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9/08 11:08:46
Name   Erzenico
Subject   [Music Letter vol.1] Autumn in Seoul
Music Letter는 좋아하는 곡 몇개를 중간에 넣어서 써 보는 픽션입니다.
글쓴이의 상황과는 관계없고 정서와는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더위가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모든 것이 느리게만 느껴졌던 여름 날, 내가 좋아하던 일들이 하나 둘 귀찮게만 느껴지고, 결국은 나의 사랑 마저도 마음 속에서 분별증류 되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뒤에야 촉촉한 비가 내렸다. 나는 그 비가 너무 좋았고, 또 그만큼이나 그 비가 미웠다.

Gentle Rain - After The Gentle Rain

여튼 삶이란 일관성이란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면 기가 막히게도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무척이나 기발한 굴레에 메인 무언가이다. 한강에는 여느 때처럼 쫄쫄이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고, 남산에는 굳이 거기까지 올라가 유한한 사랑이 그 끝이 없을 것처럼 자물쇠를 채우며 약속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각종 공원에는 그 동안 못 나온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들이 범람할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하늘도 가을엔 늘 그랬듯 높고 푸를텐데.

Joe Lovano - Autumn in New York

그리고 나는 그 모든 항상성이 나를 얽매고 있는 동시에 그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보통 사람이지만 또 보통에 못미치는 사람이기도 하다. 범주 내에 정의되기도 하지만 어떤 범주로도 엮을 수 없는 특이점이기도 하고. 이를 자의식과잉이라 해도 상관은 없지, 실제로도 좀 그런 편이니까. 하지만 이 어쩔 수 없고 또 이유도 알 수 없는 소외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실재하는가? 그 근거를 나는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

Charles Mingus - Myself When I Am Real

그러나 그 근거를 스스로에게서 찾는 것을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 또 주변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곧 나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나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한 가지이고. 그러니 그런 것들을 강하게 붙잡고 있는 것만이 나를 잃지 않는 길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 중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강하게 잡고 있는 사람도 있기를 바라면서.

Kenny Garrett - Just a Second To Catch My Breath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229 1
    15926 일상/생각나를 위한 앱을 만들다가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큐리스 25/12/25 367 6
    15925 일상/생각환율, 부채, 물가가 만든 통화정책의 딜레마 9 다마고 25/12/24 538 11
    15924 창작또 다른 2025년 (14) 2 트린 25/12/24 134 1
    15923 사회연차유급휴가의 행사와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에 관한 판례 소개 3 dolmusa 25/12/24 469 9
    15922 일상/생각한립토이스의 '완업(完業)'을 보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1 퍼그 25/12/24 559 15
    15921 일상/생각아들한테 칭찬? 받았네요 ㅋㅋㅋ 3 큐리스 25/12/23 496 5
    15920 스포츠[MLB] 송성문 계약 4년 15M 김치찌개 25/12/23 205 1
    15919 스포츠[MLB] 무라카미 무네타카 2년 34M 화이트삭스행 김치찌개 25/12/23 129 0
    15918 창작또 다른 2025년 (13) 1 트린 25/12/22 178 2
    15917 일상/생각친없찐 4 흑마법사 25/12/22 590 1
    15916 게임리뷰] 101시간 박아서 끝낸 ‘어크 섀도우즈’ (Switch 2) 2 mathematicgirl 25/12/21 315 2
    15915 일상/생각(삼국지 전략판을 통하여 배운)리더의 자세 5 에메트셀크 25/12/21 423 8
    15914 창작또 다른 2025년 (12) 트린 25/12/20 220 4
    15913 정치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3) 2 K-이안 브레머 25/12/20 339 6
    15912 게임스타1) 말하라 그대가 본 것이 무엇인가를 10 알료사 25/12/20 569 12
    15911 일상/생각만족하며 살자 또 다짐해본다. 4 whenyouinRome... 25/12/19 570 26
    15910 일상/생각8년 만난 사람과 이별하고 왔습니다. 17 런린이 25/12/19 907 21
    15909 정치 2026년 트럼프 행정부 정치 일정과 미중갈등 전개 양상(2)-하 4 K-이안 브레머 25/12/19 455 6
    15908 창작또 다른 2025년 (11) 2 트린 25/12/18 252 1
    15907 일상/생각페미니즘은 강한 이론이 될 수 있는가 6 알료사 25/12/18 644 7
    15906 기타요즘 보고 있는 예능(19) 김치찌개 25/12/18 371 0
    15905 일상/생각무좀연고에 관한 신기한 사실 5 홍마덕선생 25/12/18 591 3
    15904 일상/생각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더 반짝일 한아이의 1학년 생존기 10 쉬군 25/12/18 500 32
    15903 IT/컴퓨터잠자고 있는 구형 폰을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활용하기 9 Beemo 25/12/17 718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