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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6/05 05:09:52 |
Name | 박초롱 |
Subject | 잘 지내요?.. (3) |
나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녀가 아닌 과대에게서. ............................................... 한창 오티가 진행되는 기간이라 이미 많은 동기들이 서울로 올라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과대는 발빠르게 버스를 대절했다. 약속한 시간, 하나 둘 검은 정장을 입고 나타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공기는 고요하고 무겁기만 하다. 어느덧 도착한 버스에 나눠 타기로 하고 나는 제일 먼저 버스에 올라 가장 뒷자리 오른편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연민의 시선이 느껴진다. 우린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같이 슬퍼하고 있지만 유독 내가 조금 더 슬플 거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는 듯 하다. 불편하다. 지금은 어떤 위로를 받아도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는데. 나는 애써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어둑어둑해지는 하늘만 바라본다. 애초에 모인 시간이 늦은 탓에 벌써 어스름이 몰려오는 저녁이 되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삼삼오오 모여 식후땡을 가볍게 즐기곤 다시 버스에 오른다. 서울에서 버스에 오른지 벌써 두 세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 반도 못 왔다고 기사 아저씨는 이야기한다. 아저씨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야기를 애써 삼킨다. 지난 여름 방학 때 뵌 적이 있는 어머님은 나를 보자마자 부둥켜 안고 우신다. 이미 여자 동기들은 눈물바다다. 남자 동기들도 괜찮은 척하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은 속절없어 다들 천장만 바라본다. 어머님을 애써 다독이고 한쪽 구석에 어르신들과 소주잔을 들이키고 계신 아버님께 인사를 드린다. "왔나." "예." "고생했다. 잠깐 나온나." 아버님도 담배를 피우신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담배에 불을 붙여 먼저 건네주시곤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빨아 들이신다. 아까보다 더욱 가라앉은 아버님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담배연기를 흩뿌린다. "이거 니끼다." 곱게 접힌 편지지. 아니야 아닐꺼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펼쳐보니 그녀의 낯익은 글씨체가 눈에 들어온다. "망할 년이 그래도 지 애인이라고 몇 자 끄적여놨더라. 망할 년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읽히지 않을 것 같다.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가는 둘째치고 떨어지는 눈물에 편지지가 젖어 찢어질 지경이다. 흐른 눈물을 닦아내고 대충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고 보니 아버님의 뒷모습이 흔들린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외동딸을 잃은 아버님의 심정을 고작 21년 산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아직 방학이 끝나지 않은 덕에 3일장과 발인을 끝까지 지키고 다시 돌아온 학교는 거짓말처럼 활기로 가득했다. 신입생들의 풋풋함이 더해진 캠퍼스는 발랄하기 그지없었고 잠시나마 가라앉았던 과 분위기도 조금씩 환기가 되어갔지만 나는 홀로 여전히 슬픔에 잠겨있는 느낌이었다. 학과 수업을 가도 왠지 소외된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 그들을 밀어낸다기 보다 그들이 내게 차마 다가오지 못하는 느낌이다. 나도 그들은 이해한다.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고. 신입생 환영회에 오라는 문자도 많이 받았지만 차마 나가지 못했다. 친구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막상 가서 웃어줄 자신이 없었다. 선배라고 이렇게 후배들에게 얼굴 한 번 안 비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환영하는 자리에 나가 인상쓰고 앉아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후배들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했다. 신입생과 함께 하지 않는 3월은 덕분에 한가할 따름이었다. 2주에 한 번씩 내려가서 어머님과 아버님을 뵈었다. 책임감에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뭐한다고 이렇게 멀리까지 내려오는 것 아니냐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렇다고 문전박대하지는 않으셨다. 언제 한 번은 무엇이 먹고 싶느냐며 먼저 연락해오는 일도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바다를 보며 차를 마시거나 갓 떠온 회를 안주로 소주 한 잔을 하는 등 아마 아들이 있는 집이라면 흔히 해봄직한 것들을 하고 돌아왔다. 두 세 달이 지나고 셋이 나누는 대화에 제법 웃음소리도 나고 표정도 조금씩 밝아졌다.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나는 좋았고 이런 이야기를 듣는 두 분도 무척 재미있어 하셨다. 내 덕분에 두 분의 생활이 어떻게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 두 분 덕에 학교 생활에도 더욱 더 열심일 수 있었고 학기 초반에 과생활에서 멀어졌던 것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 그 주는 원래 내려가지 않는 주였지만 주중에 그녀의 생일이 있었기에 미리 연락을 드리고 금요일에 내려갔다. 언제나처럼 맞아주시는 두 분은 이젠 진짜 부모님같은 느낌이 든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여느 때처럼 소주 한 잔을 하는데 어머님이 괜스레 쭈뼛쭈뼛하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생일이라 그런걸까 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아버님이 예의 중저음으로 입을 여셨다. "니 이제 그만 와라." 그간 내가 불편하셨던걸까. 하긴 내가 이 집 자식도 아닌데 2주에 한 번씩 쳐들어왔으니 여간 무례한 게 아니었을테지. 아버님은 빈 소주잔을 채우시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니가 우리 집 사위도 아니고 이렇게 와주는 게 고맙긴 한데 니도 결국 니 인생 살아야 되지 않겠나. 금마를 잊어주지 않는 건 고맙지만서두 금마도 니가 이렇게 사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목구멍에 한 가득 이야기가 맺히지만 정작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아버님은 재차 빈 소주잔을 채우셨다. "니가 이제는 진짜 우리덜 아들같다마는 더 이상 이렇게 부모 대접받는 것도 우리 욕심같고 말이다. 이제 우린 괘안타. 진짜로 괘안타." 괜찮긴요. 괜찮다는 양반이 어찌 목소리가 그리 떨린답니까. 아버님은 가득 채운 소주잔을 들이키시고 어머님과 나를 거실에 두고는 먼저 주무신다며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님은 괜스레 걸레를 들어 바닥을 훔친다. 단란했던 분위기가 얼어붙는 건 그렇게 순식간이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일찍 일어나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는 더 이상의 불편함을 드려서는 안 되겠단 생각에 평소보단 조금 이른 시간에 작별을 고하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젠 진짜 우리 아들같은데 앞으로 더 보자고 하는 것도 우리 노인네들의 주책일 것 같아요. 그간 진짜 고마웠어요. 우리 딸도 고맙게 생각할 거에요. 이제 이 번호 지우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아요.」 한 자 한 자 읽고 있으니 두 분이 나를 얼마나 생각해주셨는가 새삼 느껴졌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끅끅 올라오는 울음이 쉽게 멈추지는 않는다. 차라리 엉엉 울고 싶지만 그 역시 얼마나 민폐인가. 서울로 돌아오는 그 긴 시간동안 나는 문자를 또 읽고 또 읽으며 눈물을 삼켰다. 그 번호를 지우기까지는 그 뒤로도 한 달이 더 걸렸다. 그 번호는 그 두 분과 나의 연결고리이기도 하지만 1년 전 4월 그 날 그녀가 내게 건내준 번호이기도 했으니까. 마치 이것마저 지우면 그녀마저 영원히 지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벌벌 떨면서 지울까 말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오판이었다. 휴대폰의 주소록에서 그 번호는 지워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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