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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4/02 09:01:11 |
| Name | 큐리스 |
| Subject | 창세기전-형광등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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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의 어둠의 세력은 어느 날부터 서서히 우리 집 거실을 잠식하고 있었다. 한때 찬란하던 형광등은 힘을 잃고, 빛은 점점 희미해졌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어둠의 침공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철물점으로 향해 새로운 광명의 병기, 신형 형광등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의자를 디딤돌 삼아 천장으로 향했다. 낡은 빛의 잔해를 떼어내고 새 형광등을 장착하는 순간, 나는 단순히 등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의 질서를 다시 세우고 있었다. 마침내 스위치를 올리며 선언했다. “빛이 있으라.” 순간 거실은 환해졌고, 나는 잠시 집안의 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곧 진짜 신인 와이프가 귀환할 예정이다. 그때 비로소 밝혀지리라. 내가 세운 것이 과연 창조였는지, 아니면 형광등만 갈아놓고 박스와 먼지는 그대로 둔 졸속한 개벽이었는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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