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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10/17 19:15:37 |
Name | 기아트윈스 |
File #2 | 달팽이.jpg (3.98 MB), Download : 4 |
Subject | 달팽이 |
언제나처럼 도서관에 박혀서 논문 깎으러 가는 길에, 낮게 뜬 아침 햇살에 무언가가 반짝거렸어요. 동전인가 하는 기대감에 슬쩍 살펴보니 달팽이, 그것도 죽은 놈이에요. 이미 시신은 간데 없고 긴 점액질 흔적만 말라붙어 빛나고 있었어요. 멋쩍은 기분에 그냥 지나쳤는데, 갈팡질팡한 그 흔적과 뒤집어진 껍데기가 못내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왔어요. 무어라 형용할 길 없는 울적함과 뜨뜻함이 속에서 보글보글 올라와요. 저놈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어디로든 힘껏 기어갔을 거예요. 몸은 말라가고 힘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최후에 힘이 다해 자빠져서 눈을 감았겠지요. 껍다구 하나 남기고. 제 꼴도 저럴 거예요. 한 쪽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무언가 볼만한 걸 남기겠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멀리서 보면 갈팡질팡하다 자빠져 죽을 달팽이가 아닌가. 저놈은 그래도 장렬하게 쓰러져 껍데기라도 남겼는데, 내가 자빠질 자리엔 껍질 부스러기라도 있을까. 아니, 껍데기가 있어도 크게 달라질 건 없겠군요. 그게 있다면 누군가가 보고 감회를 느낄 수 있겠지만, 없댄들 대수려구요. 일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BGM은 이적의 달팽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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