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2/09 19:14:49
Name   얼그레이
Subject   [7주차] 누나네 아저씨
[조각글 7주차 주제]

이어쓰기

조건
- 여태까지 상대가 쓴 글을 대상으로 자유롭게 글을 쓴다. 그 글을 보고 연상을 하던지, 칭찬을 하든지, 비평을 하든지, 이어쓰기를 하든지 마음대로!
홍차넷 공지 티타임 (자유) 게시판에 있는 [창작] 카테고리의 조각글을 대상으로 합니다.
- 하단에는 해당 글을 쓴 회원의 닉네임으로 지은 삼행시를 첨부합니다. (영어 닉네임은 해당닉네임을 가진 회원님께 문의하세요)

합평 받고 싶은 부분

두루두루 봐주세요!

이어쓰기 글
이어 쓰는 분 : nickyo

하고 싶은 말

장편 소설이 될 것을 감안하고 썼습니다. 고려해서 봐주세요 :)

본문


병호는 차장의 펀치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드니 차장이 표, 라고 퉁명스레 말한다. 병호가 황망히 주머니에서 기차표를 내밀자 차장이 빨간 펀치로 구멍을 뚫었다. 병호는 차장이 내준 표를 받아들고 멍하니 봤다. 옆에서 삶은 달걀을 먹고 있던 기태가 넌지시 말한다. 아부지 이 구멍 모양 꼭 집 같다. . 병호는 광명에 있는 제집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집에 있던 작은 연숙을 생각한다.

     

아버지, 아빠 이름도 멋지구 엄마 이름도 예쁜데, 내 이름만 숙이 뭐야.’

연숙은 좀처럼 불평이 없고 말도 별로 없었다. 애교도 없었다. 그래서 병호가 기억하는 유일한 불평이란 제 이름이 촌스럽다는 거였다. 그마저도 조근한 목소리로 웃음기를 섞었다. 그래서 기태의 이름을 정할 때도 연숙이 후보에서 고른 것으로 했다. 기태가 듬직해 보여. 연숙은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병호는 죽은 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연숙은 커갈수록 제 엄마를 많이 닮았다. 반달보다도 더 하얀 눈웃음이 똑 닮았다. 그래서 내 이름만 숙이 뭐야, 하고 웃던 희를 밭을 매다가도 자주 떠올리곤 했다.

     

기태가 종종 엄마는 어떻게 생겼느냐는 물음에 병호는 쓸데없이 그런 건 물어 뭐하냐고 타박을 했다. 연숙과 기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몸이 약해져 있던 희는 기태를 낳고 죽었다. 사내가 심성이 약해서 어데 쓰나. 그러다가 어느 날은 곡주를 마시고선 네 누나와 똑 닮았다며 넌지시 말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기태는 누나와 엄마를 구분하기가 힘든지 눈을 끔뻑였다.

     

연숙은 병호의 반도 안 되었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해왔다. 부엌에 절대로 출입하지 않는 병호의 고집 때문이었다. 어떻게 남자가 부엌엘 드나드나. 연숙이 공단서 일한다고 했을 때 탐탁지 않던 것도 그 이유였다. 집안일은 누가 하나! 병호는 대뜸 성부터 냈다. 주말에 올라오면 되지. 연숙은 매주 서울과 의정부를 오가며 밥이며 빨래며 밀린 집안일을 하곤 했다. 연숙은 찬물에 손이 부르트면서도 아무 불평을 하지 않던 아이였다. 지난 주말에 올라와 가죽장갑을 내밀었을 때 연숙이 벌써 이만큼 컸나 하면서도 장갑을 내미는 연숙의 튼 손에 죄책감이 들었다.

연숙의 소식에 서울로 올라가면서도 기태를 위해 달걀을 삶아온 것도 그 이유였을 것이다. 연숙이 기태에게 몰래몰래 달걀을 삶아준 것을 병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기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연숙과 병호는 잘 알고 있었다. 병호는 희가 죽은 뒤로 처음으로 부엌엘 들어갔다. 찬을 꺼낼 때도 기태를 시켜왔던 병호였다. 달걀 삶는 거야 물을 넣고 끓이기만 되지 하고 안이했던 병호는 달걀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서야 불을 끄다가 넘친 물에 손을 데었다. 찬물에 손을 식히면서 병호는 문득 연숙은 무슨 음식을 좋아했나 생각해보았다. 알 수가 없었다.

     

소금을 넣었으면 안 터졌을 텐데 하고 기태가 삐죽거렸을 때 처음에는 달걀에 화를 냈다, 소금에 화를 냈다가 미리 말해주지 않은 기태에게 화를 냈다가, 결국은 저 자신에게 화를 냈다. 그나마 성한 것을 몇 개 건져와 기태의 손에 쥐여주었다. 달걀도 성하게 삶지 못하나. 병호는 달걀을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목이 멨다.

     

병호도 실은 알고 있었다. 기태가 공부할 머리가 아니라는 걸. 연숙은 생긴 건 희를 닮았어도 머리는 저를 닮았다. 병호는 머리가 좋았다. 서당에서 한자도 얼마 배우지 못했어도 그럭저럭 몇 번 보고 읽을 수 있었다. 병호는 자주 자신이 공부를 했었으면 하고 생각해보곤 했다. 지금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았으리라 생각했다. 그 당시는 전쟁통이기도 했거니와 아버지가 공부는 그만하고 일이나 도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할 일들이 많아 아쉬움을 금세 잊을 수 있었다. 나중에 연숙이 한글을 배운다고 들고 온 교과서를 몇 번 들여다본 것이 병호가 한 공부의 전부였다.

     

아쉽게도 공부 머리가 연숙에게 갔을 뿐이었다. 여자가 공부해봐야 어디다 쓰나. 병호는 나중에 연숙이 힘들게 아이를 가지고선 사실 그때 공부하고 싶었다는 말에도 똑같이 대답했다. 그래서 병호는 기태의 공부에 자주 역정을 냈다.

     

기태가 달걀을 급하게 먹더니 결국 사레가 들었다. 병호는 지나가던 수레를 멈춰 사이다를 하나 사주었다. 기태는 몹시 기뻐했다. 병호가 뚜껑을 따다가 손을 베었다. 기태는 제 아비가 피를 흘리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녹색병을 꿀꺽일 뿐이었다. 병호는 화를 내려다가 그만두었다. 앞자리에 앉은 여자가 병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병호는 눈으로 인사를 하며 지혈을 했다.

병호는 늘 기태가 나이에 비해 천진하고 어려 걱정이 많았다. 동네에서 모자란다고 놀림을 받을 때마다 엄마가 없어서인가하곤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기태가 홀로 서울에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했을 때 내심 기특해 했다. 그 정도 깡다구는 있어야 그래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남지. 병호는 나마저 죽으면 어떻게 하나 덜컥 아들이 걱정되었다. 병호는 원체 말이 별로 없었지만 기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었다. 네 덕에 누나 소식을 알게 되었구나. 고맙다. 앞으로도 네 누나는 네가 보호해야 한다. 기태는 응. 아부지, 걱정 마. 서울 가면 누나는 내가 보오할게. 녀석아. 보오가 아니라 보호. 병호가 껄껄 웃으며 기태의 머리를 더 세게 쓰다듬는다. 병호의 붉은 눈가가 서울을 나선 지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기쁜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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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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