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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10/25 21:52:25
Name   o happy dagger
Subject   보육원의 추억...

https://news.v.daum.net/v/20191025180954407

출근해서 신문을 조금 읽는데, [조앤 롤링 "젊은이들아, 고아원 가서 자원봉사 하지마"]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내용은 아이들을 입양시키는게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지내는것보다 낫다는것과 고아원에서 봉사하는것이 아이들을 입양시키려는 노력을 적게하게 만든다는것그리고 고아원 비리가 심각하다는 내용입니다.

동의하는 분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을꺼고... 아무튼 기사를 보다가 지난주에 보육원에서 봉사했던 경험을 짤막하게 쓴게 생각났어요. 티탐에 올렸다가 너무 감상적인 느낌이래서 글 올린지 30분 정도 있다가 글을 내렸는데, 기사를 보니 또 올리고 싶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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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4학년 1학기, 학기는 중간을 막지나서 후반부로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이리저리 바쁜 시절 어느 주말 아침 늦지않게 집을 나와 덕수궁으로 갔다. 주중 모임에서 서로 맡아서 할 것들을 나누었고, 내가 맡은 부분은 덕수궁으로 가는게 제일 나았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좀 적게 걷고 갈 수도 있었지만,  지하철의 답답함을 힘들어했던 나는, 시간 여유가 되면 그냥 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는 미아리고개를 지나 대학 생활동안 꽤 많은 시간을 보냈던 대학로를 지나 종로로 접어들자 슬슬 내릴 준비를 하고있다가 종각에 이르자 버스에서 내려서 덕수궁까지 걸어간다.

당시 덕수궁내 문예진흥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 곳에서는 클래식 음반과 감상실이 있었고, 한국에서 공연된 연극의 대본이 모여 있었다. 클래식 음반은 별로 구입하지 않았던 나는,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가끔 이곳에 와서, 내가 원하는 음반을 찾은후, 감상실로 들어가 음악을 듣곤 했다. 집에 있던, 아르바이트 한 돈을 쪼개서 구입했던 허접한 오디오로 듣는것과는 다른 소리를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건 꽤나 큰 즐거움이었다.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건지 클래식쪽 듣는 사람들은 좋은 오디오를 가지고 있는건지는 몰라도, 감상실은 늘 비어있었고 내가 원할때는 언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작은 숨겨진 곳이기도 했다.

희곡은 공연을 올리기전에 이곳에 제출을 해야 하는 것으로, 극단에서 무대에 올리기 조금 전에 정리된 대본이 이곳에 있었다. 당시 서점에서는 일부 유명한 작가의 희곡만이 책의 형태로 출판되어 있었기때문에, 내게 있어서 이곳은 한국에서 공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책으로는 구입할 수 없었던 혹은 읽기조차 힘들수 밖에 없었던,  꽤 많은 희곡을 읽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대본들은 극작가가 최초로 의도했던 형태의 희곡이 아니라, 극단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수정된 희곡이었다. 운이 좋은 경우에는 최초의 희곡에 잔뜩 수정된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수정된 과정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연출가가 사용한것쯤으로 보이는 대본을 볼 수 있기도 했었는데, 이런걸 발견하는건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나는 아동극을 모아둔 서가로 가서는 한뭉텅이의 대본들을 들고는 열람실에 앉아서 훑어보기 시작을 했다. 내가 해야 하는건 초등학생들이 공연하기에 적당한 희곡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어린이용 희곡이라고는 초등학교 다닐때 어린이 희곡집인지 뭔지 해서는 희곡들 5-6개 모아둔 책을 읽은게 다였다. 지금 기억나는거라곤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제목을 가진, 김동환의 시가 극중 노래로 종종 흘러나오던 희곡이 하나 있을뿐이다. 당시 대본을 보면서 적당한걸 찾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그게 극단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용으로 쓰여진 것들이어서 정작 초등생이 연기를 하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재미와 아이들이 연기할만한을 목표로 읽다가 이제는 제목이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대본을 하나 골라서, 복사를 한 부 한 후에 그곳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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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나는 안양에 위치한 보육원으로 가서 내가 복사해 온 대본을 주었다. 당시 나는 일주일에 두번을 안양에 위치한 보육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조인트로 운영되던 고등학교 동문회 일부가 봉사활동을 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안양에 있던 보육원과 연계해서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기때문이다. 평일이면 학교마치고 관악에서 안양으로 갔다가 가르치는걸 마치고나서 그곳에 온 동문들과 정리모임을 하고 강북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12시가 넘는게 보통이었다. 대학 다니는 내내 과외를 2개 혹은 3개씩 하던 내게 이게 하나 더 올라가는건 상당히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만 두기는 힘들어서 학부 마칠때까지는 계속 했었다.

처음 보육원에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내게 배정된 아이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은 무척이나 희미하다. 당시 보육원은 어린아이들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었는데 중고등학생과 초등생이하는 완전히 분리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중고등학생이 아니라 초등생을 맡아서 가르쳤다. 처음 보육원에 가서 내가 알게된건 그 아이들이 전부 고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있기는 했지만, 부모가 데리고 있기 힘든 환경이거나 혹은 학대를 받아서 그곳에서 맡아서 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중 일부는 가끔이기는 하지만 부모가 방문하는 경우도 있고, 또 일부는 후원자가 있어서 그들이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그 아이들은 조금은 좋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그러다보니 방문자가 없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약간의 위화감 같은 것들이 느껴질때가 있기는 했었다.

내가 맡아서 가르쳤던 아이는 말많고 까불대는 남자 아이였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쳐보려고 좀 노력을 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 생각은 내려놓고 아이와 그냥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된 제일 큰 이유는 보육원 선생님들이 우리들에게 해 준 이야기때문이었다. 보육원이 그 아이들이 원하는 우리의 존재라는 건 보육원 아이들이 학교에가서 나도 내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대학생 형이나 누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보육원이라는 시설에서 학교를 다니기때문에 가지는 열등감을 조금은 상쇄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맡은 아이는 금방 나와 친해졌고, 그 아이는 대학 생활을 비롯해서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것들에 대한 질문을 많이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면서 나는 어디까지 어떻게 대답을 해 줘야 하는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건 그 아이가 그곳에서 지내면서 필연적으로 지나가야 할 삶의 궤적때문이었다.

보육원에서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약간의 돈을 정착금 비슷하게 받고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졸업후 직장을 구하는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그 아이들은 중학교 마치고나면 실업계나 공업계 고등학교 진학이 거의 강제되었다. 후원자라도 있어서 이후를 계속 봐주겠다고 하는게 아니라면, 다른 옵션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진학시기가 되면 아이들중 인문계로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갈등을 많이 하게 되고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후 직장을 구하고 혼자 살면서 대학을 다니고 필요한 학비를 마련하는건 무척이나 어렵고, 보육원에서는 그런 길을 아이에게 선택하라고 할 수는 없었던 노릇이었다.

사실 고등학교 진학은 큰 문제는 졸업후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셈이었다. 만 18 혹은 19살, 세상에 혼자 나와서 얼마없는 돈으로 시작하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삶이 그들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육강식의 속고 속이는것들이 일상적인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시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세상에 내 던져졌을때 경험해야 할 것들은 그 아이들중 상당수를 금방 사회속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술집에서 일하면서 몸을 팔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던 초등학교 같은 반 여학생의 이야기나 주먹을 휘두르다 감옥에 간 어렸을때 친구의 모습이 때로는 겹쳐져 보이기도 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건 없다는게 나를 괴롭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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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조금전 학예회를 했다. 노래를 부르고, 장기자랑을 하고, 그림을 그린 아이들도 있었고, 연극을 했다. 대본은 여기저기 손을 봐서 아이들이 하기에 적당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 학기가 마무리 되었고, 가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두세가지 진로중에서 계속 고민하던 나는 결국 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했고 시험준비는 해야 했기에 보육원에 가는건 그만 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의 인연도 끝이 났다.

그 시절 시위에 나가서 구호를 외치거나 돌을 던지며 부조리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지닌 세상을 우리에게 물려주는 기성세대에 대해 분노했고, 경찰에 쫓기다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고는 쩔뚝거리며 신발가게를 찾아다니면서 절망했었다. 내가 기성세대가 되었을때 어떤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을까?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지금. 내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세상은 과연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것인지. 그 때 느꼈던 그 절망감은 얼마나 덜어진 것인지. 내 몸뚱아리 하나와 가족을 지탱하는것도 간신히 하고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건 사치는 아닌지. 하지만, 가끔은 그래도 지금이 그 시절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고, 아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때는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게 된다. 인류의 역사는 천천히 움직이기는 하지만 좀 더 풍요로우며 평등한 세상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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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님이 느끼셨던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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