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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2/03/11 17:33:46수정됨 |
Name | 化神 |
Subject |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 : 어느 향료 연구원의 이야기 (1편) |
팀 배치 날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향료 연구팀." "네? 제가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하려던 말은 "왜요?"였다.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 버무려진 적당한 흥분감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인사팀장의 입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 나왔다. 교육 시간에 한 시간 정도 향료 연구팀에 대해서 소개를 듣고서는 '아 이런 일을 하는 부서도 있구나, 신기하네.' 정도로만 생각하던 팀이었다. 앞으로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몇 십대 일의 확률을 뚫고 당첨이 됐다고? 여기에 당첨되는게 행운인게 맞기는 한가...? 그 날 이후로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날을 떠올려면 상황들과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난감... 당혹... 인사팀장으로부터 '너는 향료 연구팀에 가게 된다.'라는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온갖 생각이 다 스쳐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나의 모습은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신의 음성을 통해 고지를 받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왜 나일까? 이거 제대로 배치된 것 맞나? 내가 여기에 적합하다는 근거가 있을까? 처음 부서 배치되면 '아, 이제 앞으로 잘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게 당연한데, 그 날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머리 위에 물음표 수십 개를 띄운 그 모습처럼, 다른 신입사원과는 다르게 멍한 듯, 넋이 나간 듯 그렇게 앉아 있었다. 회사의 여러 조직 중 한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도 향료 연구팀에 배치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평소에도 향수 같은건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향수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을 넘어서 아예 냄새 나는 것들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그저 머리를 감지 않아서 냄새가 나는지 아닌지, 학생식당에서 어떤 음식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고 오늘은 어떤 메뉴가 나오는구나 정도만이 일상에서 후각 자극이 내게 주는 영향이었다. 가끔은 빨래가 잘 안 말라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거슬리는 적도 있기는 하지만 그정도 냄새 맡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내가 향료 연구팀에 배치된다니? 나를 당황시켰던 것은 향료라는 이름이 주는 어색함 그 자체이기도 했다. 향이라는 건 일단 냄새를 잘 맡아야 일을 잘 할 수 있는것 아닌가? 나에게 그런 재능이 있었나?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도 향료 연구팀은 향에 대한 재능이 있어야지 일을 할 수 있는 부서였다. 무엇인가가 잘못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데 나는 첫 직장부터 꼬여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계속 돋아났다. 내가 향료 연구팀에 배정되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신입사원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 때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들으니 '쟤가 왜?'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알고봤더니 향료 연구팀이 인기가 좋은 부서였던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며 입사 원서를 낸 사람들도 여럿이었단다. 이 팀에서 근무하고 싶은 사람들은 면접에서부터 자신이 가진 향료에 대한 철학과 함께 이런 전문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과 이 팀에 대한 관심 등을 어필했다는데... 그럼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서 일하게 해주지. 나부터 '내가 여기에 왜?' 라고 생각하고 '쟤가 저기에 왜?'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도대체 나는 왜? 이곳으로? 입사 면접보다 더 긴장한 상태로 향료 연구팀장을 만났다. "어, 자네가 우리팀 신입사원인가? 앞으로 잘해보자." 연구팀장은 나에게 여러가지 당부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말이 있다. "앞으로 일하면서 교육을 통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80까지라고 보면 재능이 만드는게 90, 그리고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100을 완성시킨다고 할 수 있지." 아하 앞으로 100을 목표로 열심히 하라는 말씀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하지만 80으로도 우리 일을 하는데는 충분하니, 80까지는 확실히 만들어주겠다." 그 다음 순서는 감각 능력 테스트였다. 예상대로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 이 일을 할 수 없던 것이다. 그 때 깊은 내적갈등에 휩싸였다. 과연 나는 여기에서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어떻게든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서 다른 팀으로 재배치 되게끔 하는게 나은 것인지,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입사원들이 팀 배치가 끝나고 인사도 하고 이제 적응하고 있을 시점인데 갑자기 다른 팀에 배정되었던 신입사원이 모종의 이유로 재배치 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생겼고, 그 덕분에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테스트에 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는 쉽게 테스트를 치를 수 없었다. 아까 맡은 향과 지금 맡고 있는 향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해 내는 것은 의지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지금 맡고 있는 향이 무엇인지 구별해보는 수준이었지만 단계가 넘어가면서부터는 같은 향 타입인데 농도가 다른 하나를 찾아내는 과제들이 등장했다.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향은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건지, 냄새는 맡아 지는건지... 테스트를 하는 동안에 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못하겠다고 하고 돌아가는게 나은건가? 라는 생각을 수십번도 넘게 하면서 테스트를 마쳤는데 얼마 시간이 흐른것 같지도 않은데 끝나고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테스트 점수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알면 충격받아서 일 제대로 못 한다고. 그런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기는 하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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