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04/20 17:19:22
Name   Picard
Subject   요즘은 남자들도 육아휴직 쓴다던데..
안녕하세요. 중견기업 라이프 중년회사원 P씨 입니다.

얼마전에 후배지만 먼저 진급한 파트장이 육아휴직을 썼습니다.

저희는 보수적이고 군대분위기인 제조업이라 육아휴직을 쓰면 데미지가 큽니다. 특히 남자가요. 어차피 여자들은 방탄유리급의 유리천정 때문에 쓰나 안쓰나 똑같아서 다들 쓰고, 회사에서도 쓰기를 권유하는데.. (그래야 진급 안되는 이유가 생기니까)
남자는 육아휴직 쓴다고 하면 일단 여러번 만류가 들어오고, 쓰고 나면 복직을 안하거나, 했다가 몇달만에 그만두거나, 안그만둬도 몇년동안 진급을 물먹습니다.

전사 통 틀어서 보직자가 육아휴직을 쓴게 처음이라 센세이셔널 했는데… 뭐 당연하겠지만, 아무도 복직할거라는 기대를 안하더군요. 복직할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파트장 자리 비워둘 수 없어 서울에서 급하게 끌려온 신임 파트장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복직해야 자기가 서울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럼 왜 휴직을 했느냐… 여기서 또 사내정치가 들어갑니다.

저희는 생산팀이 여럿인데, 생산1팀장은 거의 차기나 차차기 공장장입니다. 지금까지 생산 1팀이나 2팀장을 겪지 않고 공장장이된 사람이 없고 그중 80%가 1팀장 또는 1,2팀장 둘다 거쳤고요. 생산3팀장이나 다른 팀장인데 공장장으로 올려야 겠다 싶으면 1,2년 1팀장을 했다가 공장장으로 승진합니다.

1팀에는 1파트와 2파트가 있는데, 1파트장이 보통 팀장으로 진급을 합니다. 1파트가 맡고 있는 라인들이 워낙 생산량이 많아서 2파트장이 1팀장이 된 적이 제 기억에는 없고요. 그렇다고 2파트가 안 중요한건 아니고요. 여기는 생산량 적지만 돈이 되는 라인들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파트장과 2파트장이 동기였습니다. 1파트장은 1파트 신입으로 입사해서 기술팀과 1파트만 왔다갔다한 1파트의 성골… 2파트장도 2파트와 기술팀만 왔다갔다한 2파트 성골이었습니다.

1파트장은 조용하지만 성실하고 끈기 있어 일을 잘하지만 술/담배를 안하고 회식자리도 의무적으로만 참여하는 타입이었습니다. 현장이랑 얘기할때도 조근조근 설득하는 타입
2파트장은 괄괄하고 호방하고 머리회전이 빨라서 일도 잘하고 술도 잘먹고 현장 분위기도 휘어 잡는 타입

그런데, 연말에 1팀장이 임원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1팀장이 누가 될까? 관례를 보면 1파트장이 되겠지만, 회사가 좋아하는 타입은 2파트장인데?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1파트장이 기술팀장이나 연구소로 가고 2파트장이 1팀장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회사가 이런 주력부서, 키포지션을 술안마시고 회식 피하는 사람에게 시킬리가 없다.. 라고 생각을 했지요. (사실 같은 동네 살고 저희 아이랑 1파트장 아이랑 같은 어린이집 다녀서 아내들끼리 교류가 있는데, 1파트장이 기술팀에 있을때가 좋았다고 했다고 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역시나 이 회사는 관례를 깨지 않았고, 1파트장이 팀장이되고, 2파트장이 1파트장이 되었습니다.
1팀장은 자연스레 차기 공장장 후보가 된거고 1파트장이 된 2파트장은 너는 동기 밑에서 일해라… 차기는 아니다. 라는 시그널을 준 셈이 되었답니다.

저같이 평범한 사람은 진급도 후배보다 늦어본적도 있고, 좌천도 당해보고, 주력부서가 아닌 지원부서 팀장들중에는 공장장보다 선배도 있지만..

역시 생산이라는 메인스트림에서 성골로 지내던 사람은 앞으로 네가 1팀장이 되어도 네 동기는 공장장.. 이런걸 견디기 힘들었나봅니다.

여기에 또 경영쪽은 A대학 라인과 B대학 라인의 헤게모니 싸움중이고, 공장/기술라인은 C대학+D대학 연합라인이 기존에 잘 나가던 E대학 라인을 밀어내느라… 2파트장은 E대학 나왔기 때문에 1파트장이 팀장이 된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고요. (1파트장은 저 대학들 출신이 아닌데다가 성격상 라인 타는 편도 아니고 중립적이라 어디든 포섭하기 좋은 상황)

그래서 2파트장이 휴직을 질러버린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잘나가던 보직자가 육아휴직 쓰고도 복직해서 계속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싶었는데…
이런 상황이면… 복직… 안하겠죠? 휴…

P.S) 저 아직 단축근무 신청 가능한 연령대인데, 좌천 당한김에 한번 질러볼까 싶기도 하네요. ㅋㅋ
아.. 단축근무 하면 월급이 주나..



7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624 일상/생각5년 전, 그리고 5년 뒤의 나를 상상하며 5 + kaestro 24/04/26 342 1
    14619 일상/생각나는 다마고치를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8 자몽에이슬 24/04/24 597 17
    14618 일상/생각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했고, 이젠 아닙니다 18 kaestro 24/04/24 1130 17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825 12
    14599 일상/생각가챠 등 확률성 아이템이 있는 도박성 게임에 안 지는 방법 20 골든햄스 24/04/12 1121 0
    14589 일상/생각지난 3개월을 돌아보며 - 물방울이 흐르고 모여서 시냇물을 만든 이야기 6 kaestro 24/04/09 409 3
    14588 일상/생각다정한 봄의 새싹들처럼 1 골든햄스 24/04/09 307 8
    14587 일상/생각탕후루 기사를 읽다가, 4 풀잎 24/04/09 449 0
    14575 일상/생각육아의 어려움 8 풀잎 24/04/03 667 12
    14574 일상/생각재충전이란 무엇인가 5 kaestro 24/04/03 535 5
    14573 일상/생각아들놈이 핸드폰 액정을 깨먹었어요. 8 큐리스 24/04/02 768 1
    14572 일상/생각처음간 동네 크린토피아 1 큐리스 24/04/02 589 0
    14571 일상/생각감사의 글 44 소요 24/04/02 984 74
    14560 일상/생각2년차 사원입니다 9 공대왜간공대 24/03/25 1319 10
    14557 일상/생각인지행동치료와 느린 자살 8 골든햄스 24/03/24 1288 8
    14554 일상/생각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 8 whenyouinRome... 24/03/23 912 27
    14550 일상/생각와이프랑 덕담 중입니다. 3 큐리스 24/03/21 849 4
    14539 일상/생각22살. 정신병 수급자 고졸. 9 경주촌박이 24/03/15 1365 1
    14537 일상/생각건망증,그리고 와이프 1 큐리스 24/03/15 706 1
    14535 일상/생각사람 안변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부부생활을 통해 조금은 변합니다~~ 5 큐리스 24/03/14 936 1
    14532 일상/생각groot 님 저격 4 nm막장 24/03/14 929 10
    14531 일상/생각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47 17
    14530 일상/생각그래도 하는 흉내라도 내는 직원들이 이뻐보이네요. 3 큐리스 24/03/13 953 0
    14526 일상/생각아들과의 대화 즐거우면서도 씁쓸합니다. 6 큐리스 24/03/12 899 3
    14516 일상/생각빼빼로데이의 슬픈 추억 1 큐리스 24/03/08 486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