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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09 07:59:20
Name   뤼야
Subject   D.H 로렌스로 읽어보는 실존의 여성과 나


D.H.로렌스 [아들과 연인](Sons and Lovers, 1913)은 작가 자신의 자서전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줄거리를 보자면, 주인공의 출생 이전 부모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청년이 되어 어머니와 사별할 때까지의 사건들이 펼쳐지죠. 흔히 남성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설이 태어난 해를 감안해 보자면 소설의 주제가 진부한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고, 로렌스의 필력이 만만치 않은 터라 꽤나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제목도 근사하죠.

주인공의 아버지는 광부인데, 중류계급 출신의 어머니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 둘의 갈등은 아버지가 폐렴으로 죽기까지 끊임없이 지속됩니다. 이 부부의 갈등은 꼭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를 두고 서사의 완결성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매너리즘으로 볼 것이냐는 참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비교적 고전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완결성쪽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 맞겠습니다.

한편, 어머니는 아버지를 체념하고 자식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 와중에 형이 급사(急死)하고 말죠. 당연히 어머니의 사랑은 주인공인 폴에게 쏠리게 되구요. 게다가 그가 폐렴으로  병상을 오가는 도중, 어머니의 집착은 갈수록 심해집니다. 줄거리만 들어도 갑갑하지 않습니까? 그후 폴에게 연인이 생기지만 어머니와의 관계는 폴과 그의 연인의 관계에 방해만 됩니다. 그 후, 어머니의 죽음은 폴에게 정신적인 해방과 동요를 동시에 선사하고, 폴은 어느덧 홀로서기를 하는 방법을 깨닫는다는 내용입니다.  

시대착오적임을 감안하더라도, 로렌스의 여성관은 참으로 건질 것이 없습니다. 광부인 아버지와 그 아들의 캐릭터는 매우 진부한 어떤 패턴을 따르고 있다 하더라도 각각 독립적인 인격체로 볼 수 있죠. 그러나 어머니는 어떠합니까? 그녀는 진부한 패턴으로 만들어진 남성위에 얹혀사는 존재일 뿐입니다. 여성의 삶은 그야말로 남성이라는 빛의 그림자이며, 방향지시등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며 교차로에 대기하는 차량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로렌스가 이러한 작품을 쓴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렌스는 그의 책 [로렌스의 성과 사랑]에서 "여성들은 본보기를 갈구하고 있으며, 그 본보기에 따라 살아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또한 "디킨스가 천진한 아내를 (그의 작품으로부터) 안출해내자 그 후부터 천진한 아내들이 (실제로) 쏟아져 나왔다."라고 자신의 작품론을 설파하죠. 면피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폴이 사랑하는 여성은 여권운동을 한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시대착오적이고 철저히 유형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로렌스 특유의 심리묘사는 꽤나 높은 수준이라 볼만하다는 점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인 것이죠.

문제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다음에 등장합니다. 과연 여성으로서의 나는 어떤 식으로 패턴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제 자신에게 떨어진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의 실존은 과연,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베네딕트의 문화패턴, 푸코의 에피스메테 등등의 많은 학자들이 유형으로 구조화하고 패턴화한 것들에서 자유로와져서 실존이라는 징검다리를 향해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간극을 메우는 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하며,  또한 그러한 고민을 뒤로하고 몸으로 삶을 어떻게 끌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죠.

만약 로렌스가 소설에서 잘 형상화하고 있듯이 여성의 실존이 남성종속적이며 동시에 유형화된 것에만 머문다면, 여성의 존재가치는 기껏해야 남성이 만든 세계의 객관적 구조 아래서 볼품없이 재배치되고 유형화된 부속품에 지나지 않죠. 한편으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개개인의 삶이 사회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여성이 삶이란 더욱 살만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만약 벗어난다고 한다면 실로 세계라는 상대와의 커다란 싸움을 각오를 해야겠죠. 그런 싸움을 견뎌낼 용자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실존이 패턴에 잠길뿐이라면, 만약 오직 그러하다면... 그것은 제게는 아마 바다에 헤엄치되 머리도 내밀지 못하게 하는 꼴과 비슷할 것입니다. 곧 익사하고야 말았겠죠.

로렌스가 선사한 문학적 심미감은 오랫동안 문학덕후로 살아온 제게 소중한 것입니다. 미(美)를 논하는데 실제세계의 윤리관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자못 어리석은 짓이죠. 그러나 로렌스가 이야기하는 여성인 어머니만이 아니라 폴의 연인도 결코 실존적 존재라고 부를만 하지 못합니다. 폴의 연인이 보여준 여성운동이라는 소품은 홀로서기의 바다에 뛰어든 폴을 위한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들과 연인]이 로렌스 자신의 자전적 소설임을 감안해 보더라도, 그가 염려하는 것은 오직 홀로서기의 바다에 뛰어든 폴일 뿐입니다.

많은 고전이 그러하듯이 [아들과 연인]은 시대의 산물이며 문학적 승화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제가 인간이며 동시에 여성으로 서는데 많은 거울이 되어 주었죠. 칼 포퍼는 "우리가 외계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 노력의 일부가 실수였다는 사실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의 말은 반편의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해봅니다. 제가 저지른 실수는 나와 주변의 많은 이를 불편하게 만들수도 있지만 또한 그것은,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각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비록 외부의 시선에서 볼 때 못나고 어리석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 자신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런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옳겠죠. 저는 정해진 패턴대로, 정해진 유형대로만 생각하고 사는 것에 큰 반감을 느낍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존재, 그 실존의 결락(缺落)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아주 자주 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식당종업원, 문학덕후, 맛이 가면 유사과학 신봉론자 뤼야입니다. 
여러 캐릭터를 오가는 것이 과연 힘들군요. 크크크크크
어제 게시판을 어지럽혀 많은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드려 죄송합니다. (_._)
특히나 토비님께 좋은 유저가 되기로 약속했는데!!!!! 
낭중지추라고 더러운 성절이 어디가겠습니까.
반성하는 의미에서 반성문 같지 않은 반성문 한 장 제출하고 갑니다.
제가 맛이 가지 않아야 여러분이 좋은 하루를 보내실 거 같으니 술은 적당히 마셔야겠습니다.
메롱도 자제하고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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