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12/08 01:28:52수정됨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나는 더이상 차가운 거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
내가 최초로 거리에 나선 게 2002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이다.  올해 새로 입사한 후배 노무사가 1999년생이었다.  그 친구는 미선이 효순이가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거다.  나는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도 내 이름으로 검색하면 그때 인터뷰했던 오마이뉴스 기사가 뜬다.

매번 나갔다.  정말 일 터지고 건수 있을 때마다 나갔다.  나는 광화문이 가까운 서울에 살고, 그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지방 먼곳에서도 올라오는 사람이 있는데, 좀만 고생하면 걸어도 광화문 광장에 닿을 수 있는 내가 나서지 않는 건,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는 거라 생각했다.  2007년 12월 이명박이 당선되던 날 중학교 동창회에서 내가 왜 한숨을 내쉬는지 알아듣는 애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네들은 투표권이 있었고, 내게는 표를 던질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2008년 이명박이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광화문으로 나갔다.  참 많이들 고생했다.  곳곳에서 모인 친구들은 집에 돌아갈 차편을 찾지 못했고, 수 킬로를 걸어 우리집에 도착해, 선잠을 자고 새벽녘에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갔다.  그때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을 선언했던 조선일보는 그 시위를 지금와서 광기라고 부른다.

2012년 문재인과 박근혜가 맞붙은 대선에서, 신해철의 '그대에게'를 광화문에서 참 많이도, 몇번이고 목놓아 불렀다.  한 15m 앞에서 문재인 후보자를 봤었는데, 그게 그와 내가 가장 근접했던 순간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보냈던 그 끔찍한 날들을 모두가 기억하고, 자신의 투표용지에 담을 것이라 순진하게 기대했었다.  그 자들은 항상 찍던 번호를 적어냈다.  나는 허탈한 채로 돌아와 치킨과 맥주나 위장에 집어넣어 대충 채웠고, 내 친구는 그날 우리집에서 자다가 펑펑 울었다.

2016년 박근혜가 탄핵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에, 내가 몇차례나 광화문에 나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매주 머릿수를 채워주려고 노력했었고,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던 그 순간에도 나는 여의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했을 때에는 헌법재판소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직장인들에게 돈까스를 서빙하고 있었다.

항상 그 많은 일들은 유난히 11월과 12월에 일어났다.  그 추운 날 아스팔트 또는 돌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자면, 체온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한기가 살을 타고 올라와 뼈를 울린다.  그 추위는 항상 나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 사회에 표로 똥을 싸지른 작자들은 절대 그 추위를 겪지 않는다.  땃땃한 안방에 누워 '내일이면 결론 나올 건데 뭐하러 거리로 나가서 저 고생한디야~'하면서 냉소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인식하지 않을 뿐더러,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나는 이제 그들에게 사단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재명 막았다도르, 민주당 뽑았으면 레드팀 갔다 같은 소리 하는 작자들에게 나는 이제 기대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 잘난 블루팀에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던가.  언제부터 태국도 블루팀의 일원으로 받아주기 시작한 건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국회에 군대 투입한 게 참 자랑스럽기도 하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거리로 나서고 싶지 않다.  지난 20년간 할만큼 했고, 충분히 했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 헌법 1조'와 '상록수'와 '아침이슬'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지겨워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눈물은 노무현 노제에서 충분히 흘렸고, 분노는 박근혜 탄핵에서 충분히 뿜어냈다.  이제 윤석열 정권을 배출했던 당신들이 알아서 애프터 서비스해라.  아무리 민주주의가 후불제이고, 또한 조모임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이제 지쳐서 거리로 나가고 싶지 않다.  

더이상의 무임승차를 눈감아주고 싶지 않다.



43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024 1
    15878 창작또 다른 2025년 (3) 3 트린 25/12/04 287 2
    15877 스포츠[MLB] 코디 폰세 토론토와 3년 30M 계약 김치찌개 25/12/04 215 0
    15876 창작또 다른 2025년 (1), (2) 8 트린 25/12/03 457 7
    15875 기타유럽 영화/시리즈를 시청하는 한국 관객에 관한 연구(CRESCINE 프로젝트) 19 기아트윈스 25/12/03 567 2
    15874 일상/생각큰일이네요 와이프랑 자꾸 정들어서 ㅋㅋㅋ 14 큐리스 25/12/02 954 5
    15873 오프모임12월 3일 수요일, 빛고을 광주에서 대충 <점봐드립니다> 15 T.Robin 25/12/01 548 4
    15872 경제뚜벅이투자 이야기 19 기아트윈스 25/11/30 1509 14
    15871 스포츠런린이 첫 하프 대회 후기 8 kaestro 25/11/30 440 12
    15870 도서/문학듣지 못 하는 아이들의 야구, 만화 '머나먼 갑자원'. 15 joel 25/11/27 1044 27
    15869 일상/생각상남자의 러닝 3 반대칭고양이 25/11/27 699 5
    15868 정치 트럼프를 조종하기 위한 계획은 믿을 수 없이 멍청하지만 성공했다 - 트럼프 행정부 위트코프 스캔들 6 코리몬테아스 25/11/26 903 8
    15867 일상/생각사장이 보직해임(과 삐뚫어진 마음) 2 Picard 25/11/26 690 5
    15866 일상/생각기계가 모르는 순간 - 하루키 느낌으로 써봤어요 ㅋㅋㅋ(와이프 전전전전전 여친을 기억하며) 5 큐리스 25/11/25 627 0
    15865 경제주거 입지 선택의 함수 4 오르카 25/11/25 650 3
    15864 철학/종교진화와 창조, 근데 이게 왜 떡밥임? 97 매뉴물있뉴 25/11/25 1871 4
    15863 일상/생각창조론 교과서는 허용될 수 있을까 12 구밀복검 25/11/25 1057 17
    15862 기타★결과★ 메가커피 카페라떼 당첨자 ★발표★ 11 Groot 25/11/23 616 4
    15861 기타[나눔] 메가커피 아이스 카페라떼 깊콘 1 EA (모집마감) 31 Groot 25/11/21 675 3
    15860 일상/생각식생활의 스트레스 3 이이일공이구 25/11/20 714 1
    15859 일상/생각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moqq 25/11/20 646 7
    15858 오프모임[취소] 11월 29일 토요일 수도권 거주 회원 등산 모임 13 트린 25/11/19 770 3
    15857 경제투자 포트폴리오와 축구 포메이션2 2 육회한분석가 25/11/19 476 3
    15855 의료/건강성분명 처방에 대해 반대하는 의료인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넋두리 46 Merrlen 25/11/17 2012 2
    15854 경제투자 포트폴리오와 축구 포메이션 육회한분석가 25/11/17 563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