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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8/19 18:12:14수정됨
Name   Weinheimer
Subject   못살 것 같으면 직접 만들어보자. 핸드백제작기
저는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주말마다 가죽공예를 배우고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쉰 기간도 있지만 햇수로 따지면 2년 차군요.
취미를 시작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죽공예는 약간 실용적인 이유로 시작했었습니다.
기성 가죽제품은 디자인은 별로 맘에 안 들 거나, 맘에 드는 건 고가라서 답답하면 내가 만들어서 써야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돈이 예상한 것보다 많이 들어가더군요.

차라리 처음부터 좀 제대로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집 근처에 공방이 있다 보니 비교를 안 하고 대충 어? 생각보다 싸네(초급자 과정 25만원)? 하고 한두 달 정도 다니면서 지갑, 파우치, 핸드폰 케이스 같은 간단한걸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만들어놓고도 왜 기성품보다 못할까? 왜 바느질이 허접하지? 왜 재단은 비뚫어지는거지? 왜 모눈종이를 쓰는거지?
대체 이때까지 내가 뭘 배운 거지?? 왜왜왜ㅙㅗ애ㅗㅐ오ㅔ에ㅇㅇ?
의문이 들어서 그때 배웠던 선생한테 물어봐도 그냥 연습하면 되십니다. 이딴 소리나 해주더군요.
..그렇게 두달 정도 다니다가 연말+귀찮음이 겹쳐서 그만뒀었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새로운 공방에 다니고 있는데..또 다른 문제점이 있더군요. 생각보다 배울 것도 많고, 만들면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엄청나게 많고, 만드는데 시간(=수강료)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가죽공예를 시작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기성품 대신 내가 만들어서 쓰자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죽 구매+도구 및 부자재 구매+수강료를 생각하면 차라리 기성품을 사는 게 낫다는 결과가 나오게 되더군요.
그렇지만 비용을 신경 쓰면 스트레스가 쌓이니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탐라(제주도 아님 ㅎ)나 가입인사에서 취미로 가죽공예를 하시는 분들도 몇번 본 것 같고, 심심해서 최근에 만든 가방의 제작기를 작성해보겠습니다.


1. 왜?
여태까지 7개의 가방을 만들었었는데, 어머니가 쓸 수 있는 핸드백은 하나도 안 만들었습니다. 사실 만들 수도 있긴 한데 귀찮은 게 커서 안만들었죠. 그래서 약 한달 전부터 선물하려고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걸 만들고 나면 살짝 변형해서 브리프케이스 만들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2. 무엇을?
디자인천재라면 직접 핸드백 디자인을 정해서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 정도로 열정과 재능이 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서 만든 물건이라고 타인이 좋아해 줄 이유가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지요. 그래서 시원하게 따라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헤르메스라고 나오고, 롤에서는 헤르메스의 발걸음, 도전! 슈퍼모델에서 어떤 미국인 모델이 "어엄? 허미스?"라고 했던 HERMES를 말이죠. 버킨백과 더불어서 유명한 켈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진품은 본 적도 없지만 대충 1000만원은 넘어갈 겁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만.. 도둑신님의 자비덕택인지 한국의 수많은 공방이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짝퉁을 판매("토고가죽이에얌") 중이신 낭낭한 언냐들 중에서 고소당한 분들은 숫자가 미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홍차넷에서 디자인 보호법 전문 변리사나 특허권 침해를 전문으로 다루시는 법조인이 계시면 살려주세요.



3. 어떻게?
디자인을 정한 후에는 패턴을 떠야 합니다.
가죽공예의 각 공정들은 모두 중요하나, 패턴을 잘못 뜨게 된다면 각 부분의 결합조차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귀찮고 하기 싫은 부분입니다. 기준이 되는 부위부터 사이즈를 정하고 그려나갑니다.

패턴지는 공방마다 다른데 모눈종이, 도화지, 도화지보다 딱딱한 어떤 종이(...) 등..여러가지를 이용해서 뜹니다.
가방의 사이즈를 정하고 전면, 후면, 하단, 측면, 뚜껑 등의 사이즈를 정한 후 그 사이즈에 맞춰서 패턴지를 재단합니다.


전면과 뚜껑의 패턴입니다. 정말 단순해 보이지만 오랜만에 그려봐서, 전체 패턴을 그리는데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네요.


패턴을 완성 한 후에는 패턴에 맞춰서 가죽들을 재단합니다


안감과 겉감으로 쓸 가죽들.
안감으로 산 가죽때문에 할말이 있는데, 요즘에는 온라인으로도 가죽 및 관련상품을 취급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만 화밸을 잘못 설정해서 실제제품과 색상이 다르다거나, 사진으로 안보여주는 목,등부분의 심각한 주름, 탄력, 가죽 후면 등에서 단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 가죽 구매는 말리고 싶습니다. 위 안감사진도 겉감에 맞춰서 산 건데 색상이 블로그에 올라온 것과 너무 달라서 짜증났던 기억이 나네요.


4. 노가다
가죽들을 모두 재단한 후에는 노가다의 시작입니다.
기성품들을 뜯어보셨거나, 터트려(?) 보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가죽제품들은 가죽과 장식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쓰는 가죽과 디자인에 따라서 다르지만 제품의 형태, 촉감, 내구성 등을 위해서 보강재를 사용하게 됩니다.
보강재 없이 가죽만 써서 만든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여름철 바닷가의 해파리처럼 너덜너덜하게 변한다거나, 장식 부분의 파손, 변형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강재 선택을 잘못하거나, 본드칠을 잘못하면 너무 딱딱해져서 가죽 본연의 질감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가방의 핸들도 단순해 보이지만 만드는데 대단한 노가다가 요구됩니다.


핸들의 심지는 여러 가지 소재로 만드는데, 켈리백에는 슈게로를 쓰기도 한다더군요.
아니면 가죽을 여러겹 겹쳐서 만든 후 사포로 갈아서 쓴다고도 하는데...그 노가다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져서 저는 슈게로를 샀습니다. 어차피 추가적으로 사포질하는 건 똑같지만..



이런 저런 노가다들.. 안감겉감에 맞춰서 보강재도 자르고 보강재 추가작업하고, 보강재 부착하고..

핸들뿐만 아니라 핸들과 뚜껑을 연결할 핸들모모도 제작해야 합니다.

가죽 재단의 모든 과정을 레이저 절단기로 오차 없이 자른다면 모를까, 보통은 결합했을 때 미세하게 차이가 나게 됩니다.
(철형으로 찍어서 재단하기도 합니다. 에르메스 핸드백 제작영상을 보면 철형을 이용하더군요)
따라서 마무리를 해줘야 하는데, 마감에는 파이핑, 시접, 바이어스, 엣지코트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고 디자인적인 부분이라서 뭔가 궁금해진 분들은 검색찬스를 이용해주세요.


핸들모모는 엣지코트로 작업합니다.
가죽 자르고, 보강재 자르고, 보강재 가죽에 붙이고, 결합하면 틈이 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엣지코트라는 것을 바르고 말리고, 사포질하고, 다시 바르고, 말리고 사포질하고, 바르고,,,
단차가 안보일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짧은 부위는 그냥저냥 하면 되지만, 스트랩같은걸 하다보면 정신이 황폐해집니다.


엣지코트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하여튼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어요.



핸들부위를 완성 시킨 후 뚜껑에 결합해준 모습

매우 단순해 보이는 핸들이지만, 제 기억에 핸들제작에만 넷타임 8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 같습니다

...

열심히 가죽들을 결합하고 노가다를 하다보면 어느새(???) 가방이 완성되게 됩니다.


5.끗?

인싸그램용 콘ㅡ셉토샷.
필터를 넣었더니 바느질이 이상하게 도드라져 보이네요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는 스트랩






안에 뭘 넣어놔서 오른쪽이 살짝 볼록해졌네요


....만드는 것보다 사서 쓰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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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땀한땀 금손은 춫천
  • 우왕 우왕 그저 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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