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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5/08 00:09:23 |
Name | 당근매니아 |
Subject | 중대재해처벌법은 악법인가 |
제목은 거창합니다만, 그냥 잡상 수준의 글입니다. 지난 2년여 노동법 분야에서 꽤 핫했던 주제가 중처법입니다. 사람이 죽는 등의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사고가 산업안전법상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발생한 걸로 판단되면 대표이사를 빵에 보내겠다는 내용의 화끈한 법안이죠. 이거 처음 시행할 때 진짜 재계 쪽 반발 엄청 났습니다. 경총을 비롯해서 그 요새 이름 맨날 까먹는 전경련이 발광을 했고, 경제지들에서 연일 난장판을 피워댔죠. 시행 후 몇년이 지나면서 유죄 판결 받고 실제로 빵에 간 대표들도 있고, 필요한 조치 충분히 취했었다는 취지로 무죄 방면된 대표들도 있습니다. 대형로펌들이 이런 사건 하면서 꽤나 재미 보는 거 같더군요. 중처법이 실효성이 있네 없네 말이 많았지만, 필드에서 본 바로는 중처법 시행 이후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가 일단 엄청 늘었습니다. 어찌되었건 불의의 사고는 터지기 마련인데, 최소한 법률에서 정한 의무는 전부 제대로 지켜야 대표가 빵에 안 갈 거 아닙니까. 최초 1년 정도는 산업안전 관련 컨설팅 시장도 엄청 활성화되었습니다. 유죄 나오면 대표이사를 무조건 징역 1년 이상 때려버리겠다고 으름장 놓는 이 법의 구조는 상당히 원시적이고 무식해보이지만, 사실은 한국의 기업 구조가 후진적이고 원시적이며 무식하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예컨대 미쿡식 주식회사에 창업자가 아닌 월급쟁이 대표이사가 앉아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이 법은 그다지 쓸모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산업안전 확보에 들어가는 돈하고, 월급쟁이 대표가 빵 갔을 때의 손해를 저울질해서 적당한 수준으로 투자하겠죠. 일전에 건강보험회사 사장이 경호원 하나 없이 돌아다니다가 총 맞았잖습니까. 근데 한국은 계열사 사장마다 친족이 하나씩 대표직함 달고 있는 친족 경영이 성행하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 말같잖은 '오너 일가'의 심기경호가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 대빵이 검사한테 수난 당하고 빵까지 가면 회사 전체가 뒤집어지니까요. 뭐 저야 한국 법만 주물럭거렸으니 영미권의 법률 체계나 비교법적 논의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경제체제 하에서는 대표이사 빵 보내는 것보다 막대한 수준의 과징금을 먹여서, 산업안전에 신경 쓰는 게 기회비용 측면에서 유리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고, 한국의 이 기형적 재벌놀음판에서는 대표이사 빵 보낸다고 협박하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 같습니다. 그래서 뭔 얘기를 하는 거냐면, SKT 사건 같은 보안 문제도 대표이사 빵 보내야 쉽게 해결될 거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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