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 Date | 26/02/28 09:09:51 |
| Name | joel |
| Subject |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 선 개인의 양심. |
|
보스니아 전쟁(1992-1995)은 수많은 학살과 전쟁범죄가 일어났던 전쟁입니다. 보스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탈퇴해 독립하는 것에 반발한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들의 봉기로 시작된 이 전쟁은 주변국들의 개입으로 겉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이 전쟁이 끔찍했던 이유는 서로 다른 국가나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끼리 싸운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에서 살던 이웃들끼리 학살을 벌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본래 보스니아의 인구를 구성하는 보슈냐크,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은 서로 간의 정체성은 달랐어도 같은 지역에 섞여서 살았지요. 그렇게 서로 교류하고 통혼하며 살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적으로 돌아선 겁니다. 우리가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를 죽일 거라 믿으면서요. 그렇게 '우리가 아닌 자들'을 지워 버리기 위해 상대편의 남성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강간하는 목불인견의 전쟁범죄들이 일어났지요. 그 중 최악의 사례는 전쟁 말미에 스레브레니차 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입니다. 약 8천여명의 보슈냐크 피난민들이 세르비아 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학살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즉각 배신자 낙인이 찍혔습니다. 스르잔 알렉시치 라는 세르비아 군인은 길거리에서 한 보슈냐크인을 폭행하는 동료 군인들을 제지하다가 그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숨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UN은 구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ICTY)를 조직해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했습니다. 이 중에는 스레브레니차 학살에 연루되어 기소된 드라간 오브레노비치(Dragan Obrenović) 라는 전 세르비아 군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레브레니차 학살 당시 그 실행을 주도한 여단의 여단장 대리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직접 학살을 지시하거나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학살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이를 막지 않고 상부의 지시에 따라 학살 장소에 병력을 보내주었다는 방조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얼마 후 검찰과 협의하에 죄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며 반성의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다음은 그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입니다. 이 전쟁이 어떤 광기 속에서 치러졌는지, 그 속에서 인간의 양심이 어떻게 짓밟혔는가를 보여줍니다. 매우 인상적인 내용이라 번역을 해봤습니다. 다소 의역이 포함되어 있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문: https://www.icty.org/x/cases/obrenovic/cis/en/cis_obrenovic_en.pdf “제가 태어난 고장에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축하의 의미로 총을 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 총성에는 사내아이가 가정의 새 일원이 되었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 아이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힘, 그리고 가정을 지키는 것 말이죠. 우리 고장 사람들이 말하듯, 남자들은 전사이자 군인이며 가장이 되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전쟁의 총성이 울려 퍼졌을 때 모든 남자와 사내아이들은 마땅히 군복을 입고 총을 들어 고향과 국가, 그리고 가족을 지키러 나서야 했습니다. 이건 그들이 해야 할 일이자 신성한 의무였습니다. 군인이 되느냐 배신자가 되느냐, 그 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처음 전쟁이 벌어질 때만 해도 전쟁과 전쟁이 불러올 참상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며칠 내로 해결되어 우리 세대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공동체 사이(inter-ethnic)*의 증오에 휘말려 더 이상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없으리라고는, 죽음과 함께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조차도. 죽음은 우리의 곁을 찾아왔습니다. 불행히도, 그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공포가 우리의 일상이 될 거라는 사실을 이전까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게 우리 삶의 일부가 될 거라고 누가 믿었겠습니까? 공포에 둘러싸인 채로 우리는 거기에 익숙해졌고,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 공포 속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가족처럼 지냈던 이웃들에 의해 모든 일들이 자행되었습니다. 보스니아에서 이웃이란 친족보다 더한 의미를 갖습니다. 보스니아에서 이웃과 함께 커피를 즐기는 것은 하나의 의식(ritual)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짓밟고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증오와 폭력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불행과 두려움 속에서, 스레브레니차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저의 죄를 말하기 위해 이 법정에 섰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을 고심했습니다. 죄책감이 항상 저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저는 이 진실을 증언하는 것이 너무도 힘겹습니다. 제가 과거에 저질렀던 모든 것은 저의 책임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지우고 싶고, 그 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또한 제가 하지 않았던 것, 포로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맡았던 직책이 일시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수없이 되묻습니다. 내가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수 천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무덤, 난민, 총체적인 파괴, 참사와 비극만이 남았습니다. 저 역시 그 책임의 일부를 짊어졌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남은 참사들이 여기저기에 존재합니다. 저의 증언과 혐의 인정은 우리 공동체(nation)**의 죄를 덜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저 개인의 죄, 드라간 오브레노비치라는 저 개인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입장을 고수하겠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넋을 향한 저의 사죄와 자책이 보스니아의 화해에 기여하고, 다시금 이웃끼리 손을 잡고, 아이들이 함께 뛰어 놀며 미래를 향한 권리를 갖는 데에 기여한다면 저는 기쁘겠습니다. 저의 증언이 희생된 이들의 유족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이 또다시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면서 증언대에 서는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기쁘겠습니다. 단지 보스니아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이것이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지만, 지금 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의 좋은 경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겪은 고통 속에서 승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고통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방에 아픔이 가득합니다. 맹목적인 증오가 낳은 참사와 불행만이 승리했습니다. 많은 고통을 겪어 온 보스니아의 언덕 위에는 여전히 불행의 망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끔찍한 전쟁의 흔적을 지우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려면 여러 해가 지나야 합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지워 지는 데에는 수 십년이 걸릴 지도 모릅니다. 저의 고백이, 저의 증언이, 저의 후회가, 저 자신을 마주하려는 시도가 그 상처들의 빠른 회복을 돕는다면 저는 군인이자 전사, 인류의 일원이자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집행하려 노력한 검사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저의 증언을 주의 깊게 들어 주신 판사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모든 질문에 대해 가능한 한 올바르고 진실되게 대답하려 노력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thnic(group)은 한국어로 딱히 번역할 말이 없는 단어입니다. 흔히 민족으로 번역되는데 우리가 말하는 민족이 혈연이나 인종에 기반한 것이라면, Ethnic group은 단순한 혈연이 아니라 같은 문화나 언어, 역사적 배경 등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공동체로 옮겼습니다. **Nation 역시 한국어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는 개념입니다. 흔히 민족 또는 국가로 번역되지만, 이 역시 혈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특정 국가를 이루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의미하기에 한국에서 말하는 민족과는 다릅니다. 여기서는 위의 에스닉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로 옮겼습니다. 보슈냐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인 들은 사실 혈연으로 보나 언어로 보나 똑같은 남슬라브인들입니다. 지금은 서로가 원수가 되어 갈라선 탓에 자신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강조하며 일부러 차이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모두 세르보크로아트어 였고 지금도 서로가 통역 없이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들을 나누던 것은 혈연이나 언어가 아니라 종교와 문화, 역사적 배경이지요. Ethnic이나 Nation 대신 한국어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경우 큰 오해가 생길 수 있기에 그렇게 옮기지 않았습니다. 드라간 오브레노비치는 이 진술 이후 법정에서 17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법정은 그가 학살을 방조한 공범이라 판결했습니다. 사실 오브레노비치는 정말 지독하게 운이 나빴습니다. 그가 여단장 대리를 맡은 것은 겨우 이틀 간이었는데 하필 그 이틀 사이에 학살이 행해졌거든요. 그가 상부의 지시를 거부했다면 아마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그가 거부했다 해도 명령이 철회될 일은 없었을 거고요.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다른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학살의 피해자였던 보스니아의 어느 무슬림이 법정에 출석하여 그의 선처를 탄원했습니다. 오브레노비치는 전쟁 기간 동안 그가 알지도 못 하던 무슬림 가족을 위해 2년간 매달 식량을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또다른 무슬림 여성은 오브레노비치가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신의 가족들을 직접 세르비아 점령지에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증언했죠. 이들 역시 오브레노비치와 아무 인연이 없는 생면부지의 피난민들이었습니다. 또한 오브레노비치는 상부를 설득하여 무슬림 피난민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부대를 수색하도록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들이 감경 사유로 작용했지요. 그의 증언은 다른 전범들의 재판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증언 덕분에 학살을 지시한 이들은 그것이 조직적인 전쟁범죄가 아니었다고 우길 수 없었죠. 오브레노비치는 2003년 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구속 기간을 합쳐 10년 간 복역하다가 2011년, 노르웨이의 교도소에서 조기 석방되었습니다. 그 후의 그의 행방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역사가 만들어낸 거대한 광기 앞에서 개인의 양심이란 참으로 무력한 것이 되고 맙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죄의식을 벗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하고 기꺼이 증오 속에 몸을 던질 것이고, 누군가는 대의명분으로 자신을 포장할 것이며, 대다수는 마지못해 따를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양심을 실현한 콜베 신부 같은 의인들은 참으로 드문 존재들이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 거스를 수 없지요. 드라간 오브레노비치 역시 예외가 되지 못 했습니다. 그러하기에 개인적으로는 학살에 반대하면서도 명령을 거부하지 못 했지요. 그러나 그가 저 증언을 위해 감내해야 했던 대가는 참으로 컸습니다. 당시 직접 손에 피를 뭍혔던 대다수의 민병대원들은 여전히 그들이 살던 땅에서 아무 처벌도 없이 생존한 피해자들과(!) 같은 거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쟁과 학살을 지시했던 지도자들은 여전히 세르비아에서 애국자로 불리며 옹호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브레노비치는 석방 후 어디로 향했을까요. 그는 보슈냐크 인들에게는 학살의 공범이고, 세르비아인들에게는 배신자일 뿐이죠. 그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에게는 많은 변명 거리가 있었습니다. 불가항력이었던 지시, 그들을 영웅시 하는 목소리, 그리고 재판을 행하는 UN과 NATO조차 정의 라는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역사적 사실, 그에게 내려진 정의 역시 힘의 논리에 기반했다는 사실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고통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광기 속에서도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을 했고, 마지막에는 평범함을 넘어서는 용기를 보여줬습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닥쳤던 운명이 한없이 가혹하게만 느껴지네요. 덧붙이는 말. 원래 이 글은 지난 내란 당시 동원되었던 군인들을 생각하며 끄적이던 글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군인들이 올바른 선택을 했지요. 군대는 합법적인 폭력의 투사가 허용된 국가 내의 유일한 집단입니다. 국가는 군인을 대신하여 양심을 지녀야 하고, 군인들이 국가의 지시를 수행함에 있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선 안 됩니다. 따라서 군인들이 가진 명령과 원칙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권리의 보장이란 아주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밤중에 국회를 습격하는 상황이 그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초병 수칙', '총기는 제2의 생명' 이라는 말이 국민과 헌법 위에 설 수는 없습니다. 참조자료 드라간 오브레노비치의 판결문 https://www.icty.org/x/cases/obrenovic/tjug/en/obr-sj031210e.htm 드라간 오브레노비치의 증언이 담긴 판결 요약 https://www.icty.org/x/cases/obrenovic/cis/en/cis_obrenovic_en.pdf 12
이 게시판에 등록된 joel님의 최근 게시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