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7/13 20:41:57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서울에도 없는 서울한정식


지방은 물론이거니와 서울의 한정식집을 찾아다니다보면 한가지 의문점이 들게 마련입니다. 남도한정식, 개성한정식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에 서울한정식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습니다. 호남지방이나 개성, 서울 모두 넓은 평야를 끼고 있고 해산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지리적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서울의 음식만 유독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고려 500년 동안 발달한 개성음식 문화는 조선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는데, 조선 500년 도읍지였던 서울의 음식은 몇가지 서민음식과 궁중음식을 빼면 사라져버렸습니다. 서울의 음식이 번듯한 한정식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위 식당들은 각각 남도식과 개성식 한정식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지배계층이 향유하던 문화의 차이입니다. 고려의 지방호족들이 왕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호의호식한 반면에 조선의 사대부들은 유교의 영향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밖으로 드러낼 수 가 없었죠. 뒤에서야 이것 저것 다 해봤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백성이 우선이고 근검절약을 좌우명으로 삼아야했습니다. 흉년이 들면 금주령을 내려서 겉으로나마 술도 마실 수 없었으니 고려시대에 비해 음식에 대한 제약이 심했습니다.(물론 고기가 너무 먹고싶은 나머지 농사짓던 소를 때려잡은 왕도 있지만 이건 예외로 합시다.)

두번째로 아래 계급으로의 음식문화 전이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어느사회나 상류 계층의 문화는 그보다 아래 계급으로 자연스럽게 펴져나가기 마련이죠. 유럽이나 중국같은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귀족의 문화가 부유한 평민에게로,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로 순차적으로 퍼지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고려시대의 호족은 대부분 지방의 근거지와 별개로 수도에 묵을 집을 두었습니다. 연회에 참석하거나 진상품을 하사하는 등의 정치 행위는 일상이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호사스러운 음식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호족들의 행태는 여유가 있는 아래 계층 사람들의 상차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앞에서 언급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개성음식이라는 특징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들도 지방에 거점을 두고 수도에서 관직생활을 하는 행태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고려시대 호족들이 누리던 물질적 풍요를 추구 할 수는 없었습니다. 궁궐에서 임금의 평소 식단조차  십일첩반상을 넘기지 않았으니 요즘의 한정식 상보다 오히려 못 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상류 계층들이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들은 아래 계층으로 퍼질 만한 것도 없었던 것이죠. 물론 연회나 특별한 행사에 사용되던 궁중음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화려한 음식들은 왕실과 사대부의 혼인을 통해 반가로 퍼져나가고 다양한 형태로 발달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퍼진 궁중음식들의 밑바탕이 개성음식이었습니다. 결국 서울의 음식이란 것은 그보다 먼저 발달한 개성음식에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에서도 서울식한정식을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죠.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389 7
    14935 육아/가정패밀리카에 대한 생각의 흐름(1)-국산차 중심 7 + 방사능홍차 24/09/21 197 0
    14934 도서/문학이영훈 『한국경제사 1,2』 서평 - 식근론과 뉴라이트 핵심 이영훈의 의의와 한계 6 카르스 24/09/19 623 15
    14932 일상/생각와이프한테 충격적인 멘트를 들었네요 ㅎㅎ 9 큐리스 24/09/19 1119 5
    14931 일상/생각추석 연휴를 마치며 쓰는 회고록 4 비사금 24/09/18 517 8
    14930 방송/연예(불판)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감상 나누기 58 + 호빵맨 24/09/18 966 0
    14929 음악[팝송] 혼네 새 앨범 "OUCH" 김치찌개 24/09/18 134 1
    14928 일상/생각급발진 무서워요 1 후니112 24/09/17 473 0
    14927 일상/생각오늘은 다이어트를 1 후니112 24/09/16 313 0
    14926 게임세키로의 메트로배니아적 해석 - 나인 솔즈 kaestro 24/09/15 272 2
    14925 일상/생각힘이 되어 주는 에세이 후니112 24/09/15 307 0
    14924 일상/생각케바케이긴한데 2 후니112 24/09/14 446 0
    14923 기타줌번개해요. 오늘 밤 10:45 부터 19 풀잎 24/09/13 699 2
    14922 일상/생각수습 기간 3개월을 마무리하며 4 kaestro 24/09/13 671 10
    14921 일상/생각뉴스는 이제 못믿겠고 3 후니112 24/09/12 797 0
    14920 일상/생각예전에 제가 좋아하던 횟집이 있었습니다. 큐리스 24/09/12 464 0
    14919 의료/건강바이탈 과의 미래 25 꼬앵 24/09/12 1066 0
    14917 일상/생각"반박시 님 말이 맞습니다"는 남용되면 안될꺼 같아요. 24 큐리스 24/09/11 1241 4
    14916 일상/생각와이프와 철원dmz마라톤 다녀왔습니다. 5 큐리스 24/09/11 481 6
    14915 일상/생각얼마전 영상에서 1 후니112 24/09/10 318 0
    14914 오프모임9월 15일 저녁 6시즈음 잠실새내에서 같이 식사 하실분!! 40 비오는압구정 24/09/10 1087 3
    14913 음악[팝송] 칼리드 새 앨범 "Sincere" 김치찌개 24/09/10 152 1
    14912 일상/생각가격이 중요한게 아님 8 후니112 24/09/09 854 0
    14911 생활체육스크린골프 롱퍼터 끄적 13 켈로그김 24/09/09 483 0
    14910 사회장애학 시리즈 (5) - 신체 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사회 기술 발달과 가정의 역할 7 소요 24/09/09 1724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