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0/01 06:59:32
Name   어른아이
Subject   How are you 공포증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그들이 의미없이 건네는 인사가 참 부담스러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냥 "Hi" 하면 안 되나, 왜 굳이 "How are you?"를 하지?

"Fine, thank you, and you?"
아.. 영희와 철수도 아니고 이건 뭐람.. ㅠ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뒤돌아서면서 머리 속으로 발을 동동동 구르며 "아 또! 아 또!!!" 했었습니다.

물론 틀린 답변은 아니었죠.
하지만 몇 주간 관찰해 본 결과 저 답변을 하는 사람들은 어림잡아 95% 이상 우리 나라 사람들(으로 보이는 동양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Good", "Not bad", "Great, thanks", "Fine" 등 다양한 답변을 했지만 저런 교과서적인 말을 하는 것은 들어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Fine, thank you(, and you?)"를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죠.

결국 저는 영희와 철수스러운 제 대답을 뜯어 고쳐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한국인의 정서로 보기에 "Great"은 조금 오버스러운 것 같고 "Not bad"은 조금 부정적인 것 같아
저의 목표 답변을 "Good"으로 정했습니다.

음절도 한 음절! 어려운 발음도 아니고,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저는 한동안 조건 반사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분명 계산대 앞에서 줄 서 있는 내내 머리 속으로 "굿" "굿" "굿"을 수 없이 되뇌었는데 왜 "굿"을 못하냐고!!!

초조해지고 머리 속으로 생각이 많아질 수록 전에 없던 실수까지 많이 했죠.
"Fine, oh, oh, oh, no, good", "(Fine/Good 없이 다짜고짜) Thank you", ("How are you?" 듣기 전에 먼저 다짜고짜)"Good"
별 것 아닌 것이었지만, 별 것 아닌 것이었기에 큰 좌절감이 들었었습니다.
나 똑똑한데.. 이게 뭐라고 안 될까..

하지만 저는 의지의 한국인!
그렇게 수십번의 실패 이후 저는 마침내 "굿"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엄청 기쁜 마음에 한국 친구들한테 가서 자랑도 했죠. 이번에 드디어 "굿"이라고 대답했다고.
'뭐지 저 또라이는?' 하는 듯하던 친구들의 반응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전 제 첫 영어 퀘스트를 완료했고 그 순간 만큼은 저 스스로가 엄청 대견했습니다.
곧 원어민처럼 될 수 있을 거란 착각도 했었죠.
물론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무한한 반복 학습 끝에 저는 이제 "굿"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었지만요.



0
    이 게시판에 등록된 어른아이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954 7
    15155 일상/생각청춘을 주제로 한 중고생들의 창작 안무 뮤비를 촬영했습니다. 2 메존일각 24/12/24 407 6
    15154 문화/예술한국-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 meson 24/12/24 302 2
    15152 정치이재명이 할 수 있을까요? 72 제그리드 24/12/23 1614 0
    15151 도서/문학24년도 새로 본 만화책 모음 6 kaestro 24/12/23 371 5
    15150 게임최근 해본 스팀 게임들 플레이 후기 1 손금불산입 24/12/23 286 5
    15149 사회그래서 통상임금 판결이 대체 뭔데? 7 당근매니아 24/12/23 615 11
    15148 정치윤석열이 극우 유튜버에 빠졌다? 8 토비 24/12/23 839 9
    15147 정치전농에 트랙터 빌려줘본 썰푼다.txt 11 매뉴물있뉴 24/12/22 1076 3
    15146 의료/건강일종의? 의료사기당해서 올려요 22 블리츠 24/12/21 988 0
    15145 정치떡상중인 이재명 56 매뉴물있뉴 24/12/21 1856 15
    15144 일상/생각떠나기전에 생각했던 것들-2 셀레네 24/12/19 575 9
    15142 일상/생각플라이트 시뮬레이터로 열심히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7 큐리스 24/12/19 508 2
    15140 정치이재명은 최선도, 차선도 아니고 차악인듯한데 43 매뉴물있뉴 24/12/19 1857 7
    15139 정치야생의 코모도 랩틸리언이 나타났다! 호미밭의파스꾼 24/12/19 383 4
    15138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양키스행 김치찌개 24/12/19 137 0
    15137 정치천공선생님 꿀팁 강좌 - AI로 자막 따옴 28 매뉴물있뉴 24/12/18 748 1
    15135 일상/생각생존신고입니다. 9 The xian 24/12/18 616 31
    15134 일상/생각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5 Picard 24/12/18 445 7
    15133 도서/문학소설 읽기의 체험 -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를 중심으로 1 yanaros 24/12/18 305 4
    15132 정치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22 제그리드 24/12/18 759 2
    15131 여행[2024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0. 준비 7 Omnic 24/12/17 369 7
    15130 정치비논리적 일침 문화 7 명동의밤 24/12/16 878 7
    15129 일상/생각마사지의 힘은 대단하네요 8 큐리스 24/12/16 798 7
    15128 오프모임내란 수괴가 만든 오프모임(2) 50 삼유인생 24/12/14 1889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