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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7/02 20:11:47
Name   주식하는 제로스
Subject   [펌글]두가지 공정함 ㅡ 조별과제의 공정함과 형제의 공정함
요즘 공정이 화두에 올랐죠.
공정에 대해 좋은, 공감하는 글이 있어 소개해봅니다.

링크이하 펌글입니다.

ㅡㅡ

https://pgr21.com/freedom/92368

일전에 과거제와 골품제에 관한 글을 썼었습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주간조선에서 인용해 가셨는데 출처는 안 밝히셨더라구요. 골품제 과거제야 역사적 개념이고 제가 역사를 전세 낸 것은 아니긴 하지만 유감이긴 합니다. 제 닉네임은 됐더라도 PGR 이름이라도 박히면 좀 나았을 텐데 말입니다. 별 수 없이 다른 글을 써야죠.

그 글에서 형식적 공정에 대한 2030의 요구를 과거제에 대한 요구라고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2030은 '실질적 공정'에 대한 요구를 전적으로 외면하는 것도 아닙니다. 2030은 과거제의 회복을 바라지만, 동시에 과거제로만은 달성할 수 없는 공정함도 요구합니다. 단지 지금은 골품제가 부활하게 생겼으니 일단 과거제라도 똑바로 하라는 것이지만, 2030은 한 때는 무상급식과 무상등록금에 열광할 정도로 "리버럴"했던 그런 코호트라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수많은 2030이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구호에 동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찝찝해 할 것입니다. 저도 그 중 하나구요.

골품제는 당연히 차치하고, 과거제도 필요하지만 과거제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공정함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형식적 공정, 실질적 공정.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주 부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이라는 말은 '속 빈 껍데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실질적이라는 말은 '참된 것, 진짜인 것, 중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뭔가를 '형식적', '실질적'이라고 네이밍할 때, 이미 '형식적인 것은 잘못된 것이고, 실질적인 것이 옳은 것'이라는 함축이 들어갑니다. 이것도 일종의 프레이밍이죠. 그래서 저는 형식적 공정, 실질적 공정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형식적-실질적'이라는 분류야말로 실질이 없는 형식적 분류라고 생각해요. 섣불리 '형식적-실질적'이라는 대립항을 쓰는 사람은 뭔가 내 맘에 안드는 결론에 '형식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뭔가 내 맘에 드는 방향에 '실질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정작 둘이 뭐가 다른 지는 포착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정함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고, 글들도 많은데, 저는 공정함에 전혀 다른 두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주로 팀플레이에서 요구되는 공정입니다. 저는 이걸 '조별과제 공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조직에서, 스포츠에서, 게임에서, 사냥에서, 모든 종류의 팀플레이를 할 때 반드시 요구되는 그런 공정함입니다. 이 공정함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기여에 상응하여 보상을 얻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보상에 상응하여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조장이면 당신은 최종 수합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받는 샐러리만큼 회사에 벌어다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능력이 없으면, 당신은 빠져야 합니다. 당신이 팀에 짐이 되면, 당신은 팀에서 나가야 합니다. 당신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데도 팀의 일원으로 남는다면, 당신은 프리라이딩을 하고 있는 겁니다. 조별과제의 공정함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프리라이딩입니다. 능력이 없는 자가 보상을 받는 것. 이 조별과제의 공정함이 또한 혐오하는 것이 뷔페이즘 또는 부당이득입니다. 대가 없이 급부를 취하는 것. 자기가 원하는 것만 골라가는 것. 고생은 하지 않고 과실만 누리는 것.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인이 버는 것. 심지 않은 열매를 거두는 것. 일 하지 않는 자가 먹는 것. 이 모든 것이 조별과제의 공정함의 기준에서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공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자녀 양육 과정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공정함에 대한 감각입니다. 저는 이걸 '형제간의 공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두 명 이상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절대 자녀에게 조별과제 공정을 적용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좋은 부모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부모는 내심 그렇지 않을 지언정, 적어도 말로라도, 나는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하기 마련입니다. 일단 과자가 두 개가 생기면 하나 씩 주어야 합니다. 우유가 한 병이면 두 컵에 똑같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파이는 애가 둘이면 반으로, 셋이면 셋으로 쪼개 주어야 합니다. 뭐든 기회는 한 번 씩 돌아가야 합니다. 형에게 하나를 주었으면 다음은 동생 차례입니다. 동생이 득했으면 다음은 언니가 득해야 합니다. 뭐든지 반 반이어야 합니다. 사실 왜 그래야 하는지 필연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함이 공정하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모든 형제 간에, 그리고 형제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왜 인류 최초의 살인이 났는가. 야훼가 먼저 이 형제 간의 공정함에 대한 감각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양을 받아 주었으면 가인의 곡식도 받아주어야지요. 아무리 양고기가 더 맛있어도 말입니다. 그러니 형제 간에 살인이 나는 것입니다. 현행 민법은 균분상속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형제 간에는 형제 수대로 유산을 갈라야 합니다. 그런데 왜인가요? 능력 있는 자식, 그래서 앞으로 국가에 더 많은 세금을 낼 자식에게 더 많이 상속분이 가면 안 되나요? 누구도 이 문제를 능력주의, 실력주의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형제 간의 공정이란 그런 것입니다.

형제 간의 공정은 그러므로 출발선상의 차이에 주목하고, 출발선상의 차이를 없애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형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부모님께 받았잖아.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대체 왜인지 형은 출발선상의 차이를 교정하기 위해 동생 살림에 보탬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별과제의 공정은 출발선상의 차이를 무시합니다. 그것은 무지의 베일 너머의 영역입니다. 대학에서 조별과제를 할 때, 누군가가 자료 조사를 엉망으로 해오면, 그 사람이 무슨 출신인지, 그 사람의 과거가 어떠한지, 그 사람의 수저 색깔이 무엇인지, 그가 금수저인지 은수저인지 누가 따집니까? 그 사람이 다른 조원들과 출발선상의 차이가 있어서 그 차이가 누적되고 누적되어 어쩔 수 없이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래서 지금의 자료 조사 퀄리티의 차이가 이렇게 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감안하고 고려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당장 자료 조사를 남들만큼 못 해 왔으면 그 사정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간에 다른 팀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합니다. 목적은 형제 간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조별과제의 효율적인 달성이니까요. 조별과제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은 프리라이딩이지 출발선의 차이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두 판이하게 다른 공정 개념이 둘 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둘 다 공정의 기준이 되어, 다양한 영역에서 결과가 공정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자녀 양육에 있어서는 형제 간의 공정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들에는 형제 사이라 하더라도 조별과제의 공정을 요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식별하여 헷갈리지 않는 것이 좋은 부모되기의 조건 같습니다. 만약에 동생이 혼자 열심히 알바를 해서 좋은 옷을 샀는데, 그 옷을 형이 '형제 간의 공정'을 기준으로 제시하며 자기도 입겠다, 자기도 한 벌 사달라, 왜 쟤만 좋은 옷을 입느냐 라고 조르기 시작하면, 부모는 그 때에는 '조별 과제의 공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하며 단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구요. 앞서 민법에서는 균분상속이 원칙이라 했지만, 부모는 특정 자녀에게 증여를 할 수도 있고, 또 부모를 극진히 -장기간 비용을 감수해가며- 봉양한 자녀는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기여분이 인정되기도 합니다. 결국 형제 간의 공정에도 예외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말 많은 자원, 그리고 자원에 대한 접근 기회를 배분하는 선택의 영역들에 있어서, 우리는 이 조별 과제의 공정과 형제 간의 공정 사이에서 맹렬히 헷갈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이한 공정 개념을 동시에 적용하기도 하고, 퍼센티지를 나누어 적용하기도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영역에서 게임의 룰은 형제 간의 공정과 조별과제의 공정 간에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그렇게 이뤄져야 합니다.

형제 간의 공정 대 조별과제의 공정을 결과의 평등 대 기회의 평등에 꼭 등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핀트가 다릅니다. 조별과제 공정은 기회의 평등까지도 사실은 개의치 않을 수 있습니다. 기회까지도 불평등했어도 무관합니다. 두 조원 후보자가 있는데, 어느 한 후보자가 능력치가 더 뛰어나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특혜를 받고 살아 왔는지는 무관합니다. 심지어 그 특혜가 부당한 특혜였다고 하더라도 무관합니다. 발표를 더 잘하는 친구, 자료 조사를 더 잘하는 친구, 자료 취합을 더 잘하는 친구, 하다 못해 미안하다고 밥값이라도 내는 친구와 조원을 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때로는 형제 간의 공정이 결과의 평등을 배반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 형제 간의 공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원 배분의 결과 값은 불평등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형제 중 형이 장애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형에게 더 많은 자원이 얼마가 되었건 더 많이 투입되는 것이 형제 간의 공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투입된 자원이 반환되지 않아도 무관합니다. 결과가 꼭 맞추어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때로 형제 간의 공정에는 '연대'에 대한 감각이 개입되며, '공감'이라고 하는 감정이 함께 작동하기 마련입니다. 버락 오바마가 그의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Yes I am my brothers' keepers(예 나는 내 형제를 돌보는 자입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분열된 개인주의적 미국인들 간에 어떤 식으로건 형제 간의 공정에 관한 감각이 회복되어야 할 필요를 호소한 것입니다.

세를 얻고 있는 이준석의 실력주의를 학력주의, 정글보수, 실력주의 등으로 규정하고 경계하는데, 그것을 형식적 공정과 실질적 공정의 대립으로 말하기보다, "조별과제 공정이 더 확장 적용되어 형제 간의 공정이 내몰리는 상황"에 대한 경계라고 표현해야 좀 더 정확합니다. 모든 사회적 연대가 연대 없는 조별과제의 관계로 환원되는 것을 경계해야 겠지만, 우리가 형제 간의 공정을 적용해야 할 영역이 아닌 영역에까지도 형제 간의 공정을 들이 밀며 요구해 왔던 것은 아닌지도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공정함에 대한 새로운 관념들이 충돌하고 온갖 변화가 야기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은, 형제 간의 공정을 적용해야 할 영역에 조별과제의 공정이 적용되며 모든 사회적 연대가 박살나고, 자유, 평등과 함께 자유주의 국가의 기초가 되는 형제애(egalite)가 붕괴되면서, 또 정작 조별 과제의 공정이 적용되어야 할 영역들에서는 형제 간의 공정이 적용되어, 굳이 배려받을 필요도 없고 배려받아서도 안 될 특권들이 "형제애" 또는 "자매애"로 포장되어 배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조별과제의 공정, 그리고 형제 간의 공정이라는 개념 모두가, 도대체 누가 나의 형제인가, 과연 나는 어디까지 형제를 지키는 자인가 라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외국 난민 불법체류자까지도 모두가 형제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서 왔고, 인류로서 한 형제이며, 그러므로 난민의 권리까지도 나와 동등하게 인정하고, 난민이 최소수혜자라면 그에게 각별한 배려까지도 기울여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심지어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까지도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라면 나의 형제가 아니며 그는 조별과제의 파트너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우리가 형제애에 호소하려고 하건, 또는 형제애를 배격하려고 하건, 우리는 누구까지가 우리의 형제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진보 정치란 결국 형제애가 미치는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 형제애의 확장으로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도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역설적이게도, 무턱대고 아무나 형제라고 가서 끌어안을 것이 아니라, 대체 어디가 형제애를 외칠 자리가 아닌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진보가 아무나 붙잡고 형제라고 선언할 때 공중은 분노합니다. 반면 진보가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소외되던 그 형제를 정확히 찾아내어 그가 형제임을 다시 확인할 때 공중은 진보에 동감합니다. 어떤 진보가 취업을 못해 괴로워하는 또는 기껏 취업했더니 그곳이 구의역이었던 2030 하층 청년을 "형제"라고 인식하는 대신, 개, 고양이, 아메바, 2D 캐릭터 이루다, 리얼돌 등부터 "형제"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비칠 때, 공중은 "형제를 지키는 자들"의 편에 서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ㅡㅡ

범위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우선순위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두가지 공정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정치가 풀어야할 질문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내 형제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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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라더 다메요! 콰쾅ㅇ쾅콰오
  • 공정을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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