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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1/09 15:48:02 |
Name | 수박이두통에게보린 |
Subject | [회고록] 나 킴치 조아해요우 |
캠프 케이시. 동두천에 위치한 주한미군부대. 대학시절 단순히 영어영문학을 이수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나를 5개월 정도를 파견 보낸 곳이다. 사단에서는 나를 원어민 수준의 영어 능통자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서양인을 만나더라도, 동양인을 만나더라도 '아이캔t스피k잉글리쉬.림미얼론' 만을 호기롭게 외쳤던 학생이었다. 아니, 영어영문학을 이수해서 영어 잘해지면 철학을 이수하면 모두가 다 니체가 되는 것이란 말인가. 오오, 진짜 신은 죽었습니까? 그러나 군에서는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일단 호기롭게 영어능통자로 선발되어 주한미군부대에 파견을 갔으니 영어를 잘하는 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 옆자리에는 공군 통역장교가 있었다. 이럴 땐 조용히 있는게 상책이다. 이것이 바로 빠른 태세 전환. 그들의 영어는 육군에서 나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녀석은 '아이 러브 킴치, 두유 노우 지성 팍?' 과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 '구텐탁, mr.푸팟퐁커리. 얄리얄리얄랴셩 모어 치킨 플리즈.' 같은 엄청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이런 녀석과 함께 있으니 나는 한국어를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 훈련이 끝나면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다음 날 훈련 시간 전까지만 캠프에 들어오면 외박을 하던 잠을 자던 자유였다. 오오, 프리더어어엄!! 캠프 케이시에는 굉장히 큰 체육관이 있었다. 풀코트 농구 코트도 있고, 야외 수영장도 있고, 다이빙 대도 있으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룸도 있었다. 당시 나는 나름 근력은 자신있다고 판단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룸으로 향했다. '꾸웹꾸웹!!' '흡!!흡!!헙!!'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밥샵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엄청난 근육돼지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내 몸무게 정도 되는 중량을 가볍게 프레스를 치고 굉장히 농도가 진한 무언가를 마시고 다시 프레스를 쳤다. 갑자기 왜소해보이는 나. 그리고 초라해보이는 나. 어머니, 보고싶어요. 그러나 여기서 근육돼지들을 보고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난 마이웨이를 걷기로 했다. 녀석들의 1/2도 중량을 못쳤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아, 이게 바로 보람인가. 보람을 느끼고 샤워를 하기 위해 샤워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은 웨이트 트레이닝 룸보다 더 한 지옥이 펼쳐졌다. 19금 생략. 샤워를 마치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데 어떤 흑형이 나를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냈다. 뭐지, 이 녀석은. 싸늘하다. 녀석의 눈빛이 날아와 나에게 비수로 꽂혔다. 나는 녀석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옷을 파바박 입고 숙소로 향했다. 다행히 녀석은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어제 그 녀석이었다. 계급장을 확인하니 미군 일병이었다. 녀석은 굉장히 인상 깊은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저.. 실내홥니다. 어디서 오셔슴니까?" 뭐지. 그럼 난 스니커즈라고 해야 하나. 녀석은 굉장히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했다. 나도 모르게 흔들리는 나의 눈빛. 그러나 애써 태연하게 녀석에게 답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녀석은 웃기 시작했다. "요기가 바로 한국임니다 ㅋㅋ" 아, 맞다. 당황한 나머지 깜빡함. "XXX에서 왔어요." 녀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어딘지 모름니다. 같이 밤 머거도 되겠슴니카?" 어딘지 모르는데 왜 고개를 끄덕거리는거냐, 이 녀석.. 밥을 먹으며 이것저것 대화하기 시작했다. 녀석을 편의상 실내화라고 하겠다. 실내화라고 본인 소개를 했으니 말이다. 실내화의 어머니는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미국인이었다. 아버지는 주한미군부대에서 근무했었고 그 사이 실내화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미국에 있고 어머니의 나라를 가보고 싶어서 주한미군으로 왔다고 했다. 밥을 먹으며 좀 친해져서인지 훈련이 끝나고 개인시간에 헬스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꾸웹꾸웹!!' '흡!!흡!!헙!!' 실내화의 벌크는 역시나 어마어마했다. 평소에는 그래도 덩치가 작다라는 소리는 듣지 않지만, 여기에서는 한 없이 왜소해졌다. 실내화는 어마어마한 무게가 걸린 프레스를 가볍게 치고 굉장히 농도가 진한 무언가를 마신 후 또 프레스를 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운동을 그만두고 실내화가 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운동이 끝났다. 실내화는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나가서 맥주 한 잔하는게 어떤지 물어보았다. 함께 동두천 미군부대 앞을 서성거리다 어느 가게로 들어가서 맥주를 냉장고에서 집어들고 안주를 시켰다. 난 분명 병맥주를 가져왔는데 실내화는 미니어처를 가지고 온 것 같다. 병맥주가 저런 사이즈로 보일 수도 있구나.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실내화의 전우들이 왔다. 녀석들은 나를 보더니 환한 웃음 지으며 다가왔다. "와쌉!! 요마브로!!" "노노노노!! 암나쵸브라도." 분위기가 어색할 때는 술을 마셔야 한다.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언제까지 어깨 춤을 추게 할거야.~!@#$%^&*(). 기분이 좋아질만큼 술을 마셨었을까. 녀석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어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럴 때는 한국인의 필살기가 있다. 바로 천진난만한 웃음. 난 미소를 머금으며 어버버버버법버 거렸고 이런 내가 안쓰러운지 실내화가 통역을 맡았다. 다음 날, 실내화와 부대찌개를 먹기로 했다. 많이 맵진 않을까 우려스러웠지만 한국인의 기강(?)을 보여주기 위해 메뉴를 선정했다. 훗. 이게 바로 김치파워!! 칠리콩까르네!! 훈련이 끝나고 캠프 앞에서 실내화를 만났다. 실내화는 능수능란하게 택시 앞자리에 탔고 어디론가 가달라고 했다. 설마 부대찌개를 먹어본 것인가? 모 부대찌개집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부대찌개와 소주를 시켰다. 실내화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부대찌개에 소주를 함께 했다. 조심스레 물었다. "안 매움? 노 핫, 예스 핫?" 실내화는 나의 네이티브 스피킹을 듣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나 킴치 조아해요우ㅋㅋ" 그러나 그 말과 달리 실내화는 어마어마한 양의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 좋아하면 어디 한 번 많이 먹어봐라. 다 먹고 밥까지 볶아먹었다. 소주를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매일 훈련이 끝나면 체육관에서 만났다. 이것이 바로 우정. 전우애. 위아솔져스!! 그렇게 파견 기간이 끝나고 녀석과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가끔 길에서 엄청난 덩치를 뽐내는 주한미군을 본다.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킴치를 좋아하는 실내화가 생각이 난다. 녀석은 지금도 킴치를 좋아할까. 95%의 사실, 5%의 픽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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