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kt의 세주 픽
-> 세주는 하드 이니시 조합의 꽃이죠. 나진은 그걸 생각하고 어느 정도 밀쳐내고 수퍼세이브도 가능한 쓰레쉬와 그나마 남은 정글러 중에 할만한 렉사이를 골랐죠. 원래대로면 그라가스와 알리스타가 최선이지만 둘 다 밴으로 소모되었으니까요.

2. skt의 잔나 루시안 픽
-> 루시안은 생존기가 있는 원딜임에도 잔나를 골랐다는 점에서 1경기 세주 픽이 하드 이니시 조합을 완성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 나진의 하드 이니시 조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을 겁니다. 허나 아직까지 마린의 픽이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나진에게 가장 무난한 선택은 말씀하신 것처럼 역시 나르였을 것이고 상대가 럼블을 가져갈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징크스를 골라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어떤 원딜을 골랐어도 경기 결과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3. skt의 바루스 누누 픽
-> 보자마자 망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죠. 모든 상성이 안 좋습니다. 상대가 투 원딜인데 라인전은 탑패왕 ap 누누랑 해야 하는 나르. 미드는 포킹왕 바루스. 봇은 갱 면역력이 높은 잔나와 이동기가 있는 루시안. 상대가 포킹 조합인데 이쪽에는 강력한 이니셔가 아예 없습니다. 게다가 바루스 세주는 갱호응이 워낙 좋은 조합이라 어쩔 수 없이 수비적인 미드 룰루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경기는 그냥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죠.. skt가 포킹을 위주로 하는 조합이기에 전장 선택권도 늘 skt에 있는데다 탱커 나르가 마방템을 가서 단 한번도 제대로 된 한타를 못합니다. 나진의 2킬은 라인전 단계에서 발생한 킬이었고 그나마도 마린과 페이커가 무리하다 내준 킬들, 이후 3용에 바론먹은 skt가 탑 라인 쭉 밀고 들어와서 그냥 게임을 끝내버리죠. 나진은 단 한 번의 저항도 못한 채 말입니다.


나중에 경기를 복기하면서 skt의 픽밴이 참 무섭구나 하고 느껴졌던 게 나진이 한 3밴, 그러니까 아지르 카시 알리스타를 포함한 픽을 나진이 했어도 나진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이었습니다. 아지르는 미드 바루스로 공략이 가능한 분위기였고 카시 역시 바루스를 상대로 장담할 수 없는 데다 알리스타를 나진이 가져갔어도 쓰레쉬 픽보다도 나았을까는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나르가 누누랑 라인이 붙은 시점에서 나진의 한타 설계는 망한 거거든요.

탑 누누가 한타에서 존재감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간 괄시받는 상황이었지만 skt는 탑 누누를 꺼냄으로써 상대 탑솔에게 마방을 강요하고 투원딜 조합을 완성함으로써 역으로 한타에서 나르의 존재감을 무너뜨립니다. 한타에서 누누도 하는 게 없지만 나르가 하는 게 더 없게끔. 그나마 누누는 궁쓰고 끊기면 버프라도 걸어주고 들어오는 상대에게 얼음이라도 던졌죠. 나르는 진입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사실 첫 수를 잘못 읽은 시점에서 나진의 픽은 꼬여도 너무 꼬였습니다. skt는 세주를 가져감으로써 하드 이니시 조합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포킹을 더욱 견고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힘빠진 이니시를 느긋하게 받아칠 수 있는 조합을 완성했죠. 하지만 나진은 말 그대로 죽도 밥도 안 되는 조합이 되버렸습니다. 이니시도 라인전도 한타도 갱킹도.

덧붙여 한국식 메타는 최대한 상대가 잘하는 챔프를 밴하고 우리가 잘하는 챔프를 픽해서 할만한 조합을 짠 다음 라인전 약우세 -> 이후 한타에서 승리하는 공식을 그린다면 중국식 메타는 픽밴이야 어찌되었건 가되 라인전 페이즈에서 우리에게 위협이 될만한 상대방 챔프를 다이브쳐서 성장세를 억제한 뒤 한타에서 승리하는 공식을 그린다고 보았거든요. 그러한 점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가 msi 결승전 2, 3경기라고 생각하고요.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탑이 럼블인데 뚜벅이 원딜 안 가져가는 게 정상인데 EDG는 럼블을 주고 계속 파서 한타에서 잉여를 만드는 방법을 썼었죠.

이번 skt는 픽밴에서 아예 상대 조합을 카운터치는 그림을 그려왔죠. 요즘은 가급적 라인전도 할만 하고 한타에서도 좋은 챔프를 뽑는 게 추세인데 라인전 짱 센 누누와 투 원딜 조합으로 나르를 그냥 잉여로 만들어 버립니다. 스포츠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나진이 EDG였다면 애초에 그런 픽밴을 안 짰겠지만서도 인게임에서 미친 듯이 탑을 팠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진이 이 방법을 선택지에서 아예 배제했다는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