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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08 00:05:58수정됨
Name   No.42
Subject   난 A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한 이에게 늘 내가 하는 조언이 있다.

'이 넓은 도로 위에 있는 사람 중에, 너 빼고는 죄다 미치광이라고 생각해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방어운전이라는 개념은 여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한다. 나 말고는 죄다 미쳤으니 정신줄 꽉 붙잡고 방심하지 말고 운전하라고. 감히 이러한 운전 철학은 도로 위에서 퍽 효율적으로 재산과 건강을 지켜준다고 자부할 수 있다. 끊임 없이 주위 운전자들을 감시하고 의심하며 가드를 내리지 않으면 말이다. (물론 운전이라는 과정이 매우 피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운전은 원래 그런 것이다.)

이런 태도가 제대로 먹히는 곳이 또 있다. 인터넷이라는 곳이다. 여기서 오가는 수많은 말들을 보고 있자면, '나'를 기준으로 놓았을 때, 어디서 누가 어떻게 무슨 이상한 짓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이다. 아무리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고, 손 끝 한 번 스친 적이 없더라도, 커뮤니티라는 곳에서 몇 년씩 익숙한 닉네임을 부벼대다 보면 없던 정도 들고, 괜시리 친근감이 들게 마련이다. 단순노출효과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내게 익숙해진 어떤 이가 어느날 갑자기
미쳐 날뛰는 꼬락서니를 보여주기도 한다. 3년째 페이스북 친구였던 어떤 사람이 느닷없이 김진태 의원 지지자 모임에서 발견된다든가... 이런저런 형식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열광적으로 선포하고 지지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나쁜가? 틀렸나? 아닐 지도 모른다. 나는 신도 신의 아들도 아니다. 따라서 나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자 하는 의도도 의지도 능력도 없다. 다만 나는 '나'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고 자신만큼은 그 기준 안에서 지키고자 하는 게 다다.

누군가가 내게 말을 한다.
'이건 솔직히 B지.'

내가 대답한다.
'난 A라고 생각해.'

'그게 왜 A야? 이건 B잖아.'
'난 A라고 생각해.'
'대체 왜?'
'난 A'라는 근거로 A라고 생각해.'

여기서 이 대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릴 타이밍을 맞는다.
만일 상대가,

'난 B'때문에 B라고 생각해.'

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A와 B의 간극이 남북극 정도 되어도 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B-B'간의 연관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심지어, 나의 생각이 B로 바뀔 수도 있다. 헌데, 이런 행복한(?) 순간은 좀처럼 쉽게 맞을 수 없다.

'야, C'에다가 D'이고 E'인데 그게 왜 A냐? B지.'

이제 나는 상대를 무시한다. C', D', E'가 B와 관련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 쓸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애당초 그럴 가능성도 낮고, 성공한다고 해도 내게는 큰 득이 없다. 피곤하기나 하겠지. 그리고 나는 부디 상대도 나를 무시해주길 바란다.

'난 A라고 생각해. 그냥 넌 B라고 생각하고 난 내버려 둬.'

'알았다.'

뭐 이런 나름대로 행복한 순간도 역시 쉽게는 오지 않는다.

'이건 B라니까? 넌 왜 그따위로 생각하는거야?'

이렇게 되면 무시도 사치다. 경멸감이 올라온다.

'그러니까 넌 B라고 믿고 따르고 전재산을 들이붓든가 뭘 하든가 맘대로 하라니까. 난 그냥 A라고 생각하다 죽을래.'

여기에서 포기해 준다면, 나는 이 사람을 잊을 수 있다. 허나, 여기서도 들러붙는다. C'~E'를 넘어서 이제는 한 T'쯤 되는 녀석도 마구 가져오고, 슬슬 나에 대한 인신공격도 개시된다. 피곤하다. 그럼 나는 싸운다. 나도 누구 못지 않게 샤우팅 잘 하고, 목소리 크다고 군대에서도 반장같은 거 신나게 해봤으며, 나아가 오는 주먹질에 곱게 법적 대응만 하는 성품도 아니다. 물론, 이것은 오프라인에서의 상황이다. 온라인에서는 목소리가 백날 커봐야, 파퀴아오같은 주먹질 스킬이 있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짓거리를 계속해야 하는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온라인에서의 나는 자주 이렇게 행동한다.

'나는 B라고 생각해.'

'응, 그래. 난 바빠서 이만.'

내가 A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것을 저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다. 저 사람이 A로 전향한다고 해서 특별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대신, 나도 내가 판단할 때 아니다 싶은 B를 곱게 받아들여주고 싶지 않다. 길가는 사람 붙잡고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부르)짖으면 당한 쪽의 기분은 어떨까. 내가 (부르)짖고 싶지도, 그걸 당하고 싶지도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헌데,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퍽 많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나와 다른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그걸 두고 보질 못한다. 보통은 이런 것이다. '무지몽매한 영혼이여, 너의 어리석은 신념을 버리고 나의 편으로 오라.' 이런 류의 대사가 끊임 없이 오고 간다. 이걸 간단히 '키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오늘도 무심코 들어간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는 170:1 쯤으로 맞짱을 시전하는 정신나간 이들을 다수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그들을 '계몽'하고 싶어하거나, 혹은 그냥 우월감에 취해서 '언어폭력'(혹은 팩트폭력)을 구사하고 싶어하는 살짝 정신이 덜 나간 더 많은 이들도 보았다.

옛적 성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가 쳐맞고 싶지 않은 스킬은 남들한테도 쓰지 마라.'
반세기 전에 세계를 휩쓴 비틀즈도 이렇게 말했다. '내비 둬.'
수 년 전에 동심을 강타했던 퀸 엘사도 노래하셨다. '걍 좀 둬.'

나는 그냥 좀 두려고 한다. 나도 그냥 좀 뒀으면 한다. 난 누가 뭐래도 A라고 생각한다. 열과 성을 다해서 내게 그럴듯 해 보이는 진실의 쪼가리라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 이것도 누군가에겐 지적하거나 계몽하고픈 태도일 수 있다. '뭐냐, 그 무책임하고 의욕 없는 소리는!?'이라거나 뭐 등등. 하지만 아무도 없는 허공에 섀도우 펀치로 선빵을 날려보는 것도 치맥에 얼큰하게 기분 좋은 밤에 해볼 만한 일이다.

'이런 식빵 바밤바, 나는 A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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