고 닦아 와야 한다.

그리하여 내 예상은 다음과 같다. 117-111 로마첸코. 비록 테오피모 로페즈가 로마첸코에게 몇 번 좋은 펀치를 맞출 수는 있겠지만, 풋워크에서 로마첸코가 더 이상의 기회가 이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로마첸코는 반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합을 통해 로페즈를 밀어붙일 것이고, 펀치 교환에 있어 왜 숄더롤이 사우스포에게 어려운가를 얘기했던 복싱 애널리스트들의 주장을 재현할 것이라고 본다. 초반 라운드에서 로마첸코가 다소 밀릴 수는 있겠지만, 로마첸코가 자신과 사이즈가 비슷하고 빠른 로페즈를 상대로 적응한 다음 현격한 경험의 차이를 보여줄 것으로 보고, 로페즈의 단조로운 복싱으로 경기 초반과 중반, 종반에서 로마첸코로 쏠리는 흐름을 반전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역사 저술가이자 문학가인 진순신은 <이야기 중국사>에서 원나라 시기의 문화를 설명하며 '속(俗)'과 '초속(超俗)'이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적절한 만큼의 무늬와 여백을 가진 송자(宋瓷)가 자기의 정점에 있다면, 화려한 무늬로 도배한 상감청자는 속됨을 지나치게 추구한 셈이다. 대중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속됨을 묻힐 수밖에 없지만, 장인으로서 속됨에 머무를 수는 없기에, 속됨 속에서도 속됨을 넘는 것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초속이라고 말했다.

로마첸코를 볼 때마다 나는 늘 '초속(超俗)'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사우스포 복싱의 정석이면서도, 동시에 그 어떤 사우스포도 흉내낼 수 없는 유형의 복서이다. 누구보다 정석적인 복싱을 잘 하면서도, 정석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서 정석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단순히 몸의 탄력과 기책에 의존하는 변칙적인 공격이 아니라, 정석을 한 단계 발전시킨 유형의 선수라고 생각한다. 변칙과 초속의 대결에서 나는 초속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현재 라이트급의 주요 선수들은 위 동영상에 있는 로마첸코, 데이비스, 로페즈, 헤이니, 가르시아라고 볼 수 있다. 바실 로마첸코가 라이트급의 메이저 벨트 4개 중 3개를 갖고 정점에 서 있는 지금, 저본타 데이비스, 테오피모 로페즈 등의 추격 그룹이 로마첸코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형국이다. 그 중 먼저 도전장을 내민 이가 테오피모 로페즈다.

리빙 레전드와 젊은 라이징 스타의 경기. 춘추전국시대인 라이트급에서 여전히 황제의 건재함을 뽐내는 자리가 될 지, 아니면 젊은 찬탈자의 성공한 역성혁명이 될 지, 여덟 시간 뒤 모든 것이 달려 있다.

Vasiliy Lomachenko vs. Teofimo Lopez.

IBF, WBA, WBO, lighteight Championship

Date : Saturday, October 17, 2020.

Venue : MGM Grand in Las Vegas, Nevada

Broadcast : ESPN(해외중계), TV조선(국내중계 -11시 50분)

Odds : Lomachenko(-400), Lopez(+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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