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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2/20 12:47:39
Name   드라카
File #1   201709271320067799_img_2.jpg (210.0 KB), Download : 15
Subject   [소설] 검고 깊은 목성의 목소리 - 2









깊은 아침잠의 늪에서 날 깨운 것은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뒤이어 은주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석 씨. 연구실에서 소장님께서 찾으세요.”


씻지도 못한 채 곧바로 연구소로 가자 잔뜩 흥분한 삼촌이 술에 잔뜩 취한 새내기처럼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왔구나! 현석아. 어제 관측소 부근에 운석이 떨어지는 소리는 들었냐? 제법 컸는데 말이다.”

“아뇨.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덕분에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잠만 계속 잤어요. 그런데 운석이라고요?”

“그래! 그것도 목성에서 온 놈이 분명하다! 운석이 지면에 충돌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뛰쳐나가서 바로 채취한 뒤에 분석해보니 목성의 구성성분과 매우 흡사해. 목성석을 발견한 사람은 우리가 처음일 거다! 엄청난 대발견이라고! 지금 당장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거다. 미안하지만 현석이 너의 도움도 필요하겠구나”


그렇게 말하고 삼촌은 날 연구실로 데려갔다. 연구실은 관측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난생처음 연구 설비들을 접한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자 삼촌과 민수 씨의 집요한 설명 덕분에 그럭저럭 조수 역할은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삼촌이 목성석이라 부르는 운석 파편은 대부분의 운석이 그렇듯 거무튀튀한 현무암 같은 모습이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돌덩어리처럼 보이는데 이게 수억 킬로미터를 날아온 목성의 파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삼촌의 말로는 이 목성석에서는 특수한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는데 기존의 방사선과는 다른 형태와 성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계속해서 연구가 필요하니 당분간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을 예정이라고도.


연구가 점점 전문적인 영역으로 파고들다 보니 내가 도울만한 일이 없었고 난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욕실에서 샤워기를 틀고 머리 위로 흘러 떨어지는 물 사이로 거울에 비친 몸을 바라보자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과 홀쭉하게 들어간 배가 보였다. 분명 목성석을 연구할 때는 느끼지 못한 피로감과 허기가 뒤늦게 폭풍처럼 몰아쳤다. 젖은 몸을 대충 닦아내고 곧바로 식당으로 달려간 나는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우고 나서야 몸에 불어닥친 피로와 허기의 폭풍을 잠재울 수 있었다. 기운을 차리자 슬슬 학철 삼촌과 민수 씨가 걱정됐다.


몰입과 집중은 피로도 잊고 일하게 만들지만 어디까지나 쥐어 짜낼 뿐 근본적인 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계속 일했는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곧장 연구실로 갔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자 삼촌과 민수 씨는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넘치는 활력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나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난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 연구실에서 오줌 지린내가 나는 걸까? 연구실 어디에도 암모니아를 보관하는 곳은 없었는데…’


숙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나는 한가지 생각을 더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를 한참 동안이나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암모니아는 목성 대기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분명, 저 목성석에는 주변을 변화시키는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관측소에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연구실과 삼촌이다. 이제 연구실 근처에만 가도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내부의 벽은 암회색과 탁한 주황색 얼룩이 가득했다. 마치 목성의 표면 같은 얼룩이었다. 삼촌의 경우에는 더욱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는데, 목소리의 톤이 매우 높아졌다. 예능 프로에 등장하는 개그맨들이 헬륨 가스를 마시고 내는 그 목소리처럼. 그래서 아무리 심각한 표정으로 말해도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헬륨은 암모니아와 마찬가지로 목성 대기 성분의 일부였다. 삼촌의 피부는 온통 목성의 표면처럼 암회색에 주황빛 얼룩이 가득했고 눈동자도 주황빛으로 변했다.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대로이리라. 마치 삼촌의 몸 자체가 점차 목성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민수 씨도 이러한 변화를 동시에 겪고 있었다. 난 그동안 몸이 아프단 핑계를 둘러대며 최대한 연구실로 가는 걸 피했다.


상대적으로 연구실에 접근할 일이 적었던 나와 은주 씨는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이러한 변화는 연구실과 연구자에게 가장 먼저 일어났지만, 점차 관측소 전체로 퍼지고 있었다. 호수에는 주황빛 녹조가 생기더니 호수 전체를 덮어버렸고 식당 옆 뜰에 자라던 감나무에는 목성 형태의 감이 열렸다. 오줌 지린내가 나는 감은 먹기는커녕 감나무 근처를 지나가는 것도 피하게 만들었다. 나와 은주 씨는 아직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좀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서로에게 말을 놓았다. 우리는 목성석을 발견한 이후 발생한 변화를 목성화라 불렀다.


“이제 슬슬 걱정돼. 아니, 진작부터 걱정되긴 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말려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 삼촌은 목성화되면서 누가 봐도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났어. 지금이라도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커피를 마시며 꺼낸 질문에 은주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되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소장님이 우리 말을 들어주실까? 이미 저 목성석에 푹 빠져서 하루 종일 연구실에서 목성석을 들여다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시는걸. 민수 씨는 요새 어디에 있는지 통 보이지도 않아. 난 이제 두 분과 만나는 게 좀 무서워져… 소름 끼친다고. 몸에선 암모니아 냄새가 나고 눈동자는 초점이 없이 공허해. 얘기를 할 때도 내 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기분이야.”
“내가 직접 얘기해볼게. 아직은 대화가 통할 거야.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어.”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남자로서 나서고 싶은 기분 때문이었을까, 난 용기와 오기 가운데 혼란스러운 상태로 연구실로 갔다. 하지만 연구실 안은 아무도 없었고 거대한 시험관 같은 유리 안에 지난번에 보았던 목성석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도, 목성의 무늬와 흡사한 벽과 바닥의 얼룩이 주는 기괴한 감각도 모두 넘어서는 압도적인 질량감의 소리가 내 몸을 뒤흔들었다. 단순한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소리는 나에게 어떠한 개념을 각인시켰지만 나는 그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리가 반복될수록 그 개념은 점차 단순한 형태로 바뀌었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랜만이구나. 연구 도와주러 온 거냐? 아니 됐다. 이미 많은 걸 알아냈단다.”


삼촌의 얼굴은 일주일의 시간 동안 수백 배로 빠른 세월이 흐른 것 같았다. 주름이 깊어졌고 목은 앞으로 굽어 초췌해 보였다. 탁한 주황빛 눈동자는 그 깊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허했다. 그는 시험관 안에 위치한 목성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목성석은 목성에서 온 게 맞다. 그냥 우연히 날아온 게 아니라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왔지. 나와 민수는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했고 그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단다. 한낱 가스 덩어리라고 생각했던 행성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의지를 가지고 있고 그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행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놀랍지 않니? 우린 인류 최초로 행성과 소통할 기회를 가진 거란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또다시 목성석에서 느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로는 부족해. 목성석 하나로는 단편적인 의지만 파악할 수 있고 소통은 불가능하지. 좀 더, 목성석이 더 필요하단다. 나를 도와주겠니?”


도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하단 걸까. 과학자도, 연구원도 아닌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삼촌은 덤덤하게 말했다.


“뭐, 됐다. 민수에게 부탁하마. 그렇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될 줄 알았으면 부르지 않는 건데. 몸이 아픈 건 알겠지만 좀 더 힘을 써주면 좋겠구나.”


삼촌은 시험관에서 목성석을 꺼낸 뒤 손에 쥐고 연구실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집요하게 울리던 소리도 사라졌다. 난 은주에게 참담한 실패를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은주는 불안해하며 다른 곳에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어디에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경찰서에 신고해서 삼촌이 약을 한 것처럼 반쯤 미쳐서 운석을 연구하고 있는데 위험해 보이니 말려달라고 해야 할까? 질병 관리 센터에 연락해서 운석을 연구하는 삼촌이 정체불명의 피부병을 앓고 있는데 외계 바이러스일 수 있으니 검사해달라고 해야 할까? 모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지독한 불안감과 함께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일어날 게 뻔한데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다.


그 날 밤, 나는 꿈속에서 거대한 주황빛 구름기둥이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풍경을 보았다. 말 그대로 산처럼 거대한 구름기둥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고 발 밑에는 자욱한 안개가 가득했다. 하늘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만이 가득했는데 밤하늘이 아니라 우주의 완벽한 어둠 그 자체였다. 안개 위로 떠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갑작스레 안개 밑으로 추락하며 방향감을 상실한 채 희뿌연 안개 속으로 계속해서 빨려 들어갔다. 비명과 함께 깨어난 나는 침대 위에서도 한동안 현기증을 느꼈다.


가쁜 숨을 내쉬는 동안 땅이 울리는 진동음이 느껴져 창문을 바라보자 검은 밤하늘에서 다수의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삼촌의 말대로라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볼 수 있겠지. 목성석 여러 개가 관측소에 도착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나의 목성석이 일으킨 파격적인 변화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선 저 다수의 목성석이 얼마나 끔찍한 변화를 일으킬지 두려웠다.


침대에서 내려와 숙소 밖으로 나가자 차가운 밤공기에 실려온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성석은 연구실을 그대로 직격해 떨어지는 바람에 연구실은 완전히 무너지고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목성화된 이후로 연구실을 떠나지 않던 삼촌이 떠오른 나는 불길을 피해 무너진 연구실 주변을 맴돌며 삼촌을 찾았다.


“삼촌! 괜찮으세요? 삼촌!!”


갑작스러운 사고에 충격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던 나는 그렇게 몇 분 동안을 더 낭비한 후에야 소방서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허겁지겁 숙소로 돌아와 책상에 놓인 핸드폰을 들고 119를 눌렀다. 그러나 통화 연결음이 들리지 않았고 다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 나는 그제서야 전파가 전혀 잡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분명 잠들기 전만 해도 괜찮았는데 목성석이 뿜어내는 방사선의 영향일까? 불현듯 은주가 아직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불안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식도를 역류하는 위액처럼 올라왔다. 황급히 방을 나가 은주의 방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도 계속해서 드는 불안감에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오늘따라 너무 피곤해서 잠에서 깨지 못한 거라 생각하려 애썼다. 내가 은주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뒤집어진 침대 시트와 바닥에 남아있는 질질 끌린듯한 검은 얼룩, 그리고 그 얼룩은 창문으로 이어져 있었고 창문은 깨진 채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귀신들린 것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창문으로 다가가 밑을 내려다보자 경악의 소름이 온몸의 피부를 뚫고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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