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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3/03 21:53:00
Name   알탈
Subject   정당정치의 실패와 이준석, 이낙연의 한계
1. 거대 양당과 중소 정당
걸그룹1의 팬 A와 걸그룹2의 팬 B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A와 B는 걸그룹 순위에서는 의견이 다르겠지만, 아이돌 체육대회와 같은 큰 프로그램에서 걸그룹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함께 할 것이고, 걸그룹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주제에서 의견이 충돌하는 집단들도 커다란 주제에서 의견을 같이 한다면 하나의 집단이 될 수 있습니다.
국회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돌아가므로 정당은 당의 기치를 관철하기 위해 몸집을 불려나야 합니다. 정당을 구성하는 소집단의 계열 수가 늘어나는 만큼 정당 내부의 갈등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데, 정당의 지도부는 정당 내의 갈등을 물밑에서 해결하면서 정당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더 나아가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의제를 제시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욕먹고 있는 두 개의 정당은 이렇게 움직입니다. 가끔은 소집단간의 갈등과 의견 충돌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대의제를 선점하여 당원들을 끌어 모으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집단이기도 하죠.
이외의 중소 정당들은 이들이 하나로 엮지 못한 소집단들의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생존해 나가고 있습니다. 중소 정당들이 내는 의제는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외면 받거나, 호불호가 갈리거나, 거대 양당보다 더욱 극단적으로 치우친 것들로 시작하지만, 정당의 규모가 확대되다 보면 두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1) 호불호가 덜 갈리거나, 덜 극단적이거나, 혹은 사회에서 쉽게 거론할 수 있는 의제를 내걸면서 거대 정당의 길을 가느냐, 또는 2) 기존의 의제를 유지하면서 교섭단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느냐.

2. 당의 주류와 비주류
거대 정당에 속해 있는 비즈류 정치인들이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쉬운 일은 내부총질입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만큼 당의 주류들도 흔들리기 마련이고, 유권자들의 질타를 받을 때 이를 비판하면서 당권을 가져오는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vs 문재인의 지난 대선이었습니다. 물론 박정희의 후광을 등에 업은 박근혜라는 존재 자체도 강력했지만, 전 대통령 이명박의 임기 말 비호감도가 높은 상황에서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친이 vs 친박의 갈등 구조가 뚜렷했었기에 '지난 정권과는 다르다.' 는 이미지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처럼 비주류의 내부총질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닙니다. 내부총질은 일종의 '출구 전략'으로도 기능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윤석열 정부의 임기 말 지지율이 바닥을 친다면 꾸준히 내부총질했던 비윤 세력이 다시 당권을 쥘 수도 있고, 당권을 쥘 수 없더라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홍준표처럼 공천된 주류 세력의 후보 뚝배기를 깰 수도 있습니다.
비주류 세력의 내부총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비주류 세력의 '출구 전략' 입니다. 비주류가 무사히 당권을 탈환하여 주류 세력이 된다면 비주류 때 냈던 목소리가 그대로 당의 의제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당원들이 그 의제에 100 % 호응해준다는보장이 없죠. 따라서 내부총질은 당원들 혹은 적어도 예비 당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유권자들에게 비호감으로 작용해서도 안됩니다.

3. 이준석과 이낙연 - 당의 비주류에서 중소 정당으로
이준석이 비주류로써 대표했던 집단은 소외된 2030 미혼 남성, 일명 반페미니즘 세력입니다. 이들은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던 여성 세력들에게 기회를 박탈당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거대 양당에게 소외당해 왔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하버드대학교 출신이라는 학벌을 통해 "무능한 기성 세대"를 타파하는 "유능한 젊은 세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음으로써 기존의 "젊은 진보 지지층"과 "나이 먹은 보수 지지층"의 구도에서 "민주화 운동 이력 하나로 거들먹거리는 무능한 40-50 남성들"과 "능력은 있지만 기회를 받지 못하는 20-30 남성들"의 갈라치기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대선이 박빙으로 끝난 만큼 이준석이 진보지지층에서 이탈시킨 젊은 지지층의 역할이 매우 컸죠. 문제는 대선이 끝난 후 윤석열 정부가 젊은 남성 지지층을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준석은 당대표 자리에서 숙청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제를 쥐고 꾸준히 내부총질을 함으로써 젊은 남성들을 윤석열정부의 지지 세력에서 이탈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의 입지는 점점 공고해졌지만, 정당 내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고 커져만 갔습니다. '국민의 힘 이준석'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이준석이 국민의힘의 당권을 쥔다 해도, 이준석을 지지하는 남성층들만큼 이준석을 혐오하는 여성층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 얼굴로써 이준석은 심각한 결점이 있기 때문이죠.
이준석은 결국 탈당 후 창당을 결정하게 되는데, 저는 이준석이 정말로 탈당을 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해왔던 정당정치의 생리처럼, 이준석의 신당이 성공하려면 잠재적 당원들과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을 대의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준석은 2030 남성들을 끌어 모으는 과정에서 여성층 거의 전부와 40대 이상의 남성들을 '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정당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준석 신당에는 이준석보다 중년 남성과 전체 여성을 대상으로 확장성을 갖는, 이준석이 아닌 얼굴마담이 필요했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가 바로 유승민이었습니다. 반대로 유승민 입장에서는 이준석 신당이 딱히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탈당으로 실패를 겪어봤던 사람이고, 윤석열 정부의 실패가 예상되는 상황이니 만큼 국민의 힘을 지키고 있으면 반윤의 출구 전략이라는 필승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승민이 탈당하지 않음으로써 이준석은 유승민 만큼의 무게감 있는 정치인의 합류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반대편에는 이낙연이 있습니다. 이낙연은 이재명 만큼이나 갑자기 체급이 올라간 정치인입니다. 지지난 경선에서 문재인 - 박원순 - 안희정 -이재명의 순서로 줄이 세웠졌는데 앞의 두 명이 거꾸러지고, 당에서 비주류였던 이재명이 갑작스럽게 1인자가 되려 하자 머리를 잃은 주류 세력들 일부의 추대를 받은 정치인이죠. 그래서 지난 경선에서 이재명과 이낙연의 대결이 성사되었지만, 당원들의 민심을 잃는 언행을 수 차례 한 끝에 자리를 잃고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낙연이 걸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박근혜, 홍준표 및 유승민처럼 민주당의 출구전략으로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낙연은 패권을 잡고자 당을 안팎에서 흔드는 것을 선택했고, 이로 인해 당심을 잃으면서 탈당을 하고 말았습니다.

새롭게 신당을 창당한 이낙연과 이준석은 기존 거대 양당의 구성원들에게는 선택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준석에게는 소수의 극성 지지층이 있었고, 이낙연에겐 희미한 중도 확장성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합당함으로써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했는데, 이준석의 지지층은 이준석이 주도하고 이낙연이 얼굴마담을 하길 원했고, 이낙연은 이준석이 주도하는 개혁신당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잠깐의 동상이몽은 끝이 나버렸습니다. 이준석이 탈당을 하고 이낙연과 손을 한 번 잡았다가 놓은 순간, 2030 남성 지지층도 소수의 이준석 팬보이들을 남기고 이탈했습니다. 반대로 이낙연의 중도 확장성은 극단주의자 이준석과 손을 잡는 순간 끝이 났습니다.

4. 정리
이준석과 이낙연은 합당으로 얻은 것 보다 합당으로 잃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준석을 지지하는 반페미니스트들 중 상당수가 "정치를 위해서는 스윗중년 이낙연과 손을 잡을 수 있는 변절자"로 여기고 있고, 이낙연과 함께 했던 양당 이탈세력은 이준석의 개혁신당에 남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두 사람의 정당 모두 유의미한 득표율을 얻지 못한다면, 원 소속이던 양당에서도 신당 세력들을 받아주지 않겠죠. 거대 양당에서 비주류로 있는 것과 중소 정당에서 주류로 있는 것은 이렇게나 큰 차이가 있고,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두 사람이 여기까지 온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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