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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1/19 06:58:09 |
Name | 뤼야 |
Subject | 아래 글에 이은 [더 랍스터]잡담 |
아래 삼공파일님이 영화 [위플레쉬]에 대한 잡담(?)을 올려주셨는데, 워낙 작년에 인기가 많았던 영화고 저도 굉장히 재미있게 본 영화라서 이야기가 진지해지고 말았네요. 사실 이 글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기다리던 책이 오지않고 해서 이런저런 잡생각 끝에, 구밀복검님이 패널로 계시는 팟캐스트 영화계에 올라온 영화 [더 랍스터]에 대한 생각을 좀 끄적여 볼까 합니다. 사실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생각을 쓴다는 게 웃긴데 요새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어요. 영양가도 없이 할 일이 너무 많네요. [더 랍스터]라는 영화는 솔로지옥 커플천국의 근미래를 상정한 영화라고 하네요. 커플이 되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아니면 커플이 되기 위해 주어진 시간동안 호텔에서 머물며 짝을 찾아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추방되는 사회를 상정한 영화랍니다. 일단 설정이 매우 과감하게 느껴지는데, 우연과 필연이 혼탁하게 얽혀있는 세속이라는 그물을 단순화시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내드는, 다소 노골적인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런 시도는 쟝르물이 흔히 그러하듯 전통적인 가치와 윤리를 찾아내고 극대화시켜 쾌감을 즐기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발목을 잡혀 그 이상의 것이 되기는 어렵기도 하지요. 제가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뭐라 단정지어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영화계의 세 분의 패널 중에서 한 분만 커플이고 나머지 두 분은 솔로인데, 이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사뭇 달라서 영화의 내용보다 세 분이 보여주는 태도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커플이었던 한 분이 이 영화에 대해 어떤 거부감을 보였던 이유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랑이 뭐길래?' 사랑에 빠진 우리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변호하려 드는 것일까요? 영화 [더 랍스터]가 잘 보여주듯이 '인간, 너희들이 하는 사랑도 동물적인 사랑과 하등 다를게 없어.'라고 왜 우리는 선뜻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인간이 하는 사랑은 과연 특별할까요? 아니 인간은 과연 특별할까요? 사실 인간을 특별하게 이야기하려는 시도는 어제오늘,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지요. 인문학이 바로 이러한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인간종에 대한 길고 긴 변명입니다. 진화심리학을 꺼내들면 인문학이 풀이 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야기. 참으로 오랫동안 잘 해왔습니다. 인간에 대해 이렇게 길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또는 필연이 인간이 언어라는 거미줄에 걸려 있기 때문일텐데요. 이 거미줄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거미줄을 쳐서 그 탄성을 운용하는 셈인데, 이것이 모든 비극과 희극의 원인입니다. 아마 셰익스피어도 이 때문에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썼을 것이고 비트겐슈타인도 그리 강박적으로 언어에 대해 말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렇게 언어성으로서의 인간을 추적하는 방식은 이제 너무 진부해져버린 셈이죠. 이야기가 이상하게 새버렸는데 잡답이니까 그러려니 하세요. 다시 사랑으로 돌아와서, 사랑을 하는 우리에게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세속의 우연과 필연의 얽힘만큼이나 혼탁한 사랑의 정의에서 사랑을 하는 우리는 무엇을 건져낼 수 있을까요? 사랑에 대해 그토록 많이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사랑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돌파해야할까요? 그저 가장 근접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이란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그 말대로 행하는 것, 즉 언표수행적인 행위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랑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행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사랑은 곧 사랑이다'라는 위대한 동어반복이 되는 셈이지요. 진리가 그러하고, 신앙이 그러하듯, 사랑은 사랑을 찾아 나선 사람의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데도 없고 어디에나 있지요. 아주 짧은 매혹의 순간을 지나 사랑에 이르는 길은 우리 스스로 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사랑이 고뇌인 것에 대해 길고 길게 이야기 한 것이 바로 사랑은 누구에게도 같지 않은 길을 가게 만들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누구에게나 일리로서 통하고, 무리가 아니라면 무미건조한 삶을 꿰둟게 만드는 주술과 같은 신앙, 곧 진리인 셈이지죠. 패널 한분이 보여주신 거부감은 이로서 어느 정도 해명된 셈인듯 싶습니다. 사랑은 신앙과 같은 것이어서, 스스로 만든 계율을 지키고, 신(사랑)을 향해 나아갑니다. 누군가 '야! 신(사랑)이 어디있어?'라고 말한다면? 도킨스처럼 용감하지 않다면 나서지 말아야합니다. 암요. 자... 이 추운 계절에 솔로인 분들... 반성하세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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