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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9 16:18:15
Name   이그나티우스
Subject   한 다리 건너 성공한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한 마디가 있다면

"그집 아이는..."

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10년전쯤에 잠시 유행하다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라는 단어가 있다.

'그집 아이'로 인한 비극은 기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동질적이고 작은 나라라는 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내 추측이다. 민족이나 계급, 지역에 따라서 사회적 희소가치의 분배가 불평등하게 이루어지는 나라라면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그들끼리 모여살고,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또 자기네들끼리 살 테니 보통의 사람이 자기 주위에 성공한 사람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덜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무리 보통 사람이라고 해도 한 다리만 건너면 굉장히 성공한 사람들을 보기가 쉽다. 어지간하면 친척, 친구, 이웃사촌, 지인들 중에 사회적으로 상당히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당장 나만 해도 주위에 한 다리만 건너면 의과대학 교수, 개원하여 성공한 치과의사, 대형로펌 변호사, 대기업 CEO의 이름이 곧장 떠오른다. 내 인맥을 자랑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반대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주위에는 성공한 사람들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다는 점을 이야기하려고 자신의 사례를 인용한 것이다. 어차피 한다리 건너 알 정도면 유사시 나를 도와줄 가능성은 0이나 다름없으므로 자랑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는 나와 별 관련 없는 '한 다리 건너 지인'들이 실제로는 나도 저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 사람과 나와의 사이에는 큰 사회적 간극이 놓여 있지만, 단지 한다리 건너 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나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착각은 그들과는 다른 나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비참하게 느끼게 할 가능성마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8~90년대에 고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팽창했기 때문에, 나의 부모, 삼촌 세대는 '조금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왕왕 있다. 그들 자신도 그렇게 성공하신 분들도 많을 뿐더러, 주위에는 당대에 입신출세한 사람을 찾기가 더더욱 쉬운 것이다. 그래서 2010년대 이후 만성적인 순환장애에 빠져 인재들이 갈 곳을 잃고 과당경쟁으로 몰리는 젊은 세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분들에게는 '그깟 의대', '그깟 판사', '그깟 미국 박사'인 것이다.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인데, 내 주위에도 만나자 마자 자기 아는 사람들의 인맥 자랑으로 시작해서 주위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아는 사람 중에 한국은행 직원이 있는데, 아는 사람 중에 검사가 있는데, 아는 사람 중에 OO대학 교수가 있는데... 라는 이야기는 묵시적으로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계속 깎아내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그런 비교의 늪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해외 유학한 사람들, 나보다 더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나보다 더 좋은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 니보다 더 인기가 있는 사람들 등등...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비판'이라는 미명하에 스스로를 계속 비교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회가 동질적이기 때문에 서로가 연대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그늘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무게도 동시에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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