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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1/26 02:38:25
Name   고양이카페
Subject   수필_옷장고찰
지금 내 옆에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한창이다. 세탁이 끝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 생각에 미치자 눈길을 다시 옷장으로 향한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옷장이 작다는 점이다. 새로 사 온 옷들을 넣을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다. 이건 옳지 않다. 사실 옷장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조그마한 내 집의 크기에 비하면 옷장의 늠름한 자태는 흠잡을 곳이 없다. 또한, 옷장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전부터 옷장에 입주해있는 옷들은 무척 편안히 지내고 있다. 질서 정연히 정리되어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면서도, 다시 생각해보자. 새로 온 옷들을 억지로 넣게 되면 이 질서가 엉망으로 변할지 모른다.

그럼 옷에 책임을 물어보자. 이제 눈길은 새로 온 옷들의 임시 보금자리인 흰색 바구니를 향한다. 올해 겨울은 생각보다 추웠고 가지고 있던 옷만 가지고 지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 연초 세일기간에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새로운 옷들을 살 수 있었다. 새로운 옷들은 정말 따뜻했고 오늘의 강추위도 그들 덕분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들에게 답례하고자 지금 이 고민에 빠진 것이다. 새로 온 옷들을 따뜻한 옷장 속으로 넣어주고자 한다.

결국, 나에게 책임을 물어보자. 나를 쏘아보기 위해 굳이 거울을 보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사소한 재판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나에게서 비롯한다. 옷장의 질서를 위협하는 죄질을 판단하기 위해 잘잘못을 따져보자.

사실 옷장 속 상황을 염려하지 못했다. 옷장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지금의 질서를 지키는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일했다. 사실 과소비를 했다. 스웨터 하나쯤은 안 사도 괜찮았을 것이다. 사실 옷장 정리방법은 조금 비효율적이다. 겉보기에는 깔끔해 보이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사실 옷장 정리방법조차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옷 종류별로 서로 다른 색깔의 옷걸이를 사용하고 있다. 아니다.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 보니 스웨터 전용인 노란색 옷걸이가 부족하다. 새로운 옷 때문이 아니다. 세탁소에 맡길 때 잃어버린 것이다.

실소가 나왔다. 옷장 속 정의는 내 착각이었다. 흰색 바구니에서 새로운 옷들을 꺼내어 모두 옷장에 넣기로 한다. 망설임은 없다. 흰색 옷걸이에 새 스웨터를 널어 옷장에 넣는다. 알록달록 예쁘기도 하다.

마침 세탁이 끝났다.


- 두번째 조각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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