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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0/09 15:48:22 |
Name | 멍청똑똑이 |
Subject | 영화 [조커] 를 보고 -----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
[조커] : Don't Smile 웃어. 아니야, 웃지마. -------------------------------------------------------------------------------------------------------------------------------- 차마 울 수 없어 늘 웃어야 했던 많은 외로운 이들에게. 만일 당신이 순응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자. 당신에게 있는 몇 가지 결핍이, 남들에게는 낭비와 닮은 모양새로 주어져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니,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당신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들어가 봐라. 아마 당신이 목에서 손이 튀어나올 정도로 갖고 싶은 것들이 흔하게 펼쳐져 있을 것이다. 마치 평범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부러운 것들이 당신을 액정 속에서 바라보고 웃는다. 야, 웃어. 뭐 어때? 그게 인생이지. 그러나 웃을 수 없다면 어떡하지? 이 영화에서 조커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 캐릭터의 서사에 맞는 개연성을 위한 장치들은 무척 평범하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학대, 빈곤, 인기 없는, 희망 없는, 장애, 인정받지 못한, 조소, 냉소. 얘, 그래도 긍정적으로 항상 웃으렴. 스마일, 그렇지. 김-치. 그렇지. 내가 웃겨? 그러나 이런 것들은 부차적으로 느껴진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웃는 것이 아니라, 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영화 내내 울을 수 없는 사람의 웃음을 보았다.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당신이 보통 사람보다 더 잘 참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더 잘 참으면서도, 무척 말랑한 사람이면 어떨까. 당신의 삶이 부조리극처럼 느껴지고, 당신의 불행과 결핍이 운명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늘 웃기 위해 오래 참으며 노력하는 사람이면 어떨까. 그 노력의 보답이 까마득하다면 어떨까. 당신에게 늘 누군가의 냉소와, 조소와, 동정과. 소외된 위치에서 가만히 있길 바라는 사람들의 광대로 서 있다면 어떨까. 그걸 오래, 오래 참을 수 있었다면 어떨까. 사정의 순간까지 오래 참을수록, 등허리에는 번개가 치듯 더 강렬한 오르가슴이 흐른다. 당신의 인내에는 무엇이 흐를까? 적당한 순간에 순응하지 못하고, 결핍을 울음에 흘려보내지 못하고, 계속 웃기 위해 참았던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자라나고 있을까. 그것은 스스로를 파괴할까, 남을 파괴할까.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이 가진 자랑스러운 전리품을 늘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네가 가장 소중하다고 병적으로 떠드는 시대에, 너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낄 때, 도저히 벗어나지 지도, 포기할 수도 없을 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마음을 흘려보내지 못할 때. 그러나 누구도 당신이 그 마음을 표현하길 원하지 않을 때. 오직 당신의 삶은 소외의 바깥에서, 불쌍하고, 연약하고, 동정 어린. 때로는 너그러운 기회를 주고, 때로는 따뜻한 밥을 주면서도 오로지 그렇게 순종적으로 남아 웃기를 바랄 때. 그래서 그 어떤 사람과도 진정으로 관계맺을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화내고, 울어버리는 대신 막연히 웃으면서 오래도록 참았을 때. 사람들이 받아들여주는 모든 사실에 당신의 삶이 빠져있다면 사람들이 허락하는 모든 삶의 모양에 당신은 허락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동등하게 여기는 서로의 관계에서, 당신은 그저 누군가의 위안을 위해 세워진 광대라면 그래서 어떤 사랑도 당신의 것이 될 수 없고, 당신의 모든 것이 그저 불쌍하고 우스꽝스러운 자여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너무나, 당신을 사랑하는 바람에. 아무에게도 받을 수 없던 애정과 인정 대신에 메마른 우물을 뜯겨지고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손으로 긁고 긁어내어 한 방울의 마음을 모아 웃음을 위해 심장을 적셔야 했을 때. 그 어디서도 마른 갈증을 채워주려하지 않았을 때. 늘, 참아내고 웃는 것만이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었다면. 그 인내는 당신의 무엇을 열매로 만들어 버렸을까. 찢어진 입꼬리 끝에 매달린, 흘릴 수 없는 눈물의 크기가 어쩌면 땅을 집어삼키는 홍수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이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했던, 기대야 할 곳에 아무도 어깨를 빌려주지 않았던, 당신의 삶이라는 무대가 사실은 다른 이들이 밟기 위한 계단이었다면. 그래서 이전에도, 이후에도 당신의 삶은 하나의 단막극으로 막을 내려야 한다면. 아무도 웃어주지 않은 웃음을 위해 먼지처럼 쓸려갈 삶이라면. 누구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소외와 아픔을 핑계로 삼지 않고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장을 하고 서 있어야 했던 부조리극의 광대인 당신에게는 이 많은 질문들로부터 하나의 질문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네 인생과는 달리 내 인생이 부조리극과 같다면 그래서 나는 늘 웃어야 한다면 자, 이제 누가 무대에 오를 차례지? 지금부터, 누가 광대지? 웃어. 그게 인생이라며. 아니야. 웃지 마. 그게 인생이라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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