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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3 23:40:01
Name   ar15Lover
Subject   체제는 어떻게 우리를 속이는가?
"기술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는 무의미한 혁명과, 이를 허락해주는 자비로운 미소이다." - 자크 엘룰

체제는 오늘날의 예비 혁명가, 반항아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 속임수는 수학적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해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라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1. 체제가 아닌 것

일단 무엇이 체제가 아닌 것인지 확실히 하자. 조지 w 부시와 그의 참모들과 관료들, 시위자를 학대하는 경찰관들, 다국적 기업의 CEO들, 그리고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사악한 생명체를 만들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들은 체제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체제의 하수인들일 뿐이며, 그들 자체로는 체제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들의 개인적인 가치, 태도, 신념, 행동은 체제의 필요와 충돌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체제는 사유재산권을 보호한다. 그러나 CEO, 경찰관, 과학자, 그리고 정치인들은 가끔 도둑질을 한다.(여기서 말하는 도둑질은,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물건에 대한 도둑질 뿐만 아니라, 탈세, 뇌물, 그리고 다른 형태의 부패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CEO, 경찰관, 과학자, 그리고 정치인들이 가끔 도둑질을 한다고 해서 도둑질이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경찰관이나 정치인이 도둑질을 할 때 그들은 법률과 사유재산권을 짓밟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도둑질을 할 때 조차, 그들은 겉으로는 법률과 사유재산권을 지지함으로써 체제의 하수인으로서 복무한다.
  
정치인, 경찰관, CEO가 개인으로서 저지르는 도둑질, 뇌물, 부정은 체제의 일부가 아니라, 체제의 질병이다. 도둑질이 줄어들 수록, 체제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래서 가끔씩 편의를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체제의 하수인, 옹호자들 조차도 겉으로는 체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비록 경찰은 체제의 집행자이지만, 경찰 폭력은 체제의 일부가 아니다. 경찰관들이 용의자를 떡이 되도록 구타할 때, 그들은 체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의 분노와 적개심을 분출하고 있을 뿐이다. 체제의 목적은 폭력 또는 화풀이가 아니다. 체제가 경찰관에게 원하는 것은 혼란, 폭력, 부정적 인상을 최소화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체제의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찰관은 절대 화내지 않고, 절대 불필요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중을 통제할 때 물리적 수단보다는 비물리적인 수단을 선호하는 경찰관이다. 경찰 폭력은 체제의 일부가 아니라, 체제가 앓는 질병일 뿐이다.

그 증거로, 주류 언론의 태도를 살펴봐라. 몇몇 반동적인 언론, 논객과는 별개로, 대다수의 주류 언론들은 경찰 폭력을 비난한다. 물론, 주류언론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상류층들이 체제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반영한다.

앞서 말한 도둑질, 부패, 그리고 경찰 폭력에 관한 분석은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가난, 노동착취에도 적용된다. 이 모든 것은 체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예를들어, 흑인들이 차별받고, 소외당하면, 더 많은 흑인들이 범죄의 길에 빠지거나, 스스로를 체제에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 교육의 기회를 포기할 것이다.

현대 기술은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망가뜨렸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인종, 국적, 문화, 그리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일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인종, 민족, 종교, 성지향 등을 이유로 서로를 미워한다면, 체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제시 헬름스 같은 구닥다리 유물들을 제외하면, 체제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그리고 언론을 통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등이 제거되어야할 악이라고 배우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 과학자, CEO가 개인적으로 여성이 있어야할 곳은 가정이라고 생각하거나, 동성애, 타 인종 간 혼인을 혐오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령 대다수가 그렇게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동성애혐오가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도자들이 도둑질을한다고해서 도둑질이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법률과 사유재산권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체제는 인종차별과 다른 형태의 차별을 막을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몇몇 엘리트들의 개인적인 일탈과는 별개로, 체제는 차별과 혐오를 없애려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주류 언론의 태도를 살펴봐라. 몇몇 반동적인 언론, 논객과는 별개로, 대다수의 주류 언론은 압도적으로 인종평등, 성평등을 지지하고, 동성결혼과 타 인종 간의 결혼을 옹호하고 있다.

체제는 온순하고, 비폭력적이고, 길들여지고, 유순하고, 순종적인 대중을 원한다. 사회라는 이름의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갈등과 혼란을 피해야 한다. 인종, 민족, 종교, 그 이외의 집단 간의 적대감을 억누르기 위해, 체제는 또 다른 갈등과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성향, 예를들어 남성성, 공격적 충동, 그리고 다른 폭력적 성향을 억압한다.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인종적, 민족적 적대감은 천천히 해소된다. 하지만 남성성, 공격성, 그리고 폭력적 충동은 손쉽게 억누를 수 없다. 그리고 성과 성 정체성에 대한 태도는 하루만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저항하게된다. 이 지점에서 체제는 대중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에 관한 문제를 맞닿뜨리게 된다.

2. 체제는 어떻게 반항심을 악용하는가

현대 사회의 우리 모두는 수없이 많은 규칙과 규제에 얽매여있다. 우리는 기업, 정부, 노조, 대학, 교회, 그리고 정당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라야하며, 이로인해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체제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예속, 무기력, 그 외의 치욕으로 인해, 절망감이 팽배하게되고, 이는 반항적인 충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체제는 교활한 속임수를 쓴다: 천재적인 속임수를 통해, 체제는 반란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좌절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의 반항심은 방향을 잃는다. 그들은 저항하고 싶어하지만, 무엇을 상대로 저항해야할지 모른다. 운좋게도, 체제는 이들에게 저항해야할 대상이 적힌 리스트를 건네줄 수 있다: 인종차별, 동성애혐오, 여성차별, 빈곤, 노동착취 등 수없이 많은 "사회 정의" 문제들.

수많은 반항아들이 미끼를 문다. 인종차별, 성차별 따위와 싸울때, 그들은 그저 체제를 위해 복무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체제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첫째, 50년전에 체제는 아직 흑인, 여성,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흑인, 여성, 동성애자들의 운동은 실제로 저항적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대의는 저항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가치들은 그저 지금까지 저항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아직도 저항의 상징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젊은 반항아들은 이전 세대의 반항아들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앞서 언급했듯,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체제가 요구하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경찰관, 판사, 정치인 같은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 이들은 예비 반항아들의 타겟이 된다. 러시 림보 같은 시민운동을 비난하는 논객들은, 반항아들에게 자신이 실제로 저항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셋째, 체제의 지도자들 다수가 이들이 요구하는 사회적 변화를 받아들일때조차도, 예비 반항아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조금만 문제가 발생해도 과장된 분노를 보이며 갈등을 지속한다. 예를들어, 그들은 흑인이 그 동안 차별받은 것에 대해 보상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소수자 집단에 대한 약간의 비판에도 극도로 분개한다. 그 비판이 아무리 신중하고 합리적이더라도 상관없다.

이런 방법을 통해 활동가들은 자신이 체제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환상은 우스꽝스럽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에 대한 저항은 정치적 부정부패에 대한 저항이나 마찬가지다.

부정, 부패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체제에 맞서 싸우는게 아니라, 체제의 하수인으로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인들이 체제가 정한 규칙을 따르도록 만든다.

같은 이유로,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체제의 하수인으로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체제를 병들게 만드는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를 없애고 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체제의 하수인으로서만 복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중의 분노가 체제를 향하지 못하도록 막는 피뢰침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들어, 체제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가정주부보다는, 직장에서 일하게 만듦으로써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50년전에, 정부와 언론이 여성으로 하여금 집안일보다는 전문적 커리어를 쌓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면 대중의 광범위한 분노를 맞닿뜨리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와 언론이 아니라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켐페인을 시작했다.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보수적인 대중의 분노를 흡수하는 동안 체제는 안전거리에서 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보수적인 대중의 분노는 정부기관보다는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을 향했는데, 그 이유는 정부기관이 변하는 속도는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느리고 온건해 보였으며, 그 느리고 온건한 변화조차도 레디컬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3. 체제의 교활한 속임수

요약하자면, 체제의 교활한 속임수는 다음과 같다:

1) 그 스스로의 효율성과 안전을 위해, 체제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의 급격하고 근본적인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

2) 체제로 인해 비롯된 절망감은 반항적 충동으로 이어진다.

3) 반항적 충동은 체제의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유도된다. 활동가들은 더 이상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구시대의 가치를 상대로 "저항"함으로써, 체제가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돕는다.

4) 이런 방식으로 자칫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었던 반항적 충동은, 체제를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소된다.

5) 사회 변화로 인해 발생한 대중의 분노는 체제와 그 기관을 향하지 않고, 사회변화를 요구한 반항아들을 향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속임수는 체제의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니다. 이 속임수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이슈던 간에 편집자, 출판사, 그리고 언론 소유주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야한다. 그들은 독자, 시청자, 광고주, 동료 언론인, 권력자들이 그들의 보도에 어떻게 반응할지, 그리고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해야한다.

이슈를 다루는데에 있어서 이러한 사항들은 개인의 감정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언론인, 광고주, 그리고 여타 권력자들의 개인적 감정은 다양하다. 그들은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일 수도 있고,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일 수도 있다. 이들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들이 체제, 체제의 안전, 체제의 권력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미디어의 태도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언론 지도자들과 권력자들 사이에서 체제에 이롭다고 여겨지는 대략적으로 합의된 의견이다.

따라서, 편집자들이나 주요 언론 지도자들이 어떤 사회운동이나 이념에 대한 태도를 정할 때, 그들이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은 해당 사회운동이 체제에 이로운가, 해로운가의 여부이다. 아마 그는 스스로의 도덕적, 철학적, 혹은 종교적 배경에 따라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론의 태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체제의 안정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예를 들어, 뉴스잡지의 편집자가 민병대 운동을 바라볼 때, 개인적으로 민병대의 분노나 목표에 공감할 수도,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광고주들과, 동료 언론인들 사이에서 민병대 운동이 잠재적으로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를 막아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고려한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그의 잡지가 민병대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지녀야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는 민병대 운동이 힘을 잃은 원인들 중 하나이다.

똑같은 편집자가 레디컬 페미니즘을 바라볼 때, 그는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의 급진적인 요구가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페미니즘에는 체제에 유용한 측면이 있음을 본다. 여성이 기업계, 공학계에 참여함으로써, 체제는 여성과 그들의 가족을 체제에 통합시킬 수 있다. 재능있는 여성들은 기업과 기술을 위해 일함으로써 체제를 위해 복무한다. 가정폭력과 강간을 멈추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요구 역시 체제의 필요에 부합한다. 다른 형태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강간과 가정폭력 역시 체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자가 현대 가사노동의 하찮음과 무의미함, 현대 주부들이 겪는 사회적 소외가 많은 여성들을 심각하게 절망하게 만든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다수 여성의 절망감이 잠재적으로 체제를 위협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여성들로 하여금 기업계, 과학계에서 일하는 것을 허용해 절망감을 분출할 창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이 편집자가 개인적으로는 여성을 지배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마초일지라도, 그는 상대적으로 온건 페미니즘이 체제에 이롭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편집자로서 온건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태도를 지녀야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의 광고주들과 다른 권력자들의 눈밖에 나게될 것을 안다. 이런 이유로 주류 언론들은 대체로 온건 페미니즘에 우호적이고, 레디컬 페미니즘에는 엇갈리는 입장을 보이고, 극단적인 페미니즘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과정을 통해, 체제를 위협하는 저항 운동은 부정적 보도의 대상이 되고, 체제에 도움이 되는 저항 운동은 언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보도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예비 반항아들은, 체제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저항"하게 된다.

대학의 지식인들 역시 체제의 속임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독창적인 사상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오늘날 미국에서 제일 과사회화되었고, 제일 순종적이며, 제일 온순하고, 제일 길들여져있고, 제일 철딱서니 없고, 의존적이고, 줏대없는 집단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반항적 충동은 유별나게 강하다. 그러나, 그들은 주도적인 생각을 할 능력이 없기에, 진정한 저항은 불가능하다. 이로인해, 그들은 체제의 속임수에 중독된다. 그들은 체제의 근본적인 가치에는 결코 도전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가 체제에 저항하고 있다는 환상을 즐길 수 있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대학의 지식인들은 체제의 속임수를 도울 수 있는 지위에 있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반항적 충동을 뻔하고 진부한 타겟을 향하게 만든다: 인종차별, 식민주의, 여성 이슈, 등등.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언론 또는 "사회 정의" 문제에 저항하는 또래 학생들과의 개인적 접촉을 통해 이를 모방한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문화는 진부한 저항 코드와 또래 간의 모방, 헤어스타일, 패션, 그 외 유행에 따라 형성된다.

4. 속임수는 완벽하지 않다.

물론, 체제의 속임수는 완벽하지는 않다. "활동가" 집단이 채택하는 모든 이슈가 언제나 체제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체제가 맞닿뜨리는 가장 중대한 어려움은 체제가 사용하는 두 종류의 프로파간다가 서로 간에 모순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통합 프로파간다이고, 다른 하나는 선동 프로파간다이다.

통합 프로파간다는 현대 사회의 핵심 기능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체제에 순응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태도, 믿음, 가치, 습관을 주입하도록 설계되어있다. 통합 프로파간다는 사람들에게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감정적 충동을 영구적으로 억압하거나, 승화시키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특정 이슈보다는, 장기적인 관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깊은 가치관을 형성시키는데에 집중한다.

선동 프로파간다는 특정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태도나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데 쓰인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험한 감정적 충동을 억제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 감정을 자극하는데에 쓰인다.

체제는 질서정연하고, 순종적이고, 협동적이고,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물리력을 독점하고자 하기 때문에, 비폭력적인 사람들을 원한다. 이러한 이유로 통합 프로파간다는 우리를 폭력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혐오하게끔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는 굉장히 화났을 때도 폭력을 쓰지 않게된다.(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인간에 대한 물리적 공격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통합 프로파간다는 우리에게 비공격성, 상호의존성, 그리고 협력을 강조하는 부드러운 가치를 가르친다.
  
반면에, 특정 상황에서 체제는 목표 달성에 잔인하고 공격적인 방법이 유용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바로 전쟁이다. 전시 상황에 체제는 선동 프로파간다를 사용한다: 군사행동에 대한 대중의 승인을 얻기 위해, 체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실제적, 혹은 잠정적 적에 대해 분노하게끔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 프로파간다와 선동 프로파간다는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마음속 깊이 부드러운 가치와 폭력에 대한 혐오를 체화한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끔찍한 군사 작전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체제의 속임수는 어느정도 역효과를 일으킨다. 통합 프로파간다에 따라 체제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저항"하던 활동가들은, 전시에도 계속 저항한다. 그들은 전쟁이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금까지 통합 프로파간다가 가르쳐온 부드러운 가치와 반하는 "인종차별적",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전쟁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동물의 처우에 관해서도 체제의 속임수는 역효과를 낳는다. 불가피하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배운 폭력에 대한 혐오와 부드러운 가치를 동물에게까지 연장한다. 그들은 고기를 만들기 위해 학살당하는 동물들, 조그마한 철창에 갇혀 알만 낳는 닭, 과학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들을 보며 겁에 질린다. 어떤 지점까지는,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여론은 체제에 유용할 수 있다: 자원 활용에 있어서 육식 보다는 채식 식단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채식주의가 널리 퍼짐으로써, 지구의 한정된 자원에 가해지는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을 상대로한 과학실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의 주장은 체제의 필요와 충돌한다. 가까운 미래에 동물 실험체를 대신할만한 대안이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속임수가 이따금 역효과를 낳는다고 해서, 이 속임수가 반항적 충동을 체제에 이로운 방향으로 돌리는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속임수가 반항적 충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체제는 실제로 우리를 약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약하고 무기력하다고 느낀다. 따라서 사람들은 약하고, 억압받은 피해자들에게 집착하고, 그들에게 스스로를 동일시 한다. 이는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신-식민주의 같은 피해자 이슈가 활동가들의 주요 의제가된 이유의 일부이다.

5. 사례

나는 지금 인류학 교과서를 한권 갖고 있다.(William A. Haviland, Cultural Anthropology, Ninth Edition, Harcourt Brace & Company, 1999) 나는 이 교과서가 대학 지식인들이 그들의 유순함을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위장하는 몇가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가장 귀여운 사례는 132~136 페이지에 있다. 여기서 저자는 간성(間性,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성별)을 타고난 론다 케이 윌리엄슨의 글을 인용한다.

윌리엄슨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간성인 사람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우대해주었음을 지적한다. 그녀는 인디언들의 태도를 유럽-미국인들의 태도와 비교하고, 유럽-미국인들의 태도를 그녀의 부모의 태도와 동일시한다.

윌리엄슨의 부모는 그녀를 잔인하게 학대했다. 그들은 그녀의 간성적 특성을 경멸했다. 그들은 그녀가 "저주받았고 악마에 씌었다"고 말했으며, 그녀를 교회에 데려가 "악마"를 쫓아내려 했다. 심지어 그녀에게 손수건을 주고는 "악마를 기침으로 내뱉으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를 현대의 유럽-미국인들의 태도와 동일시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아마 150년전의 유럽-미국인들의 태도는 그러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미국인 교육자, 심리학자, 주요 종교인들은 간성 성별을 갖고 있는 사람을 그런식으로 다루는 것은 끔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언론은 결코 그런 행동을 우호적으로 보도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평균적인 중산층 미국인들이 인디언들만큼 간성을 받아들일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들 대부분은 윌리엄슨이 끔찍하게 학대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윌리엄슨의 부모가 체제의 가치로부터 한참 떨어진 유별난 광신도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윌리엄슨은 실제로는 현대 미국 주류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 시대착오적 소수를 공격하면서, 자신이 마치 현대 유럽-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 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하빌랜드는, 12 페이지에서 문화인류학은 현대 서구 사회의 편견에 도전하는 우상파괴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묘사는 사실과 멀어도 한참 멀어서, 한심하지 않았다면 아주 웃겼을 것이다. 현대 미국의 주류 인류학계는 체제의 가치에 비참할 정도로 순종적이다. 오늘날의 인류학자들은 자신이 사회의 가치에 도전하는 것 마냥 굴때, 대부분의 경우는 체제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일부 시대착오적 소수 외에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 구시대의 낡은 가치관을 공격한다.

하빌랜드가 윌리엄슨의 글을 인용한 방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빌랜드의 책 전반이 이런식으로 편향되어있다. 하빌랜드는 독자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교훈을 줄 수 있는 연구결과는 강조하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연구결과는 축소하거나 누락한다. 따라서, 그는 간성을 받아들일 줄 아는 인디언의 포용력을 강조하면서, 많은 인디언 부족들이 똑같이 간통을 저질러도 남자는 봐주면서 여자는 코를 잘라냈다는 사실, 크로우족 인디언 전사는 모욕을 당했을 경우 즉각 복수해야하며, 복수하지 못했을경우 부족의 수치로 여겨졌다는 사실, 미국 동부 인디언 부족들이 상습적으로 사람을 고문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폭력성, 남성성, 성차별을 보여주는 사실들은 오늘날 체제의 주요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이기에 검열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하빌랜드가 인류학자들이 서구 사회의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고 진심을 다해 믿고 있으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대학 지식인들의 자기기만 능력은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서, 그 정도는 손쉽게 해낼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간통한 사람의 코를 잘라내거나, 여성을 학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간성으로 태어난 사람을 혐오하거나, 인종, 종교, 성 지향 등등등의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는, 좋게 봐줘도, 개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체제의 교활한 속임수는 혁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반항적 충동을, 온건한 개혁에 쓰이도록 유인하는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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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테드 카진스키가 2002년에 쓴 에세이 The System's Neatest Trick을 번역한 것입니다.
제 블로그에도 올려뒀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해서 여기에도 올립니다.
비록 2002년 미국을 두고 써진 글이지만, 지금의 한국의 상황에도 많은 부분이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ted-kaczynski-the-system-s-neatest-t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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