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5/07 23:50:30
Name   골든햄스
File #1   널_위해.jpg (184.6 KB), Download : 32
Subject   널 위해 무적의 방패가 되어줄게!



위 그림은 어제 오늘 있었던 비폭력대화(NVC) 워크숍에서 그린 제 그림입니다.

저는 유독 화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래봤자 햄스터가 어느 정도겠냐.. 싶으시겠지만
지금도 양아치 3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가 가능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악과 깡이 있는 햄스터입니다. 싸웠단 건 아니고 대화 ... 대화 였지만 ...

타고난 성정인 점도 있는 게,
8살 때 '책상 위에 올라가!' 라고 해서 모두 무릎 꿇고 학교에서 한 아이의 잘못을 같이 연좌제로 벌 받으라 했을 때
햄스터는 책상을 뒤엎어 버리며 화를 냈다고 전해집니다 ( .. ) "내가 왜 남의 잘못까지 져야 해!"라는 게 이유였죠.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그 성질이 자신의 옛날 성격을 보는 거 같다며 이 아이는 좋은 대학을 갈 거 같다고 (?)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렇듯 이유 없이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자신을 부당하게 공격한다고 생각하면 지옥 끝까지 따라갈 듯 화를 내는 것이 지난 저의 어두운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내심 이렇게 화가 많고 초조한 제 자신을 걱정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 사회(라지만 어느 사회가 안 그럴까요 모), 친구들도 화 좀 죽이라고 걱정했습니다.

대학에서 문제가 생기면 총장께 바로 메일을 쏴 보내는 과감함,
옷가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녹음기를 치켜들고 출동,
부모에게 학대 당하고 자란 삶이 억울해서 독립하고 나서 바로 언론 인터뷰 출연 등,

신림역 앞에서 오토바이가 빵빵 거리면서 시비를 걸고 가면 "뭐!!!" 하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서서,
남자친구가 매달려 말리는 것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게임에서의 닉네임도 원격몽둥이, 좋아하는 마블 캐릭터도 헐크, 좌우명 '너도 나도 목숨은 하나'.
진상이 다가오면 더 진상으로 대해서 내쫓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살아오면서 내심 스스로를 이상하고 부끄럽게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살아야 해서 이렇게 살긴 하는데 .... '


그러다 마침 심리학 쪽 워크숍에 초대를 받았기에 참여했습니다.
비폭력대화(NVC)라는 이미 일각에서는 꽤 유명한 방법론의 워크숍이었는데요.
그곳에서, 느낌은 생존에 가까운 것(공기, 물, 교류, 돌봄 등에 대한 욕구)으로서 문제가 없지만
생각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 (여러 명상이나 심리학에서 통하는 이야기죠)
특히 '자기비난'이란 놈이 가장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라면서 자기비난을 종이에 그려보라고 시켰어요.

사람들은 여러 자신의 자기비난을 도화지에 옮겼습니다.

너는 항상 그래.
너는 항상 안 돼.
나는 혼자야.
네가 맨날 그러지, 뭐....

여러 사람들의 마음 아픈, 자신의 가슴을 뚫으며 무한히 반복되는 창이 도화지에 그려져 전시되는 가운데
저는 바로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어서 적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그것도 시뻘건 글씨로.



9살에 엄마가 절 버려두고 가고, 그 이후 아버지와 친가 집에서 살면서
큰아버지, 막내삼촌, 아버지에게 연달아 폭력을 당하고
큰아버지가 아버지의 갈비뼈를 의자로 부수는 것이나 막내삼촌의 다리를 소주병으로 부수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며
커왔습니다.

14살에 아버지와 단둘이 독립한 이후에는 *물론 제 의지 아님* 아버지에게 매주, 매일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고
목검, 옷 거는 가구로 때리기, 굶기기, 유기와 방임 협박, 실제로 며칠 집을 떠나 공포감 주기 등을 당하며

저는 점점 '멍해졌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애들 이름도, 제가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도 지금도 심지어 기억을 못합니다.
아무리 경찰에 호소해도 교사가 상처를 알아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가운데.
이로 인해 진로가 불투명하단 생각에 고민하면 당시 수많은 한국의 네티즌들은 '어찌됐건 아버지가 널 혼자 키우는데 네가 불효하는 것이다. 쓰레기 같이 공부도 안 하고.' 라는 식으로 대꾸했고, 유일한 통로인 인터넷에 죽고 싶다고 호소하면 '죽기 전에 대주고 죽어줘' 라고 남자들이 말을 걸었으며, 가난에 대해 고민하면 '어찌됐건 공부하면 네가 이기는 건데 가난해도 성공하는 사람 많은데 핑계대는 사람 바보 같아 보임' 하는 수많은 글들이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더 나아가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아이들은 외모와 사교성으로 급을 나누고 왕따를 시켰고 저는 동참하지 못해 외톨이가 됐습니다. 아무와도 제 고민을 얘기할 수 없었고 제 괜한 심각함 때문에 놀림거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점차 그 모든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분명해졌을 때였을까요.

"그래. 나는 날 구해야 해!"

아마 저는 그렇게 외쳤던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그걸 알기에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활동적이고 활기찬 아이로, 유독 똑똑한 아이로 소문났던 것 같습니다.
마치 다락방에서 혼자 자기 몸에 비해 너무 큰 슈퍼맨 코스튬을 걸친 아이처럼, 소녀는 자신을 위한 히어로로,
자신을 위한 스승으로, 자신의 유일한 친구로, 연인으로, 가족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어!"

그 가슴 아픈 자기비난도, 사실 살려는 간절한 외침이었단 걸 알아보라고 워크숍 진행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벌써 알 거 같아 눈물이 줄줄 날 거 같았습니다.

"""움직여!!"""

공부해, 운동해, 스스로 다그치고, 심지어 인간관계를 모르겠다는 이유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까지 읽던 (...) 저를 떠올립니다. -그걸 고등학교 인간관계에 적용하려 한 게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바보인 점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심각히 방치 당해 신발 하나 사는 법도 몰라 신발가게며 사이즈를 다 검색하고,
친구나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화장과 머리 손질을 배우는 과정은 고역이자 지옥이었습니다.
스몰톡하는 법, 만만히 보이지 않는 법, 한국식 빈말을 구별하는 법,

당시 학대를 당하고 가난해 기죽은 티가 나 있어서인지 저는 집에서 나가기만 해도 시비가 걸리고, 노숙자가 철로를 향해 등을 밀고 간다든가, 별의별 일을 다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게에서도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거 비싼데요?" 소리로 무시를 당하고요.

사람들은 너무, 너무, 너무 무서웠습니다.

처음 신어보는 구두에 절뚝거리기만 해도 비웃음소리가 따라왔고,
저로서는 당연히 부모 없이 처음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어려운 것들이
남들에게는 '예의를 모르는', '규칙을 모르는',
'웃기는' 사람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절뚝, 절뚝 안 맞는 구두도 인터넷으로 참고해서 사서 신어보고 걸으며 '여자가 구두를 신는 법도 배워야지' 속으로 고심하며 땀방울을 흘리던 저를, 젊은 부부는 웃기다고 킥킥거리며 보도블록 위에서 몇 번이고 돌아봤습니다.

식당에서는 너무 예의발랐고, 옷가게에서는 너무 느렸고, 모든 이유가 '튀었고' '이목을 끌었고'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악플러 같은 사람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스며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싸웠습니다.'

왜냐면 그토록 열심히 산 이유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 저를 지켜주고 싶어서였으니까.

부모의 빚을 갚고, 아파서 응급실에 가고, 길가에서 쓰러지며.


그 자기비난의 메시지 뒷면에 실제로 숨겨져 있었을 자신의 욕구를 그리란 말에 저는 바로 기분 좋은 파란 방패를 그리고 적었습니다.

"널 위해 무적의 방패가 되어줄게!"

안녕. 나. 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시절부터 고생이 많았지.
그 어린 아이를 저는 이제 노을 지는 바다에서 바라보는 심정입니다.
작지만, 너무나도 힘있고 신비로운 정령 같은 아이를요. 흩날리는 머리칼은 까맣고, 눈동자는 영리하고 장난스럽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날 혐오했기에, 저도 절 혐오해왔었습니다.
가끔 작은 게임도 이기려고 MT 분위기를 깨고, 작은 정보도 못 따라가면 초조해 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인생에 관해 조사를 하고, 살기 위해 장학금 헌팅을 다니던 저를 스스로도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아이는 너무도 순수한 맘으로, 사실은 어릴 때 그 맘 그대로, 자신의 유일한 친구를 보며

"널 위해 무적의 방패가 되어줄게!" 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란 걸 이제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이제 그 자기비난의 메시지와 함께 갈지, 아니면 이별할지, 정해보세요.
이별하더라도 감사의 말과 함께 이별해보세요.

저는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너무나도 애틋하고 사랑한다고,
나중에 힘들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나도 날 지킬 수 있고 날 지켜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너 혼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고맙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이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저는 저의 투쟁심에 안녕을 고하려고 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지지 않으려 했던 제가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제야 전 알 거 같습니다.
남들이 그토록 이야기한다는 대단한 부모자식간의 사랑, 사제간의 사랑, 사회의 안정, 올바른 경찰, 그 무엇도 받아본 적 없이 지낸 아이는 저에게 세상 자체를 주고 싶었고 단 한 점의 먼지도 묻게 하지 않고 싶었다고요.

널 위해 무적의 방패가 되어줄게! 그 외침은 이제, 방패 없이 묵묵히 여정을 나서며
'나는 이제 상처도, 죽음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정도로 더 강해졌어. 앞으로의 나의 모습을 지켜봐 줘.' 라고 말하는
조금 더 자란 청소년이 된 제 모습이 이어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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